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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장대송 張大松
1962년 충남 태안 안면도 출생.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옛날 녹천으로 갔다』 『섬들이 놀다』 『스스로 웃는 매미』 등이 있음.
cnandong@hanmail.net
가난한 미인
모이를 뿌려주자 오목눈이는 낙엽처럼 가난한 몸짓으로 날아왔다.
새매와 새를 보는 시선 사이 형체 없는 것들이 지나갔고, 그 순간이 절로 가난해졌다.
나는 죽어서 가난한 새가 될 거라는 말이 나왔다.
식당일을 끝내고 남은 국밥 한 수저를 뜬 채, 식당 벽에서 아득한 허공을 만났다.
입 벌린 채 튀겨진 어린 조기 입속, 뒤틀린 허공으로 가기 위해 수저를 자분 놓았다.
비루함도 화려함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게, 뻘밭 작은 돌 겟말에 붙어 들물과 날물, 계절이 허송할 때, 암수가 바뀌는 것도 겪었다.
착한 치매 걸린 할머니의 가느다란 턱선이 그 겨울에 걸려 있었다.
침묵은 침묵이 사는 방편이라서, 내 지침 정도로는 엄두를 못 낼, 침묵 뒤에 우두커니로 서 있는, 살아 있던 적이 없는 나무가 서 있다.
허공을 향해 눈동자로 숨을 쉬는 걸 보다가 슬픈 남정네로 들어갔고, 나와서는 먹골 배밭 언저리 작은 집 가난한 미인으로 사라졌으면 했다.
자작나무 하얀 선을 적시는 눈 녹은 물이 땅거미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미역국
오래된 집에서 누대에 걸쳐 내려온 숨을 나눠 먹는 일이다.
두세번의 호흡을 미뤄두는 일이란 미안함과 그뒤에 서성거리는 쓸쓸함을 관통하는 일이라서 사유로서의 또다른 변주를 맛볼 수 있었다.
등짝에 땀이 살짝 나오려고 할 때, 바로 그때 스치듯 몸을 만지고 가는 약간의 서늘함, 날카로움을 감추려는 또다른 사위, 두번쯤 더 망설이다가 그냥 떠나보낸 것들이다.
목숨을 다해가는 벌레들의 울음이 우물 속으로 들어갈 때 그대에게는 슬픔을 숨기는 일이고 나에게는 허금이 쌓이는 일로 우물의 뚜껑을 덮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