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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용준 鄭容俊
1981년 광주 출생.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선릉 산책』,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유령』 『세계의 호수』 『내가 말하고 있잖아』 등이 있음.
sfcyjlove@naver.com
자유인
열걸음에 한번씩 멈춰야 한다. 힘들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 호흡이 가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손발. 낡은 육체가 거추장스럽다. 부축하려는 간호사의 손을 뿌리치고 로비 소파에 앉았다. 병실까지 모시겠다는 말에 대꾸하지 않고 인상을 찌푸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까다로운 환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도움이 없으면 대부분의 일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대부분의 도움을 거부한다. 센터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하되 참여하지 않는다. 미소와 친절 뒤에 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시선을 느낀다. 불량하고 악독하고 고집스러운 노인. 맞다. 하지만 나는 애쓰고 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간호사가 이끄는 대로 하고 싶다. 그러나 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과 입술이 도대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무릎 위에 놓인 내 손을 본다. 오랜 투석으로 손등과 팔, 발목과 쇄골까지 혈관이 툭 튀어나와 있다. 피부 밑에 검푸른 거머리가 잠들어 있는 것 같다. 내 것이지만 징그러워 쳐다볼 수가 없다. 투석을 끝낸 핏속엔 해로운 것도 유익한 것도 없다. 움직이려면 뭐라도 먹어야 할 텐데 입맛이 쓰다. 구린내 나는 치즈를 구겨 억지로 입에 집어넣는다.
노래교실이 한창이다. 기타를 멘 살찐 무명가수가 노인들을 애 취급한다. 형님. 박수 두번 짝짝. 누님. 박수 세번 짝짝짝. 두 손 높이 들고 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 아버님. 해가 떴습니다. 어머님. 해가 졌습니다. 옳지, 잘한다. 늙은이들은 웃고 기침하고 손을 떤다. 노인들은 아기처럼 보이고 좀비처럼 보이고 이제 막 진화를 시작한 원숭이처럼 보인다. 그들을 귀여워하고, 혐오하고, 신기해하는 젊은이들의 눈빛. 내 뜻과 상관없는 이런 미친 짓을 참는 일. 바보들을 상대하는 일. 내가 바보로 변하는 일. 모두 괴롭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한 노인이 힘겹게 일어서서 사람들 앞에 선다. 왕년의 인기 개그맨. 지금은 췌장에 암을 달고 있는 시한부 인생. 그는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린 지나간 유행어를 한다. 흘러간 개그고 센터에서만도 지겨울 정도로 보고 또 봤지만 매번 통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걸 볼 때마다 좋아 죽으려고 한다. 나는 속으로 개그맨을 증오하고 비웃지만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 역시 웃음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쿵짝. 쿵짝. 기타 반주에 맞춰 개그맨은 박자에 맞지 않은 노래를 부르고 경련에 가까운 춤을 춘다. 나는 봤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홀로 남았을 때 머리를 감싸고 지독한 자괴감 속으로 빠져드는 그의 모습을. 아직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서 편지가 끊이지 않고 선물도 도착한다. 하지만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는 편지든 소포든 뜯어보지도 않고 간호사들에게 다 줘버린다. 가수가 흘러간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고 노인들은 ‘옛날’이라는 바다에 깊이 빠져든다. 나는 팔짱을 끼고 힘겹게 다리를 꼬고 앉는다. 내가 나를 붙잡는 힘에 안정감을 느낀다. 어느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고 싶다. 어떤 멜로디에도 반응하고 싶지 않다.
졸았던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프로그램은 끝났고 노인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빠. 아빠.”
아득하게 들리는 목소리. 막내가 내 옆구리에 팔을 깊숙하게 집어넣고 일으켜 세웠다. 나는 헝겊인형처럼 축 처져서 기립됐다. 한 팔은 막내에 주고 나머지 한 팔은 병원 복도 벽을 잡고 비틀거리며 걸었다.
센터에 거주한 지 일년이 다 돼간다. 입소한 아내를 보호자 자격으로 반년 돌봤고 지금은 내가 입소자로 산다. 방 한칸. 침대가 있고 티브이가 있고 협탁과 선반이 있다. 소형냉장고 속엔 물과 토마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막내가 문 앞에 서서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작게 말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를 작게 말한다. 간호사가 티브이를 켰다. 나는 손을 흔들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으로 티브이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전했다. 막내는 휘젓는 내 손을 잡고 그저 미소만 짓는다. 간호사는 채널을 조정하고 몇개의 버튼을 누른 뒤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방에서 나갔다. 막내는 내 귀에 속삭였다.
“마지막 축제 안내와 ED 관련 영상이래요.”
리본과 풍선이 가득한 연회장. 겨자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사람들은 노인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였다. 노인은 축하와 인사를 받았다. 가족 친지들과 포옹하고 전 직장 동료와 센터 직원들과 악수한다. 담소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노인은 말했다.
“마지막 여정이 즐겁네요.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따뜻할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해요. 이 마음 그대로 영원한 꿈속으로 들어가겠죠.”
화면이 전환되고 위아래 까만 예복을 갖춰 입은 남자가 허리를 깊이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밝은 표정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신은 이제 고통 없고 슬픔 없는 세계에서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더이상 아픔을 참지 마세요. 자신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슬픔에서 벗어나세요. 당신의 존엄을 지키고 안락을 누리십시오.”
그래, 당신 말이 맞다. 더는 아기처럼 기저귀를 차고 싶지 않다.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비참을 겪고 싶지 않다. 몸에서 냄새나는 것을 참고 싶지 않다. 끔찍한 통증. 내일은 더 나빠질까봐 두렵고. 죽을 때 아플까 두렵고.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도 두렵다. 나도 이 진창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정말로 너희가 말하는 영원한 꿈이라는 게 있어?
옆방에 있던 소프라노는 한달 전 죽었다. 마지막 축제 전까지 그녀는 쌩쌩했다. 정신도 온전했고 말도 정확했다. 박자는 늘어졌지만 성대가 짱짱해서 죽기 전까지도 「울게 하소서」를 문제없이 불렀다. 혈압이 낮고 당뇨가 있어 멀쩡하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지금처럼 관리하면 최소 오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축제가 시작되고 그녀는 점점 느려졌다. 의미 없이 웃고 계속 하품을 했고 한번 잠들면 좀처럼 깨지 않았다. 마지막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86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그녀는 ED에 들어갔다. 당일 휠체어에 앉은 그녀를 복도에서 만났다. 그녀는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손을 흔들지 않았다.
“아빠.”
고개를 돌려 막내를 봤다.
“기분이 어때?”
“기분이랄 게 뭐 있니. 이제 때가 된 거지. 마지막 축제는 싫다. 사람들 부르고 마지막을 기념하는 이상한 파티 안 하고 싶으니까 그리 알고 있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약도 안 먹을 거다. 간호사에게 전해줘. 그래도 주겠지만…… 나는 안 먹을 거야.”
막내는 알겠다는 듯,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손등과 팔뚝에 튀어나온 혈관을 쓰다듬을 뿐 다른 말은 보태지 않고 인사했다.
“주말 잘 보내. 월요일에 올게.”
방문은 닫혔고 방에 혼자 남았다. 또 몸에서 냄새가 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음식을 흘리고 옷에 침을 묻힌다. 기저귀는 무겁고 짓무른 사타구니와 엉덩이는 가렵고 따갑다. 하지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군이 씻겨줄 때까지 견뎌야 한다. 억눌렀던 화가 솟구친다. 이마와 귀가 뜨겁다. 끔찍한 장례식을 축제라 속인다. 형을 선고하고 정해진 시간에 집행하는 것을 크나큰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포장한다. 안락사가 허용됐을 때 노인들은 안도했다. 고통의 저주와 치욕의 형벌에서 벗어나 존엄을 지키고 진정한 안락에 이를 수 있다 믿으며 박수쳤고 환영했다. 하지만 몰랐다. 허용이 곧 강제가 되리라는 것을. 모든 사람은 만 85세가 되면 마지막 6개월은 국립요양센터에 입소해야 한다. 센터에서는 삶의 끝을 목격할 수 있다. 광대한 밤이 시작되고 사막 같은 날들이 펼쳐진다. 낮엔 뜨겁고 밤엔 차가운 모래밭에 푹푹 발이 빠진다. 국가는 노인을 보호하고 건강을 책임진다. 쉴 곳을 마련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교육하고 믿게 한다. 죽음 이후 영원한 꿈의 세계가 있고 그곳엔 나만을 위한 해변과 안락의자가 준비되어 있다고. 늙어 겪게 될 몸의 통증과 마음의 슬픔을 경험해서는 안 될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과장한다. 치료제는 없고 진정제만 있는 센터. 마음의 안정과 몸의 통증을 잠재우는 약은 노인을 아이와 바보와 식물로 변하게 한다. 센터의 일꾼들은 노인들의 손을 잡아끌고 어깨를 붙잡아 푸른 초장으로 이끈다. 길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다. 그 밑으로 예쁜 꽃밭. 그 곁에 흐르는 맑은 강. 바람이 불 때마다 꽃가루가 휘날리는 아름다운 세계. 그곳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 한발을 더 내디뎌 낙하하는 것. 운이 좋다면 센터에 있다가 ED에 들어가기 전에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꿈꿨고 간절히 갈망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살아 있고 일주일 뒤엔 죽어야 한다.
어지럽다. 현기증이 느껴진다. 눕는 것이, 센터에서 주는 것을 군말 없이 받아먹고 잠드는 것이 최고의 약처럼 느껴진다. 손을 뻗어 침대맡에 걸려 있는 산소마스크를 입에 쓰고 싶다. 신선한 산소와 숲 냄새를 구현한 향에 폐가 축축이 젖어 몸이 맑아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마스크를 통해 흡입되는 건 산소만이 아니다. 저 냄새는 진짜 숲의 향기가 아니다. 고민하지 말고 주무세요. 몸부림치지 말고 주무세요. 아니다. 나는 그렇게 희미해지고 싶지 않다. 침대에서 힘들게 내려와 슬리퍼에 발을 집어넣고 창가에 섰다. 전화통화를 하며 빠르게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 막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자식들이 번거롭다. 성장한 세 아이들. 그 피와 살과 뼈. 모두 내가 벌고 아내가 떠먹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애들은 이제 내가 죽을 날만 기다린다. 외국에 있는 첫째딸. 생전에 볼 수 없겠지. 내 목소리를 똑 닮아 통화를 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지는 둘째아들은 내가 ED에 들어가는 날도 모르고 있을 거다. 문제는 막내딸이다. 내 기질을 물려받아 답답하고 막막한 평생의 내 걱정거리. 앞가림이나 할 수 있을지. 까다롭고 예민한 기질 탓에 곁에 누가 남아 있을지.
지독한 밤이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있다가 나중엔 베개로 얼굴을 가린다. 벽에 달린 비상등과 취침등. 문 밑으로 들어오는 길게 누운 빛의 선분까지 다 거슬린다. 새벽은 깊은 바닷속 같다. 요나가 경험한 물고기 배 속은 어쩌면 이런 밤을 은유한 것 아닐까?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해서 그저 무릎 꿇고 빌었던 것 아닐까? 살려주지도 죽여주지도 않는 이 끔찍한 무응답에 몸부림치면서.
우군은 한발 떨어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볼 장 다 본 남자가 느리게 신발을 벗고 팔을 덜덜 떨며 상의를 벗어 침대맡에 올리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만 본다. 그냥 다 맡기고 싶다. 몸을 축 늘어뜨려 늙은 몸과 무거운 체중을 그의 손에 던져버리고 싶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 하려고 하는 마음과 의지를 그에게 보여야 한다. 나는 휠체어가 편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누가 내 몸을 마음대로 만지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함부로 타월을 갖다 대도 아무렇지 않은 무감각한 노인이 아니다. 그러나 양말. 그건 내게 불가능의 영역이다. 나는 우군을 봤다.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씨 성을 가진 간병인. 그는 힘이 좋고 내 마음을 잘 안다. 시선이 머물면 그것을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알고 갖다주거나 치워버린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거품이 묻은 얼굴에 떨리는 면도기를 갖다 대어도 우군은 묵묵히 바라만 본다. 다른 간병인이었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손목을 붙잡고 비틀었을 것이다. 그는 내 치욕을 알고 수치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불꽃이 있다는 것도 안다.
우군은 거품이 묻은 타월로 부드럽게 내 등을 민다.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고 플라스틱 볼에 물을 담아 조심스럽게 뒷머리와 어깨에 끼얹는다. 워터픽을 이용해 치아에 낀 음식물을 떼어내고 잘 펴지지 않는 무릎을 주무르고 부은 발목을 손가락으로 마사지한다. 그것이 좋으면서도 싫다. 부끄럽지만 편하다. 센터와 관련된 모두가 싫지만 우군은 예외다. 나는 마음을 담아 고맙습니다,라고 말했고 우군은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젖은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려주며 우군이 말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선생님. 다음주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편해지실 거다, 걱정 마시라. 빈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ED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정말 고통이 없는지. ‘영원한 꿈’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런 표현을 쓰게 됐는지. 우군은 답했다.
“오후에 의사선생님 진료가 있으니 그때 여쭤보세요. 저는 간병인이라 답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고 관련 지식도 없어요. 다만, 제가 아는 건.”
우군은 잠시 뜸을 들이며 젖은 타월을 반듯하게 접었다.
“85세가 되면 ED를 피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의사는 젊다. 이제 막 마흔이나 됐을까. 권위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인지 가운도 입지 않고 네이비색 셔츠에 브라운 카디건을 걸쳤다. 그는 날씨 이야기를 시작으로 최근에 여행지에서 먹었던 인상적인 음식에 관해 말했다. 나는 정말이지 센터 사람들 특유의 저 그린 듯한 미소가 싫다. 다들 유니폼처럼 저 표정을 장착하고 있다. 멱살을 쥐듯 잡아 뜯고 싶은 얼굴이다. 의사는 정치 이야기까지 하다가 불쑥 ED에 관해 말했다. 가족들에게 다 설명했고 통화도 했다고. 다들 찬성하셨고 서명하셨다고 했다. 예정대로 다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고 말하며 한마디 툭 얹었다.
“선생님께서도 특별히 다른 의견 피력하시지 않으셨구요.”
“선생님? 나요?”
“네? 네.”
“나는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내게 의견이 없는지, 질문이 없는지, 할 말은 없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의사는 표정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의견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나는 물었다. ED의 메커니즘에 관해. 고통 없는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고, 죽음을 왜 Eternal Dream이라고 표현하는지. 그것은 단순히 수사인지 의학적 견해인지.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물었다. 의사는 보험설계사가 약관을 설명하듯 빠르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ED는 질소중독 사고가 고통 없는 죽음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조약돌 모양의 케이스에 들어가서 스스로 문을 닫으면 액화질소가 흘러나옵니다. 1분 30초쯤 음악을 들으면 술을 한잔 마신 것처럼 정신이 희미해집니다. 그리고 의식을 잃고 고통 없이 영원한 잠에 빠져듭니다. 질소는 무색무취로 우리 몸은 어떤 것도 느끼질 못합니다. 폐와 심장이 이상신호를 보내지 않기에 몽롱한 상태에서 의식을 잃게 되는 거죠. 영원한 잠은 죽음을 일컫는 인류의 영원한 수사이지만 의학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ED는 최종 실행 직전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쾌락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측좌핵을 자극해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거죠. 그러니까 생의 마지막 순간, 일생에서 가장 강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영원한 꿈속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다른 세계에 가는 것처럼.”
그렇게 좋으면 의사 네가 지금 당장 ED에 들어가는 게 어때?라는 말을 삼키며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나요?”
“비상 창문이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산소가 ED 안으로 들어옵니다. 만약 의식이 있다면 중지 버튼을 누를 수도 있고요.”
“높은 차원의 쾌락이라. 그것은 마약중독과 다른가요?”
“가령 예술활동을 통한 쾌락은 포르노그래피나 설탕 등에 의해 발생하는 일시적인 쾌락과는 다릅니다. 중독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쾌락이 잦아든 이후에 혐오나 허무 같은 부정적 감정도 발생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뇌 기능을 강화해 마음에 안정을 주죠. ED가 제공하는 쾌락은 온몸에 느껴질 만큼 인간 신경계에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쾌락을 인지하는 과정과는 다른 메커니즘입니다. 센터에서는 ED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부터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소중한 이들과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나간 사진들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하죠.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지나온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도록 돕습니다. 그 결과 ED에 들어갈 때는 훌륭한 영화 한편을 감상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됩니다. 자신이 선택한 풍경 속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영원한 잠에 빠져들게 되는 거죠.”
의사는 자기 말에 빠져드는 배우처럼 연극적인 톤으로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와 고상한 그림을 감상할 때 뇌에서는 같은 지각운동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쾌락을 해석하는 감각적 경험구조가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는 뜻인가요?”
의사의 얼굴에서 더는 미소를 찾아볼 수 없다. 생각보다 대화가 길어지는 게 못마땅한지 시선을 돌려 힐끔 벽시계를 쳐다봤다.
“의사의 역할은 판단하는 것도 설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안내할 뿐이죠. 제가 테스트하는 건 정신건강입니다. 의사로서 내리는 판단이 있고 선생님께서 직접 작성하시는 설문지가 있습니다. 두 견해 모두 정상이라고 판단될 때만 ED가 진행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당연히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건 자의가 아닐 테니까요. ED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느냐 물으셨죠?”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두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입소하실 때 안내를 받으셨을 테니 의사로서의 소견만 드리겠습니다. ED는 국가가 시민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하나 선물을 원치 않는 분이 있다면 강제로 줄 수는 없죠. ED를 거부했다는 건 86세가 됐다는 뜻이겠죠? 센터에서 퇴소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자유인이 되십니다. 사회의 모든 법과 제도와 규율에서 벗어난 진정한 아나키스트. 선 바깥의 사람이자 울타리를 넘은 영혼입니다. 국가는 그를 존중합니다. 더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법으로 보호하지도 않고 어떤 지원도 하지 않습니다. 건강보험, 연금 혜택, 없습니다. 의료비와 간병비, 응급비와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공공서비스조차 모두 개인의 책임입니다.”
이 자는 지금 나를 협박하고 있다. 자유인, 아나키스트, 울타리를 넘은 영혼이라 놀리며 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노인이 뭘 어쩌겠냐고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손끝이 떨렸고 송곳으로 관자놀이를 쿡쿡 찌르는 듯한 두통에 치가 떨렸다. 의사는 다시 한번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고 달래듯 말한다.
“전문가 소견으로 선생님 정신은 아주아주 건강하십니다. 이제 존엄을 지키실 수 있어요. 자기 언어와 스타일을 유지하며 이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영원한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이상 투석할 필요 없고 척추에 임플란트를 집어넣을 필요도 혈압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 식단 조절할 필요도 없어요. 나가시면 설문지 작성하는 방법, 간호사가 안내해줄 겁니다.”
레크리에이션 시간. 풍선을 발로 차 누가 더 멀리 날리나 시합을 하는 노인들. 개그맨은 오늘도 유행어로 사람들을 웃겨주고 있었다. 오전에 먹은 약으로 정신이 몽롱하다. 졸리고 기분이 좋고 감각이 둔해진다. 몰라. 될 대로 되라는 편안한 마음도 생긴다. 안다. 이 느낌은 거짓이다. 약을 먹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척추의 문제인지 내장의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알겠는 건 아프다는 것. 쇠꼬챙이 같은 통증에 단단히 못 박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처방된 초록색 알약만큼은 먹지 않았다. 청년들은 이 약을 얻으려고 난리라지. 살아 있는 게 따분한 이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하고, 죽는 게 두려운 자들에게는 하루치의 평온한 삶을 주는 게 같은 약이라니. 젊은 애들에게는 악하고 늙은이들에게는 선한 한알의 유혹. 웃음이 나온다. 거울 속의 나. 끝장난 인생. 행복한 미소는 아니다. 생각이 다 소멸되고 늘어진 고무줄처럼 긴장이 다 풀린 바보의 얼굴이다. 헤헤거리는 저 벌어진 입술 사이. 컴컴한 목구멍 속 한모금 남은 목숨이 파르르 떨리고 있구나. 곧 꺼지겠지. 매캐한 연기 한줄 피어오르겠지. ‘같이 해요’ ‘참여하세요’ ‘한번만 해보세요’ 권유하는 귀찮은 젊은이에게 ‘저리 꺼져’ 소리 지를 힘도 없어 고개만 저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 고통의 수위가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서서히 발끝에 힘이 생긴다. 안경을 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 가까운 것을 읽을 수 없고 초점도 또렷하지 않아 망막에 물방울이 끼어 있는 것처럼 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하지만 안경을 끼고 최대한 등과 허리에 힘을 실어 꼿꼿하게 복도를 걷는다. 어디 가세요. 누군가가 물을 때마다 화장실,이라고 답하며 계속 앞으로 걷는다. 갈림길. 뒤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 나는 직원용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비상문 열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건물 외벽 돌계단으로 향하는 철문을 열었다. 빛이 쏟아지고 바람이 불며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플라스틱이 탈 때 나는 냄새. 오래된 담배에서 나는 특유의 찌든 내. 하지만 풍경만큼은 탁 트여 있었다. 가짜 정원 말고 진짜 숲이 저 앞에 우거져 있다.
숲 여기저기 크기와 모양이 같은 요양센터가 서 있다. 이 살아 있는 공동묘지들은 이제 초등학교보다 그 수가 많다. 중심에서 벗어난 곳,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과 들과 황무지에 아파트처럼 들어서는 요양센터들. 한때는 존엄사 허용을 놓고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명과 운명. 신의 뜻과 생의 의미를 고민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인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그들을 고치고 살리고 보호하는 일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데 사회적 합의는 쉽게 이루어졌다. 존엄사는 허용됐다. 그리고 권유됐고 지금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존엄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이기적이고 눈치 없는 사람이 된다. 삶이 선물이라면 버릴 권리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존엄사의 주요 논리였다. 버릴 수 없으면 선물이 아닌 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낡고 헤졌더라도 움켜쥐고 그 냄새를 맡으며 잠들고 싶은 사람도 있다. 권리라고? 서둘러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을 권리도 있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압박을 받는다. 영원한 꿈을 강요받고 장례를 대신하는 마지막 축제를 열고 멍청이처럼 앉아 박수를 받아야 한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게 아니다. 죽기 싫다는 것도 아니고. 죽어가는 감각을 느끼고 생각하고 되새기며 의지로 혹은 체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 이전의 모든 인간들이 죽었던 방식으로. 나도 그런 시간을 누리고 싶다. 기억이 마를 시간. 감각과 감정에 피와 살이 빠질 시간. 주어진 시간을 모두 다 쓰고 싶다.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마시고 텅 빈 병을 던지고 싶다. 육체의 한계를 모두 소진한 뒤 그렇게 죽고 싶다. 이게 그렇게 나쁜가?
숲 너머 희미한 신기루처럼 바다가 보인다. 바람 속에 스민 희미한 소금 냄새와 생선 비린내. 허브향 나는 디퓨저와 숲 향기를 입힌 비릿한 소독약 냄새에서 벗어나 여기 이렇게 서니 좋다. 폐가 벌렁벌렁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직원들은 여기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늙은이들 욕을 하고 연가와 연차를 계산하며 연인과 통화할 것이다. 바닥에 침을 뱉고 때론 난간과 계단에서 눈물을 쏟는 날도 있겠지. 꽁초는 보이지 않지만 재와 얼룩, 냄새가 남아 있다. 웃기는 일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어도 아직도 담배는 살아남고 담배를 피우는 자들도 살아 있다. 담배연기가 당신을 죽일 거라고 그렇게 겁주고 경고하는 전문가들이 이렇게 뒤에 숨어 온몸에 연기를 가득 채워 후후 뱉어내고 있다니. 그 꼴을 생각하면 재미가 있다. 꽁초 어디 없나. 죽기 전 딱 한대만 빨아봤으면.
아내는 폐암에 걸렸다. 말년엔 끊었지만 반평생 담배를 피웠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고 아내도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폐 기능이 저하됐다. 폐렴이 생겼고 상처 부위에 감염도 생겼다. 숨 쉴 때마다 기침을 했고 목소리가 쉬어 제대로 된 말을 거의 할 수 없었다. 고통은 담담한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기침할 때마다 팔과 다리에 수백개의 바늘이 들어오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요양센터에 입소했고 86세 생일을 한달 앞두고 ED에 들어갔다. 기침을 하며 침대 위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간절히 원했다. 아내가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아내는 마지막 축제에 참여했고 행복해지는 약을 먹었다. 아내는 분명 편안해졌다. 호흡도 표정도 눈에 띄게 부드러웠다. 아기처럼 길게 잤고 순한 개처럼 고분고분했다. ED에 들어갈 때 아내는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이국의 해변 썬베드에 길게 누워 석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고 느린 재즈 연주를 들으며 그렇게 갔다.
의사의 말은 틀렸다. 자신의 삶을 한편의 영화로 느끼고 마지막엔 감동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 ED라고 했지. 아내는 재즈를 좋아한 적이 없다. 들으면 게을러지고 자꾸 처진다고 했다. 마지막 순간에 보고픈 풍경이 정말 있다면 그곳은 절대 바다는 아니다.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산에 오르려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폐가 다 망가졌어도 산에서 죽고 싶다고 정상을 향했던 사람이 아내였으니까. 바다는 지루하다 했다. 멍하게 서서 바라보고 추억하는 것 따분하다 했다. 그러니까 ED가 제공하는 경험은 내 경험이 아니라 남의 경험이다. 거기에서 얻을 건 감동이 아닌 질 낮은 쓰레기 감성뿐이다.
내 몸무게를 고장 난 다리가 지탱할 수 있을까. 떨리는 팔이 기울어지는 몸을 버틸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나는, 자신 없는 나는, 저 계단을 내려갈 수 없다. 그동안 잘 죽기 위한 의학은 발전했지만 오래 살기 위한 의학은 걸음을 멈췄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지만 심장과 신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직도 없다. 여전히 암은 발생하고 암이 생기는 걸 예방할 수도 없다. 하필 지랄 맞은 곳에 암이 생기면 항암도 수술도 할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비웃었던, 비겁하다 조롱했던, 순순히 ED에 들어간 노인들. 그들도 나처럼 발버둥 쳤겠지. 그러다 체념하고 약을 삼키고 멍한 눈으로 순한 몸으로 ED의 문을 열었겠지. 병실 문이 활짝 열려 있어도 제 발로 센터를 벗어날 수도 없을 테니까.
생일을 하루 앞둔 내 인생 마지막 날. 거대한 조약돌 모양의 죽음 기계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다. 명상할 때 들으면 좋을 법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음악을 듣지 않겠다 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가 없다고 했다. 분명히 그렇게 뜻을 전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오는 이 음악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가족과 센터 관계자들을 위한 것이다. 불편한 기분을 풀기 위한 목적이었겠지.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나를 능멸하다니. 아들은 하얗게 변하도록 입술을 꾹 다물고 서툴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눈시울이 붉어진 막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봤다.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첫째는 모니터 속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 사랑해요. 고마웠어요. 좋은 곳에서 꼭 다시 만나요.”
두명의 간호사와 검정 예복을 갖춰 입은 관리자가 엄숙한 표정으로 이별하는 가족을 지켜봤다. 차트를 든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간호사에게 차트를 먼저 보이고 막내와 아들에게 다가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ED를 실행할 수 없겠네요.”
이상하다. 죽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보다 두렵다. 첫째는 재밌는 해프닝이었다는 듯 소리 내어 웃고 한마디 하더니 영상에서 사라졌다.
“더 살 수 있겠네. 잘됐지 뭐. 아빠 건강하셔야 해.”
둘째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황당해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표정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쁜 일이 있다며 다음에 제대로 이야기하자고 먼지를 털어내듯 내 어깨를 툭툭 만지고 센터를 떠났다. 막내는 창가에 서서 바깥을 보며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내 죽음이 실패했다는 것을 누구도 내게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크게 외쳤는데 무언가 목구멍을 꽉 막고 있어 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막내가 완고한 뒷모습으로 말했다.
“정신건강에 이상 소견이 있대.”
그럴 리가. 의사와 대화했을 때 아무 문제가 없었고 질문에 정상적으로 잘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하며 의사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와 상황을 생각나는 대로 설명했다. 내 말을 끊고 막내가 말했다.
“맞아. 의사는 아빠에게서 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어. 문제는 아빠가 스스로 작성한 심리검사지야. 아빠, 혹시…… 일부러 틀리게 답했어? 결과에 따르면 아빠는 지금 스스로를 인지할 수 없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이래. 사흘 뒤 한번 더 재심이 이루어질 텐데 그때도 통과하지 못하면 여기서 나가야 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어이가 없는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야 할 이유가 뭐 있겠니. 그랬다면 뭐 하러 거짓말을 해. 그냥 퇴소하고 말지.”
“이유, 있지.”
막내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애의 눈에서 그동안 본 적 없는 냉기가 느껴졌다.
“살고 싶으니까. 하지만 미안하니까.”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막내는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아 시선을 맞추고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침착하게 물었다.
“아빠, 무서워?”
모른다. 나도. 내 맘을. 죽기 싫어서 아니고, 살고 싶어서도 아니다. 두려움도 아니고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니다. 그냥. 이런 식으로 생을 억지로 정리하는 게 싫을 뿐. 그게 싫어서 너에게 미안하다. 면목이 없다. 왜 나는 고분고분한 늙은이처럼 웃으며 못 가는 걸까.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다.
“이건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거야. 더이상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그동안 고생했잖아. 이렇게 살기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또 말했잖아. 편히 잠드는 거야. 나중에 원치 않는 상황에 원치 않는 방법으로 그렇게 되는 것보다…… 아빠. 진짜 아빠도 나도 힘들게 왜 그래.”
“내가 안 죽어서 싫은 거구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런 말이 아니잖아.”
눈뜰 때마다 밤이었다. 우울한 노래만 흘러나오는 흑야 같은 나날이었다. 거기엔 기쁨이 없고 웃을 일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냥 깨어 있고 싶다. 그 상태로 존재하고 싶다. 고통을 느끼는 몸으로 여기에 남아 기꺼이 고통을 느끼며.
“그 말이 그 말이야. 내가 빨리 안 죽으면 너희가 나 때문에 신경 쓰고 계속 고생할 텐데. 그 점은 미안하다. 악착같이 살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앞당겨 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몸이 멈추면 자연스럽게 가고 싶어. 사람들은 결국 다 죽지. 그런데 왜 미리 죽지 않는 걸까. 어차피 다 죽을 거 왜 그렇게 발버둥 치며 사는 거냐고. 답은 간단해. 그런 게 바로 삶이니까.”
“그래, 알겠어. 아빠 마음 알겠어.”
막내는 혼잣말인지 대답인지 헷갈리게 중얼거렸다.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무릎을 펴고 똑바로 섰다.
“너희가 아니야. 나지. 언니도 오빠도 아니고 나. 내가 힘든 거라고. 그러니까 아빠는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해. 언니는 여기 없고 오빠는 어릴 때부터 집엔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언니. 평생 아빠의 자랑이었지. 내 딸이 유명한 피아니스트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했으니까. 오빠는 아빠의 두려움이었지. 무시하는 척했지만 사실 아빠가 오빠 무서워했다는 거 알아. 한숨을 쉬거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아빠는 오빠 표정 살피고 눈치를 봤으니까. 그러면서도 오빠가 요구하는 건 다 들어줬지. 뭘 해달라고 하면 제대로 묻지도 않았어. 그리고 그것이 실패했거나 망했더라도 따지거나 화도 안 냈어. 그런데 나는? 나는 아빠에게 뭐였어? 내가 아빠 챙겼지. 나는 그것도 그냥 받아들였어. 어차피 언니는 여기 없고 있어도 자기 커리어 쌓는다고 바쁠 거고, 오빠는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정신없는 거 아니까. 나는 뭐 나만 챙기면 되니까. 그리고 아빠 사랑하니까. 그건 진짜니까. 마지막까지 아빠 보살피려고 했어.”
나를 내려다보는 막내의 눈. 근심과 연민으로 늘 촉촉이 젖어 있던 눈이 건조하게 변하고 있었다. 무심한 첫째와 무정한 둘째에게서 느꼈던 냉담한 목소리가 막내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불렀지. 그 말이 조롱이라는 거 알아. 오빠와 달리 내가 무엇인가를 원할 때 아빠는 그 소원을 심사하고 판단했어. 비판하고 비웃을 때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아쉬운 게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나에게 전화했지. 언니나 오빠에게는 한번도 하지 않은 요구들. 보여주지 않았던 감정과 말. 난 들어줬고 또 받아줬어. 아빠는 알았어. 내가 아빠를 거절할 수 없는 딸이라는 걸.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평생 이용했지. 나도 바빴어. 사느라 힘들었고. 내게도 지원이 필요했어. 때론 아빠가 지지해주길 원했고. 하지만 아빠는 내가 하는 일이 제대로 된 일도 아니고 지지할 만한 행동도 아니라는 생각에 돈도 마음도 주지 않았지. 옳은 일이 아니라면 도와주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거다. 이게 아빠의 철학이잖아. 아빠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틀릴 수도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았지. 지금 이 순간도.”
막내는 준비한 원고를 읽듯 또박또박 말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는 모습이 낯설다. 두렵고.
“이제 와서 새삼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현실적인 문제를 말해볼게. 여기서 나가면 더는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아빠는 일주일에 최소 두번은 투석해야 해. 간병인이 필요하지. 종류가 다른 약을 한움큼 매일 먹어야 살 수 있어.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지고 위험한 순간도 숱하게 있을 거야. 하지만 바로 달려와줄 간호사가 없으니까 응급실을 찾아야 할 거야. 그런데 아빠 곁에 아무도 없다면 구조센터에 연락할 수 없겠지.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비용을 아빠가 다 지불해야 해. 86세 노인을 구조하기 위해 앰뷸런스가 한번 출동할 때 영수증에 찍히는 금액이 얼마인지 알아? 투석은? 간병인 인건비는? 약값은? 아빠가 가진 것 적지 않아. 아파트 한채. 차 한대. 적금 조금. 근데 다 팔고 처분해도 한달만 지나면 다 사라질 거야. 그리고 빚을 지겠지. 아니, 빌릴 수 없을 거야. 갚을 수 없을 테니까.”
막내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하지도 기다리지도 않고 가방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뒤돌아 나를 빤히 쳐다봤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묻는 듯하고 ‘안녕, 아빠’라고 인사한 것도 같다.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염증과 고름으로 가득 찬 끔찍한 이야기의 주인공에게도 에필로그를 기록할 몇장의 페이지가 있다. 완전한 백지를 앞에 두고도 이야기를 잃어버린 작가. 잉크가 번져 사용할 수 없는 까만 페이지가 바람에 날려 저 깜깜한 밤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이제 누구도 내일을 말하지 않는다. 다음을 예상하고 상상하는 이가 없다. 나의 시간. 나의 육체. 나의 미래. 내가 겪을 경험. 거기서 느끼게 될 감각과 깨달음. 그것은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 정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 없는 육체는 매장당해야 하니까. 그동안 여러 일을 당하며 여기까지 왔다. 고열. 낙상. 골절. 감염. 크고 작은 교통사고. 불행과 비극을 통과하는 동안 절망한 적 있고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스스로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몇번의 어두운 밤도 떠오른다. 그러나 매번 지나갔다. 이겨냈고 극복했다. 어리석음과 실수로 점철된 날들. 뒤돌아보면 내 죄가 새겨진 까만 돌들이 묘비처럼 서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고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했으며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했다. 후회한다. 잘못했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이 앞선 죽음은 아니다. 그것은 내게 존엄도 아니고 안락도 아니다.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앞당겨 죽지 않은 것이 그렇게 나쁜가. 우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내 몸을 씻기며 하소연을 들어줬다. 의사를 욕하고 세상을 탓하고 자식들을 원망하는 말을 스펀지처럼 다 흡수했다. 나는 우군의 팔을 붙잡고 내 말이 틀렸는지, 내 마음이 잘못된 것인지, 내 소원이 그렇게 이기적인 것인지, 내가 욕심이 많은 노인 같은지 물었다. 우군은 젖은 내 몸을 커다란 비치타월로 덮고 자신의 손은 작은 핸드타월로 닦아냈다.
“다시 뵙게 될 줄 몰랐는데 또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정신감정에 문제가 생겨 곧 검사를 다시 실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웃었나? 우군의 입술이 희미하게 당겨 올라간다. 지나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우군의 표정에서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우군이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제가 만난 그 어떤 분보다 깨끗하고 깔끔하세요. 예리하고 예민하시죠.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강한 자존감도 있으시고요. 그런 분께서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다고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 결과 믿지 않아요. 이상한 일 아니고 실수도 아닙니다. 이 결과는 선생님의 의지와 뜻인 거죠. 마지막 축제도 거르고 약도 드시지 않았죠.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선생님의 총기가 늘 좋았습니다. 통증이 몸을 휘젓는 순간에도 선생님은 비명을 지르지 않으시죠. 울음과 엄살. 비명과 흐느낌. 짜증과 신경질에 평생 시달린 저에게 선생님은 참 신선했어요. 그래서 다시 뵀을 때 반가웠지만 이내 슬퍼지더군요.”
우군은 목욕의자에 앉아 나를 봤다.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살펴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위축되고 긴장된다.
“제 어머니도 선생님 같으셨습니다. 아니, 선생님 같길 바란 거죠, 제가. 어머니는 운명을 받아들이셨고 영원한 꿈을 믿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어요. 그렇게 보낼 수 없었죠. 어머니는 결국 마지막에 제 뜻을 따라줬습니다. ED를 거절하신 거죠. 저는 자신이 있었어요. 세상이 어머니를 버리고 모른 척해도 내가 지킬 거다, 내가 오래오래 사시게 할 거다 다짐했죠. 결과만 말씀드리면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들고 안고 업고 뛸 수 있는 힘은 있었지만 병을 낫게 할 지식은 없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보이지 않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노인 금지.’ 어디든 거절당했고 누구도 환영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빨리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이었다면, 요양센터에 있었다면 간단한 시술로 며칠 약 먹는 것으로 금방 나을 수 있는 염증과 종양 때문에 어머니는 길 위에서 쓰러졌습니다. 센터에서 퇴소하고 정확히 두달 뒤였죠. 그사이 몇번 병원을 갔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진료를 받고 몇가지 검사를 했고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그 짧은 사이 모아둔 것을 다 잃었습니다. 가득 찼던 소금창고에 매일매일 물이 들어오고 파도가 쳤죠. 숨이 끊어졌을 때 어머니의 얼굴을 잊지 못합니다. 고통으로 굳어진 얼굴. 텅 빈 눈동자 속에 슬픔이 서려 있었죠.”
우군은 고개를 숙였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손을 뻗어 우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어깨에 손을 얹고 끌어당겨 안아주고 싶다. 하지만 왜인가. 내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이 명령하고 머리가 부탁해도 돌덩이처럼 딱딱하기만 했다. 끔찍하다. 육신이 와해되고 엇나가고 있다. 우군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 잠드셨을 때 종종 따님과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우군은 말을 멈췄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할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인지 긴 정적 속에서 자신의 손을 매만졌다. 얼어붙은 겨울호수처럼 깨끗하고 평평하기만 했던 우군의 표정에 뜻 모를 물결이 이는 것이 보였다. 후우, 우군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따님은 정말 좋은 분입니다. 누구보다 선생님을 사랑하고 마음 깊이 염려하고 있어요. 그건 확실해요. 그러니 마음에 노여움을 품지 마세요. 실망하고 서운해하지 마세요.”
우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늘 생신이네요. 축하드립니다. 부디,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