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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이웃집 사회주의자의 초상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임홍배 林洪培
서울대 독문과 교수. 편서 『김남주 문학의 세계』(공편), 역서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독일 대표 시선』 등이 있음.
limhb059@snu.ac.kr
1. 머리말
정지아 소설에서 그의 부모의 생애는 등단 후 30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이 되고 있다. 첫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실천문학사 1990, 복간판 필맥 2005)에서 상세히 묘사하듯 그의 부모는 한국전쟁 전 1948년부터 종전 무렵까지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부친은 두차례에 걸쳐 20년 동안, 모친도 7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빨치산의 딸』이 비슷한 내력을 가진 앞 세대 작가의 작품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 작가가 부모의 행적에 전폭적인 공감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령 이문구의 초기 단편 「일락서산(日落西山)」(1972)에서 “세 고을(보령·서천·청양군)의 지하당을 창설하고 이끌었던 책임자”1였던 선친의 행적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묘사되던 것과 대조된다. 이런 차이는 이문구의 작품이 나오던 당시만 해도 반공 군사독재가 극에 달했던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한 탓일 테다. 물론 『빨치산의 딸』이 나오던 무렵까지도 국가보안법의 족쇄는 여전했지만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이념적 금기가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빨치산의 딸』은 작가 스스로 “내 소설이라기보다 소설적 형식을 띤 역사서”2라고 했을 만큼 사실에 충실하며, 아버지가 하산 후 체포되어 감옥생활을 시작하고 어머니 역시 산에서 체포되는 장면에서 끝난다.
이후 작품에서도 부모의 이야기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가령 소설집 『봄빛』(창비 2008)에 수록된 「순정」(2005)에서는 보급투쟁을 위해 고향 동네로 내려왔다가 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살길을 찾은 주인공이 산에서 죽은 동지들에 대한 죄책감에 평생 시달린다. 그런가 하면 「길 2」(2008)는 전란 중 산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을 보내는 아들의 이야기다. 이들 작품에서 전란 당시의 응어리진 기억이 작중인물의 현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과 달리, 하산 후 아버지 이야기를 다루는 최근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는 전란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 당사자들의 삶을 지탱하고 북돋는 양상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화자가 부친의 죽음을 맞아 3일상을 치르는 동안 주로 조문객을 통해 전해 듣는 아버지 생시의 이야기를 서술하며, 조문객이 수시로 바뀜에 따라 스물다섯개의 짧은 장면이 교체된다. 이런 서술방식은 『빨치산의 딸』에서처럼 아버지를 중심에 놓고 모든 사건을 배치하는 방식을 허물고 주인공의 강력한 주체성과 목적의식을 배제한다. 이를 통해 아버지의 이미지는 고인과 직간접으로 얽혀 있는 다양한 조문객의 관점에서 하나씩 구축된다. 그리고 상주인 화자가 조문객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2. 전쟁 상처의 치유와 냉전시대 극복
정지아 소설의 진지한 어조에 익숙한 독자는 첫 문장부터 당혹스러울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7면) 이 전봇대 사고는 고대 철학자 탈레스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탈레스는 밤중에 별을 관찰하다가 도랑에 빠졌는데 이를 지켜본 하녀가 발밑의 현실도 못 보면서 하늘의 별을 알겠냐고 조롱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비록 발밑의 현실을 보지 못할지언정 숭고한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수도, 그런 비현실적 이상주의가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도 있다. 화자는 짐짓 하녀의 입장에 수긍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가 오갈 데 없는 방물장수 여인을 딱한 ‘민중’으로 여겨 하룻밤 집에 재워주었다가 마늘 반접을 도둑맞은 이야기가 그렇다. 또 『새농민』을 교본 삼아 농사를 지었다가 번번이 낭패를 보았다는 ‘문자 농사’ 이야기도 아버지가 평생 추구했던 평등세상이 현실과 유리된 ‘문자’의 관념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진지 일색의 삶”은 외부 관찰자의 눈에 돈 끼호떼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화자는 일단 그런 시각을 인정하면서 외부자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 이면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통로로 활용하는데, 아버지의 절친 박한우 선생 이야기도 그런 경우다. 박선생은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빨치산 토벌에 투입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형과 두 누나는 빨치산이었다. 결국 형제자매를 산에서 잃은 박선생은 전후 군대에 말뚝을 박았고, 나중에 예편하여 교련선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박선생과 서로 농담처럼 ‘통일의 방해꾼’이니 ‘빨갱이’니 티격태격하면서 평생 친구로 지내왔다. 이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자가당착의 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딸은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라는 반응을 보인다.(47면)
박선생이 군대에 말뚝을 박은 것은 형제자매가 빨치산이었으니 후환이 두려워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군복을 입고 있는 한 형제자매를 향해 총을 겨누어야 했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자구책이 자신을 옭아맨 족쇄이기도 했던 이중강박(double binding)의 고뇌 속에서 박선생은 아버지를 죽은 형제자매를 대신하는 존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버지 역시 친구의 형제자매 몫까지 다 갚아야 하므로 두 사람의 운명적 우애는 정치적 입장 차이까지도 뛰어넘는 든든한 결속력을 갖는다. 여기서 ‘사상’이란 전후 냉전체제하에 국가가 좌우로 편을 갈라 국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이념적 도구일 뿐이다. 그런 통치 이데올로기를 허물어뜨리는 이들의 우애는 전쟁의 상처를 이겨내고 이념의 굴레에 매이지 않는 인간다운 삶의 활기를 얻는다. ‘사상’보다 ‘사람’이 낫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우애는 국가의 폭력과 통제,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도 극복한 인간해방의 결실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박선생의 보수주의는 생존의 방편이자 자기방어를 위한 보호색 비슷한 것이므로 진성 반공주의와는 다르다. 따라서 그의 보수주의와 아버지의 사회주의는 적대적 좌우대립과는 다른 비대칭 관계이며, 그럼에도 이것을 좌우대립으로만 보는 것 역시 냉전체제가 작동시키는 고정관념이라는 점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작품의 제목이 말하는 ‘해방’은 외적인 통제로부터의 해방일 뿐 아니라 냉전시대가 심어놓은 모든 고정관념을 떨치는 것이다.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얻는 까닭은 한국전쟁 이래 지금까지 우리의 삶과 사고를 짓눌러온 냉전시대의 중압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산 후 아버지의 삶에서 진정한 해방은 빨치산 시절의 전투적 이념을 극복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구체적 생활 속에서 신념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박선생처럼 조문객의 상당수는 아버지와 혈연 같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장례식장 황사장의 부친은 화자의 아버지와 함께 섬진강을 건너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그후 고아처럼 자란 그에게 화자의 아버지는 친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황사장은 그런 사연을 화자의 어머니에게 털어놓으면서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평생의 제 상처를 위로받고 있는 듯했다.”(23면) 어머니 또한 자신에게 아들처럼 기대며 위로받는 황사장을 보면서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잠시나마 놓여나 위로를 받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황사장은 화자에게 넉살 좋게 ‘동생’이라며 말을 놓는데, 화자는 처음에는 떨떠름하지만 황사장이 장례식장 주인으로서 도움을 주면서 둘은 자연스레 남매처럼 엮인다. 아버지의 죽음이 생시의 기억들을 불러내며 새로운 인간적 유대를 선사하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형국이다.
이렇게 아버지의 빈자리는 인간적 유대의 친족관계로 하나씩 채워진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의 유일한 피붙이 동생인 작은아버지는 평생 형을 원수로 대해왔다. 빨갱이 형 때문에 할아버지가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었고 마을이 불탔으며 작은아버지의 인생도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집안을 말아먹은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이 장례식장에서 허물어진다. 사촌언니의 증언에 따르면 전쟁 당시 초등학생이던 작은아버지가 빨치산 형을 ‘면당위원장’이라고 자랑하는 바람에 군인들이 할아버지를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던 것이다. 속내를 못 감추는 떠버리 성격의 사촌언니가 이 엄청난 비밀을 평생 숨겨왔다는 것은 아버지를 온 집안 불행의 화근으로 단죄하는 인식이 그만큼 완강했음을 말해주며, 그것은 빨치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일치한다. 그렇다고 이 비밀의 발설이 빨치산 형의 잘못을 동생 탓이라고 뒤집는 것도 아니다. 어린 동생은 빨치산이 뭔지도 모르고 형이 대장이라고 자랑했을 뿐이다. 할아버지의 시신 옆에 동생이 오줌을 지린 채 혼절해 있었다는 증언은 당시 외지에서 투입된 토벌대의 잔혹한 폭력성을 부각하며, 동생 자신 역시 무자비한 폭력의 희생자였음을 강조한다. 아버지도 어쩌면 그런 곡절을 알았기에 동생이 아무리 원망해도 한평생 묵묵히 감내했을 것이다. 동생의 원망은 자신이 당한 가혹한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화자가 고3 때 연좌제의 실상을 알고서 공부를 작파하고 가출하자 아버지도 속수무책인 그 위기상황에서 작은아버지가 나서서 화자를 다시 집으로 데려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작은아버지 자신이 전쟁폭력의 참담한 희생자였기에, 그래서 누구보다 자랑스럽던 형이 평생 원수가 되었기에 형과 조카딸의 부녀관계마저 끊어지는 일은 막고자 했을 것이다. 작은아버지가 구례읍 쪽을 바라보며 “저 질이 암만 가도 끝나들 안 해야”(209면)라고 되뇐 것은 지난날의 고통으로부터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출구를 찾지 못한 막막한 체념의 토로이다. 그가 “한 등에 두 짐 못 지는 법인디……”(210면)라고 한 말은 제발 다음 세대의 딸만은 아버지가 짊어진 업보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비원(悲願)을 담고 있다. 그러나 딸이 연좌제의 굴레에 갇힌 것은 당연히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혈연과 친족관계까지 싸잡아서 불온한 집단으로 낙인찍어 통제했던 반공 독재국가의 폭력 때문이다.
아버지가 빨치산 시절에 순경을 살려준 이야기는 좌우대립의 적대적 폭력을 이겨낸 감동적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보급투쟁 중 아버지는 민가에 숨은 순경을 다른 동지들 몰래 살려주는 대신 그에게 당장 순경을 그만두겠다는 다짐을 받고, 그렇게 목숨을 건진 순경은 정말 바로 다음 날 경찰복을 벗는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은혜를 갚겠다며 아버지에게 빨치산 부대에 넣어달라고 조르기까지 하는데 아버지는 “한번 반동은 영원한 반동”(178면)이라며 그를 쫓아 보냈다. 먼 훗날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온 후 그가 다시 찾아왔을 때 그제야 아버지는 질 것이 뻔한 싸움이었기에 사상도 신념도 없는 그를 돌려보냈노라고 진심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그는 은혜를 갚는 것도 신념이 아니냐고 되묻고, 이에 아버지는 은혜를 갚는 것은 신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이며 순경을 그만둔 것만으로도 사람의 도리를 다한 거라고 답한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순경의 목숨을 두번 살렸으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람의 도리”(180면)를 다한 셈이 된다. 이십대의 아버지가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목숨을 걸었던 것은 투철한 사상과 신념 때문이었겠지만 훗날 그 시절을 회고하는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신념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깨달음이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이야기가 현실성이 희박한 허구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삽입된 짧은 이야기들은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결합해 있고, 사실에 기초한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소설적 개연성의 유기적 결합이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이다. 순경 이야기 역시 빨치산 투쟁의 한 국면에 대한 올바른 통찰에 근거한다. 아버지가 전쟁 이전부터 몸담았던 ‘구 빨치’의 연원은 여순사건이고, 여순사건의 주된 동기 중 하나는 제주도 ‘민란’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여수 국군 제14연대가 국가의 부당한 명령에 불복한 항거였다. 그런 역사적 흐름에서 빨치산 부대의 공세에 숨어 있던 순경이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고자 빨치산 부대에 자신을 넣어달라고 한 것은 당시의 긴박한 정세에도 부합한다. 또한 순경을 그만두라고 했다고 바로 다음 날 그만둘 만큼 순박한 사람이므로 전쟁이 터지자마자 빨치산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 결코 기회주의적 처신도 아니며, 그렇다고 마음속에 의분이 일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은혜를 갚겠다고 빨치산에 자원한 것도 그의 착하기만 한 성품에 어울린다. 아버지는 차마 이런 순박한 사람을 사지로 끌어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목숨 걸고 총 들고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결단을 내려 인간의 도리를 다한 것이다. 그것이 빨치산 투사보다 더 고결하고도 인간적인 아버지의 진면목이다. 딸이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알아보면서 비로소 영정 속의 아버지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181면)
3. ‘지역서사’의 새로운 가능성
아버지가 빨갱이로 낙인찍힌 터에 하산 후 좁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베트남전 상이용사가 장례식장에서 빨갱이 잘 죽었다고 소란을 피우는 불상사도 아버지 생시에 험난했을 적응 과정을 짐작케 한다. 그의 형은 아버지의 ‘꼬임’에 빨치산이 되어 죽었고 자신은 베트남전에서 한쪽 다리를 잃었으니 험한 욕을 할 만도 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생 그의 원망과 분풀이를 들어주었으니 이 경우에도 아버지는 죽은 형을 대신하는 존재였다. 실제로 그는 전란 이전 소년시절에는 형의 친구였던 아버지를 형처럼 따랐던 행복한 한때를 보냈고, 그 기억을 잊지 못해 어릴 적 형과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있다. 이 사진을 통해 딸은 사회주의를 몰랐던 소년시절 아버지의 모습과 처음 마주하며, 아울러 고문으로 사시(斜視)가 되기 전 싱그러운 젊음의 해맑은 눈빛을 본다. 이로써 딸은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 대면하는데 이것은 물론 아버지가 감내했던 간난신고의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성숙의 과정을 동반하는 뜻깊은 해후이다.
또한 사진과 오늘 사이의 아득한 시간은 상이용사가 평생 아버지와 함께 형을 추모해온 세월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젊음을 바친 고난의 세월과 상이용사의 한 많은 평생이 다르지 않다는 깊은 교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이제야 형을 떠나보내는 상이용사는 “다리에서 새살이 돋아 쑥쑥 자라더니 어느 순간 그는 사진 속 그의 형보다 어린 소년이 되어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197면)는 또 한번의 기적을 경험한다. 이 기적은 평생 짓누른 고통에서 놓여나 새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헛것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다.
아버지는 지인에게 빚보증을 서주었다가 힘들게 모은 적금을 날리는 낭패도 겪는다. 그럴 때마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 타박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매번 ‘오죽하믄’ 그러겠냐고, 오히려 돈을 떼먹고 도망간 사람의 역성을 든다. 아버지의 ‘십팔번’처럼 인용되는 ‘오죽하믄’이라는 말은 그가 온갖 사람들과 부대끼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음을 시사한다. ‘동네 머슴’처럼 궂은일을 자원했던 것도 더불어 사는 이웃에 대한 헌신이 한결같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지역 사람들과 맺은 인연은 한때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려 했던 국가의 억압과 통제를 뚫고 이루었기에 더욱 뜻깊다. 아버지가 맺은 인연들이 “구례에서 구례 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253면)던 삶에 뿌리내린 지역적 귀속성을 가지는 것은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박선생이나 상이용사처럼 비록 좌우로 갈라져도 인간적 유대가 단절되지 않은 것은 불행한 역사가 강요한 고통을 너나없이 함께 짊어진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인식이 같은 지역에서 얼굴 맞대고 사는 인간적 유대에 기반한 것임은 물론이다.
아버지의 빨치산 부대가 마을에 진을 치고 있다가 떠난 후 당시 한국민주당 지지자였던 할아버지가 피신하지 않았던 것도 설마 구례 경찰이 총질을 하겠냐고 안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지의 군경이 들이닥쳐 할아버지를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으니 지역공동체를 파괴한 것은 무자비한 국가폭력이다. 아버지의 회고를 빌리면 “몰르는 사램잉게 총질을 해대제 구례 사램들끼리는 안 그랬어야. 뽈갱이든 퍼랭이든 노상 얼굴 보고 살았는디 총이 겨놔지가니.”(136~37면) 아버지가 이런 소신과 신뢰를 기반으로 다져온 유대는 단지 국가권력의 교체로는 이룰 수 없는 풀뿌리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밑거름이다. 이들의 유대는 전란으로 가족을 잃은 고통을 함께 극복한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혈연보다 두텁고, 전쟁의 폭력과 국가의 통제를 견뎌낸 것이므로 강인한 자생력을 지녔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까지도 넘어서는 이 유대는 온갖 타성적 질서와 굴레에서 벗어나, 아버지가 일컫듯 인간의 도리로 참된 인간애를 기반으로 개척하는 새로운 삶의 단초가 된다. 딸에게 선물처럼 남겨준 상징적 가족들의 존재는 아버지의 헌신과 분투가 그들의 호응과 만나 생긴, 세상이 조금씩은 나아지리라는 희망의 싹일 것이다.
이 작품의 지역적 특성과 관련하여 황정아는 “특별히 인간적인 장소로서의 ‘고장’”의 의미가 고갈되지 않은 “구례라는 ‘지역’의 서사”에 주목하여 “엄연히 남아 있는 장소에 대한 애착을 복원함으로써 서사의 역량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이 작품의 리얼리즘적 성취로 꼽고 있다.3 부연하자면 앞에서 언급한 모든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남아 있는 장소에 대한 애착의 복원’을 훨씬 능가하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구체적 개인들의 이야기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예컨대 『마을로 간 한국전쟁』(박찬승, 돌베개 2010)에서 상세히 고증하듯 마을사람들이 좌우로 편을 갈라 서로 집단학살을 저질렀던 잔혹사와 대비되는 대안적 서사로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의 인식 틀은 전쟁의 잔혹한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해주지만, 결국 지역과 마을은 국가권력의 대리전으로 무참히 파괴되고 대개는 같은 씨족끼리 살육을 자행한 참담한 인간성 파괴를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확인시켜줄 뿐이다. 이와 달리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국가의 폭력성을 그것대로 드러내면서도 아무리 파괴적인 폭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성이 들풀처럼 살아 있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이야기한다. 이처럼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서사적 해석에 힘입어 독자는 지나온 역사뿐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갈 역사를 다르게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의 인연으로 얻은 ‘식구’ 중 노랑머리 소녀는 그런 친족적 유대가 공간적 의미의 지역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소녀는 학교를 중퇴하고 담배를 피우는 불량청소년 같지만 화자의 아버지를 ‘할배’라고 부르며 가깝게 따른다. “엄마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140면)이니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배움은 애들의 놀림을 당할 뿐이지만 할배의 격려로 미용 기술을 열심히 배우고 있으며, 교통사고를 당한 소녀의 할머니는 할배의 도움으로 받아낸 보상금을 장차 손녀가 미용실을 차릴 때 보태줄 생각이다. 장례 마지막 날 새벽에 아비의 패악에 쫓겨나다시피 엄마와 함께 찾아온 소녀를 통해 이런 사연을 듣게 된 화자는 “아버지가 이 작은 세상에 만들어놓은 촘촘한 그물망이 실재하는 양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났다”(239면)는 뭉클한 감회에 젖는다. 잠깐 잠든 모녀에게 화자가 이불을 덮어준 모습이 ‘하얀 누에고치’처럼 보이는 장면에서 우리는 모녀가 꿈꾸는 소망이 조만간 고치를 벗고 나비처럼 날아오를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상이용사와의 뜻깊은 화해가 전후 냉전체제의 유산을 극복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면 화자가 이들 모녀와 맺는 가족적 우애는 구례의 지역공동체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간적 유대의 터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랑머리 소녀 이야기는 아버지의 인연이 장례 중 현재 진행되는 딸의 이야기에 접목되어 새 가지로 자라나는 특별한 경우다. 그래서 작품은 조문객들 중 소녀와의 대화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작품 마지막에 아버지의 유골을 뿌리는 길에도 소녀가 동행한다. 아버지 이야기를 딸의 이야기로 이어 쓰는 만큼 작품에 삽입된 이야기 가운데 허구의 농도가 가장 짙어, 그러다보니 ‘접붙이기’의 흔적이 눈에 띌 수도 있겠다. 가령 아버지 생시에 듣도 보도 못한 노랑머리 소녀가 불쑥 나타나서 아버지의 ‘담배 친구’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대목이 생뚱맞아 보인다. 뒷골목 인기척까지 훤히 보이는 구례 바닥에서 고교 중퇴 여학생이 전직 빨치산 팔십대 노인네의 담배 친구라니. 그러나 아버지는 노랑머리 소녀가 학교 근처에서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다가 자신에게 들키자 혼을 낸 뒤 대신 ‘예의’를 갖추어 담배를 피우라는 허락을 해줬을 뿐 아니라, 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 공부를 독려하며 담배를 사주기까지 했다. 소녀 딴에는 그런 친밀함과 신뢰감을 당돌하게 ‘담배 친구’라고 표현한 것이다. 또한 아버지 특유의 예측불허한 오지랖에 비추더라도 이런 파격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괴테는 유머가 이야기의 ‘간’을 맞추는 것이라 한 바 있는데, 작품의 대미로 수렴되는 흐름 속 소녀의 등장 두번에 많은 사연을 엮어 넣으려니 그렇게 간을 맞출 수밖에 없었으리라 짐작된다.
소설 마지막에 화장한 아버지 유골을 그가 생전 누벼온 길마다 뿌리는 것은 고인의 삶에 합당한 진혼이다. 원래 빨치산 시절 주 무대였던 백운산에 유골을 묻으려 했으나 하필 대한민국 기득권의 아성인 서울대 연습림에 가로막혀—여기서 작품 첫머리의 ‘전봇대’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은 씁쓸하지만, 화자의 말대로 아버지의 뿌리는 산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묻힐 곳은 빨치산 전적지가 아니라 하산 후 일궈낸 삶의 터전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버지의 친구 비전향 장기수 이야기는 두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감옥에 있다가 1989년에 출소한 그는 전쟁 끝 무렵 빨치산 궤멸 직전, 아버지가 조직의 결정에 따라 투쟁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위장 자수’를 했다는 극비 사실을 화자에게 전한다. 당시 그런 결정을 내린 전남도당위원장에게서 장기수 친구가 직접 들었다는 이 말은 그의 순정한 우정과 동지애에 비추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딸도 이미 알고 있는 이러한 역사적 증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40년 동안 전달이 유예된 이러한 사실이 당사자의 선의와 무관하게, 적어도 딸 세대에겐 그 메시지의 현재적 의의에 강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요컨대 전란 당시의 역사적 시계에 멈춘 신념을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지금 되살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한 장기수 친구가 ‘노동이 싫고 무서워서’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장기수 송환 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북한으로 가는 것은 그가 평생을 바친 투쟁과는 어긋나는 패착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물론 그를 40년이나 감옥에 가둔 정권이 그를 부적응자로 만들었으니 지탄받아 마땅하고 궁지에 몰린 그의 선택이 안타깝지만, 아버지의 말처럼 남한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도 통일운동의 일환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아버지가 묻힐 곳은 빨치산 전적지가 아니라 이웃과 부대낀 세상이다.
생시에 아버지는 “우리 죽으면 싹 꼬실라부러라.” “꼬실라서 니 펜한 대로 암 디나 뿌레삐레라”(93면)라고 당부했다. 사람 몸을 ‘꼬실르라’는 말은 불경스러운 자기비하로 들리면서도 산에서 죽은 동지들에 대한 말 못할 죄의식과 더불어 “고기밥이 되든동 밭에 거름이 되든동. 기왕지사 죽은 몸, 뭣이라도 도움이 돼야제”(93~94면)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생시에도 자신을 좋은 세상 일구기 위한 거름으로 내주었으니 하물며 죽는다고 달라질까. 고인의 유골을 어디로 모실 거냐는 물음에 딸이 선뜻 “그냥 암 디나 뿌레삘라고”(254면)라고 답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독자는 이 대목에서 딸이 처음으로 사투리를 쓰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아버지를 가슴에 묻으며 비로소 딸은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아버지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사투리는 지역적 토속성의 표현을 넘어 지역공동체의 유대와 삶의 모든 굴곡을 고스란히 응축한 핵이다. 예컨대 박선생이 처음에 혼자 조문을 다녀가면서 “항꾼에 또…… 올라네”(50면)라고 할 때 ‘항꾼에’는 아버지의 중앙국민학교 35회 동창생을 기별이 닿는 대로 모두 불러오겠다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말이며, 실제로 그는 친구들을 데리고 십수차례나 조문을 온다. ‘항꾼에’는 막연히 ‘함께’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문자 언어가 아니라 한평생 온갖 경험을 나누며 이 말을 공유해온 동무들의 끈끈한 우애와 복잡다단한 삶을 불러오는 생생한 육성인 것이다.
4. 맺는말
아버지가 어머니의 죽은 전남편을 대하는 태도는 딸이 아직도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어머니와 함께 남부군 소속으로 빨치산 투쟁을 했으나 낙동강 전선에서 연락이 끊긴 전남편 윤재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가령 손재주가 서투른 아버지한테 ‘우리 윤재’보다 못하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그럼 나는 남의 상욱이냐’고 농담으로 받아치곤 한다. 죽은 친구의 아내와 살면서 “죽은 친구와 늘 비교당하면서도 화 한번 내지 않았던 아버지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딸은 “죽은 동지가 아버지의 영혼으로 스며 둘이 하나가 된 것은 아닐까 싶은 적도 있었다.”(168면)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것은4 동지애와 사랑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 사랑과 혁명은 하나였고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여기서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더 풀어쓰자면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했다”(21면)는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는 당시 풍속대로 중매결혼을 했지만 “시집간 첫날밤에 가갸거겨, 고교구규, 처음 배운 여덟 글자가 나헌티는 천지개벽이었어라”5라는 말처럼 첫 남편 덕분에 문자를 깨치고 평등사상에 눈뜨는 천지개벽을 경험했다. 그런 맥락에서 어머니가 자꾸만 윤재를 입에 올리는 것은 어쩌면 아버지가 첫사랑의 초심을 누구보다 충실히 지켜주어 고마워서가 아닐까? 아버지도 그런 마음을 알기에 죽은 친구와 비교되어도 농담처럼 웃어넘기는 것이 아닐까?
조문 온 윤재 동생의 입장에서는 죽은 형의 자리에 아버지가 있으니 “운명이 조금만 달랐다면 형과 친구의 처지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169면)는 말이 더욱 실감될 것이다. 『빨치산의 딸』에 따르면 어머니의 전남편은 일제 말기에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귀환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일본인 교장의 도움으로 징집을 모면하고 철도원이 되었으니 아버지와 윤재의 자리는 처음부터 바뀔 수도 있었던 셈이다. 또한 산에 있었던 4년 동안 아버지는 곁에서 숱한 죽음을 겪었으니 살아남은 그의 자리는 또다른 누군가의 자리가 될 수도 있었다. 이처럼 아버지의 삶을 극한적 예외상황으로만 보지 않고 동시대인들의 보편적 운명 속에 자리매김한 것도 작품의 호소력을 더한다.
다른 한편 어머니가 생각했던 ‘사회주의’가 실상은 근대적 민주주의의 기본과제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여성과 빈자에 대한 차별이 자본주의시대에 와서 훨씬 다양한 형태로 구조화되고 양산되어 온갖 차별의 표본적 의미를 갖는다면 그런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지금도 요긴한 민주적 과제라 하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런 의미에서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살았다. 젊은 시절 빨치산으로 나섰던 것은 해방 이후 냉전적 대결이 전면적인 무력 충돌로 비화하는 격동기 속에서 그 당시의 신념에 부응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그렇게 산에서 살았던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252~53면)이며, 그로 인해 아버지는 독재정권 치하에서 오랫동안 사회와 격리되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다시 사회로 복귀한 이후에도 평등한 세상이라는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부과된 짐을 묵묵히 감당했다.
아버지가 일제 말기에 두 짐을 지고 나무를 팔러 다녔다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눈에 선하다. 한번에 두 짐을 질 수는 없으니 먼저 한 짐을 저만치 옮겨놓고 다시 돌아와서 또 한 짐을 옮기는 방식으로 읍내까지 8킬로미터 거리를 곱절로 걸었다고 한다. 아직 사회주의를 몰랐던 그 시절에 두 짐을 진 것은 생존을 위한 고투였겠지만, 곧이어 그는 생존을 영영 박탈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대가 부과한 짐을 짊어졌다. 독자는 그렇게 평생 두 짐을 감당한 힘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거듭 되새기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아버지는 산에서 죽은 동지들의 형과 아우, 아들들에게 먼저 간 사람의 몫까지 살아내는 인생역정을 거쳐왔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삶이라는 죄의식과 부채감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는 없었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는 지극한 마음 없이는 가족 같은 인간적 유대에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연을 맺은 새 식구들을 통해 딸은 아버지에 대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249면)는 개안을 경험한다. 사회주의자라는 낙인 뒤에 가려졌던 아버지의 진짜 얼굴은 그의 삶에 동행한 모두에게 희망의 약속으로 기억될 것이며, 그런 점에서 이 소설에 담긴 짧은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아버지가 전쟁의 고통을 이겨내고 이웃과 더불어 일궈낸 새로운 삶은 인간을 옥죄는 모든 굴레에서 벗어날 진정한 자유를 향한 도정에서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아버지 세대가 못 다한 미완의 과제를 계승하는 일은 딸이 전하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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