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성미정 成美旌
1967년 강원 정선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등이 있음.
witwist@naver.com
drink me
겨울, 그리고 겨울
네버 엔딩 빙하기를 기록하기 위해
팔뚝에 눈금을 그었어
drink me
작고 투명한 병 안에는
자애로운 피가 가득 차 있어
나의 성장 따위 아무도 봐주지 않아
슬픔이 천장 끝까지 늘어났어
슬픔이 자라고 자라
그림자가 길어지는 나를 위해
팔뚝에 눈금을 새겼어
drink me
병 안에는 붉은 내가 가득 찼어
아무리 어지러워도
drink me
만 마시면
쓰러지지 않았어
drink me
손톱이나 물어뜯고
머리카락이나 한움큼
뽑으며 힘겹게 나이테를 만들었다고
착각하는 당신들은
나의 나이테를 읽을 수 없어
내 길고 긴 그림자의
친구가 될 수 없어
나는 이상한 나라이고
앨리스이며
drink me
니까
오만가지, 오! 망가진
장미가 피었습니다
장미가 피었다는
거짓말과 함께
장미는 벌레 먹었습니다
장미는 시들었습니다
장미는 가시도 갖지 못했습니다
장미는 심어진 적도 없습니다
장미는 향기도 없었습니다
장미는 벨벳 같은 꽃잎도
없었습니다
시들어도
벌레 먹어도 언제나 장미로
피어나던 그 장미들은
장미가 피었다는 농담과
함께 11월을 맞이했습니다
붉은색 찬란한 플루이드
장미는 하얗게 눈이 쌓인 채로
오만가지 망가진 장미들이 사는
겨울 같은 허바리움 속에
영원히 봉인되었습니다
그렇게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