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고명재 高明載
1987년 대구 출생.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등이 있음.
myung0613@naver.com
하와이안피자
이것은 범죄다 이것은 멀쩡한 이태리 사람을
순식간에 울부짖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차라리 한채의 소슬한 형틀
이것은 샘도 변기도 시도 파이프도 아닌 채
지금 막 피자의 이데아를 흔들고 있다
물론 시카고에도 디트로이트에도 특색은 있지
나폴리에도 시금치가 들어간 피자는 있지
그러나 사과를 된장에 찍어 먹지는 않잖아!
조선시대에는 저잣거리 구석구석에
왕이 게장과 생감을 먹고 급사했다는
풍문이 버젓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잘못 시킨 피자를 쳐다보면서
축축한 도우와 물컹한 과일을 곁눈질한다
엄마가 눈을 감고 심호흡한다
그러니까 가족은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집과 피자의 둘레는 어디까지인가
고구마피자 불고기피자 존중해줄 수 있다
그러나 김치피자부터는 갑갑해진다
아무리 K-사랑으로 무장한대도
인삼피자 앞에서는 미간이 붙었고
고등어피자를 목격했을 땐 기도만 했다
그래도 이건 보기에는 참 예쁘네
언젠가는 하와이에 가보고 싶다고
엄마는 할머니가 주워 온 자식이다
마당에서 소리를 치고 그릇을 깨는데
강보에 싸인 손가락이 꼬물거렸지
그게 참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워서
그게 참 입김을 뿜는 게 기적 같아서
그것 참 대문을 열고 두 사람을 받았대
이름 모를 아기가 가풍을 찢은 거였지
그러니 알로하, 이것은 엄마의 탄생 이야기
명란과 바게트의 충돌 이야기
알로하 환대와 화합, 존중을 뜻해요
앙버터처럼 귀여운 이름을 마음껏 외치기
먹다보니 이것도 제법 괜찮네!
거짓말할 때 엄마는 쨍한 봄처럼 웃고
창밖에는 홍매화가 흔들거린다
그나저나 꽃을 뿌린 피자는 없냐고
우리는 나란히 금괴 같은 피자를 들고
곧 태어날 동생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이다
부처 핸섭
크리스마스 날 뉴스에 조계사가 나왔다 스님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있었다 꼭대기엔 십자가도 환하게 걸었다 눈이 왔다 연등에 불이 켜졌다 아기 예수님을 본뜬 눈사람도 있었다 머리 없는 산타가 튀어나왔다 동자승들이 우르르 달려와 선물을 집었다 그 아이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반들반들한 머리 위에 첫눈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