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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정 崔貞
1973년 충북 충주 출생. 2008년 『내 피는 불순하다』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산골 연가』 『푸른 돌밭』이 있음.
dece55@hanmail.net
뿌리 무덤
비탈진 돌밭 한뙈기를 사고
서둘러 농막을 짓느라
전 주인이 심은 대추나무 세그루를 옮겨 심었다
미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두그루는 그해 겨울이 지나 얼어 죽었다
배꼽춤에도 안 오는 작은 나무였다
온통 밭 한뙈기에만 정신이 팔려
나부터 뿌리내리기 급급했다
남은 대추나무에겐 정성을 기울였다
거름도 주고 풀도 베어주고
얼어 죽지 말라고 마른풀을 끌어다 밑둥치를 덮어주었다
한동안은 몸살이 나서
키도 안 크고 겨우 잎을 단 모양새가
도시에서 산골로 뿌리를 옮긴 나와 같았다
분명 몸살인데 그 미열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혼자인데도 더 혼자이고 싶을 땐
농막 뒤로 가 대추나무 앞에 앉아 있곤 했다
별빛처럼 쏟아지는 고단함을 대추나무 뿌리에 묻었다
탄력을 받은 대추나무는 크기 시작했다
제법 대추도 달리기 시작했으나
깨알만 할 때 이미 벌레들이 다 먹어치우곤 했다
대추나무가 내 키를 넘어서는 사이
친구도 묻고
길동무로 만난 스승도 묻고
여럿 부모님들을 함께 묻었다
부고장마다 뿌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혼자인데도 더 혼자이고 싶을 땐
대추나무 앞에 오래 앉아 있곤 했다
내 귀에 풀벌레
가을 달빛 출렁이게 하던
풀벌레 한마리가
찬바람에 실려 귓속으로 들어왔다
가만 들어보면
뾰족하게 날카로운 쇳소리처럼
고음을 내던 녀석
텃밭 작은 무까지 마저 뽑아
긴 가뭄 고달픈 농사도 끝났는데
풀벌레는 귀에서 나갈 낌새가 없다
노을빛도 들지 않는 작은 골짝이
어슴푸레 어둑해지는 시간
서늘하게 쓸쓸해지는 시간
내 귓속에선 연주가 시작된다
정작 풀숲 벌레들은 겨울잠에 빠졌는데
귓속에선 풀벌레가 절정으로 운다
달빛 아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풀벌레 소리 훔친 죄
귀뚜라미, 여치 소리 특히 사랑한 죄
피부가 그을리도록 화끈거리던
불면의 밤들 지나
갱년기 절정을 지나 완경(完經)
굽이굽이 잘 넘었다 다독이려고
귓속에 악기 하나 들어왔나보다
의사 진단명은 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