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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화진 金和珍
1992년 경기 안양 출생.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장편소설 『동경』,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 등이 있음.
낯선 발자국
나은우가 김지완을 알게 된 건 졸업 즈음이었다. 강의계획서만 보고 신청한 교양수업이었다. 학점은 다 채웠는데 그제야 수업이 재밌었다. 독문학과 교수가 가르치는 수업이었고 몇주 내내 『양철북』을 같이 읽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함께 봤다. 그때 나은우는 뿌연 안개 속에 사는 듯한 상태였다. 어느 집단에 자신이 제대로 섞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따갑다’는 형용사가 떠올랐다. 따갑다. 그것은 뜨거운 것에 가깝기도 했고 까슬까슬한 느낌에 가깝기도 했다. 질이 안 좋은 스웨터를 몸에 꼭 맞게 입은 것처럼 목덜미와 옆구리가 까슬거리는 느낌인 것도 같았다. 따가워. 그렇게 느낄 때면 볼에 열이 올랐고 목과 어깨가 딱딱해졌다. 뺨을 가리거나 목을 감싸는 행동을 자주 했다. 두 손으로 두 뺨을 감싸고 있으면 누군가가 생각 없이 뭐야 귀여운 포즈야? 하고 농담을 던질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한층 따가워졌다. 그럴 때 나은우는 소리 없이 웃고 말았다.
나은우는 김지완이 자신을 따갑지 않은 상태, 더 바랄 것 없이 딱 알맞은 부드러운 상태로 데려가줄 것임을 알았다. 김지완은 속이 꽉 찬 작은 열매 같았다. 싱겁거나 무르거나 할 수 없는. 그런 김지완이 『양철북』을 비스듬히 쥐고 있는 옆모습을 본 순간 알았다. 저 손으로 날 따갑게 할 수 없어. 나은우는 생각했다. 저 손이 데려다줄 부드러운 공기가 기대되어 가슴이 뛰었다. 왔구나. 지금이야. 소리 내어 그렇게 말할 뻔했지만 참았다. 하고 싶은 말을 참았더니 딸꾹질이 났다. 가슴이 뻐근하고 턱이 얼얼할 정도로 긴 딸꾹질이었다. 몇몇 학생이 나은우를 힐금거렸다. 김지완도 나은우를 봤다. 나은우는 두 손을 소라껍데기처럼 만들어 입을 가리고 숨을 참아봤지만 딸꾹질은 멈출 줄 몰랐다. 김지완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플라스틱 병에 든 보리차를 꺼내 나은우 쪽으로 밀어주었다. 드실래요? 딸꾹. 감사합니다. 예. 딸꾹. 보리차는 미지근했고 달았다.
딸꾹질 이후 나은우는 김지완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지완은 나은우보다 항상 두뼘 정도 앞서 걷고 있는 사람 같았다. 김지완은 『양철북』을 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알았다. 『게걸음으로』, 그게 좋았어.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배가 침몰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나은우는 김지완의 말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질문을 더 해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잘 몰랐다. 나은우는 그런 것에 서툴렀다. 내가 관심 없는 것에 관심있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표하는 방법 같은 것에. 가라앉은 배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그걸 읽는 김지완 너에게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조심스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는 결국 오, 그렇구나, 하고 뻣뻣하고 어색하게 반응할 뿐이었지만. 나는 왜 이런 재미없는 말밖에 하지 못할까, 자책하는 나은우와 달리 김지완은 애초부터 그런 것은 별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김지완은 나은우의 표정과 말투가 어색한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덧붙였다.
요즘은 배가 침몰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 『심연』이라는 소설도 타이타닉호와 그 쌍둥이 배인 브리타닉호가 침몰했던 일을 다뤘는데, 아직 조금밖에 못 읽었어……
나은우는 김지완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김지완이 말한 책들을 대출해 읽어보았으나 도무지 완독할 수 없었다. 현기증 나는 소설들이었다. 김지완처럼 부드럽게 생긴 여자가 어째서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배와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행기와 그 안에서 군복을 입고 죽어간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은우는 그저, 딱딱하고 차가운 것에 관심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김지완에게 관심이 있었다.
*
김지완을 만난 다음 학기에 나은우는 김지완을 따라 아침 아홉시에 시작하는 ‘동화와 민담 그리고 신화’라는 수업을 들었다. 오로지 아침 일찍 김지완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수업시간에는 거의 잤다. 꿈의 세계에 절반 이상의 정신을 보내버린 나은우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거의 대부분 동화의 잔인하고 끔찍한 부분이었다. 안데르센, 샤를 뻬로, 그림 형제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찔리고 잘리고 찢기고 죽는 사람과 동물이 등장했다. 꿈속에서 나은우는 샤를 뻬로의 숲에서 자신을 쫓는 누군가를 피해 쉬지 않고 뛰었고 그림 형제의 마녀를 피해 숨죽였다. 김지완은 나은우를 한시간 삼십분 동안 자게 놔두다가 깨웠다. 수업을 끝내기 직전에는 교수가 쪽지시험이나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김지완은 어떻게 그렇게 맨날 잘 수 있어?라거나 또 자?라고 묻지 않고 그저 잘 자네,라고 했다. 넘어오는 프린트물을 나은우 대신 받아주기도 했다. 『걸리버 여행기』를 수업하는 날 잠든 나은우가 꿈속에서 걸리버가 되어 소인국 사람들에 의해 밧줄로 꽁꽁 묶여 실제로도 끙끙 소리를 낼 때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기도 했다.
그때 김지완과 나은우는 스물두살을 지나 스물세살이 되었다. 김지완은 나은우에게 따갑지 않은 시간을 열어준 거의 최초의 친구였다. 그런 친구는 스무살 이후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이십대 초반의 시간은 이십대 후반의 시간보다 느릿느릿 흘러갔기에 나은우에게 그때의 1, 2년은 어마어마하게 길게 느껴졌고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오래 혼자였다고 느꼈다. 김지완과 함께 보낸 스물세살은 나은우가 그토록 기다리고 원하던 서울의 삶, 대학생의 삶, 청춘의 삶이었다. 김지완이 없는 곳, 김지완과 떨어져 있는 장소는 나은우에게 서울이 아니고 청춘이 아니고 나은우 자신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나은우는 여전히 어색해했다. 20여년을 살고 있는 동네도 어색했고 그곳을 돌아다니는 자신도 어색했다. 나은우는 그런 이상한 기분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탄식했다.
내가 되는 일은 너무 낯설어서 언제쯤 제대로 된 내가 되고 그런 나에게 나 스스로가 익숙해지는지 모르겠다. 영원히 모를까? 시간이 더 지나면 익숙해지기는 할까?
나은우에게는 나냐 나 아니냐가 죽느냐 사느냐만큼 풀리지 않는 괴로운 문제였다. 거기엔 시간이 너무 많은 것도 한몫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은우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동네 공원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날은 목요일 금요일 오후, 토요일 일요일 오전이었다. 오후는 네시에서 아홉시까지, 오전은 아홉시에서 두시까지였다.
나은우의 아르바이트 시간을 들으면 몇몇은 시간이 너무 애매한 거 아니야?라고 물었는데, 책임감이 없는 나은우로서는 애매하게 일하는 게 나쁘지 않았지만 애매한 돈을 버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건 편의점을 운영하는 늙은 사장 부부가 아르바이트생에게 돈을 적게 쓰고 싶어해서 생긴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사장 부부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자르거나 줄이면서 자기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면 최대한 나와 일했다. 나은우가 그 편의점에서 나흘간 일하게 된 지 1년쯤 지난 어느날 사장 부부는 나은우에게 이후로는 토일만 나오라고 말했다. 평일 저녁은 부부 둘이서도 감당할 수 있으나, 주말의 한낮은 절대 둘이서 감당할 수 없는 인파가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은우는 목요일 금요일 텅 빈 저녁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시간을 가졌지만 쥐어지는 돈은 줄어들어서 기분이 울적했다. 아무렇게나 쓰라고 뭉텅이로 주어지는 시간이 못내 불편했다. 제대로 쓸 자신이 없어서였다. 차라리 돈이 좋은데. 돈은 안 쓰더라도 거기 있잖아. 나은우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사장 부부가 너무 싫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거스름돈 천원 오백원을 슬쩍했다.
방대한 시간을 어색해하는 나은우와 달리 김지완은 시간과 관계를 잘 맺는 것처럼 보였다. 김지완은 과외도 하고 술도 마시고 시터 아르바이트도 하고 성당에도 가고 고등학교 동창들도 만난다고 했다. 과외 학생의 시험기간이 끝나면 같이 마라탕도 먹고 술 마시는 친구들과는 엘피바에 가서 음악도 듣고 좋아하는 소설책 이야기도 하고 시터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에는 아이를 맡기던 어머니께 선물도 받고 성당에서는 혼자 고요하게 그런 자신을 되돌아보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다시 십대로 돌아간 것처럼 빙수 하나를 놓고도 웃고 떠든다고 했다. 그 모든 게 어떻게 한명인지, 그걸 느끼고 대하는 게 어떻게 자연스럽게 가능한지 나은우는 알지 못했다. 김지완 대단하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김지완처럼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이미 대단한 김지완이 난데없이 모르는 소리를 할 때 더 대단해 보였다. 나은우는 자기 자신을 뺀 모든 것에 감동했다. 감동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반대로 김지완은 나은우가 감동하는 것들에 감동하지 않았다. 어떤 것에도 감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횟수가 매우 희박했다.
근데 난,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런 말을 할 때.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은우는 진심으로 놀랐다. 그보다 더 놀랄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김지완도 대단한데 그 모든 것은 가짜고 진짜 김지완은 따로 있다고 김지완은 말했다. 도대체 몇개의 영혼을 가지는 게 가능한 건지…… 몇개 되지도 않는 영혼들을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고 연결하는 데도 애를 먹는 나은우로서는 김지완의 모든 말들이 한숨 나오게 부러웠다.
나은우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대범한 사람이었다. 이제까지 줄곧 그랬다. 자신이 고개를 숙인 채 발끝 앞에 손가락으로 꼬물꼬물 뭔가를 그리고 있으면 옆에서 그걸 보고 으이그 하며 팔을 뻗을 수 있는 데까지 쭉 뻗어 시선을 발끝에서 떼게 만드는, 더 멀리 보게 만드는 사람. 뻗은 팔을 휙휙 움직일 때 망설임이 없고 멋이 있는 사람. 그런데 김지완은 또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멋이 있었으나 망설임 역시 있었다. 때때로 나은우는 김지완이 망설이는 순간이 더 멋져 보이기도 했다. 나은우는 자신이 섬세하지도 대범하지도 않다고 여겼으므로 양쪽을 기웃거렸다.
언젠가 김지완은 나은우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무 일관되려고 하지 마. 우리는 그냥 사는 거지…… 자서전 써가면서 사는 게 아니잖아. 일관되지 않아도 돼. 사람에게 무슨 기대를 그렇게 하니? 심하게 하지 마. 떨어진다.
그 말을 듣고 나은우는 과도하게 놀랐다. 아직 둥지에 엉덩이를 붙이지도 못했는데 그 전에 추락할 수는 없다. 머릿속 세계에서 홀로 자서전 쓰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김지완의 말이 옳다고 여겨졌다.
그럼 넌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고 뭘 하니?
생각을 모아둬.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는 생각들이 있는지, 그때만 반짝거렸던 생각은 뭐였는지 생각하면서.
요즘에만 반짝거리는 생각은 뭐가 있어?
요즘? 요즘은…… 일본 카레보다 인도 커리가 맛있다는 생각.
김지완은 요즘 인도 커리에 꽂혔다고 했다. 꽂혔다라……
반짝거리는 생각은 꽂힌 생각이나 다름없어. 순식간에 꽂히고 순식간에 뽑혀.
그렇게 설명하고 김지완은 나은우를 인도 커리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나은우는 김지완 덕분에 처음 해보는 일에 인도 커리 먹기를 추가했다. 시금치 커리가 나왔을 때 내가 이것을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금세 숟가락으로 그릇을 긁고 있었다. 맛있네…… 김지완의 선택은 언제나 놀라웠다. 김지완이 아니었다면 초록색 수프 따위를 먹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은우는 김지완에 의해 끌려다니는 영토가 모조리 신기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나은우는 주로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나은우라는 자신은 조미료 같은 게 많이 들어간 맵고 달고 짠 맛을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실은 맛의 차이나 재료의 좋고 나쁨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계란은 짜고, 김밥은 달았다. 소시지는 짜고, 치즈라면은 달았다. 도시락들의 맛은 재료가 아무리 달라도 전부 똑같았다. 돼지고기나 닭고기, 불고기나 튀김, 탕수육이나 햄이나 차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저 편의점 도시락의 맛, 그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꾸만 배가 고픈 게 귀찮고 이상했다. 구운 식빵 두쪽에 온갖 야채를 섞은 계람 부침에 해시브라운까지 끼워 먹었는데 왜 고작 몇시간 후에 배가 고픈 것일까? 아주 양껏 먹었는데…… 그냥, 점심을 먹고 나면 배가 고파지고 그러면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순리 같은 것을 이해하는 게 버거웠다. 왜? 도대체 왜…… 나은우는 쉽게 지쳤다. 가만히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니까.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데도 아는 건 별로 없고 모르는 것만 많을 뿐이니까.
*
둘은 종종 새벽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홍대나 이태원에서 술을 홀짝이거나, 술을 파는 까페에서 커피를 물처럼 마시면서. 김지완과 있으면 모든 일이 신기하고 새롭게 굴러갔다. 까페 사장이 맥주를 꺼내주거나 커피를 더 주며 말을 걸고, 옆 테이블의 아마추어 밴드 멤버들이 관심을 보였다. 나은우가 혼자일 때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던 일이었다. 나은우는 김지완이 자기와 함께 그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좋았다. 그럴 때면 나은우는 비로소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지 않았고 김지완과 함께 보내는 동안만큼 시간을 체험하거나 수집하는 기분이었다. 혼자일 때 나은우는 시간이 자기만 두고 훌쩍 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김지완과 함께 보내는 새벽에는 그런 초조한 마음이 들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시간과 김지완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것 같았다. 시간을 겪으며, 온몸에 새기며, 걸음을 맞추며 시간에 뒤처지지도 시간을 거스르지도 않는 느낌. 딱 맞는 느낌.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김지완과 함께 있을 때 나은우는 처음으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김지완은 미래를 보고 싶어하는 쪽이었다. 나은우는 한번도 미래를 보고 싶어한 적이 없는 쪽으로 둘은 완전히 달랐다. 나은우는 미래가 다가와 힌트를 줘도 눈을 꽉 감고 그것을 보지 않기를 선택하는 쪽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했다. 김지완은 달랐다. 힌트 따위는 필요 없지만 결국엔 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건 해내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과 달랐다. 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미래에 분명히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유체이탈처럼, 마치 영혼이 둘로 나뉘어 언젠가 어느 순간에 김지완의 영혼은 자신이 원하던 모습이 된 또다른 김지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걸 연습하는 과정이야.
김지완의 말은 이렇게 반복되었다. 평생 아슬아슬하고도 토닥토닥 꼼꼼하게 쌓아올리고 싶은 것이 있다. 벌써 쌓아올려진 것도 있고 내가 안 쌓았는데 그냥 저절로 쌓인 것도 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더 쌓이면, 충분히 쌓이면,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쌓이기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적절한 거리, 적절한 방향, 적절한 초점이 있어야 그 모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얼추 모양이 잡혔을 때 너무 가까이에서 보거나 초점을 맞추지 못해서 정답을 틀릴 일이 생기는데 그런 것에 속으면 안 된다. 결론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뭔지 알 수 없다. 김지완의 그런 말은 모호하고 몽롱했으나 나은우에게는 마치 미래에서 온 말처럼 들렸다. 언제나 김지완은 자기보다 두발짝 정도 먼저 미래에 가 있는 것 같다고 나은우는 생각했다.
그게 뭔지 지금은 절대 알 수 없어?
알 수 없지. 있는데 아직 몰라. 모르긴 모르는데 있긴 있어. 나는 그걸 알아.
또라이네 이거.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나은우의 진심이 아니었다. 김지완은 범인은 아니지만 또라이도 아니었다. 그건 알맞은 정의가 아니었다. 김지완에게 보고 싶은 것 쌓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은우에게는 잘 뜯어보고 다시 잘 붙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건 그런 단어, 그런 문장이었다. 대상에 꼭 들어맞아 따갑지 않은 단어나 문장. 그런 걸 찾고 싶었다. 정확한 이름표를 할 수 있는 한 많이 갖고 싶었다. 자신이 어어어 하는 사이에 혹은 어어어 할 생각도 못하는 사이에 불확실하게 흘러가는 무명의 순간이나 대상이 없도록. 그런 소망을 김지완에게 말하면 김지완은 가능성보다는 불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너는 완전히 틀릴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김지완의 목소리, 발음, 숨소리는 모두 나은우에게 꼭 들어맞았다. 그 말은 퍼즐의 빈칸에 알맞은 조각을 끼워넣듯 나은우의 가슴 한군데에 딱 맞게 들어갔다. 헐렁하거나 뻑뻑하지 않고 만족스러운 쾌감으로. 좋은 진단인지 나쁜 평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알맞은가. 그것이 중요했다. 너는 완전히 틀릴 수 있어,와 너는 틀렸어,는 낮과 밤만큼 달랐다. 알맞지 않은 단어는 따가웠고 잘 들어맞는 단어는 부드러웠다. 나은우는 자신의 목표와 여정이 마치 부드러운 것을 주워 모아 자신의 몸에 꼭 맞는 둥지를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쯤 그 맞춤하고 편안한 둥지에 들어가 만족스럽게 웅크린 채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밤에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그런 상상을 하면 반드시 달콤한 잠기운이 덮쳤다. 나은우는 꼭 일곱시간을 잤다.
*
스물세살에 나은우가 김지완과 멀어진 이유는 김지완이 뮤지컬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나은우가 아르바이트를 늘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기는 대충 겹쳤다.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해야 해서 김지완이 오늘 시간 돼? 하는 날에 나은우는 거듭 안 된다고 말해야 했던 시기. 아르바이트하는 요일을 몇번이고 말했는데도 몇번이고 까먹고 그날 홍대에 있는 까페 갈래? 하고 묻는 김지완에게 서운함과 짜증이 함께 일던 시기. 어느날부터인가 김지완이 이제 나 돈을 아껴야 해 하며 나은우와 함께 술 한잔도 하지 않던 시기. 공강 시간이면 늘 가던 까페에서 함께 까페모카를 마시면서도 휴대폰만 쳐다보고 나은우에게는 한마디도 먼저 말 걸지 않던 시기. 뭐 해? 라고 물으면 잠시만, 하는 대답 이후 나은우는 모르는 얘기들이 돌아왔었다. 김지완을 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금세 모르겠네, 하고 생각하게 되던 즈음. 그리고 김지완이 함께 뮤지컬을 보러 다니는 친구들과는 공연이 끝난 후 맥주에 초밥을 먹는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마주 앉은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인터넷 까페에서 만난 친구들과 모여 있는 채팅창은 24시간 내내 접속 중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은우는 바람피운 남편에게 눈물 바람으로 쏘아붙이는 아내처럼, 배신당한 사람처럼 김지완에게 서운함을 내비쳤지만 김지완은 태연했다. 김지완이 보여준 휴대폰 화면에는 어느 뮤지컬의 내한 공연 소식이 떠 있었다.
너는 관심 없으니까 말 안 했지. 가고 싶으면 같이 갈래? 근데 너 맨날 안 된다고 하잖아.
뒤늦게 건네지는 김지완의 손에 나은우는 내가 김지완을 쫄래쫄래 따라 뮤지컬을 보러 갈 수 있는가? 잽싸게 셈해봤다. 줄어든 아르바이트 월급, 적은 용돈.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늘렸더니 줄어든 시간. 셈이 끝났다. 뮤지컬을 보러 다닐 수 없다. 김지완이 티켓 값 때문에 진짜로 좀 쪼들렸어. 돈을 아껴야 했어. 진지한 얼굴로 말했지만 그 순간에도 나은우는 알았다. 김지완은 뮤지컬 때문에 쪼들리고 자신은 뮤지컬 없이도 쪼들린다는 것을. 김지완은 생활의 어떤 지출을 줄이면 그 돈이 생기고, 자신은 생활에서 어떤 지출을 줄여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이미 지출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그 격차는 고작 십몇만원이지만 어떤 차이보다 거대하고 아득하다는 것을.
침묵이 너무 길어져서 불안해진 나은우는 그냥 김지완의 마음만 받을까? 이제라도 같이하자고 해주는 그 말만? 그렇게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가벼운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목구멍은 꽉 막혀 껄끄러웠다. 따가운 것까지는 아니고…… 껄끄러웠다. 기름에 넣은 소금처럼 알갱이가 녹지 않고 까끌거리는 상태 그대로인 것처럼. 김지완의 말에 도저히 마음이 녹지 않았다. 분명 김지완의 빛나는 점 때문에, 특히 그런 점 때문에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고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서운해졌던 적이 몇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엉뚱한 일로 서운했던 마음이 다 풀어진 것도 나은우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서운한 마음 따위는 김지완과 함께하는 다른 시간으로 깨끗이 지워졌다. 진짜로 깨끗하게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뮤지컬만은 도저히 김지완을 쫓아 좋아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김지완이 좋아하는 것, 먼저 발을 담근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멋져 보이고 빛나 보였지만 뮤지컬만은 따라서 좋아할 수 없겠다는 이상하리만치 확실한 예감이. 혹시 나중에 내가 뮤지컬을 보는 사람이 된대도, 아주 푹 빠져버린 사람이 된대도 그건 김지완의 영향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은 기분. 그런 기분에 휩싸였다. 나은우는 그날 까페를 나섰고 점점 김지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김지완도 마찬가지였다. 까페를 나서는 나은우를 붙잡지 않았고 그날 저녁 나은우에게 아까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다.
*
내가 나타난 건 그 무렵이다. 또다시 닥친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중간고사 대체 소논문을 쓰다가 새벽녘에야 잠든 나은우의 머리맡에 나는 앉는다. 내가 나은우에게 들려줄 수 있는, 나은우에게 틀림없는 말은 하나밖에 없고 하나면 충분하다. 너는 김지완이 알려준 많은 것에도 불구하고 김지완을 경멸하게 될 거야. 내 얘길 듣지 못하고 나은우는 뒤척인다. 나는 나은우의 어깨에 덮인 카디건을 올려주며 한마디 더 해본다. 너는 김지완 같은 사람을 여덟명은 더 만날 거야. 여덟명 전부 네 곁에 남진 않겠지. 김지완처럼 말이야. 심술궂은 말투는 아니다. 따가운 말일 수는 있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하지만 따가운 그 말이 부드럽게 마모되어 너의 둥지를 이룰 때 너는 안락할 것이다. 걱정할 것이 하나 없을 것이다.
선잠에서 깨어난 나은우는 꿈결에 어른거리던 목소리를 곧 잊겠지만, 어느 꿈의 겹에서 또다시 떠올릴 것이다. 도서관에서 졸다 깨다 소논문을 다 쓰고 나은우는 또다른 수업의 시험을 보러 갔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중간고사 날이다. 강의실에는 김지완이 기다리고 있다. 전날 나은우에게 그 시험에 대한 족보 파일을 넘겨주기도 했던 김지완. 나은우와 달리 김지완은 학교 커뮤니티에도 열심이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가입 절차와 인증 방식이 까다로운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데 김지완은 애먹지 않았다. 그런 데 애먹는 건 나은우였다. 족보를 받아들어도 그걸 어떻게 써먹으면 좋을지, 달달 외우는 게 좋은 건지 매번 의심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나은우였다. 그리고 김지완이 족보를 건네줄 때 여러겹의 꿈결 사이에서 작게 속삭이는 내 목소리를 나은우는 아마도 최초로 들었다.
멋없어.
그 말을.
늘 자신보다 유능하고 유연해서 좋아했던 김지완. 항상 나은우보다 모든 것을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해내는 김지완을 좋아했던 여러겹의 이유들 사이에서 솟아난 작은 목소리, 그렇지만 영락없이 심술 맞은 목소리를.
시험을 마치고 나오며 김지완은 나은우에게 물었다.
졸업하고 뭐 하고 싶어?
나은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졸업을 하고 싶어.
한참 만에 그렇게 대답했다. 이상한 대답이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말이 입에서 나가지를 않았다.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김지완은 말했다.
졸업할 수 있어. 왜냐면 우리는 졸업을 한 적이 있으니까.
들어봐봐, 이런 거야, 하고 김지완은 오랜만에 신이 나서 얘기했다.
우리는 패턴이야. 우리는 우리가 항상 현재인 줄 아는데, 아니야. 자주 과거이고 곧잘 미래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르기를 바라겠지만, 달라도 다르지 않다는 거야. 너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될 수도 있어. 기억해봐. 아주 어렸을 때 우리는 무척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에는 일어나는 일보다 일어나지 않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는 거. 우린 지금 그 와중이야. 졸업해도 하는 거고 안 해도 하는 거야. 살면서 뭐든 졸업만 하고 살아가게 될 수도 있어.
뭔 소리야.
나은우는 그때 김지완이 시험을 마친 후련함에 또 저 좋아하는 선문답 같은 걸 한다고 생각했다. 반쯤 맞고 반쯤 틀린 말이었다. 나은우는 그때 김지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전처럼 김지완이 하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 나은우의 속을 흔들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아챘다.
나의 목소리는 한번 들리면 계속 들린다. 들린 쪽으로 귀 기울이게 된다. 막으려고 잊어보려고 애써봐도 한번 들러붙은 마음의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김지완을 떠난 이유가 뮤지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나은우는 알고 있다. 별거 아닌 것으로 가장 좋아하던 친구에 대한 마음을 단숨에 바닥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나의 목소리를 나은우는 들을 수 있었다.
김지완은 돈이 많아. 김지완은 돈이 많다고.
그런 말을.
김지완은 나은우처럼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읽고 그 아르바이트는 그런 특징이 있대, 거기서는 그런 사람들을 주로 볼 수 있대, 하고 말하고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으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김지완은 좀체 떨지 않았고 떨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훨씬 사랑받았다. 그건 김지완이 투명한 옷처럼 입은 자신감이었다. 나은우는 그 자신감이 김지완의 부족할 것 없는 형편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약간 심통 난 채로 나은우는 김지완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런 네가 됐어?
나인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나지만.
그래.
나은우는 그때 깨달았다. 새벽에 들은 목소리를 기억해낸 건지도 몰랐다. 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김지완이 김지완이어도. 김지완이 김지완만은 아니어도. 분하거나 놀라거나 신비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은우는 김지완이어야 했다. 단 하나의 친구, 단 하나의 선지자가 있다면 그건 김지완이었다. 그런데…… 김지완이 김지완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까. 나은우도 김지완이지 않아도 되었다. 나은우는 김지완이 일러준 대로, 나은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알 것도 같은 사이에, 김지완을 졸업했다.
*
나은우가 김지완을 다시 본 것은 스물아홉살 때였다. 처음 만났던 때로부터 7년 가까이 흘러 있었다. 셈해보다가 나은우는 조금 놀랐다. 김지완 없이 7년을 산 것에. 7년이면 사람이 그렇게 변한다는 것에. 김지완도 나은우도 변했다. 7년 전 함께이던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내한한 뮤지컬 공연이 열리는 한남동의 공연장 앞에서였다. 그곳에서 뮤지컬 팸플릿을 들고 들뜬 표정으로 서성이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김지완이 있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김지완이 맞았다. 나은우는 그 아래 골목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온 참이었다. 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공연장을 지날 때, 나은우는 자기도 모르게 김지완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었다. 김지완과의 거리가 좁혀질까봐 걸음을 빨리하면서, 김지완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던 시절을 생각했다. 김지완 여전히 뮤지컬을 좋아하는구나. 나은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김지완을 마주친 날 저녁 나은우는 김지완의 SNS를 찾아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녔다. 여지껏 없던 열정이었다. 누군가를 찾고 싶어진 것이 얼마 만인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시간이 왜 이토록 궁금한지. 나은우는 메일함에 남은 김지완의 메일 주소로 블로그 아이디를 찾고 김지완의 덕질용 트위터 계정을 찾았다. 비슷한 방법으로 김지완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았으나 비공개. 그리고 김지완이 방치해둔 페이스북 계정을 찾았다.
그곳에서,
6년 전, 4년 전, 3년 전 김지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것들이 비공개. 공개된 몇몇은 친구들과 함께 태그된 사진뿐. 서로가 가지 않았던 서로의 졸업식을 떠올렸다. 김지완이 먼저 졸업한 것을 나은우는 알고 있었다. 같은 학교 대학원에 들어간 김지완과 함께 조교 일을 하던 대학원생들이 올린 학회 홍보 게시물. 태그된 김지완. 제본된 논문 사진과 어느덧 어엿하게 어른스러워진 김지완의 얼굴. 금박으로 적힌 논문 제목은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읽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저 흐릿하게 금빛으로 어른거렸다. 전쟁사를 연구하나? 사진 밑의 짤막한 심경과, 게시물 이전과 이후에 올라온 학회의 주제를 보아하니 그런 것 같았다. 여전히 전쟁하는 배와 전쟁하는 비행기, 군복 입은 사람들에 관심이 있구나. 어쩐지 반가웠다. 김지완의 관심이 꾸준한 것이. 왜 내가 그런 게 반가워? 의아했지만 반가운 건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김지완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게 반가운 것인가, 나은우는 생각했다. 김지완의 얼굴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고 낯이 익은 동시에 낯설다. 나은우는 이제 변해갈 김지완의 얼굴을 알 수 없다.
허공 같은 인터넷 세상을 헤매며 만날 수 없는 김지완을 기어코 찾아낸 나은우는 생각했다. 이렇게 수많은 인터넷 페이지를 뒤지고 다니는 것을, 실제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는 일과 비교해보면 내 걸음 수는 얼마나 나올까. 한 만오천보 나올까? 시간상으로는 거의 그럼직했다. 그러나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수소문하여 하염없이 돌아다닌 것 같은데, 거의 그런 기분과 흡사한데 땀은 한방울도 나지 않았다. 나은우는 방 안에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스물세살의 김지완은 슬픔과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스물세살의 나은우는 그걸 따라잡고 싶었다. 김지완이 어떻게 배합되었는지를 관찰하여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빚어보려고 애쓰는 나날이었다. 그런 자신이 싫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든 애쓰고 있는 자신이. 그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스물세살의 나은우는 김지완이 먼저 찍은 발자국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김지완이 찍은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포개며, 또 조금 비껴나거나 그 옆에, 혹은 앞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어보며. 김지완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과 김지완+나은우로 인해 가능했던 것, 오로지 나은우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어지럽게 찍혀 있을 것이다. 스물세살 언저리에.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상상하면 둘이 함께 지겹도록 걷던 학교 앞부터 지하철역까지의 거리와 한강공원과 홍대 앞 길거리가 생각났다. 걸음이 느린 김지완에게 맞춰 찍던 발자국. 숱한 발자국을 남기던 새벽이 있었다. 스물세살의 언젠가 그들은 홍대를 걷다가 똑같은 반지를 사서 나눠 꼈다. 나은우는 산 지 몇달 지나지 않아 그 반지를 잃어버리고 철렁 내려앉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곧장 똑같이 생긴 반지를 사서 그 반지인 척 끼고 다녔다. 김지완은 그 사실을 몰랐다. 김지완은 진작에 그 반지를 빼고 다른 반지를 여럿 끼웠다.
나은우는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김지완에게 할 수 없어서 홀로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어느 봄날 오후 수업이 끝나고 곧장 홍대 길거리로 향하던 초조한 마음을, 따가운 봄날의 햇볕 때문에 등줄기에 흐르던 땀을 기억한다. 혹시 같은 모양이 없으면 어떡하지 속으로 전전긍긍하던 것. 그런 자신은 어쩐지 바보 같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할 수도 없었다. 그 모습이 멍청하고 촌스러워서 부자연스러움 그 자체여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그런 자신이 너무 슬퍼서, 진짜 안쓰럽고 안됐고 가여워서 말할 수가 없었다. 나 사실 그 반지 잃어버렸었다, 하고 가벼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새벽까지 잠 못 들고 뒤척이다 집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 반지를 문지르던 나은우.
*
김지완이 떠나서 나은우는 아끼는 과거를 지닌 사람이 되었다. 곱씹을 만한 과거가 있는 사람이. 이전까지 나은우에게는 과거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군대 보냈던 애인? 중학교 시절 친구? 좋아하던 학원 선생님? 그런 걸 과거라고 해야만 할까? 그런 건 과거가 아니고 그냥 거기에 있던 것들, 지나치고 사라지는 것들이라고 여겼다. 과거는 그보다 조금 더, 자국으로 남는 것. 있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계속 소문처럼 은근히 들리는 것. 내 귀에 내 목소리로 들리고 전혀 증폭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것이야말로 과거라고 이름 붙일 만했다. 그것이 나은우의 생각이었다. 김지완은 나은우의 과거가 되었다. 나은우는 김지완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왔지만 그 아픔이 싫지만은 않았다.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오는 한 시기를 가졌다는 것에는 이상한 자부심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런 시기가 있어. 그것은 과거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할까. 죽지 않은 것에는 생기가 있고 살아 있는 냄새가 났다. 아픔은 사람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자부심이 되기도 한다.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괜찮게 만들기도 한다. 그걸 잃어버리고도 잘 살잖아, 괜찮아. 그런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되풀이할 때 느껴지는 활기가 있다. 나은우는 귓속에 들리는 과거라는 소문에 그런 활기찬 생각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픈 것은 아픈 것, 슬픈 것은 슬픈 것, 사는 것은 사는 것이다. 아프고 슬퍼도 살기 좋은 나날이 있다. 그렇게.
따끔하고 달콤하게, 동물의 털을 만질 때처럼 기분 좋게 과거를 쓰다듬던 나은우는 문득 궁금해진다.
김지완은 보게 되리라고 믿었던 미래를 봤을까? 김지완이 보고 싶어 하던 미래에 이 장면도 있었을까? 우리가 헤어지는 장면. 서로를 만나지 않고 떠올리기만 하는 장면. 김지완은 자기가 미래를 믿던 것을 기억할까? 그 믿음은 여전할까? 김지완은 우리가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것도? 우리가 틀린 것이 있다면 그건 뭘까? 뒤로 돌아가 바로잡을 수도 없이 틀린 걸 두고 계속 앞으로 가야 하는 걸까?
그런 것들이.
이제 나은우는 한결 더 나은우가 되어, 자신이 김지완을 볼 때 저런 표정이었겠구나 생각하게 하는 친구를 만났다. 회사에서 만난 친구였다. 나은우는 그 친구에게 아주 가끔, 뮤지컬 보러 갈래? 하고 묻기도 한다. 그 친구에게 또, 나은우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책을 읽어. 소설도 읽고 아닌 것도 읽어. 미군이었던 소설가가 쓴 책과 한국군이었던 소설가가 쓴 책, 베트남전의 민간인 학살을 연구하는 학자가 쓴 책. 그렇게 내가 태어나기 전 벌어졌던 사건을 맞춰보는 거지. 과거를 상상해보는 거야. 나은우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친구는 뭔 말인지 모르겠네? 하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은우는 김지완을 생각했다. 김지완도 그때 더 설명할 수 없었구나. 곁에 없는 김지완은 나은우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직도.
스물세살의 나은우는 나은우만의 슬픔을 이해받고 싶어 안달이었다. 단어와 문장을 찾아다닌 건 어쩌면 그 때문이었다. 이제 이해가 돼? 이제 좀 돼? 그런 안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스물아홉살의 나은우는 자기의 슬픔이 나은우만의 슬픔으로 간직되기를 바랐다. 이해도 오해도 싫다. 그저 그대로, 내 안에 있는 그대로, 발설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김지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난,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말했던 김지완을. 이제 나은우는 직접 김지완을 만나기보다 만나지 않은 채로 상상하는 편이 김지완을 여전히 좋아하는 방식임을 깨닫는다. 김지완을 독점할 수 없어 슬프던 스물세살의 나은우는 몰랐던, 놀라운 방식이다.
퇴근길 나은우는 회사 친구에게 손을 흔들고 혼자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헤드폰을 쓰고 브람스의 연주곡들을 재생한다. 브람스의 왈츠는 어쩐지 엉뚱하고 장난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걸 들으며 낯익은 길을 걷다보면 늘 내딛는 발걸음이 낯설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목적지를 모르는 채 대책 없는 산책길에 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은 어? 나 몇년 전까지만 해도 클래식을 들으면 자버리는 사람이었는데? 하는 당혹감에서 온다. 그 당혹감은 어? 나 길 잘못 든 거 같은데?와 비슷한 유의 당혹감이다. 그런 감상에 올라타면 퇴근길은 갑자기 여행길이 되고.
기분이 좋아진 나은우는 대학 시절 김지완과 함께 듣던 ‘동화와 민담 그리고 신화’의 강의실을 떠올린다. 150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이었고 접었다 펴는 작고 좁은 의자가 있었다. 그 수업에서 자는 것은 언제나 나은우였지만 그날은 무슨 이유에선지 수업시간 삼십분을 남기고 교수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공연 영상을 재생해주었다. 불 좀 꺼주세요. 교수가 말할 때 묘하게 설레던 것을 기억한다. 이윽고 어두워진 커다란 강의실에서 들리던 오페라와 영상의 밝기에 따라 어른거리던 어슴푸레한 빛. 눈을 감고 몸을 젖혀 좁은 의자에 기댄 채 또다시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졸린 기운과 웅장한 음악 소리와 어두운 강의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흐뭇한 마음으로 잠깐 눈을 떠 옆을 보았을 때, 김지완도 나은우와 비슷한 자세로 몸을 젖히고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김지완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은우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달콤한 잠의 세계로…… 지금 듣는 브람스의 음악과 잘 맞아떨어지는 장면이다. 수업이 끝나고 휑한 강의실에서 나은우가 눈을 떴을 때, 김지완은 이미 깨어 있었다. 텅 빈 강단을 바라보다가 나은우가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오페라 때문인가. 내가 죽음을 선택하는 꿈을 꿨어. 다 끝내고 싶다, 이제 곧 끝이다, 후련하다 하며 죽음을 선택하고 난 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지금의 나보다 더 산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것도 다 지나갈 긴데…… 지금은 머 암것도 모를 긴데…… 하고 갔어.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까 또 조바심이 나는 거야. 이 순간이 전부는 아닐 텐데? 같은…… 당연한 깨달음. 원래도 알고 있었던 것. 깨달음 같지도 않은 깨달음. 그런데 훨씬 와닿았어. 생생했어. 죽음을 선택하고 이야 마음 편하다 하고 누운 지 몇초도 되지 않아 아씨 어떡하지? 내 선택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맹렬하게 후회했어. 지나갈 텐데. 그런 말은 그런 상황에서 최고의 위로가 되는구나 생각했어. 최고의 위로이지만 최악의 위로.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다행히 그건 꿈이어서 나는 죽지 않았어.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면 아직도 조금 아찔해. 되돌릴 수 없는 것을 함부로 선택했을 때의 아찔함. 꿈에선 항상 그런 조마조마함을 느끼는 것 같아.
김지완은 그 얘길 하고 살아 있다는 건 정말 좋아,라는 듯 안도하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비가 내릴 것처럼 어둡던 하늘과 무겁던 공기가 기억이 났다. 그래 그런 것이 있었네. 떠올리니 또 떠오르네. 나은우는 자신의 기억력에 감탄한다.
기억은 왈츠가 끝나자 순식간에 흩어지고 나은우는 자동반사적으로 내일도 출근하네, 하고 지겨운 표정을 짓는다. 음악은 브람스의 발라드로 이어진다. 나은우는 생각을 고쳐먹는다. 좋은 곳에 가고 싶을 때 당장 어디론가 떠날 수도 있겠지만, 어설프게 유행을 따라 한 것이 아닌 진짜 좋은 퀄리티와 분위기의 까페 겸 서점에 가서 여유롭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곳은 언제나 여유가 없다. 웨이팅이 있다. 그런 곳에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자리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보다는 과거로 여행하는 편이 더 낫다. 과거의 언젠가. 돈은 없고 시간은 많던 그때. 이런 곳이 있다니! 하고 인생에서 처음 알아낸 신촌역 뒷골목 어느 어두운 까페에 앉아 노트북을 쏘아보거나 책을 올려두고 멍하니 있던 시절. 아이스라떼가 싱거워질 대로 싱거워지도록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 그때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 확실히 좋다. 지금 나은우는 살아 있어서 무척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