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성해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 등이 있음.
hna0130@daum.net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김곤이 인스타그램에 처음 업로드한 게시물은 치앙마이 타이거 킹덤에서 찍은 동영상이었다. 15초 남짓한 영상에서 김곤은 호랑이 우리에 들어가 어미 호랑이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호랑이는 182센티미터의 김곤과 비견될 정도로 거대했는데 약에 취한 건지 더위와 사람에 지친 건지 몸을 쭉 뻗고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게시물에 달린 139개의 댓글을 나는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멋있어요’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오나요’ ‘힘내세요’ 같은 댓글 사이 이런 댓글도 보였다.
‘역시 호랑이도 썩은 고기는 안 먹고 가리네.’
∞
김곤은 이른바 나만 알고 싶은 감독이었다. 김곤이 「인간 불신」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타기 전부터 그를 알고 있던 팬덤과, 어느정도 인지도가 생긴 후 좋아하게 된 팬덤으로 코어팬과 라이트팬이 나뉘었고, 신비주의를 고수해 GV조차 안 하던 그가 유명 토크쇼에 출연한 뒤 출중한 외모와 재능으로 주목받자 나만 알던 감독을 빼앗겼다며 유감을 표한 이들까지 속출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굳이 따지자면 나는 김곤이 은곰상을 탄 이후 팬이 된 케이스였다. 그래도 살짝 발만 담그는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김곤의 작품을 모조리 챙겨 보았다. 지인들의 생일선물로 「인간 불신」 블루레이를 선물하고—내 영향으로 다들 김곤에게 입덕했다—n차 관람에, 영혼 보내기1까지 불사하던 ‘인간 불신러’2. 그게 나였다. 『보그』에 실린 김곤의 화보를 반년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하기도 했는데, 당시 연인이었던—지금은 남편인—길우는 그것을 거슬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한동안 길우에게 김곤의 카피캣이 되길 종용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김곤이 SNS를 일체 하지 않던 시기라 인터뷰를 읽고 트위터를 돌아다니며 김곤의 취향이며 기호를 긁어모아야 했다. 일테면 김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했을 때 입은 셔츠는 커피 찌꺼기로 염색한 H&M의 오가닉 제품이라는 것, 특정 출판사의 시집을 즐겨 읽으며 북클럽 회원에게만 주어지는 캔버스백이나 북커버를 살뜰하게 가지고 다닌다는 것, 맥주를 좋아하며 특히 뒤셰스 드 부르고뉴를 즐긴다는 것,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목덜미에 살색 커버 테이프를 붙인 건 스무살에 한 레터링 타투 때문이며 장발을 고수하는 것도 동일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 제거를 고려했으나 자신의 신념과 초심이 담긴 타투이기에 쉽게 없애지 못한다는 것 등등.
김곤에 관한 정보를 싸그리 수집한 뒤, 나는 길우를 은밀하게 부추겼다. 자기도 머리 길러보면 어때? 자기도 오가닉 티셔츠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 자기도 북클럽 가입할래? 마침내 목덜미에 타투를 새기는 게 어떠냐 물었을 때, 길우는 폭발했다.
적당히 좀 해!
무던한 길우가 내게 가장 크게 성을 냈을 때가 그때였다.
그 정도로 나는 김곤에 미쳐 있었다.
∞
길티 클럽. 그런 모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오영을 통해 알았다. 오영은 나 못지않은 김곤의 골수팬이었다. 감독의 국내 미개봉 단편을 보기 위해 생동성 알바를 해서 보고타국제영화제까지 갔을 정도라니까, 뭐.
오영과 나는 ‘인불갤’3에서 만났다. ‘그 사건’이 벌어진 직후 인불갤을 굳건히 지키던 인간 불신러들이 하나둘 떠나고, 그곳이 일간베스트 서버가 터지면 일베 유저들이 임시로 모이는 공간으로 악용될 무렵에도 나는 꿋꿋이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오영은 간간이 댓글을 달았고. 종국에 인불갤은 오영과 나의 1:1 대화창처럼 쓰였는데, 그때의 내가 얼마나 견고하고 열성적이었는지 게시판에 전부 기록되어 있으며, 김곤도 내 게시물을 눈팅할 거라 여기며 용비어천가를 읊은 적도 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오영과 나는 가까워졌다. 어찌어찌 트위터 팔로우까지 맺고 얄팍하게나마 친목을 도모하던 중 오영이 느닷없이 DM을 보내왔다.
[이건 정말 나만 알고 싶었는데, 님도 나 못지않은 존버인 것 같아 공유함.]
메시지 하단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클릭했다가 엉뚱한 데 엮이는 게 아닐까 주저하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링크에 접속했다. 이상한 곳이면 바로 빠져나올 심산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채팅방인 줄 알았는데 참여 코드가 걸려 있었다. 오영은 김곤이 「인간 불신」을 크랭크인한 날짜가 그것이라고 일러주었다.
140130.
고민의 여지없이 코드를 입력하자 채팅방이 열렸다.
길티 플레저 클럽. 줄여서 길티 클럽. 촬영까지 갔다가 엎어진 김곤의 세번째 작품 「길티 플레저」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엄격한 잣대에 의해 거르고 걸러 초대되었다는, 김곤의 골수팬 스물여섯명이 길티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길티 클럽엔 여섯가지 규정이 있었다.
1. 대화창 캡처 및 무단 유포 금지.
2. 2주 이상 활동 없을 시 총대 권한으로 추방.
3.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으로 통일할 것.
4. 친목질 절대 금지.
5. 일부 단어(ex. 파주 세트, A군) 사용 금지.
6. 김곤 감독님에 대한 비하 발언 및 욕설 일절 금지.
타이트한 규정과 달리 채팅방의 분위기는 꽤나 유했다. 소통도 잘 이뤄졌고, 욕설이나 비방 글을 남기는 이들은 가차 없이 추방되었다.
6. 김곤 감독님에 대한 비하 발언 및 욕설 일절 금지.
길티 클럽은 김곤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바깥은 그에 대한 추문과 낭설로 가득했으나 이 안에서는 ‘감독님 근황 있으면 더 주세요’ ‘「인간 불신」은 한국이라는 작은 그릇이 담을 수 없는 명화죠’ ‘ 「미몽」 사운드트랙은 발매 안 되는 건가요? 차행온4 듣고 싶은데’ ‘여기서 감독님 근황 듣는 게 요즘 제 낙입니다’ ‘고니형 돌아와’ 같은 애정 섞인 대화만 오갔다. 모욕과 혐오가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든든한 바운더리. 그게 길티 클럽의 마력이었다. 그뿐 아니라 굿즈를 공동구매하기도 쉬웠다. 시사회나 예매 이벤트로 한정 발매되었던 것들이 재판매되기도 하고, 손재주 좋은 회원이 직접 제작해 발주를 넣는 경우도 흔했다. 나는 새로운 굿즈가 발매되는 족족 사들였다. 「인간 불신」 포스터 일러스트가 들어간 손수건, 감독의 데뷔작 「미몽」 로고 타이틀이 새겨진 배지, 티셔츠, 캔버스백…… 그렇게 많은 굿즈를 사 모으면서도 배송지는 늘 집이 아닌 회사로 입력했고, 배송된 굿즈는 수납박스에 숨겨두고 나 혼자 봤다.
그 사건 이후에도 내가 여전히 김곤을 추앙하고, 그의 영화를 보고, 클럽에 가입해 굿즈까지 사들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길우는 경악했다.
자긴 그런 인간을 소비하고 싶어?
길우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고, 내 윤리의식에까지 의구심을 품었다. 끝내는 무언가 단단히 홀린 것 같다고 화까지 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단단히 홀린 건 내가 아니라 길우였다. 그의 반응은 대중의 반응과 흡사했다. 한때는 김곤에 열광했으나 그 사건 이후 바로 등을 돌린 빠에서 까가 된 이들의 반응과도 유사했고. 그들은 옐로우 저널리즘과 사이버 레커의 가짜뉴스에 홀려 김곤의 작품을 철저히 외면하고 왜곡했다. 「인간 불신」의 은곰상 수상을 두고 느닷없이 거품 논란을 증폭시키는가 하면 「미몽」의 동성애적 코드와 감독의 성적 지향을 억지로 엮으며 평점창을 ‘제 사리사욕 채우는 영화’ 같은 악랄한 댓글로 도배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김곤 작품을 하나도 보지 않고 ‘안 봐도 비디오’ 따위의 평을 내리는 걸까. 왜 이해관계조차 얽히지 않은 타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안간힘을 쓰는 걸까.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않은 사건을 제멋대로 공론화하고 거짓과 사견을 얼기설기 덧붙여 퍼 나르는 걸까.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알았으니 그만하라고, 이제는 관심 끄겠다고 무마하긴 했으나, 후에도 나는 길우 모르게 굿즈를 사들이고 길티 클럽 활동도 활발히 했다.
2. 2주 이상 활동 없을 시 총대 권한으로 추방.
나는 김곤을 향한 애정을 소비로 입증했고, 내가 산 굿즈의 효용이나 만족도를 적어 채팅방에 꾸준히 올렸다.
[오늘 도착한 「인간 불신」 티셔츠입니다. 네크라인 시보리가 짱짱해서 빨아도 잘 안 늘어날 것 같아요.]
[「미몽」 배지입니다. 펄이 잔잔히 들어가 있는 게 완전 취향저격이네요.]
대용량 수납박스가 온갖 굿즈로 꽉 찰 무렵, 채팅방에 공지 하나가 올라왔다.
[길티 클럽 오프라인 정모 알림—2019 베를린국제영화제 시상식 생중계 단체 관람]
총대는 정모 일정과 회비에 대해 언급한 뒤, 말미에 공지 하나를 추가했다.
[감독님과 영상통화 있을 예정]
세상에!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던졌다.
∞
정모 장소인 이태원의 펍까지는 약 세시간이 걸렸다. 집에서 남춘천역까지 버스로 한시간, 남춘천역에서 ITX를 타고 왕십리역까지 한시간,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사십분, 지하철에서 내린 다음 도보로 또 이십분. 차편이나 거리 따윈 상관없었다. 일주일 전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두고 연차를 냈다. 길우에게는 서울 출장이 잡혔다는 거짓말까지 한 채.
출발 전까지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다 「인간 불신」 로고가 가슴에 조그맣게 새겨진 친환경 섬유 소재의 티셔츠를 입고 위에는 패딩을 걸쳤다. 이태원으로 가며 어떤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눌지 기대에 부풀어 상상했다. 정모 단골 질문인 ‘어쩌다 김곤 감독을 좋아하게 되었나’에 대한 답도 나름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그러니까……
김곤을 알기 전까지 나는 소위 ‘필리스틴’이었다. 고전이나 독립, 예술 영화엔 관심이 없었고 누가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당혹스러워하며 마블 시리즈 정도를 꼽는 사람. 멜론 순위권에 있는 노래를 듣고, 어쩌다 미술관에 가면 작품을 설렁설렁 훑다 십분도 안 되어 나오는 사람.
나는 예술에 도취된 사람들이 불편했다. 자칭 시네필이자 딜레탕트였던 전 애인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몰라? 다른 건 몰라도 「란」은 꼭 봐. 명작이니까. 타인에게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강요하던 사람. 넷플릭스 구독 안 해? 스포티파이도? 그럼 혼자 있을 땐 대체 뭐 해? 취미가 없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던 사람. 어떻게 「퐁뇌프의 연인들」을 보면서 조냐? 너는 진짜…… 심미안이 없다며 면박을 주던 사람.
난 그 사람이 듣는 음악,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만 봐도 어떤 유형인지 예측 가능하거든? 근데 너는 뭐랄까. 난감하달까. 아니 지루하다고 해야 하나. 모럴이 없으니까.
그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모럴의 뜻을 검색해보았다.
인생이나 사회에 대한 정신적 태도.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의 구분에 관한 태도.
단어를 오용한 게 확실했지만, 내게 적용해보면 완전히 잘못 쓰인 것도 아니었다. 그때까지 나는 무엇이 좋고 싫은지, 옳고 그른지 깊게 따지고 들지 못했다. 태도랄 게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지적 허영이 꼴사나웠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과 있을 때 체감하는 나의 무지와 단순이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주관도, 판단도 없이 그래, 내가 좀 지루한 편이지 하며 그가 추천하는 작품을 고역스럽게 보기도 했고.
후에 만난 길우가 편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는 사람. 까페에서 트로트나 CCM이 흘러나와도 무감하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 봉준호와 박찬욱을 헷갈려도 눈치 주지 않는 사람. 아니, 그 둘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지루할지언정 유별나지는 않은 사람. 나와 동류인 사람. 길우와 서점이나 공연장을 지날 때마다 나는 공연히 궁시렁대곤 했다. 책, DVD 모아서 뭐 해. 이사 갈 때 가지고 갈 짐만 느는 거지. 내한공연? 어차피 스크린만 줄창 보다 오는 거 아냐?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게 나의 모럴이었다. 한때는.
「인간 불신」을 처음—나는 그 영화를 총 32회 재관람했다—관람한 건, 길우와 만난 지 1년째 되던 날이었다. 3월인데도 아침부터 내린 눈이 저녁까지 그치지 않았다. 강원도에서 강설은 흔한 일이었으나 그해에는 이상기후가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눈이 쏟아졌다. 오늘은 어렵겠지? 내일 만날까? 문자를 주고받다 아무리 그래도 일주년인데 데이트마저 생략하면 아쉬울 것 같아 퇴근 후 길우의 근무지와 내 근무지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저녁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니 일곱시였다. 시간은 뜨고 대화거리도 떨어지고 각자 핸드폰만 보던 중에 길우가 넌지시 제안했다.
영화라도 볼까? 안 본 지 오래됐잖아.
딱히 보고 싶은 영화는 없었지만 이대로 헤어지긴 섭섭했다. 어플로 「모아나」를 예매한 뒤 영화관으로 향했다.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맞추었는데도 세찬 눈발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핸드폰에서는 연달아 재난경보가 울렸다. 도착 예정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차로 팔분이면 도착할 영화관에 삼십분도 넘게 걸려 당도했다. 영화관으로 가는 내내 길우는 쩔쩔매며 계장과 통화했다. 시청 공무원인 길우는 대설주의보가 발효될 때면 퇴근 후에도 비상근무를 해야 했다. 이 역시 익숙한 일이었으나 기념일에 비상근무라니. 얄궂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시청 앞 도로가 폭설로 정체되었으니 제설 작업을 하러 오라는 계장의 통보에 길우는 나를 영화관 앞에 데려다준 뒤 급하게 차를 돌렸다. 별수 없이 영화는 나 혼자 보게 되었다. 「모아나」를 보려 했으나 상영 시간이 지난 뒤였다. 「조작된 도시」도 심야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그나마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인간 불신」이었다.
운도 지지리 없네.
그냥 돌아갈까 하다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까워 매표소로 향했다. A열밖에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직원이 물었을 때는 의아함이 앞섰지만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영환데 앞자리밖에 안 남았다고?) 잠이나 푹 잘 요량으로 남는 자리 아무 데나 예매해달라고 했다.
영화관은 관객으로 꽉 차 있었다. 광고가 나올 동안 영화 포스터를 대충 훑었다. ‘당신은 지독한 사랑에 빠질 거야.’ 포스터에 적힌 카피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괜히 왔어. 벌써부터 지루해.]
영화관이 암전되길 기다리며 길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초반부는 불친절했다. 인물들의 의미 없는 수다, 급작스럽게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컷. 모든 게 제멋대로였다. 하품을 하며 몸을 늘어뜨렸다. 커피를 두잔이나 마신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멍하게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난해한 장면도 있었으나 확실히 그동안 봐온 한국영화와 다르긴 했다. 조폭도 나오지 않았고, 여성이 무참히 희생되거나 소모되지도 않았으며, 신파도, 생(生)에 대한 헛된 희망이나 자비도 없었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독특했다. 악인도 아니지만 선인도 아닌, 굳이 말하면 괴인에 가까운 인물 군상. 저게 김곤 작품의 모럴이거든. 옆 사람이 동행인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모럴이라…… 중반부로 접어들수록 서사에 힘이 더해졌다. 의미 없다고 느껴졌던 대사는 시간의 경유를 거치며 의미심장해졌고, 생략되고 분절되었던 컷들이 하나둘 회수되며 맥락이 생겨났다. 두 주인공이 조우하고 갈등이 고조되는 부분부터 자세를 고치고 스크린을 직시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인물들, 낯설고 불분명하지만 분명 아름다운 숏들이 이어졌다. 스크린을 뚫고 피부까지 와닿는 생생한 에너지, 처절하고 치열한 감정선. 그렇게 절정을 지나 벌거벗은 두 주인공이 동물처럼 포효하는 엔딩에 도달했을 때는…… 멍해졌다.
뭐지…… 뭘까…… 와…… 이건 정말이지…… 뭔가.
내 얕은 식견으로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울림과 충격이 마음을 휘젓다가 뒤덮었다가 짓눌렀다. 압도된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극장을 떠나지 못했다. 러닝타임 두시간이 턱없이 짧게 느껴졌다. 할 말이 많았고 남는 질문 역시 많았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명확히 알 수 없는, 그래서 더 고혹적인 장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무엇보다 이런 괴상하고도 우아한 작품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약속 시간인 여덟시 정각에 딱 맞추어 펍에 도착했다.
2017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뒤, 약 2년이 지난 2019년 2월 16일. 김곤은 신작 「안타고니스트」로 경쟁 부문에 다시 노미네이트되었다. 베를린 조 팔라스트 극장에서 개최되는 시상식은 한국 시간으로 밤 아홉시에 유튜브로 생중계될 예정이었다.
먼저 도착한 총대를 포함한 여섯명의 회원들이 빔 프로젝터 스크린이 마주 보이는 단체석에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흑백영화가 소리 없이 상영되고 있었다. 펍은 다른 손님 없이 한산했고, 층고가 높아 말소리가 울렸다. 회원들은 모두 김곤이 즐겨 마신다는 뒤셰스 드 부르고뉴를 마시고 있었다. 나 역시 뒤셰스 드 부르고뉴—다른 맥주보다 두배는 비쌌다—를 시킨 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옆에 앉았다.
시상식이 시작될 때까지 한시간가량 남아 있었다. 총대가 말했다.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막 자기소개를 시작하려 할 때, 누군가 우리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내 대각선에 앉았다. 부스스한 붉은 탈색모에, 예술대학 엠블럼이 박힌 롱패딩을 입은 여자. 여자는 자신을 오영이라고 소개했다. 오영……? 그 오영? 오영은 총대와 아는 사이인 듯 친밀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에계, 이거밖에 안 모였어요?
아홉시 넘어서 더 올 거 같은데 기다려보자고.
총대를 시작으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닉네임 정도 말하면 되려나 했는데 다들 나이며 직업, 학벌까지 낱낱이 밝혔다. 나를 제외한 일곱명 중 무려 네명이 영화과 재학생 혹은 졸업생이었고, 둘은 프리랜서 창작자, 나머지 한명은 주부였다. 죄다 문화예술 종사자네. 나이도 나보다 한참 밑이고. 모여 앉은 이들을 훑으며 생각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눈치를 보며 나이를 다섯살 낮추어 소개했다. 의심을 사진 않을까 했는데 다들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오영은 익살스럽게 윙크를 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친구를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그전까지 온라인 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없었지만.
뒤셰스 드 부르고뉴는 산미가 강했다. 상한 거 아냐? 첫 모금을 마시고 눈치를 살피는데, 다들 안주도 없이 그것을 잘만 마시고 있었다. 한모금을 더 들이켰다. 이런 맥주를 마셔본 적 없어 그런가. 시고 텁텁하기만 했다. 굳이 따지자면 내 취향은 카스나 하이트 쪽이었다. 뒤셰스 드 블라블라 쪽이 아니라. 오직 내 옆에 앉은 여자—주부—만 생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고 있었다. 나도 소주를 마실까 하다 일단 뒤셰스 드 블라블라를 더 마셔보기로 했다. 마시다보면 길이 들지 않을까. 그래도 김곤이 좋아하는 맥주라니까. 겨우겨우 맥주를 반쯤 들이켰을 때, 총대가 영화계 지인을 통해 「안타고니스트」 스크리너를 받아 보았다고 하며 혹시 본 사람 있냐고 물었다. 그 말에 오영을 포함한 영화과 학생들이 눈을 번뜩였다.
봤죠!
그들은 모두 시네필 내지는 평론가 같았다. 「안타고니스트」의 각 장마다 다른 화면비가 사용된 것을 예로 들며 결국 김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가변성’이다, 아니다, ‘기성을 향한 반항과 탈주’다, 토론을 벌였고, 나중엔 프리랜서 둘까지 합세해 ‘가변 화면비를 사용한 데에는 다 철학적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럴 리가. 아이맥스 상영을 겨냥한 의도적 편집이다’ 열띤 논쟁을 벌였다. 시네마스코프니 레터박스니 블랙바니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정식 개봉도 안 한 영화를 본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부럽기도, 한편으론 소외감이 들기도 했다. 김곤에 빠진 이후 나름 영화 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부했는데 저들에 비하면 나는 한참 모자란 것 같았다. 나는 나처럼 멋쩍게 앉아 핸드폰을 보는 옆자리 여자에게 슬며시 말을 붙였다.
어디서 오셨어요?
여자는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뜨더니 광주요…… 속삭였다.
경기도요?
아뇨, 전라도.
저도 지방에서 왔는데! 춘천이요.
그러시냐고 답하며 여자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배경화면이 공갈 젖꼭지를 문 아기 사진이었다.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딸이에요?
아뇨, 아들요.
너무 귀엽다. 몇개월이에요?
이제 돌 지났어요.
그렇구나, 이런 아들 낳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네…… 네.
여자는 내 말에 꼬박꼬박 반응했지만 귀를 기울이진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은 열띤 토론을 벌이는 총대와 다른 회원들을 향해 있었다. 그들은 「안타고니스트」 2장에서 주인공의 눈동자가 반짝인 것을 두고 인물의 태세 전환을 암시하는 의도적 숏이다, 카메라 렌즈에 의한 단순한 빛 반사다, 가타부타 하고 있었다. 이제 와 말을 얹고 저들 틈에 끼기에는 늦은 듯했고, 그렇다고 멀뚱히 앉아 있기도 뭣해 여자에게 재차 말을 붙였다.
3.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으로 통일할 것.
미지 선생님, 하고 부르자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자기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아까 자기소개할 때 말씀하셨잖아요.
……그랬나요.
나는 그녀에게 김곤의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뜸을 들이다 「인간 불신」을 꼽았다.
어머, 저돈데!
나는 내가 모으고 있는 김곤 영화의 굿즈 컬렉션이며 블루레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읽었던 「인간 불신」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시시콜콜 주워섬겼다.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김곤이 넉달간 단식원에 있었다는 것, 최종 각본이 완성될 때까지 초안만 130번 이상 고쳤다는 것, 오프닝 씬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노스텔지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 등등.
그렇군요…… 몰랐네요…… 여자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필터링 없이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차 혼자 떠들었다.
그 사건 이후 친구 몇과 연락이 끊겼다. 그쪽에서 끊은 경우도 있었으나 대체로 내 쪽에서 먼저 피했다. 친구들은 어떻게 아직도 김곤을 지지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건 비윤리적이라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힐난이 길어질 때마다 실망도 따라 커졌다. 그들은 나와 함께 김곤의 작품을 관람한 적 있었고 내가 선물한 「인간 불신」 블루레이를 기쁘게 받아 들었으며 김곤의 작품을 호평했던 이들이었다. 듣다못해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잖아. 그리고 원래 인터넷에서는 별별 말이 다 도니까……
내 말에 친구들은 기막혀하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네 아이한테 같은 일이 일어나도 그 인간 감쌀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 서면 말문이 막혔다. 내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의심도 들었다. 나는 김곤이 혐오스럽지 않았다. 외려 안쓰러웠다. 만일 그게 사실이더라도 쪽잠 자면서 촬영하다보면 누구든 예민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인데, 그럴 수 있지 않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밀려왔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실수라고 해도 일곱살 난 아이에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게 맞나. 만약 내게도 아이가 있고, 그 사건의 당사자가 내 아이였다면 김곤의 영화를 몇번씩 관람하고 소비할 수 있었을까. 나는 늘 헷갈렸지만, 그럼에도 김곤의 신작을 기다렸고 그의 기사에 선플을 달았다. 그 사건이 가십으로 불거졌을 때에도, 열기가 식고 냉소와 무관심만 남은 뒤에도 변함없이 그를 엄호했다. 뒤에서, 남들 모르게. 친구들 앞에서는 그래, 너희 말이 맞아, 적당히 눙쳤지만.
인격자라도 된 듯 서슴없이 돌을 던지는 이들과 여기 모인 이들은 다르겠지. 오늘만큼은 ‘길티’ 없이 ‘플레저’만 향유할 수 있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앉아 있는 미지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쩌다 김곤 감독을 좋아하게 된 거예요?
네?
어쩌다 길티 클럽에 들어오게 된 거냐고요.
미지 선생님이 막 입을 떼려 할 때, 누군가 우리를 보며 웃었다. 총대였다. 회원들이 왜 웃냐고 묻자 총대는 미지 선생님과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저 선생님들 너무 귀여우셔.
왜요? 뭐라고 했는데요?
감독님 영화 왜 좋아하냐고, 「인간 불신」이 특히 좋으시대. 너무 귀엽지 않아?
총대의 말에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진짜 귀여우시다.
선생님들 되게 소녀 같으세요.
소녀. 그 말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왜 우리를 두고 웃는지 그 저의도 알 수 없었다.
그거 「인간 불신」 굿즈 맞죠?
영화과 학생 중 하나가 내 티셔츠를 가리키며 물었다. 맞다고 하자 그는 총대를 툭툭 치며 속삭였다.
저 티셔츠 마진 엄청 남았다던데. 저거 만든 애들 굿즈 팔아서 경차 뽑았잖아요.
경차?
그렇다니까요. 친환경 소재도 아니면서 페트병 리사이클링이라고 구라나 치고. 우리도 이참에 굿즈나 팔까요? 영화니 뭐니 노마진 장사 그만두고.
그들이 낄낄댈 때마다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4. 친목질 절대 금지.
은근히 파벌을 형성하며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 것도, 내가 진지하게 던진 질문들이 귀엽다거나 소녀답다는 말로 전락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저 넘어갔다. 오영이 묘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자는 총대의 말에 흡연자 몇이 밖으로 나갔다. 오영이 슬그머니 내 쪽으로 오더니 같이 나가자고 했다.
전 담배 안 피우는데요.
오영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할 말이. 우리 제대로 얘기도 못했잖아요.
얼결에 오영을 따라 펍 뒤편으로 향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있을 줄 알았는데, 잔뜩 녹슨 재떨이가 덜렁 놓인 흡연장엔 오영과 나 둘뿐이었다. 오영은 패딩 주머니에서 말보로 갑을 꺼내며 말했다.
다른 애들은 저기 역 근처에서 피우고 있을 거예요. 늦게 온 사람들 마중한다고.
오영은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내가 자기보다 한참 위라서 놀랐다고 했다. 서른처럼은 절대 안 보인다고 너스레를 놓는 오영을 보며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언니라고 부를게요. 우리끼리는 선생님 뭐 그런 간지러운 호칭 안 써도 되잖아요?
오영은 스물두살이었다. 나이 차가 꽤 났지만 오영은 나를 어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온라인에서 말을 튼 사이여서 그런지 꼭 동네 언니 같다고 오영은 말했지만, 나는 그 때문에 외려 거리감이 느껴졌다. 격의 없이 할 말 못할 말 쏟아내던 그 세계와 현실은 다르다고 여겼으니까. 한참 밑인 애와 주책스럽게 ‘우리 고니’ ‘내 사랑은 막을 수 없어’ 하던 지난날이 생각나 ‘현타’가 오기도 했고. 그렇게 부끄러움과 어색함에 몸서리치는데 내게 오영이 대뜸 물었다.
언니, 실망했죠?
실망이요? 무슨……?
좀 전에요. 애들이 언니한테 귀엽다느니 소녀 같다느니 그런 거요.
아뇨. 실망은……
그래요? 난 속상하던데. 지들은 김곤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도 못할 거면서 괜히 빈정대기나 하고. 요상한, 현학적인 말이나 해대고.
뜨끔했다. 내가 표정 관리를 그렇게 못했나. 오영은 말을 이었다.
쟤네들 언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순수하지 않아요. 총대도 그렇고 저기 있는 애들 중 절반은 겉으로는 김곤 빨면서 속으로는 엄청 질투하거든요. 요즘 영화아카데미 출신 중에 김곤만큼 잘된 감독 없으니까,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어슬렁대는 거죠. 영화판 다 거기서 거기지만 김곤은 큰 상도 받고 유명하니까, 연출부라도 한번 들어가고 싶어서 클럽 만들고 사람 모으고 사바사바하고 그러는 거예요.
오영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니까 내 말의 요지는요…… 쟤네는 우리랑 다르다고요.
우리?
우리는 정말 좋아서 빠는 거잖아요.
오영은 ‘우리’의 사랑은 ‘저들’의 사랑보다 순도가 높다고 했다. 저들은 김곤을 개발지로 삼고 있지만 우리는 낙원으로 삼지 않느냐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순도, 그리고 낙원, 그 말에 나는 오롯이 공감할 수 없었다. 신념에 취해 있는 오영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김곤을 비호하면서도 불신을 감출 수 없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익명의 누군가가 기사 밑에 남긴 ‘얘 학교 다닐 때도 소문 안 좋았음’ 같은 댓글을 읽으면서 이게 진짜일까? 마음이 흔들렸던 순간. 그의 영화를 다시 보며 이전에 보지 못했던 폭력의 전조나 코드를 목도할 때마다 감독의 모럴이 투영된 건 아닐까? 의혹에 빠져들던 순간.
오영은 김곤을 영화의 신이라고 불렀다. 그의 작품이라면 언제든 믿을 수 있고 믿어야 한다며.
언니, 아직 「안타고니스트」 안 봤죠? 그거 꼭 봐요. 제 기준 베스트예요.
볼 거예요. 봐야죠.
오영은 필터만 남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내 손을 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믿잖아요? 그쵸?
나 역시도 김곤을 순수하게 믿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었다. 안팎으로 터져 나오는 규탄을 외면하고 싶었다. 저변에서 의심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밀려왔지만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나는 김곤을 지지했다. 그의 작품을 사랑했고 그 애정을 떳떳하게 공유하고 싶었다. 내 순수한 사랑을 죄의식 없이 드러내고 싶었다. 고민하다 오영의 손을 맞잡았다.
믿어요. 믿어야죠.
돌아와보니 미지 선생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 앞을 서성이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오영과 나, 둘뿐이었다. 다리를 꼰 채 핸드폰을 보는 오영에게 무어라 말을 붙이려는데, 총대 무리가 우르르 들어왔다. 오영은 표정을 고치고 총대에게 친근히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몰라. 근처라더니 전화도 안 받아.
다들 샤이 김곤인가봐.
기대도 안 했어.
조금 전까지 실컷 뒷얘기를 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오영은 그들과 섞여 희희낙락했다.
시상식 중계가 시작되기 전, 국내 영화평론가들이 올해의 수상작을 예측하는 영상부터 보았다. 평론가들은 올해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쟁작이 세편이나 있어 「안타고니스트」의 수상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회원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뭔 소리야. 『까예 뒤 시네마』 올해의 영화 2위가 「안타고니스트」인데.
그러니까 저런 감 떨어지는 애들 말고 정성일을 불러야 된다니까.
성토가 이어지고, 이동진과 정성일의 차이로 느닷없이 화제가 바뀔 때까지도 미지 선생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자기들만 아는—오영의 말처럼—현학적인 대화를 이어가자 빈자리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오영은 김곤을 개발지로 삼는다는 이들과 「안타고니스트」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주인공이 카메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대사 치던 거 기억나? 그거 장난 아니지?
진짜, 고다르냐고.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오지도 않은 메시지에 답하는 척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것도 민망해 그들 틈에 섞일 타이밍만 쟀다. 마침 그들이 영화 속 무슨 장면을 언급하며 ‘탁자 밑 시한폭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다급히 말을 얹었다. 탁자 밑 시한폭탄. 그건 나도 얼핏 아는 개념이었으니까.
이번 영화 장르가 드라마 아니었어요? 그런 장면도 나와요?
총대와 그 옆에 있던 학생이 흠칫하며 서로 시선을 공유했다. 그들은 짧게 답했다.
네, 그런 장면도 나와요, 선생님.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태연히 본 대화로 돌아갔다. 오영도 별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지? 얼굴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나랑은 말 섞기 싫다는 거야? 모멸을 넘어 굴욕감까지 느껴졌다. 오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얘들 원래 이래요. 언니가 이해해.]
바로 메시지가 이어졌다.
[나도 듣기 싫어 죽겠는데 억지로 맞장구치는 것뿐.]
뒤에서 야금야금 까는 게 쟤도 비슷한 인간 아닌가 싶었지만, 오영의 뒷담화에 묘한 쾌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 시상식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김곤과의 영상통화도 남아 있는데 말 한마디, 눈빛 한번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 몇시간만 참자. 입에 맞지 않는 맥주를 홀짝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심 미지 선생님이 얼른 통화를 끝내고 착석하길 바랐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그녀는 나와 동류로 보였다. 동년배라는 것도,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것도, 이 무리에서 알게 모르게 겉돈다는 것도. 그녀의 핸드폰 배경에 있던 아이 사진이 떠올랐다. 돌이 지났다고 했던가. 문득 그 사건이 겹치긴 했지만 아역과 나이 차도 꽤 나고, 그 아이의 엄마가 구태여 이 자리까지 왔을 것 같진 않았다. 미지 선생님이 자리로 돌아오면 함께 나눌 이야기를 추려보았다. 속 빈 강정 같은 얘기 말고, 뒷담화 말고, 어려운 비평이나 해석 말고 오로지 김곤과 작품을 향한 진심 어린 감격, 그리고 애정만 공유하고 싶었다. 그녀와 이야기하다보면 이제껏 내 안에서 해소되지 못한 의문도 말끔히 씻길 것 같았다. ‘만약 네 아이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도 그 인간 감쌀 거니?’ 김곤을 죄인으로 상정해둔 채 비난하고 폄하하는 이들과 미지 선생님은 분명 다를 테니까.
시상식이 시작되고 심사위원단이 단상에 나란히 서는 장면이 중계되었다. 미지 선생님도 그즈음에야 자리로 돌아왔다. 시상식은 자막 없이 원어 그대로 중계되었다. 집중하고 들어도 웬만해서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회원들은 잡담을 나누다 아는 배우나 감독이 카메라에 잡힐 때면 그제야 스크린을 힐끗댔다. 심사위원장이 쥘리에트 비노슈. 방금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 프랑수아 오종 맞지? 잔드라 휠러다. 내게는 생소한 감독과 배우였다. 김곤도 어딘가 앉아 있을 것 같았는데 도통 잡히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미지 선생님에게 슬쩍 물었다.
선생님도 아세요? 저 영화인들?
미지 선생님은 급히 핸드폰을 감추고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글쎄…… 저는 잘 모르겠네요.
역시나. 나도 모른다고 동질감을 표했다. 영화제 생중계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하자 미지 선생님은 그렇군요, 하며 미지근해진 맥주에 소주를 조금 섞었다.
재미없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힘들고. 감독님 노미네이트 안 됐으면 아마 평생 안 봤을 거예요.
누군가 우리가 나누는 얘기를 듣고 아까처럼 비꼬지는 않을까 싶어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었다.
사실 여기 분위기도 적응 안 돼 죽겠어요. 다들 현학적인, 요상한 얘기나 하고. 그래도 감독님이랑 영상통화한다니까 기다려보려고요.
이제까지 내 이야기를 가만 듣기만 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물었다.
영상통화…… 언제 하는지 아세요?
그녀 역시 나처럼 김곤과의 영상통화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반색하여 답했다.
선생님도 기다리셨구나. 저도 그거 때문에 여기 온 건데, 저는요……
그녀는 내 말을 끊고 물었다.
모르시는 거죠?
네?
제가 이제 막차 시간까지 한시간밖에 안 남아서…… 마음이 급한데.
지방에서 올라온 그녀의 사정이 나는 단박에 이해되었다. 고민하다 막차 시간 때문에 그런 거면 내가 묵을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묵어도 된다고, 화장실도 딸린 1인실이라 둘이 묵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너그러이 권유했다. 미지 선생님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집에 가봐야죠. 애도 있고…… 제가 감독님한테 정말 드릴 말이 있어서 통화만 하고 가고 싶은데, 시간이……
그녀가 재차 물었다.
모르시죠? 언제 통화하는지 모르시는 거죠?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저기요. 건너편에 앉은 회원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오영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요. 총대님.
미지 선생님이 한번 더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총대도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미지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감독님이랑 영상통화는 언제 하나요?
총대는 그새 취한 듯 눈이 풀려 있었다. 남은 맥주를 들이켠 뒤 총대는 턱짓으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눈치로 미루어보아 아직 관객상 시상 중인 것 같았다.
지금은 못하죠, 선생님. 시상식 후에 해야죠.
주요 시상까지는 한참 남았고, 감독님도 저기 어디 앉아 있을 거라 전하며 총대는 뒤셰스 드 부르고뉴를 한병 더 시켰다.
우리 감독님 수상하면 그때 같이 축배 들자고요.
총대와 회원들이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려 할 때 미지 선생님이 거듭 물었다.
시상식 끝나고 정말 통화할 수 있어요? 확실히 가능한 거 맞아요?
미지 선생님의 물음에 총대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뜸을 들이는 건지, 할 말을 고르는 건지 총대가 어물쩍대는 사이 옆에 있던 영화과 학생이 대신 말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되는데. 이 누나가 김곤 감독이랑 연이 깊어요. 「미몽」 포커스 풀러였어요, 이 누나가.
다들 익히 아는 모양인지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나만 빼고. 포커스 풀러가 뭔지는 몰랐으나 맥락상 김곤과 같이 작업했다는 뜻 같았다. 그것도 데뷔작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이, 말하지 말라니까 그걸 또. 총대는 학생의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학생은 등을 매만지며 실실댔다.
누나, 그러지 말고 그 얘기나 좀 해줘요. 가스 얘기.
야 무슨 그런 얘길 여기서……
뭐 어때요. 이상한 얘기도 아닌데.
그건 그런데……
총대는 입술 위에 검지를 포갠 뒤 혀 꼬인 소리로 운을 떼었다.
이거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돼요, 선생님들.
1. 대화창 캡처 및 무단 유포 금지.
나와 미지 선생님 쪽을 보며 당부하는 것 같아 거슬리긴 했지만, 그보다는 총대가 무슨 말을 할지 감질이 났다. 의자를 당겨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미몽」 막바지 촬영 때였나. 간식으로 계란이랑 물고구마가 나왔어요. 감독님은 디톡스한다고 안 먹고 다들 세개씩 네개씩 양껏 먹었거든요? 근데 그게 먹으면 가스가 나오잖아. 예기치 않게. 아니나 다를까 누가 살포한 거지.
가스를?
프리랜서 중 하나가 물었고 총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도 소린데, 냄새가…… 장난 아니었어요. 그때 우리 촬영이 좀 집요한 사람이었거든. 누구냐고 자꾸 범인을 잡아내려는 거예요. 다들 그만하라는데도 집요하게. 너무 집요해서 불편해지려는데 감독님이 조용히 손 들더니 나야, 하더라고. 내가 범인이니까 그만하라고.
그 대목에서 총대는 한 템포 쉬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근데 사실 그거…… 내가 뀐 거였거든.
괴성이 터졌다. 뭐야, 진짜예요? 진짜야. 취중진담이라는 총대의 말에 다들 폭소했다. 맙소사다 맙소사야. 한마디씩 거들다 종국엔 감독님은 어떻게 그걸 감싸줄 수 있냐고 의견이 모이며 폭소가 묘한 찬사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치부를 들춘 것 같아 민망하면서도 나 역시도 김곤의 신사다움과 인간미에 감탄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얘기, 공유하고 싶었던 감정은 이런 거였는데. 마른 목이 축여지는 것처럼 개운하면서도 더 듣고 싶고 더 알고 싶어 갈증이 났다. 다른 얘긴 더 없냐고 육성을 뱉을 정도로.
총대는 잠시 망설이다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래, 파도 파도 미담인데 어쩔 거야.
판이 깔리자 총대를 시작으로 저마다 아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인터뷰나 매체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일테면 김곤이 유기묘를 구출해 사년째 키우고 있다는 얘기, 「인간 불신」 촬영이 끝난 후 스태프 전부에게 정성스런 손편지를 써서 돌렸다는 에피소드, 단역배우에게까지 표준근로계약서를 써주었다는 비화. 그런 일화들이 더해질 때마다 애정의 끓는점이 점점 더 높아졌다. 뒤틀렸던 것들이 바로잡히고 의문과 불안이 서서히 휘발되었다. 미담이 어느정도 떨어지자 이것도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얘긴데……로 시작되는 사담도 터져 나왔다. 농도가 짙어지는 담화에 흠뻑 취해가는 이들 틈에서 미지 선생님만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자꾸 시계를 봤다. 미간을 좁히며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크게 한숨을 쉬기도 했다. 막차 시간 때문에 그런가. 불안한 기운이 내게 전해질 때마다 신경이 쓰였지만, 딱 그 순간뿐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아예 미지 선생님을 등진 채 회원들의 얘기에 부지런히 호응했다.
그거 진짜예요?
진짜죠. 감독님이 의외로 엉뚱한 구석이 있어요.
조금 전까지 말도 섞지 못했던 이들과 술병을 부딪치고 같은 지점에서 감탄하고 동조할 때마다 긴장이 풀리고 안도까지 밀려왔다.
[언니 기분 좋아 보이네ㅋㅋㅋ]
[나 취했나봐.]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이 분위기에 녹아든 건지 어느 순간 오영의 메시지에 반말로 답하고 있었다. 오영의 난데없는 윙크에도, 산미가 짙고 텁텁하기만 했던 수입 맥주의 맛에도 조금씩 적응되어갔고.
테이블 위에 빈 병이 늘어났다. 경쟁작 섹션이 소개되고 사회자가 감독들과 인터뷰를 나누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으나, 누구도 그에 집중하지 않았다. 회원들은 총대가 들려주는 「미몽」 촬영 일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총대는 사소한 숏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는 김곤이 화각과 감도를 조절하며 한 장면을 스무번도 넘게 찍었던 일을 반추했다.
그 장면 찍을 때가 폭염이었어요. 슛 들어가면 에어컨이고 선풍기고 다 꺼야 되잖아요. 기계 소리 들어가면 안 되니까. 안 그래도 더운데 사람이 뿜어내는 열에, 기계 열에 다들 미치는 거지. 열다섯번째 테이크인가까지 이어서 촬영하고 잠깐 쉬어가면서 막내가 에어컨을 켰어요. 그러다 깜박하고 촬영 들어갈 때까지 계속 돌린 거야. 에어컨을.
총대의 말에 옆에 앉은 학생이 진영이? 하며 알은체했다. 총대는 학생의 팔뚝을 가볍게 꼬집으며 조용히 하라고 속삭였다. 총대가 말을 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몇 컷 더 찍었는데, 나 감독님이 그렇게 살벌하게 화내는 거……
총대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껏 흥미롭게 경청하던 이들도 옆에서 웃고 까불던 영화과 학생들도 돌연 숙연해졌다. 이제껏 불편한 화제를 요러하고 조러하게 피해간 것 같은데. 눈이 질끈 감겼다. 일시적인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오영이 큰 소리로 주장했다.
막내 스태프가 잘못했네. 녹음할 땐 침도 삼키면 안 되는데.
총대가 머뭇대다 맞장구를 쳤다.
그치? 걔가 잘못했지?
수틀리면 욕설에, 심지어 주먹까지 나가는데 소리 한번 지른 건 애교라고 오영은 말을 보탰다.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선 잔실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그건 필연적이라고. 다들 기다렸다는 듯 그 말에 수긍했다. 스탠리 큐브릭도 징글징글했다잖아. 데이비드 핀처도 그렇고, 제임스 카메론도, 왕가위도…… 다른 감독의 일화까지 끌어오며 모두 김곤을 옹호했다.
영화라는 게 그렇게 치열하게 찍어야 되는 거거든요. 감독이 지는 순간 영화도 끝이니까.
오영이 한마디로 못을 박았다. 오영의 말을 들으며 흠칫했다. 비약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나 따지고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오영의 당찬 태도가 그 말에 더 힘을 실어주기도 했고. 나도 저렇게 말했어야 했나. 길우와 친구들 앞에서 죄인처럼 비실대지 말고 저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틈에서 나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 미지 선생님이 돌연 한숨을 푹 쉬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오영을 보며 미지 선생님은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잘못한 게 아니라 실수한 건데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미지 선생님의 말에 오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영은 짐짓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았다.
선생님, 워딩이 좀 세시다. 가혹하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 쓰기엔 좀 무겁지 않나요?
아뇨. 누군가에게는 분명 상처일 테니까요…… 그 일이.
떨리는 목소리로 미지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그런 일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도 있었다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5. 일부 단어(ex. 파주 세트, A군) 사용 금지.
콕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미지 선생님은 그 사건을 겨누고 있었다. 이제껏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던 그녀가 이런 말을 뱉었다는 데 회원들은 놀란 눈치였다. 나 역시도 그랬고. 점점 무거워지고 거북스러워지는 분위기를 전환하려 총대가 황급히 말을 보탰다.
에이, 선생님이 잘 모르셔서 그래요. 영화판 원래 그래요. 크고 작은 실수 다 있어요. 감독님도 실수로……
그건 실수가 아니잖아요. 눈물 연기를 못한다고 피멍 들 때까지 아이 팔뚝을 꼬집은 게 어떻게 실수로 포장돼요?
미지 선생님의 말에 회원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터질 게 터졌다는 듯이. 술이 확 깼다. 총대는 미지 선생님에게 너무 감상적이라면서 클럽 규정을 잊으셨냐고,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모르겠다고 나무랐다. 상황을 무마하고 금기를 애써 덮으려는 패였겠지만, 미지 선생님은 그 따윈 상관없다는 듯 차분히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아이를 낳아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그게 실수가 될 수 없다는 걸. 끔찍한 일이에요, 그건.
그녀는 말을 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몇번이고 가다듬으며.
그래서 감독님께 물어보고 싶었어요. 한번도 입장을 표명한 적 없잖아요, 그분은. 미안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 일이 없던 일이 될 순 없겠지만, 변할 수는 있으니까요.
그녀는 테이블 밑에 감추었던 폭탄을 굳이 꺼내 불을 붙였다. 머리가 굳었고, 입술이 말랐다. 다들 떨떠름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저 사람 미쳤나봐.]
오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심 오영이 항변해주길 바랐다. 무슨 말이라도 당당하게 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오영은 고개를 숙인 채 토독토독 자판만 두드릴 뿐이었다. 총대 옆에 앉은 학생도, 프리랜서 둘도 자판을 두드리느라 분주했다. 스크린 속에서 스페인계 남성 감독이 수상소감을 전하는 소리가 웅얼웅얼 맴돌았다. 불편한 고요가 흐르는 와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왜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걸까. 왜 제 일이 아닌 양 좌시하는 걸까. 사랑하면……
사랑하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심지가 다 타기 전에 누군가는 이 폭탄을 멀리 던져야 했다. 던지지 못한다면 온몸으로 덮어 막아야 했다. 나라도 그래야겠다는 다짐이 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 정도로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게 더 가혹한 거 아닌가요.
등졌던 몸을 미지 선생님 쪽으로 도로 돌렸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사실이라고 입증된 것도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물증 없이 심증으로 불거진 사건을 왜 사실이라 여기는지, 어째서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게 더 가혹한 일 아니냐고, 나는 말했다. 미지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힘주어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믿어야죠. 우리는 그래야 되는 거 아녜요?
나는 미지 선생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미지 선생님이 잠자코 눈길을 거두었다. 그래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누군가 소리쳤다.
감독님 나와요!
회원들의 이목이 스크린으로 쏠렸다. 김곤이 사회자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었다. 총대가 펍 사장에게 스피커 볼륨을 조금만 더 높여달라고 말했다. 앞머리를 가지런히 넘기고 턱시도를 차려입은 김곤이 화면 속에서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영어로 인터뷰를 하는 김곤을 보다 회원들을 둘러보았다. 김곤에게 집중하는 척, 방금 일어났던 일을 해프닝으로 여기는 척 다들 아무렇지 않아 보였으나 그럼에도 어색함과 불편함이 감도는 건 사실이었다. 아닌 척해도 이미 일어난 일이 없던 게 되지는 않으니까.
다른 누구보다 신경 쓰인 건 미지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스크린을 보지도 않고 미지근해진 맥주를 들이켜다 김곤의 인터뷰가 길어지자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일말의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폭탄은 불발되었고 그 잔해나 연기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터였다. 내 사랑을 제대로 입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지 않고, 속이지 않고.
그래, 잘한 거야.
스크린에 비친 김곤을 보며 나는 환히 미소 지었다.
∞
「안타고니스트」는 정모가 끝난 직후, 2019년 3월 5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광화문 근처의 한 독립극장에서 GV도 열렸다.
총대의 허풍이었는지 정모의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김곤과의 영상통화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헛걸음했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려 할 때, 총대가 미안하다며 말을 보탰다. 감독님께 메시지를 받았는데, 현장이 너무 어수선해서 도저히 통화할 수 없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GV를 하니 그때 다시 보자고 했다고 전했다.
언니도 오실 거죠?
총대가 내게 물었다. 막차 시간 때문이었는지 불편한 논쟁 때문이었는지 미지 선생님은 모르는 사이 자기 몫의 계산을 마치고 펍을 빠져나간 뒤였다. 그녀가 떠난 뒤 분위기는 한결 누그러졌다. 술은 더 들어갔고 웃음도 돌았다. 슬그머니 아까 전 논쟁을 꺼내며 나를 추켜세우는 회원도 있었고.
나도 누나처럼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실언을 한 건 아닌지 꺼림칙하기도 했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양감이 차올랐다.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그런 확신도 들었다. GV에 함께 가자는 총대를 향해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무조건 가야지.
[언니 꽃다발 사 갈 거예요? 총대가 돈 걷자고 하던데요.]
영화 시작 두시간 전 오영에게 카톡을 받았다. 한때의 취기가 가시자 오영도 나도 전처럼 다시 경어를 사용했다. 총대와 다른 회원들과도 마찬가지였다. GV가 열리는 영화관 근처라고 전하자 총대를 포함한 몇명이 자신들도 근처라며, 꽃다발 좀 부탁드린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저희 거의 다 와가요.]
꽃집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꽃말을 꼼꼼히 물었다. 고심 끝에 안개꽃과 캐모마일을 섞어 꽃다발을 묶고 카드도 한장 끼워넣었다.
‘감독님, 수상 축하드려요.’
길티 클럽 드림. 마지막 문구는 넣을까 말까 끝까지 고민했다. ‘길티’라는 어감이 걸려서. 쓸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 결국 ‘감독님을 지지하는 팬들이’라고 적었다.
영화관에 일찌감치 도착해 「안타고니스트」가 상영되길 기다렸다. 그 사건의 여파로 관객이 모이지 않으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다행히 객석은 꽉 차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영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길티 클럽 회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극장 불이 꺼질 때까지도 나뿐이었다. 꽃다발을 품은 채 앞좌석에 홀로 앉았다.
「안타고니스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수작이었다. 김곤이 데뷔작부터 이어온 현실과 환상을 혼동케 하는 숏, 과감한 롱테이크, 단선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인물들이 밀도있게 담겨 있었다. 그런 장면들에 감탄하다가도 문득 시선과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향할 때도 있었다. 문제의 장면은 언제 나올까. 누군가 비난을 퍼부으며 자리를 뜨진 않을까. 근처라면서 얘네는 왜 안 오는 거야. 다들 샤이 김곤인가. 집중이 분산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영화가 극으로 치달을수록 나는 더 깊이 매료되었고, 목이 뻐근해져오는 것을 참아가며 스크린을 직시했다.
아역배우가 등장하는 문제의 장면은 전부 편집되어 있었다. 애초에 그 장면은 찍지도 않은 것처럼 말끔하게.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찜찜하기도 했다. 그래, 이게 맞겠지. 정교하게 맞물리는 서사에 마음을 쏟고 집중하며 찜찜함을 애써 묻었다.
영화가 끝나고 예정대로 GV가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먼저 자리에 앉자 어깨에 닿던 장발을 투 블록으로 짧게 친 김곤이 무대에 들어섰다. 원래도 골격이 큰 사람이었는데, 몇년간 몸을 더 키운 듯 김곤은 멀리서 봐도 장대해 보였다. 김곤이 가볍게 묵례를 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우려와 달리 GV는 티 한점 없이 유쾌했다. 김곤은 유연하게 사회자의 말을 받았고, 신중하고 진지하게 운을 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탁자 밑 폭탄이 또 터지지는 않을까 우려되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그런 불안도 가라앉았다. 질의응답 역시 평이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여백과 침묵이 특히 강조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베를린영화제에서 두번이나 은곰상을 받으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감독님의 MBTI는 뭔가요? 같은 무난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손을 들까 말까 수없이 고민했다.
다른 질문 없으신가요?
한 질문만 더 받고 마무리하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주위를 살피다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품에 안고 있던 꽃다발을 그에게 전달했다. 그가 내 눈앞에 있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마음 같아선 인불갤부터 길티 클럽 얘기까지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었지만 주책맞아 보일 게 뻔했다. 마이크를 쥐고 숨을 고르며 그에게 나를 확실히 각인시킬 질문을 골랐다.
감독님,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안타고니스트」는 각 장마다 다른 화면비가 사용되었잖아요. 저는 그것을 통해 감독님이 말하고자 하는 게 인간의 가변성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너무 탁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레터박스니 시네마스코프니 하는 말까지 끼워넣으며 속사포처럼 떠들어댔다.
감독님의 오랜 팬으로서 그런 깊이는 어디서 나오는지 늘 궁금했어요. 감독님이 의도하신 부분을 제가 잘 짚었을까요?
횡설수설 질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내 감상이나 지론이 아닌 주워들은 말이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찰나지만 김곤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안면에 부드러운 미소가 흘렀다.
인간의 가변성이라. 인상적이네요. 시네필이신가봐요.
그 말에 사회자가 그러니까요, 하며 맞장구를 쳤다. 김곤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그저 편집감독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객석에서 웃음이 잔잔히 터졌다. 김곤은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좋은 면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다음 GV부터는 그렇게 얘기해야겠어요. 인간의 가변성을 유념했다고요.
그의 다분히 인간적인 멘트에 맥이 빠지긴 했지만, 그보다는 충만이 컸다. 시네필, 인상적. 그런 단어들만 내 안에 새겨졌다. 그때까지는.
질의응답을 마치고 오늘 온 관객에게 소감 한 말씀 부탁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김곤은 잠시 머뭇대었다. 그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낸 뒤 담담히 말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난 삼년간 저는 하루하루를 참담한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주변이 고요해졌다.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장내가 괴괴한 와중에 김곤은 말을 이었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쳤다는 것 잘 압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작업했던 스태프들, 제 작품을 사랑해주신 관객분들께 죄송합니다. 제 책임을 통감합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러우나 피해자인 영현군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하려 합니다.
김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거듭 말하며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깊이 머리를 수그렸다.
펑.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터졌다.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감싸듯 눈앞이 뿌예졌다. 땅이 뒤흔들리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왜 이러지.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객석에서 박수가 서서히 터져 나왔다. 박수가 잦아들 때까지 허리를 굽히고 있던 김곤, 암전과 퇴장. GV는 단정히 마무리되었다. 통속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영화의 엔딩처럼.
관객이 떠난 뒤에도 나는 홀로 객석에 앉아 있었다. 김곤의 사죄는 담백했고 진정성이 어려 있었다. 구차한 변명도,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 따위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그런데 왜……
[언니, GV 갔죠?]
오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선배 촬영 도와주느라 못 갔는데 다른 애들 왔어요?]
고민하다 오영에게 GV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김곤의 사과와 그 순간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터지던 순간을 곰곰이 돌이키며. 곧바로 오영에게서 답이 왔다.
[헐…… 대박.]
어쩌면 좋냐고, 이게 말이 되냐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회신을 하려던 순간, 답문이 왔다.
[나도 갈걸. 다른 건 더 없었어요?]
핸드폰 자판에서 손을 떼었다. 조금 전까지 김곤이 서 있던 단상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모두 앞에서 고개 숙였던 그 자리를 멀거니 보았다. 너무도 깔끔하고 멀쩡해 방금 전의 일들이 다 허구 같았다. 펑, 무언가 터지던 순간도, 그 순간의 감정도 이상하리만치 현실감 없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허구가 아닐까 하는, 나는 실패한 영화를 한편 본 게 아닐까 하는. 별 반개도 아까울 만큼의 너절한 서사. 치덕치덕 발라놓은 클리셰. 질문도 남지 않고 더할 말도 없는 싸구려 엔딩. 감독이 져버린 영화.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영화. 지독하게 못 만든 영화 한편 본 게 아닐까.
그런데 왜 더…… 허무해질까. 모든 것이 흠 없이 온전한데, 왜 나만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것처럼, 살점이 다 뜯겨져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괴로운가. 왜 이리도 지독히 헛헛할까.
오영의 메시지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답을 않자 오영도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
치앙마이에 간 것은 결혼 삼주년 즈음의 새해였다.
건기의 치앙마이는 습하지도 무덥지도 않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적합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첫째날은 반캉왓에서 쇼핑을 한 뒤 도이수텝 사원에서 일몰을 봤고, 둘째날은 올드타운에서 마사지를 받은 다음 핑강 근처를 누비다 로이끄라통 축제에서 풍등을 날렸다. 새해를 향한 설렘과 기원을 품은 수십개의 풍등이 밤하늘로 천천히 날아오르는 것을 구경하며 길우는 내 허리를 슬며시 감쌌다.
자기야, 우리 만난 지 벌써 팔년째다.
타국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해방감과 무사히 길우와 팔년을 보냈다는 안도감 사이사이 찜찜함이 끼어들었다. 은연중 꿈틀거리는 찜찜함의 정체를 나는 알았다. 김곤. 한때 치앙마이에서 한달살이를 했던 그가 떠올라서였다. 길우와 휴양지로 적당한 곳을 고르던 중에도, 홍콩은 물가가 높고 서유럽은 너무 멀고 코타키나발루나 냐짱은 이전에 가본 적 있어 결국 치앙마이를 택했을 때에도, 코스를 짜는 게 귀찮아 패키지여행을 알아볼 때에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떠나기 일주일 전에야 생각났다. 아, 김곤도 치앙마이에 간 적이 있었지.
오년이 지난 지금도 김곤은 여전히 주목받는 감독이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신작을 발표해 연일 화제였는데 구태여 찾아보지는 않았다.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기도 했고, 들끓던 관심도, 애정도 이제는 증발된 뒤였으니까. 그런데도 김곤이 내 일상에 간혹 틈입하는 순간이 있었다.
치앙마이 패키지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타이거 킹덤 체험이었다. 트럭처럼 생긴 합승택시를 타고 타이거 킹덤으로 향하는 동안 길우는 유튜브로 숏폼을 보았다. 피지 짜기, 잔털 뽑기, 치석 제거 같은 영상. 요즘 길우가 즐겨 보는 콘텐츠였다.
또 그거 봐?
내가 눈치를 주자 길우는 열없이 웃었다.
알고리즘에 자꾸 떠서 그런가, 습관적으로 보게 되네. 이게 이상하게 보다보면 중독돼. 안 보고 싶은데 자꾸 보게 돼.
얼핏 봤는데도 속이 울렁거렸다. 미닫이로 된 차창을 열고 바람을 쐬었다. 길우는 영상을 끄고 내 등을 천천히 쓸었다.
힘들면 자기는 먼저 숙소 가서 쉴래? 내가 가이드한테 얘기할게.
괜찮다고 했는데도 길우는 내내 나를 걱정했다. 홀몸이 아니었으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길우의 염려도 이해 갔으나 그렇다고 일행과 동떨어지고 싶진 않았다. 이미 전날에도 고산족 마을에 가는 일정을 취소하고 홀로 버스에서 쉬었던 터라 더이상 유난 떨고 싶지도 않았고. 숏폼 때문인지 입덧 때문인지 울렁증이 진정되지 않았다.
도착했다는 가이드의 말에 사람들은 택시에서 내려 타이거 킹덤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나와 길우도 무리 맨 뒤에 서서 표를 받았다. 타이거 킹덤은 실내와 야외로 구획을 나누고 실내 우리에는 새끼 호랑이를, 야외 우리에는 다 자란 성체를 떼로 사육했다. 호랑이 마흔마리가 사육되는 공간이라 광활하고 쾌적할 줄 알았는데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특히 고압전선이 둘러져 있는 자이언트 타이거 우리를 지날 땐 누린내가 심하게 풍겨 욕지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왜 그래? 뭐가 불편해?
냄새가 나서……
냄새?
길우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뱉더니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가 임신 중이라 그런가봐. 힘들면 지금이라도 돌아갈래?
아냐. 참을 만해.
다들 아무렇지 않게 좁은 풀 안에서 헤엄치는 벵골 호랑이를 구경하고, 날고기를 받아먹는 백호를 카메라에 담았다. 무리를 따라 걷는 중에도 계속 욕지기가 올라왔다. 냄새가 역하지 않냐고 물을 때마다 길우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일행 중 한 사람에게도 슬쩍 물어보았으나 그 역시 냄새가 나냐며 의아해했다. 나는 금방이라도 구역질을 할 것 같은데 왜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어느정도 구경을 마치자, 사육사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 두명씩 우리 안으로 들어가 호랑이를 만지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등과 꼬리는 쓰다듬을 수 있지만 상체는 절대 만지면 안 돼요. 꼭 뒤쪽에서 접근해야 해요. 뛰거나 소리를 치는 행위는 하지 마세요. 가이드가 통역하는 안내 사항을 들으며 한 팀씩 호랑이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새끼 호랑이들에게 우유를 먹이거나 터그 놀이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많았으나, 자이언트 타이거 체험 줄은 휑했다.
우린 저쪽에 설까?
길우가 자이언트 타이거 우리를 가리켰다. 내 안색이 좋지 않다며 그는 얼른 체험을 끝내고 나가자고 했다. 여전히 신물이 나고 속이 메슥거렸다. 지금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한화로 8만원이나 하는 입장료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길우의 말에 동조하며 자이언트 타이거 우리 앞에 섰다.
호랑이는 혀를 길게 늘어뜨린 채 반석 위에 엎드려 있었다. 모형처럼 보일 정도로 미동이 없었다. 간혹 호랑이가 꼬리를 움직여 둔부에 붙은 파리를 쫓는 것을 보며 잠들지 않았음을 겨우 확인했다. 기척을 내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등 뒤로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위압감이 심해졌다. 호랑이의 뒷발은 성인 남성의 얼굴만 했으며 몸집 역시 거대했다. 무엇보다 지독히 풍겨오는 악취에 머리가 아팠다. 길우가 먼저 호랑이의 꼬리를 쓰다듬었다. 꼬리부터 허리까지 천천히. 길우는 생전 처음 느끼는 감촉이라며 이채로워했다.
자기도 만져봐. 진짜 부드러워.
길우의 권유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저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사육사가 다가와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무어라 열심히 설명했다. 가이드가 그 말을 통역해주었다.
발톱이랑 송곳니를 다 빼서 괜찮대요.
말대로 호랑이의 발톱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입안까진 들여다보지는 못했으나 아마 송곳니도 없었을 것이다. 살기가 다 빠진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침을 뚝뚝 흘리는 호랑이. 사육사는 미소 지으며 연신 라이캅, 라이캅 했다. 속이 다시 울렁거렸다.
라이캅, 라이캅.
사육사가 내 손을 덥석 잡아 호랑이의 척추에 얹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을 빼거나 불쾌를 표할 틈도 없었다. 마지못해 호랑이의 가죽을 쓸었다. 길우의 말처럼 감촉이 생경했다. 무두질을 오래 한 가죽처럼 부드럽고 반질반질하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은 생물 특유의 이질감도 함께 전해졌다. 야생의 본능을 상실한 호랑이는 무기력하게 몸을 내어주었다. 미약하게 그르릉거리는 순간도 있었으나 사육사가 고무망치로 앞발을 내리치자 금세 잠잠해졌다. 사육사의 권유에 따라 길우는 호랑이에게 코코넛 조각을 주기도 하고 그것의 배에 등을 기댄 채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자기도 한장 찍자.
길우가 자리를 내주었다. 망설이다 반석 위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상황에 익숙해지자 골을 뒤흔들던 악취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호랑이의 근육이 움찔댈 때 척추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불편한 듯 몸을 틀 때마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되었다.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떨쳐내고 싶어도 이미 나는 그것을 알았다.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누구의 말처럼,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