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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하재연 河在姸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우주적인 안녕』 등이 있음.
hahayoun@hanmail.net
종의 기원
인간 시점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 6~8
어떤 삶이 이해될 수 있습니까?
담장 위를 위태롭게 걷는 그의 꼬리가 우아한 커브를 실패하듯
동굴 벽에 매달려 있는 그의 코가 피의 냄새에 진저리 치듯
오늘 시작된 아침은 우연히 호의적입니다.
“빛이 눈부시군”
구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나는 눈부시다고 말합니다.
첫째날에 빛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형상이 아니라 작고 유한한 춤입니다.
돌이 위로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면, 이는 돌이 아래에 있었고 무언가가 그것을 위로 던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날에 하늘이 생겨날 때
나는 구부러져 있으며 평평한 마음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가 우리 눈에 보인다면, 그건 아이들과 우리 사이에 이 진동하는 선들의 호수가 있어서 아이들의 영상을 우리에게 옮겨주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셋째날
파도가 한번씩 돌아올 때마다 초목이 자라납니다.
“흰 파도가 그렇게나 짜다는 건 거짓말 같아
우리가 모두 눈물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큼”
계절과 별과 우주와 시간의 흐름과 날개가 없는 새와 바다생물과 강아지와
넷째날
다섯째날
여섯째날
너는 언제쯤 생겨납니까?
안식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는 어디로부터인가 던져진 것이 분명한데
시간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무지만이 무한할 뿐입니다.1
내 흐릿한 반영들이
호수 표면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궁창의 뚫린 구멍으로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흘러가는 나의 삶과
하늘 위에 발생하지 않은
너의 삶 사이에서
머루
머루는 등허리에 점이 세개 있는데,
하나는 갈색의 좀 큰 섬과 같고
나머지 두개는 물감이 잘못 떨어진 것처럼 꼬리와 목덜미에 놓여 있다.
나는 섬들의 모양이 달라지는 게 재미있어서,
머루의 털을 반대 방향으로 쓰다듬고
머루는 그럴 때마다 앙알거렸다.
하루는 병원에 데려갔더니
머루가 내 손을 물었다.
의사는 이름이 왜 머루냐고 물었고
나는 머루가 힘이 세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진짜 그랬다.
머루가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초콜릿을 손바닥에 올려주었더니
조금 핥다가 내 눈을 올려다보고
또 조금 핥다가 코를 부비며 낑낑거렸다.
머루의 혀가 너무 작고 따뜻하고 축축해서
지구상에서 가장 끈적하고 영원하게 녹고 있는 초콜릿에 대해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다른 나라에 있을 때 머루가 꿈에 나와
아주 힘이 없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머루는 다른 집에 버려진 후에 차에 치였다고 했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는
검은색 창문이 보인다.
목욕을 시키며 아이 등의 점을 만져보다가
머루야, 하고 부른다.
아이 등의 점은 하나고 짙은 까만색이고 섬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는데
머루야, 하고 부른다.
겨울 숲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검정고양이도
데려와 머루야, 하고 부른다.
검정고양이는 우는 게 좋고 먹이가 필요하고 얼룩 고양이랑 놀고 싶었을 건데
데려와 머루야, 하고 부른다.
다시 돌아온 오후의 햇살 아래서
나는 오래되고
발톱과 이빨 자국에 해진 소파에 앉아 졸고 있다.
머루는 내가 키워본 적 없는 개의 이름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건
확률 구름의 형태 같은 거야.
소파 위 창문 틀 안으로
고양이 구름이 하나 흘러가고
지구의 창문 바깥에서
아이 구름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
- 이탤릭체는 카를로 로벨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김정훈 옮김, 쌤앤파커스 2018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