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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후기 朴後氣
1968년 경기 평택 출생.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격렬비열도』 『엄마라는 공장 여자라는 감옥』 『사랑의 발견』 등이 있음.
hoogiwoogi@gmail.com
풍등시절
가슴에 불 하나 품고
풍등이 날아간다
날개 없는 자유 등에 지고
겨우 날아오르는,
오십대는
흔들리는 풍등시절이다
아직 바닥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돛이요
허공에 떠 있다는
자각은 닻이다
축제의 풍등처럼 우리는
함께 날아올라
각자 떨어진다
닿았다 싶으면
멀어지는 돈과 행복,
탄탈로스의 고통 속에서
생의 절반을 보낸 다음에야
비로소 가슴 속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려 애쓴다
청춘의 협곡을 지나
절벽과 절벽 사이
잔교(棧橋)에 내려앉았을 때,
어쩌면 뛰어내리는 게
날아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출렁거릴 때마다
날아오르는 풍등보다
뛰어내리는 새가 되고 싶었다
발 디딜 수만 있다면
절벽 위 잔교면 어떤가
지금은 쫓아갈 때가 아니라
기다려야 할 때라고,
해 저무는 난간 위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리니지1 2021
사는 게
공성전(攻城戰)이다
빼앗거나 빼앗기거나
둘 중 하나,
죽기 전엔
빠져나갈 수 없는
아버지의 나라에
눈먼 눈이 내린다
서울은 중세의
거울이다
눈을 뭉치듯
영혼마저 끌어모아
돈을 굴려보지만,
토지도 집도 사랑도
모두 타인의 것
자고 일어나면 문밖에
밀린 대출 이자가
흰 눈처럼 쌓여 있다
칼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세리(稅吏)의
눈을 찌르는
가시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한조각 슬픔은
가장 저렴한 인생 아이템,
버티기 힘들 때
슬픔을 꺼내 씹으면
그 누구라도
생존에 대한 다짐을
배가시킬 수 있다
용서가 아닌 복수에
밑줄 그으며,
익명의 화살들이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날아간다
왕(王)이 되려는 자들이
점성술사를 불러
남몰래 별점을 친다
피 묻은 잔을 돌리며,
그들은 혈맹원의 등 뒤에서
배반의 칼을 꽂기도 한다
어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암흑세계로 복귀하는 병사들의
불안한 미소를 보았고,
세상은 좀처럼
페스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
- 중세시대가 배경인 다중 접속 역할 수행 온라인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