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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K’가 만들어가는 ‘보편’의 향방
남상욱 南相旭
인천대 일본지역문화학과 교수. 공저서 『한국전쟁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경계’에서 본 재난의 경험』 등이 있음.
indimina@gmail.com
K-POP을 필두로 하는 한국문화의 열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이제 담론의 초점은 K-culture의 ‘보편성’의 정체와 향방으로 모이고 있다. 예컨대 2024년 6월 26일 아사히신문은 “K-POP이 ‘정치화’? ‘대변자’로서 기대, 포지션에 고민도”라는 제목 아래 “권력층이 아티스트의 인기를 이용할 뿐 아니라, 최근에는 팬들이 정치적 주장을 아티스트들에게 위탁하는 움직임”도 생기고 있음을 지적했다. 반차별, 반전, 친환경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둘러싼 아티스트와 팬덤 사이의 상호성을 K-culture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세계적인 현실정치의 기능 부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모순과 곤란 앞에서 현실정치의 대응이 지체될 뿐 아니라 다가올 세계에 대한 정치적 비전이 국가 단위로 축소되는 가운데,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어 향유되는 K-culture의 보편성에 주목하고 그 이면을 읽어내거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물론 ‘K’로 시작되는 담론의 양산이 국가 정체성에 대한 무비판적인 긍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최근 몇년 사이에 한국의 위상이 급속도로 높아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경제적 불평등과 경쟁 위주의 입시, 저출생 고령화, 시곗바늘이 뒤로 돌아간 듯 경색된 남북관계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K-POP으로 대표되는 K-culture의 약진이 복잡한 현실문제를 잊게 만드는 일종의 ‘국뽕’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문화는 이제 늘 외부로 열려 있다는 의미에서 K-culture로 호명되고 있고, 이는 문학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41개 언어권에서 776종의 한국문학이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외국어로 발간되었고, 해외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크게 주목받고 있다.1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K-culture의 일부이기도 한 한국문학은 그 보편성을 어떻게 재현하고 실천하려 하고 있을까.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문학동네)
김기태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한국문학의 관점에서 K-POP의 보편성을 묻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아이돌 중심의 문화를 다루는 「세상 모든 바다」와 「로나, 우리의 별」은 현재 한국의 문화산업이 소수자 존중, 평화, 탈원전 같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면서 보편성을 획득해나가고 있음을 전경화한다. 먼저 「세상 모든 바다」를 보면, 6개 대륙 열한곳에서 모인 멤버들로 구성된 글로벌 K-POP 걸그룹 ‘세상 모든 바다’의 팬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며, 아프리카 기아문제 개입 촉구를 위한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K라는 접두어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10면)은 세모바의 노래를 들으며 팬들은 “‘세계뽕’ 혹은 ‘인류뽕’이 차올랐다”(22면)고 말할 정도이다. 이러한 설정은 물론 과장적이지만, 그런 보편성의 추구가 이른바 남성 오타쿠 팬덤 중심인 폐쇄적 일본 문화산업과 대비되는 K-POP의 전략이라는 점에서 어느정도 현실성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 프로듀서가 “선도적인 문화 콘텐츠로서 케이팝은 이제 ‘공존’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답해야 한다”(같은 면)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을 정도다.
「세상 모든 바다」 속 아이돌 세모바가 문화산업 기획사에 의해 철저히 만들어진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면, 「로나, 우리의 별」에서 ‘로나’는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팬들에 의해 한국 최초의 ‘선출직 스타’로 발돋움한 인물이다. 이후 로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아이콘’으로 세계적인 셀럽이 되어, 사회적 기업을 이끄는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한 후 그의 구호활동을 돕는다. 하지만 세계와의 연결을 견지하는 세모바와 정반대로, 로나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기술자와 빅테크가 만들어가는 ‘세계’와 구호활동에 의문을 제기하며 ‘We Are Not The World’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이 앨범에서 로나는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하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 로나에게 세계는 “이해가 안 돼서 참을 수 없”(197면)고 “안 변”(199면)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마침내 본격적인 현실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창당에 이른다.
두 작품은 K-POP이 보편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나아가 그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하게 그리고 있는데, 「세상 모든 바다」는 주로 표면적인 보편주의의 한계를, 「로나, 우리의 별」은 잠재적 힘을 드러낸다. 「세상 모든 바다」의 화자 ‘하쿠’는 세모바의 콘서트장에서 만난 ‘영록’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의 고향을 찾아가는데, “K-도시든 K-시골이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한국의 풍경”(32면)과는 다른 그곳은 원전 건설 지연으로 민심이 흉흉해져 있을 뿐이었다. K-POP에서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로나, 우리의 별」은 일견 한국의 아티스트가 세계적인 셀럽이 되었다가 몰락해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는 듯 보이지만, ‘세계’의 허구성을 깨닫게 된 로나와 그의 팬덤이 현실의 정치적인 힘으로 집결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 소설집에는 다른 방식으로 ‘보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경기도 한 도시에 터를 잡고 마트에서 일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진주’와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을 가지고 자동차 전조등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니콜라이’가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기까지의 이야기인데, 작가는 가난한 두 청년의 사랑을 위대한 ‘인터내셔널’ 역사로 기술한다. 이는 K-POP 팬덤이 만들어가는 ‘세계’의 이면에서 보편성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단순히 한국청년들의 핍진한 삶이 도달한 막다른 골목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진주와 니콜라이의 ‘인터내셔널’은 예컨대 입시전략으로서 맑시즘이 ‘보편 교양’으로 전유됨을 보여주는 「보편 교양」과는 다른 형태의 보편성을 드러내며 개별 삶의 차원에서 ‘이어짐’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보여준다.
김기태는 이 소설집을 통해 오늘날 미디어와 자본이 만들어가는 ‘보편’, 계급이동의 사다리가 된 교육에 포함되는 ‘보편’, 그리고 그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삶 차원의 ‘보편’을 각각 묻고 있다. 그는 ‘K’라는 접두어를 걷어낸 채로 한국문학이 세계의 ‘보편’에 관여할 수 있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모색하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가임에 분명하다. 다만 굳이 ‘보편’ 혹은 ‘인터내셔널’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세계문학으로 읽히기 시작한 한국문학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가 오히려 ‘한국’적인 패러다임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겠다.
김이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자음과모음)
1975년생 대학 동창 ‘난주’ ‘정은’ ‘미경’의 짧은 강릉 여행을 그리는 김이설의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는 좀처럼 조명되지 않는 오늘날 한국 중년여성들의 삶을 통해 현대 한국인의 공동성을 묻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1975년생은 세대적으로는 거대담론을 상대화하고 소비사회의 세례를 받은 ‘X세대’로 분류되지만, 젊은 시절 학생운동과 IMF를 동시에 경험했다는 점에서 의외로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세대이다. 실제로 소설 속 난주가 남성들과 연애에 빠져 있는 동안 미경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여선배와 사랑에 빠졌고, 정은은 쉴 틈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어야만 했다. 서로 다른 MBTI만큼이나 각기 다른 삶은, 대학을 졸업하고 25년이 지나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다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중산층 전업주부로 보이는 난주는 가족과 정서적인 교감을 느끼지 못해 중년 우울증에 빠져 있고, 정은은 남편이 진 빚 때문에 여전히 밤낮없이 일하고 있으며, 미경은 한때 사귀었던 동성 선배를 잊지 못한 채 어머니돌봄에 매여 산다.
이렇게 이들 세대는 ‘우리’라는 강렬한 하나의 의식 없이 약하게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강릉에 가는 이유도 각기 다르다. 이 인물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각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를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행을 떠나와서도 속으로는 각자의 문제에 골몰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각자의 문제일 뿐일까. 미경의 어머니돌봄과 정은 가족의 부채는 일견 개인의 사정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언젠가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인물들이 자기 삶이 휘청거림에도 돌봄이라는 책무를 방기할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이 그 돌봄의 마지노선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을 돌본다고 한들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남편과 아들을 돌보는 데 25년을 보낸 난주가 세월이 지나자 “자기만 빼고 다 알아서 살 수 있다는 데에”(135면) 깊은 배신감을 느끼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인공들이 겪는 삶의 문제는 그들이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기에 더더욱 크게 느껴진다. 예컨대 미경이 친구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장면, 정은이 시부모를 찾아가 돈 문제를 해결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대목, 무엇보다 생활에 허덕이면서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호탕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은 그들의 주체성을 잘 보여준다.
세 인물은 자신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지 조심스러워한다. 모두 상대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어려움을 어느정도 헤아리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차피 이해받을 수 없는 고민이라 여겨 단념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비밀을 모두 털어놓는 순간 이 작은 공동성이 붕괴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러는 동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이기도 할 우울과 경제적 어려움과 돌봄문제는 각자의 사적영역 안에 갇혀 있을 뿐이다. 내밀한 비밀을 안고 가까스로 유지되는 세 여성의 공동성은 한편으로는 슬픔과 고통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하여 성숙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이 그것을 ‘말하기 힘든’ 사회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한가지 다행인 점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말들이 독자들에게는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소설의 힘이 아닐까 싶다. 김이설은 소설이란 사적 영역에 갇힌 말들을 꺼내는 작가와 이를 읽어내는 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실제로 작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소설의 초고를 읽어줄 독자를 모집하여 매주 메일을 보냈음을 밝히고, 그 독자들을 호명하며 감사를 전하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1975년생 세 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를 다른 세대의 다른 성별의 사람들이 얼마나 공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문제가 지나치게 진부하거나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유의 여지를 주지 않기로 작정한 듯한 서사의 스타일 탓은 아닐까 싶다. 그 스타일은 한국사회의 단면을 오롯이 보여주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만, 때로는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 소설이기도 하니까. 현실의 단절을 넘는 소설을 통해 새로운 공동성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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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서사에 정치·사회이슈 버무려… ‘스토리 비빔밥’ 세계가 반하다」, 세계일보 202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