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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브래디 미카코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사계절 2022
만국의 아저씨여, 단결하라
이정훈 李政勳
시인 man6120@naver.com
친애하는 레이,
자네들 얘기 잘 읽어보았네. 브래디 미까꼬(Brady Mikako)는 이 책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노수경 옮김)에서 영국자본주의의 복지정책 축소에 대항하며 살아야 하는 노동계급 사람들의 ‘웃픈’ 분투를 그리고 있더군. 말이 통할 것 같은 인물은 사이먼이고 스티브와는 언제 일 좀 같이해보고 싶어. 마주치기 싫을 것 같은 사람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사상적으로 곤란할 뿐 아니라 성격 또한 매우 못된”(55면) 물건은 이쪽도 사양이니까. 등장인물과 에피소드를 더듬다 자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네. 먼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의 만듦새를 소개하자면 이렇다네.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계급의 사랑과 긍지’. 불그스름한 표지엔 이런 부제가 붙어 있고 ‘거칠고 낯선 길을 어슬렁거리는’ 게 분명한, 샤꾸(작업자용 연장 허리띠)에 장도리와 스패너를 차고 술병을 든 배불뚝이 대머리 아저씨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군(지나치게 사실적이라고 화내진 말게).
영국이라는 나라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마거릿 새처(Margaret Thatcher)와 보비 샌즈(Bobby Sands)를 떠올리게 한다네. 저자의 남편 브래디도 아일랜드 출신의 덤프트럭 기사더군. 책엔 등장하지도 않는 보비 샌즈를 기억하는 건 윗세대가 우리에게 떠넘긴 숙제 때문이랄까. 1980년, 우리나라의 광주는 그 무렵 벨파스트처럼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갔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저항하던 시민들을 학살하고 언론을 통제했거든. 1981년, 보비 샌즈가 감옥에서 단식투쟁 끝에 사망할 때까지 한국 TV와 신문은 매일 그의 소식을 전해주었네. 그땐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몰랐지. 그들은 우리나라의 감옥에서 단식투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선 단 한줄도 쓸 수 없었던 거야. 그 대신 아일랜드의 투쟁 소식을 자세히도 보도해주었던 걸세. 그러니 난 자네들 동네의 젊은이에게 빚진 게 있는 세대에 속하네.
“나는 온 세상을 여행하며 알게 되었어. 노동조합이 약한 나라의 노동자는 슬픈 존재라는 걸.”(125면) 이런 발언을 하면서도 사이먼은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지지. 자네들은 좌충우돌을 넘어 엉망진창으로 보이기도 한다네. 그게 자네들만의 일은 아니지. 좌우뿐 아니라 여성, 노동, 퀴어, 모든 문제가 눈 부라리며 답을 요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레이, 세월은 흘렀고 우린 늙었네. 허리가 아프고 아이큐는 혈압에 추월당했으며 병원에 갈 때마다 고장 난 부위가 새로 발견되곤 하지. 자네들, 브렉시트를 외치면서도 설마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트럼프 자신도 본인이 대통령이 될 거라 믿지 않았던 것처럼.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그의 얼떨떨한 표정이 잊히질 않아. 그 ‘설마’를 우리도 지난봄에 겪었지. 도저히 대통령이 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당선되었다네.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젊은 세대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단 걸세.
이 일들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역사는 정말 술주정뱅이가 맞는 걸까. 왼쪽으로 비틀, 오른쪽으로 비틀, 입간판도 걷어차고 가로수와 시비도 하면서. 나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 운전을 하네. 자네들 나라의 “보합제와 제로 아워 계약(Zero Hour Contract)”(82면), 그 단점을 골고루 갖춘 ‘탕뛰기’와 ‘지입제’가 이 바닥의 룰이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받는 생활이 삼십년쯤 되어가네. 2020년, 드디어 ‘표준운임제’라는 게 도입되었네. 물론 그냥 만들어진 건 아니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전국에서 4천대가 넘었던 차량 대수가 일년 만에 3천4백대로 줄었단 신문기사가 났네. 표준운임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낮은 기준으로 책정되어 일을 똑같이 해도 수입이 꽤 많이 줄어들었거든. 2021년 말, 코로나 팬데믹이 잦아들 때쯤 전국 각지의 레미콘 공장에서 시멘트 수급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올해 우린 졸지에 귀하신 몸이 되어버렸네. 아, 그렇게나 깊은 뜻이라니.
“사실 AI는 인간의 두뇌 노동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육체노동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두뇌 부분뿐만 아니라 손발이 되어 작업을 하는 기계 부분도 필요하다. 기계 부분에는 다양한 비용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일단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먼저 없어질 것이라고들 한다.”(45면) 아스팔트 포장업체에 근무하는 친구가 그러더군. 현장의 여러 중장비기사들 중 가장 보수를 많이 받는 사람이 삽자루 들고 다니는 인부라나. 넓은 면적은 기계 차지가 되었지만 좁은 곳은 어쩔 수 없이 사람 손으로 가야 하니까.
레이, 우리 세대는 무슨 교훈을 남길 수 있을까. 어떻게 살라고 말해야 할까. 이제 와서 농업적 인내심의 미덕을 설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네. 변화에 대한 두려움만이 우리가 남길 유산처럼 보여. 자네들은 “잉글랜드는 나를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79면)고 목소리를 높이던 시대를 살았지. 우린 이렇게 말했다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칠까.” 실제로 그랬네. 무모함에 가까운 낙관이 우리 세대의 버팀목이었다면 이젠 그게 없지. 아이들은 신자유주의나 전지구적 자본주의보다 더 깊고 심한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나가야 하네. AI와 로봇, 4차 산업혁명을 이마로 밀며 헤쳐나가야 하는 첫 세대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네. 비틀대는 술주정뱅이를 가장하는 게 역사의 간사한 지혜라면 이건 세월의 법칙이라네. 빌리 엘리어트도 결국 권투도장 대신 발레교습소의 문을 두들기지 않던가.
“야단맞고, 멍청한 일을 하고, 호되게 당하고, 엉덩이를 내놓으면서 아저씨들의 인생은 앞으로 이어진다.”(225면) 아무렴, 내놓아야 할 게 엉덩이뿐일라고. 카타네오(P. Cattaneo) 감독의 영화 「풀 몬티」(1997)에는 해고된 셰필드의 철강노동자들이 노동자회관에 스트립바를 차려 직접 쇼를 하는 장면도 나오는걸.
근황 전해준 미까꼬에게 감사를, 브래디와 브라이턴의 못 말리는 아저씨들에게 변함없는 지지와 연대를. 자네 말대로 “절망 같은 낭만적인 것은 위쪽 계급 놈들이나 하는 거야.”(1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