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 새로운 25년을 향하여 | 플랫폼 노동
플랫폼 노동과 새로운 연대
김소라 金昭摞
젠더 연구자, 제주대 사회학과 강사. 공저서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 등이 있음.
stellatis@gmail.com
110년 만의 기록적인 더위가 찾아왔던 2018년 여름, 맥도날드 배달라이더였던 그는 서울 시청역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시작했다. 폭염, 폭우, 폭설 같은 악천후에도 오토바이에 올라야 하는 배달노동자의 현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모처럼 생겨난 관심을 그냥 두기 아까워 노동조합을 조직했다. 그렇게 2019년 5월 1일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이 발족했다. 거리 활동, 칼럼 기고, 도서 출간 등 쉼 없는 활동 속에 이제 조합원 1100여명과 함께하고 있는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조직국장의 이야기다. 햇살이 좋았던 4월 7일, 그를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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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온라인에서 배달노동자, 가사노동자, 대리운전 기사를 호출하고 홈페이지 제작, 웹 디자인, 웹툰 작업, 번역, 녹취, 교정·교열, 운동 지도 등 다양한 일을 대신할 이를 찾는다. 그 핵심에는 고객이 발주한 일감과 이를 얻으려는 노동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자리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이 다양한 직종과 형태로 확산하면서 고용구조 그리고 노동자의 지위 및 노동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공유’와 ‘혁신’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이익과 데이터를 독점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면제받고 있기도 하다. 플랫폼 노동이 노동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 더 나아가 향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인 이유다. 하지만 다양하게 매개되는 플랫폼 노동의 전반을 파악하고, 뿔뿔이 흩어져 홀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박정훈 조직국장에게 우선 라이더유니온의 조직 과정에 대해 물었다.
저도 처음에 배달노동자를 조직하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업별 노조를 꾸릴 수 없고, 노보(노동조합 신문)나 노보를 뿌릴 곳도 없고, 함께 출근하고 밥 먹는 곳도 없다보니 ‘사회운동 노조’라는 이름을 붙여 캠페인을 통해 조직화를 시작했죠.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배달노동에는 ‘공간성’이 있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 가능하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마포의 배달노동자들은 그곳이 주거지이거나 주로 그곳에서 일하면서 지역의 지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은 노동자가 숙련되는 걸 원치 않지만, 배달 플랫폼이 AI 알고리즘 배차로 단건 배송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역을 잘 아는 숙련도가 특히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나누고 토로할 공간에 대한 수요와 욕구도 있었어요. 배달노동자들은 종일 홀로 일하며 한마디도 안 하는 날도 있는데, 그렇다고 자기 일을 반대할지 모를 가족에게 죽을 뻔한 일이나 부당함을 털어놓을 수도 없으니까요. 이처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간성, 모임에 대한 욕구를 기반으로 배달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있었죠.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들이 건별로, 또 초단기로 고용된다는 점에서 종종 ‘긱 경제’(gig economy)나 ‘긱 노동자’(gig worker)로 불린다.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등의 용어와 혼용되기도 한다. 한편 플랫폼은 알고리즘·빅데이터 기술과 함께 혁신을 이룬 신(新)성장산업으로 분류되고, 플랫폼 노동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노동이라거나 높은 수익의 일시적인 아르바이트 및 부업으로 여겨진다. 플랫폼 노동의 특성이 무엇인지 묻자 박정훈 조직국장은 플랫폼 노동의 여러 특성에도 불구하고 거기 숨은 것이 새롭고 낯선 것이 아닌, 익숙하고 낯익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의 노동문제가 플랫폼 노동에서 새로운 형태로 반복,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잠깐 일을 시키고 돌려보내는 플랫폼 노동의 역사는 산업화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좀더 가까운 예로는 새벽 인력시장이 오프라인 형태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죠. 새벽 인력사무소는 사람들이 모여 대기하다가 누군가는 봉고차를 타고 일하러 나가고 누군가는 일감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정거장입니다. 그같은 인력 중개시장을 디지털화한 것이 ‘알바몬’과 ‘알바천국’이고요. 더 최근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가 나타났습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책임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자본이 만들어낸 고용 형태가 특고이고, 이는 하청업체를 통해 특정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을 넘어 개별 노동자까지 외주화하는 노동력 외주화의 일환입니다. 개인사업자와 노동자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며 노동시장에서 권력이 크지 않은 화물차 운전사, 퀵서비스 기사, 대리운전 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이 여기 속하죠.
건별로 위탁계약을 맺고 노동 과정과 결과에 대한 지휘·감독을 받는다는 점에서 특고 노동자나 프리랜서는 플랫폼 노동자와 유사한데, 플랫폼 노동은 온라인으로 중개되며 시공간의 한계를 부순다는 점에서 다소 다릅니다. 플랫폼은 무한한 노동자를 온라인 공간에 상시 대기시켜 언제 어디서든 초단기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합니다. 디지털 세계는 24시간 돌아가므로 이런 일이 쉬지 않고 계속되고요. 그리고 극단적으로, 플랫폼 노동시장에서는 전세계 노동자들이 경쟁 상태에 있어요. 이전에 자본은 60억 인구를 고용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공장과 사무실, 컴퓨터와 책상, 사회보험을 제공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온라인에 대기하는 노동자를 수용할 서버만 존재한다면 이들 모두를 노동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플랫폼 노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해고할 때 근로기준법상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는 안 되고, 계약이 가벼워야 해요. 화면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빠르게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대한 책임과 같이 계약 해지를 위해 30일 전에 해고를 예고해야 하는 일도 없어야 하죠.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책임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자본의 오래된 욕망이 계속되는 이러한 상황이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장밋빛 미래처럼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 수요를 예측하고, 플랫폼을 통해 노동력을 축적하고 관리하며, 알고리즘과 AI 뒤로 사용자의 얼굴을 숨겨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드는 변화가 기업에는 ‘혁신’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택시호출 앱 ‘타다’가 생겼을 때 차가 골목까지 와서 좋다거나 기사들이 친절하다고 평가됐는데 그건 기사들이 시간당 1만원이라는 고정급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타다를 론칭한 ‘쏘카’는 고정급을 주면서도 기사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고용하지 않았어요. 기술과 앱으로 혁신을 이룬 것이 아니라 노동법 위반을 통해 혁신을 이룬 것이죠. 나아가 이 플랫폼 노동을 지속시키는 힘은 금융자본주의입니다. 플랫폼 기업은 좋은 투자처예요. 기업과 투자자들은 데이터 축적과 활용을 통해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각종 규제 철폐를 요구하며, 기업 공개나 매각을 통해 금융적 이익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7월 타다 운전기사를 쏘카 소속 노동자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취소하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려는 투쟁을 계속해오는 가운데, 플랫폼 기업들은 자신이 노동자를 지휘·감독하지 않고 알고리즘이 이를 대체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용자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줄다리기는 노동과 자본 간의 오랜 투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일하는 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관해 지난 300여년간 세계에서 벌어진 논의의 결과물이 지금의 노동관계법령들이죠. 그런데 플랫폼 노동자는 현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에요. 지금은 무엇보다 플랫폼을 매개로 일하는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평균 근속연수가 5~6년으로 길지 않고 많은 이들이 투잡, 쓰리잡을 하는 현실을 고려해보면 정년퇴직까지 일하는 전업 노동자가 일반적 형태라고 보기는 이미 어려워졌습니다. 플랫폼에 노동자가 많은 것 역시 정규직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고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실업문제가 대두되지 않았던 것도 플랫폼이 이들을 흡수했기 때문이죠.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안(독립계약자 조건 강화 법안)은 플랫폼 노동자가 독자적으로 영업할 수 없고 서비스의 가격을 결정할 수 없다면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보도록 했어요. 우리도 이같이 노동자 개념을 바꿔야 해요. 출퇴근 여부나 근속연수, 노동시간이 아니라 노동하는 동안 사용자의 관리·감독하에서 얼마나 종속적으로 일하는지를 기준으로 노동자성을 판단하면 좋을 것 같아요.
‘취업 준비-중단 없는 고용-최종적 은퇴’라는 현실과는 괴리된 도식을 표준적 노동생애로 고집해서는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고용구조의 변화나 각종 위반행위에 대응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유럽 의회나 미국의 각 주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선언이 늘고,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에 관한 논의가 많아졌음에도 후속조치들이 그만큼 활발하게 뒤따르지는 않는 듯하다.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박정훈 조직국장은 ‘노동조합 조직’을 출발점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라이더유니온이 해온 일도 일차적으로는 우리에게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쟁취하는 것이었어요. 한꺼번에 모든 권리를 찾으면 좋겠지만 부분적으로라도요. 특히 배달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보상은 전면 보장토록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배달노동자에 대한 산재 보상은 2017년 3월에 도입됐지만, 전속성 요건과 산재 적용 제외 신청제도로 인해 한계가 여실했거든요. 배달노동자는 한 사업장에서 한달 소득 115만원, 노동시간 93시간을 넘겨야 전속성을 인정받고 산업재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죠. 여러곳에서 일하는 경우 이런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산재보험에 가입하고도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투쟁 끝에 산재보험 전속성 요건을 폐지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7월 1일부터 적용됩니다. 이것이 라이더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문재인정부 때 고용보험이 도입되었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단계적 적용도 고민하고 있어요. 사회보험을 통해 소득을 보장하고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의제가 최저소득 보장입니다. 화물차 안전운임제가 그런 시도 중 하나였는데 무너졌죠.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에 ‘도급 임금제’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시급·일급·주급·월급을 받지 않는 노동자에게 일의 결과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하고 있어요. 남의 일을 대신 수행한 댓가로 돈을 받는 배달노동자들에게 이 도급 최저임금액을 정하라고 주장해, 사문화된 법의 의미를 되살려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배달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어떻게 산정할지도 상상해보려고 해요. 미국 뉴욕주에서는 최저임금에 기름값과 차량 보험료 등의 소요 경비, 유급휴가비 등을 더해서 드라이버의 최저소득을 산정하고 보장합니다. 배달노동자에 대해서도 이런 방안을 상상해볼 수 있겠죠.
사용자 책임이라는 문제에서는 ‘공동사용자 책임’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이미 노동시장에서는 복수의 사용자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건설 분야에서는 공동사용자 개념이 어느정도 확립됐는데, 이를 더 보편적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청기업이 임금을 체불하면 원청이 일단 책임지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한다든지, 혹은 배달노동의 경우 대형 배달 플랫폼의 사용자성부터 동네 배달대행사의 작은 사용자성까지 함께 인정해서 노동자와 협상하도록 해야 하죠. 이것이 실질적 힘을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조직화되고 노동자 쟁의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라이더유니온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해 산업재해 보상이라는 성과를 획득했고, 이제는 최저소득 보장까지 상상력을 넓히고 있었다. 낮은 임금과 건별 보수 책정이 배달노동자를 고강도·장시간 노동으로 몰아넣어 산업재해와 질병 위험을 증대시킨다는 점을 생각하면, 최저임금과 산업재해는 서로 분리된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박정훈 조직국장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을 소비자 정체성을 벗어난 시민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민주적 정치를 만드는 공간으로 보았다. 앞으로 플랫폼 노동 내의 이질성이 계속해서 증대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더 공고한 연대를 구축하는 문제 역시 이 ‘시민적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곧 우리가 바라는 더 나은 미래와도 연관될 것이다.
플랫폼 노동은 노동조합이 교섭력을 갖기도, 본사 점거나 앱 무력화 같은 쟁의활동을 하기도 어려워 파업이 쉽지 않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파업이 사회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생각해볼 문제이고요. 이는 플랫폼 기업이 수요 예측과 노동력 관리를 통해 거래비용을 축소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는 더 싼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한 특정 기업의 독점이 소비자에게는 편익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가령 모두가 ‘카카오T’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이 앱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효율적이죠. 이 때문에 소비자들도 플랫폼을, 나아가 플랫폼 기업의 독점까지도 지지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플랫폼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별점과 평가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는 중간관리자 역할도 하잖아요. 이는 권리를 돈을 내고 ‘구매’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하고요. 시민이라서 주권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자격을 구매함으로써 권리를 부여받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런 소비자 정체성은 사회운동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그중 하나는 인플루언서 활동가를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저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지만, 어떤 활동가가 한번 주목받으면 그가 준비되었든 아니든 간에 그 운동을 상징하는 사람이 되어버려요. 대중에게 그가 가장 괜찮은 ‘상품’이 되는 거죠. 대중은 책과 굿즈를 사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자유주의적 소비를 통해 운동에 동참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다 어떤 부족함이라도 드러나면 그는 쉽게 버려지고,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조직으로 수렴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소비자가 아닌 노동자이자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다른 이를 만나고, 이들과 함께 사회변동의 방향을 조망할 기회와 공간이 필요합니다. 변호사나 교육노동자 등 전문직에까지 플랫폼 노동이 확대되는 현실을 생각할 때도 연대의 구축이 중요하죠.
하지만 온라인 공간은 이 역할을 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같은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이들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시민이라는 얼굴로 함께하는 공간, 손에 잡히는 관계에서 시작해 시민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관심과 활동을 두고 무엇 하나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겉과 속이 다르다거나 위선적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위선이 위악보다 낫지 않은가 물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공감대를 토대로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공동체에 지쳐하고 희망을 버린 ‘냉소’도 아니고 상대방이나 사건에 무리하게 개입하는 ‘무례함’도 아닌, 그 중간이 필요한 거죠. 저는 그 중간을 잘 찾는 것이 시민적 삶이라고 생각해요. 각기 다른 삶의 경험과 정치적 지향을 가진 이들이 모인 노동조합은 이를 시도할 수 있는 중요한 조직이고요. 물론 노조가 잘해야 하지만요.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과 이익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공공의 통제 아래 두는 방안 역시 고민해볼 문제다. 내가 디지털 성폭력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플랫폼은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플랫폼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이용자를 최대한 많이 모으고, 이용자들이 자신의 정서와 생각, 디지털 기기 속의 이미지와 영상을 공유하도록 참여를 촉진한다. 이때 불법촬영물을 비롯한 성적 이미지는 더 많은 이용자와 더 많은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매개체로 활용된다. 그리고 이용자들이 축적한 데이터를 통해 생긴 이익은 플랫폼이 독점한다. 많은 이들이 데이터의 생산과 유지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플랫폼은 ‘공유경제’이지만, 기업은 그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수가 함께 축적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할 것인가.
플랫폼에 내적 모순이 있는 거죠. 플랫폼은 데이터를 다른 기업과 공유할수록 성장 가능성이 커지지만, 투자받으려면 데이터를 사적으로 소유해야 해요. 노동자를 유연하게 고용하지만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려면 사용자의 지휘와 통제가 있어야 하고요. 배달 대행 서비스의 경우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쿠폰 제공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를 늘려야 하는데, 시장을 독점하고 순이익을 발생시키기까지 어떻게 버틸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죠.
이때 시민들이 가장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은 ‘데이터의 공공적 소유와 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민간이 정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기 시작했는데, 이를 보험이나 교통 등 공적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죠. 데이터를 시민적으로 통제하고 사회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관련 기업에 정보를 내놓도록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험사는 우리가 하루에 몇보를 걸었는지를 토대로 보험 가입을 거절할 수 있지만, 그 데이터를 살펴 적게 걷는 이들을 방문해 지원하는 사회적 활용 방안을 상상해볼 수 있는 거예요. 혹은 기업은 대중교통이 열악한 지역에 대한 정보를 상업시설 부지 선정에 활용하겠지만, 정부는 이를 교통 인프라 확충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요. 데이터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측정이 어려운데다 데이터가 하나하나 개별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서, 데이터의 공공적 이용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중요하다고 보여요.
같은 맥락에서 개인정보 보호보다 특정 플랫폼의 독점을 제한하는 산업 규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플랫폼의 독점이 소비자의 이익이나 편익에 더 부합하다보니 사회적 합의를 이끌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알고리즘에 대해 우리가 알 권리, 설명을 들을 권리를 요구해야 합니다. 사실 기존 법에 따르더라도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 정보를 제공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플랫폼 노동자에게 알고리즘은 취업규칙과 같아서 노동자들이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게 공개해야 해요. 하지만 배달노동자는 배차나 배달료를 결정하는 알고리즘 기준을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알고리즘이라고 하니 특별해 보이지만, 소비자 약관이나 취업규칙 등으로 해석하면 기존 법상으로도 얼마든지 공개하도록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이를 새로운 현상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면 늦습니다.
최근 노동조합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을 두고 정당 간에, 기업과 노동자 간에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 개정안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파업 인정 범위를 넓히며, 파업한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 노동환경 개선 등 노동문제와 관련한 사회 전반의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중요해 보이는 지금이다. 라이더유니온 또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위한 활동에 연대하고 있다. 박정훈 조직국장은 노동운동에 있어 부의 재분배와 이를 통한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노동조합 운동에서 시작해 부의 재분배까지 논의할 수 있는 노동운동으로 확장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 정부에서 발표한 ‘주 69시간 근무제’가 현실적이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이 제도가 실현된다면 대기업보다는 이미 노동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노동자를 쥐어짜고 있는 주변화된 노동시장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겁니다. 그런데 그런 곳엔 노동조합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예요. 정부의 노동개혁안에 대한 분노는 존재하지만 이를 모으고 단체행동으로 만들어낼 조직이 없는 거죠. 노동조합 조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도 정말 잘 알지만, 필요하고 절실합니다.
‘주 69시간 근무제’라는 현안을 놓고 우선은 장시간의 노동이 과연 적절하고 필요한 것인지 질문해야 해요. 나아가 증세를 통한 사회보장제도 구축이라는 정치적 의제를 제기함으로써 더 큰 연대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는 가운데 우리는 왜 장시간 일해야 하는지 묻고 과잉생산을 문제 삼아야 하는 거죠.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이 아닌 부의 재분배라는 방향으로 향해야 합니다. 생계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극적으로 단축하고,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으로 사회보장을 확대하며, 기술의 발전을 공적으로 활용하는 대전환 없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를 위해 금융소득과 부동산 지대수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플랫폼 기업의 이익을 역수탈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 하고요. 플랫폼 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문제를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일례로 플랫폼 산업은 전자기기 충전을 위한 원료인 리튬과 희토류, 도시의 오토바이와 택배 차량과 전동 킥보드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은 물론 아프리카의 아동노동, 정치적·경제적 분쟁까지 수많은 사회문제와 엮여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이 가상세계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면서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여러 문제는 쉽게 가려지고 말아요. 좋은 투자처를 찾아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 금융자본을 생각할 때 부의 재분배를 향한 대전환은 국가 단위를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도 있어요. 너무 큰 이야기 같지만, 그리고 결코 쉽지 않겠지만,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얼굴을 맞대고 경험을 나누며 연대를 만들어내는 노동조합 등의 작은 조직에서부터 이를 시작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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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시간 동안 박정훈 조직국장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사회보험 적용, 플랫폼 기업에 대한 사용자 책임 부과, 데이터의 공적 활용과 시민적 정체성에 기반한 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를 제기했다. 또한 노동조합 조직과 이에 기반한 연대의 확장, 부의 재분배를 향한 노동운동과 정치적 노력은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고 그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플랫폼 노동이 사회의 다양한 층위와 맞물린 복합적인 문제임을, 하지만 다른 미래를 그리기 위한 출발점은 여전히 사람,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여야 함을 새삼 실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활동과 노력을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2019년 발족한 라이더유니온은 플랫폼 노동자 연대체인 ‘플랫폼노동희망찾기’ 활동에 함께하며 연대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있었던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총투표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입이 결정되기도 했다. 노동이 사람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공동체와 연대의 복원이라는 큰 시야에서 플랫폼 노동에 다가서야 한다는 제안, 그리고 이를 향한 그간의 실천은 200호를 맞이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창작과비평』에 소중한 마중물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