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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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웅 『박태웅의 AI 강의』, 한빛비즈 2023

사람을 위한 인공지능을 함께 만들어나가려면

 

 

강수환 姜受芄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매체연구자 xysnp@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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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의 출현은 단연 세계적 이슈였다. 찬탄에서 준엄한 경고에 이르기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챗GPT를 두고 수많은 전문가의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과열된 반응은 과거 ‘알파고’ 때 한차례 겪어봤지만 현 상황은 조금 달라 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이 무시무시한 성능의 AI를 대단한 코딩 지식 없이도 누구든 간단한 대화(프롬프트)만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챗GPT가 출시 두달 만에 1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모은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AI 기술의 활용은 더이상 소수 개발자만의 영역이 아니며 생성형 AI의 사용은 점점 더 빠르게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을 듯하다.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 각자가 AI를 더 많이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왔다. 『박태웅의 AI 강의: 챗GPT의 실체부터 AI의 진화와 미래까지 인간의 뇌를 초월하는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은 어느 때보다 ‘AI 리터러시’가 긴요한 지금 우리를 위한 AI 입문서다.

이 책의 미덕은 가이드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점에 있다. 박태웅은 지금의 AI를 둘러싼 현안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히 풀어 설명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요한 논문들을 폭넓게 인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AI에 막 입문하려는 사람뿐 아니라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 이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된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간 끝에 우리는 다음 문장에 다다른다. “우리는 지금 아마도 산업혁명 이래 가장 큰 인류적 사건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 사람을 위한 인공지능을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224면) 박태웅의 전언에서 보듯 우리에게 AI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는 이 기술이 인류적 차원의 문제와 결부하는 까닭에서다.

책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강과 2강에서는 화제의 챗GPT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이루어진다. GPT의 원리는 무엇이며 그 성능은 어느 수준인지, 어떤 한계가 있으며 과연 ‘지능’을 가질 수 있는지 등의 물음들에 저자는 알기 쉬운 형태로 답을 제시한다. 내용만 풀어 쓰는 것이 아니다. 가령 AI의 성능이 급격히 치솟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 ‘emergent ability’는 일반적으로 ‘창발성’ 또는 ‘창발적 능력’이라 번역되지만, 저자는 기존의 번역을 따르기보다는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느닷없이 나타나는 능력’이라는 번역어를 제시한다. 용어를 직역한 것은 입문자를 위한 배려겠으나 가볍게 볼 일만은 아니다. AI의 언어모델 학습 과정에서 “학습 연산량이 대체로 10의 22제곱을 지나는 순간”(69면) 발견되는데, 목격할 수야 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인간으로서는 도통 알 길이 없으므로(AI가 계산 처리한 어마어마한 양의 매개변수를 하나씩 살피며 원인을 파악하기는 사실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말 그대로 ‘느닷없이 나타나는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책의 설명이 독자에게 쉽게 전해지는 이유는 저자가 그만큼 이 주제를 정보의 차원뿐만 아니라 직관적으로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전반부에서 세간의 놀라움과 열광을 불러일으켰던 생성형 AI의 실체를 요목조목 따져보았다면, 3강과 4강에서는 AI의 확산 앞에서 우리에게 도래할, 또는 어느정도는 이미 도래한 암울한 가능성을 하나씩 살피며 주의를 촉구한다. 생성형 AI의 대두로 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점차 제한되고 있다. 언론의 신뢰도 하락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거대 플랫폼의 광고 수익 배분 알고리즘이 진화하는 생성형 AI와 결합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터넷 속 무차별적인 혐오·차별·증오 표현의 문제가 해소되기 요원한 상황에서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딥러닝의 선구자 앤드류 응(Andrew Ng)은 “사악한 초지능의 등장을 현 시점에서 걱정하는 것은 화성의 인구과잉을 우려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우려하는 것은 기술을 악용하는 ‘사악한 권력자’의 등장이지 않을까.

결론에 해당하는 5강에서 저자는 위의 문제들에 맞서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향해 ‘인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서구사회가 오랜 시간 인공지능 윤리, 원칙, 법안 등을 세우기 위해 펼쳐온 노력을 점검한 끝에 저자는 우리나라의 대응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크게는 두가지다. 하나는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지나치게 경시한다는 것이다. 현재 법안소위를 통과한 ‘AI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을 보면 구미의 법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허술한데다 그마저도 ‘산업 육성’에 치중해 있을 뿐 AI의 위험성을 다루는 ‘신뢰 기반 조성’ 대목은 빈약하다. 저자의 말처럼 국제사회가 중요 원칙으로 삼는 AI의 “투명성, 설명 가능성, 신뢰성, 공정성, 윤리성, 견고성/안전성, 책임성, 프라이버시, 포용성과 지속가능성”(205면) 등의 사항을 꼼꼼히 정의하는 일부터 출발해야 한다.

둘째는 심지어 ‘산업 육성’의 방향조차도 잘못 잡고 있다는 점이다. 신산업이 등장할 때마다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자격증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적절한 진흥책이 될 수 없다. 저자의 제안은 기초과학의 육성이다. 수학을 모르면 알고리즘을 만들 수 없고, 인간의 뇌를 흉내 낸 AI를 설계하는 데에 인지과학과 뇌과학의 배경도 간과할 수 없다. AI의 적절한 활용을 도모하려면 여러 기초학문과의 협업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규모를 줄이거나 통폐합되는 기초과학 분야가 다수다. ‘산업 육성’과 ‘신뢰 기반 조성’ 모두에 역행하는 뱃머리를 돌릴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저자는 주로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을 촉구하고 있지만, 기왕 ‘인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중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만큼 조금 더 거시적인 쟁점도 떠올려볼 수 있다. AI의 문제를 논할 때 기술 윤리나 원칙처럼 추상적인 사안이 주로 거론되는 이유는 아마 우리 대다수가 AI를 기술로만 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AI의 개발에는 ‘광물’과 같은 물질적 조건이 꼭 필요하다. 연산처리 부품이나 배터리에 쓸 광물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방카섬의 지하수는 회복 불능 수준으로 오염되고 광부들은 일주일에 한명꼴로 사망했으며, 콩고에서는 아동들이 채취노동에 동원되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자 케이트 크로퍼드(Kate Crawford)의 말처럼 “누군가가 ‘AI 윤리’를 입에 올리면 광부, 도급업자, 클라우드 노동자의 노동 여건을 떠올려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AI에 관한 다원적인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해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 AI 리터러시를 갖춘 대중의 존재이다. 이 책이 건강한 논의의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을 위한 인공지능을 함께” 구상하기 위해 우리가 상상하고 고민해야 할 영역은 여전히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강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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