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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명학수 明學秀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등이 있음.

eyaya66@naver.com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

 

 

작은 상자다. 상자의 윗면을 절반으로 나누는 경계선의 이쪽에 삐죽 튀어나온 스테인리스 재질의 토글스위치 한개가 보인다. 화면 구석에서 등장한 두툼한 검지가 스위치를 누른다. 동시에 경계선의 저쪽 윗면이 위로 열리더니 안에서 로봇의 손가락과 유사한 막대가 나와 토글스위치를 눌러 원래 상태로 바꿔놓는다. 할 일을 마친 막대는 상자 안으로 도로 들어가고 열렸던 윗면도 닫혀 상자는 검지가 스위치를 누르기 전의 고요로 돌아간다. 소요 시간은 대략 2초. 다시 한번 같은 손가락이 등장해 스위치를 켜자 기다렸다는 듯 막대가 나타나 스위치를 꺼버리고 원위치로 되돌아간다. 그뿐이다. 손등에 털이 수북한 성인의 손이 고집스럽게 몇번이나 스위치를 켜보지만 그때마다 막대가 기계적인 동작으로 단호하게 스위치를 끄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영상의 총 재생시간은 18초. 나는 진호에게 물었다.

“이게 뭐라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

“이걸 미미가 갖고 싶어한다고?”

“응. 아주 많이 매우 갖고 싶대.”

“왜?”

“재미있대. 재밌잖아. 재미없어?”

진호와 미미가 느낀 재미가 정확히 어떤 차원의 재미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그 낯선 기계는 단순한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남겼다. 나는 사장이 에릭 클랩튼을 좋아해서 ‘레일라’(Layla)라는 이름을 갖게 된 까페에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청소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휴대폰을 집어 들고 그 단순한 장치가 인간의 손가락과 다투는 장면을 보고 또 보았다. 까페 사장에게도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재미없다고 했다.

“스위치를 켰는데 스스로 꺼버리는 기계라니, 뭐랄까, 좀 우울하다. 저기 닫힌 상자 주위에서 어둠의 기운이 느껴져. 나는 이 폐쇄된 공간이 좋다, 그러니 건드리지 말고 이대로 그냥 내버려둬라. 딱 그 느낌이야. 친구가 이걸 갖고 싶어한다고?”

“네. 아주 매우 많이요.”

“그 친구 요즘 어디 안 좋은 거 아냐?”

진호와 미미는 소설을 쓴다. 미미는 2년 전부터 네이버에서 웹소설을 연재 중인데, 비록 지금까지 눈에 띄는 관심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단 한번의 휴재 없이 꾸준히 작품을 업데이트해왔다. 소설가로 등단해서 활동하는 게 목표인 진호는 지난 3년 동안 응모 가능한 모든 공모에서 쓴맛만 보다가 얼마 전부터는 미미처럼 웹소설을 써볼까 고민 중이다. 진호가 전하길 그 기계를 원하는 건 미미라고 했으니 사장이 우려하는 어둠의 기운은 아마도 그녀의 문제일 텐데, 그런 곤란이 정말 있기는 한지, 정확히 그게 뭔지, 자세한 사정은 나도 모른다.

 

나는 오후 10시에 까페 레일라의 영업을 마감하고 술 취한 행인들을 바라보며 우동 한그릇을 비운 다음 11시에 맞춰 편의점 CU로 갔다. 거기서 새벽 5시까지 근무해야 한다. 근무가 끝나면 내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요기를 하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거나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고 멍을 때리다 오후 2시에 레일라로 출근한다. 그리고 다시 밤 10시까지. 그게 나의 하루다. 정해진 휴일은 없다. 까페도 편의점도 연중무휴다. 양쪽 모두 늘 낯선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다른 직종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자기암시를 하며 견디면 견딜 만하다. 새벽 1시가 가까워질 즈음 진호가 가벼운 술기운과 함께 편의점에 들어섰다.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웹에서 판매처 두곳을 어렵사리 찾아냈는데 과연 물건을 받을 수 있을지 심하게 의심스러운 국적 불명의 사이트들이라고 했다. 나는 친구의 여자친구를 걱정했다. 까페 사장의 부정적인 견해를 다소나마 순화해서 나의 근심인 양 혹시 미미에게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진호는 메로나를 씹다 멈추고 한달 전 일이라며 털어놓았다.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일요일에 둘이 밖에서 만나 영화를 보고 미미의 원룸으로 들어섰는데 방 한복판에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더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날개뿐 아니라 머리까지 삐걱거리며 회전 중인 선풍기를 보고 진호는 환기시키려 켜놓았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물었지만, 미미는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로 우두커니 서서 그 낡은 선풍기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호가 허리를 굽혀 전원 버튼을 누르려 하자 미미는 그냥 놔두라고 했다. 미미는 선풍기 앞에 가만히 쪼그려 앉았다. 진호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미미가 말했다. 자기랑 똑같다고, 누군가 작동시켜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존재, 잊힌 줄도 모르고 이 어두운 방에서 혼자 존나게 영혼을 갈아대고 있는 똥멍청이. 진호는 내게 말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 그걸 발견하고 너무 재미있다며 내게 보여준 거야. 옷이나 물건에 욕심을 내는 애가 아니거든. 처음이야. 뭔가를 꼭 갖고 싶다고 하는 거.”

친구는 인적이 끊긴 도로로 내보낸 눈길을 좀처럼 거두지 못했다. 손에 쥔 메로나에서 연두색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줄도 모른 채.

 

진호의 불평은 괜한 엄살이 아니었다. 나무위키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가 무엇이고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 어떤 인물들이 관여했는지 알려줬지만 정작 그것을 만드는 방법이나 구매 가능한 사이트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유튜브에 있는 영상들은 대부분 등록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나마 그 기계와 그것의 변형된 버전들을 얄팍한 흥밋거리로만 보여주는데 그쳤다. 네이버에 뜨는 정보들도 나무위키 수준의 간략한 소개가 전부였고 함께 첨부된 영상들도 유튜브의 것들과 동일하거나 유사했으며 일부는 시일이 많이 지난 탓인지 재생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검색 목록에서 게시물 제목을 클릭하면 ‘404 NOT FOUND’가 뜨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는 적어도 국내 온라인 영역에서는 그것의 이름이 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구글에서 ‘The Most Useless Machine’으로 검색한 결과를 뒤지다 ‘makezine.com’이라는 곳에서 대강의 제작 과정이 게시된 페이지를 발견했다. 톱으로 합판을 잘라 상자와 막대를 만드는 작업부터 소형 모터와 명칭을 알 수 없는 여러 부품들을 빨간색과 노란색과 파란색 전선으로 어지럽게 연결해서 회로를 구축하기까지의 과정을 몇장의 사진과 영문 텍스트로 소개했는데,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 문장을 읽으며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전기나 전자에 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해서 나 같은 일반인들이 그걸 참고로 기계를 만드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난해한가? 딱히 대단한 기능도 없는데, 왜? 나는 그동안 내가 가입하고 잠시라도 활동했던 네이버 까페와 디씨 갤러리와 기타 커뮤니티들을 찾아가 업로드 가능한 여러곳에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의 18초짜리 동영상을 게시하고 영상 속 기계의 제작 또는 구입을 원하니 정보 좀 부탁한다고 적었다.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카푸치노 한잔을 만들어 손님에게 주문하신 음료가 나왔다고 알렸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손님이 카푸치노의 풍성한 거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카푸치노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자신이 주문한 건 까페라떼라고 했다. 나는 영수증을 집어 확인하고 손님에게 건네며 카푸치노가 맞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님은 궁지에 몰렸다 달아날 틈을 겨우 찾아낸 길고양이처럼 두 눈을 번득이며 내게 퍼부었다.

“그러니까요. 나는 집에서 나와 여기까지 오면서 오늘은 따뜻한 라떼를 마셔야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다짐까지 했다고요. 그런 제가 주문을 잘못했겠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카푸치노가 찍혔다는 건 그쪽이 실수를 했다는 뜻 아닌가요? 안 그래요?”

레일라의 사장은 늘 내게 강조했다. 손님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 필요는 없지만 불편을 느끼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나는 그의 충고를 떠올리며 손님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까페라떼를 만들어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손님은 기분이 상해서 입맛이 달아났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카드결제를 취소하고 환불 영수증을 뽑을 때까지도 이미 논리를 상실한 손님의 불평은 계속 이어졌고 영수증을 받아든 손님은 장사 똑바로 하라고 쏘아붙이더니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나는 행주를 들고 가서 손님이 테이블 위에 남긴 흔적을 닦아내고 의자를 정돈했다. 그리고 카운터로 돌아오려는데 바로 옆 테이블 위에 놓인 두툼한 책의 파란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전자회로 Fundamentals of Electronic Circuits』. 특히 회로를 의미하는 저 circuit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테이블에는 젊은 여자가 수학 교재와 연습장을 펼쳐놓고 수와 식을 적어가며 문제와 씨름 중이었고 그녀 앞에는 카푸치노와 먹다 남은 레몬스콘 조각이 놓여 있었다. 나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전자회로』의 주인은 약 20분 전에 들어온 손님이었다. 혹시 저 카푸치노가 내 무의식에 남아 까페라떼를 카푸치노라고 받아들이는 오류를 일으켰을까? 설마. 여자가 내 존재와 시선을 느꼈는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전자공학 공부하세요?”

여자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왜 그러시죠?”

나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카운터로 달려가 휴대폰을 들고 돌아와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의 영상을 찾아 내밀었다. 여자는 다소 당황한 눈빛으로 휴대폰 화면을 보았고 18초가 지난 뒤에는 오직 의문만 남은 시선을 내게 건넸다.

“이게 뭐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입니다.”

“네?”

“그게 그 아이 이름이에요.”

“그런데요?”

“제가 그 기계가 꼭 필요하거든요.”

나는 손가락으로 『전자회로』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전자회로와 관련이 있는 거 같은데 혹시 아시지 않을까 해서요.”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몰라요. 처음 봤어요.”

그녀는 다시 재생버튼을 눌러 영상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번 더 보았다.

“재밌네요. 그런데 단순한 장치는 아닌 거 같아요.”

“그래요? 그렇게 복잡한가요?”

여자는 휴대폰 화면을 내 쪽으로 내밀더니 재생과 정지를 반복해서 누르며 설명했다.

“ON과 OFF가 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처음에 스위치를 켜는 순간 작동이 시작되니까, 그걸 ON이라고 가정하면 그 반대는 OFF가 되겠죠?”

“그렇겠죠.”

“스위치를 ON으로 누르면 안에서 막대가 나와 스위치를 다시 눌러요. 그럼 ON이었던 스위치는 OFF가 되는데, 저게 정말 우리가 아는 평범한 OFF라면, 그때 기계의 작동이 멈춰야 해요. 다시 말해서 스위치가 OFF 되는 것과 동시에 저 막대도 정지해야 하죠. 하지만 막대는 멈추지 않아요. 그쵸? 계속 움직여서 원래 위치로 돌아가잖아요.”

그녀의 연한 갈색 눈동자가 내 눈을 향했다. 그녀의 설명은 같은 영상을 이미 수도 없이 반복해서 봤음에도 사실 내가 본 건 아무것도 없음을 일깨웠다. 나는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눈앞이 환해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말했다.

“그러니까 이 기계의 OFF는 사실 OFF가 아니고 또다른 ON인 거예요. 이 기계에는 OFF가 없는 셈이죠.”

“OFF가 곧 ON이다. 그런 뜻일까요?”

“그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네요.”

“꽤 철학적인 해석이군요.”

“철학이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눈에 보이는 걸 사실 그대로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이걸 만들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하겠지만 회로가 쉬워 보이진 않는데요.”

여자는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고 이제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볼펜을 쥐었다. 나는 여자에게 『전자회로』를 잠깐 봐도 되는지 물었다. 여자가 책을 주어서 책장을 펼쳤지만 내가 감히 덤빌 수준이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얼른 책을 덮었다. 그리고 여자에게 귀한 조언을 해준 답례로 서비스를 드리고 싶으니 뭐든 주문하시라고 했다. 여자는 시원한 얼음물 한잔만 주시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그녀가 원하는 걸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그후 약 30분 동안 수학 문제를 풀다 레일라를 떠났다.

 

진호가 카톡으로 ‘하마의 토이박스’라는 블로그 링크를 보냈다. 링크를 누르자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의 그래픽 이미지가 떴고, 그 아래에는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토글스위치, 케이블, 서브 모터 등등의 부품과 해당 부품의 인터넷 구입처 링크들이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그중에 ‘아두이노 우노 호환보드’라는 생소한 이름이 눈에 띄어서 그게 뭔지 아느냐고 진호에게 물었더니 바로 답이 왔다.

‘나도 그게 뭔가 싶어 검색해봤거든. 기계를 구동시키려면 작동회로가 필요한데 그 회로를 PC로 코딩 작업을 해서 USB로 연결한 아두이노 보드에 입력하고 저장하나봐. 아두이노 보드가 그 기계의 CPU인 셈이지. 부품 목록 하단에 보면 코드도 있어.’

목록에서 ‘아두이노 코드’를 찾아 옆에 있는 링크를 눌렀더니 아라비아 숫자와 알파벳과 특수문자로 이뤄진 컴퓨터 언어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걸 보는 순간 『전자회로』를 펼쳤을 때 내 눈앞을 가리던 막막함과 『전자회로』의 주인이 내 눈을 뜨게 했던 명쾌한 분석이 떠올랐다. 나는 ‘makezine.com’에서 ‘The Most Useless Machine’을 소개한 페이지의 링크를 진호에게 보내고 짧게 덧붙였다.

‘이건 아날로그 회로고 아두이노 코드는 디지털 회로인가본데 미미 취향은 어느 쪽일까?’

약 3분쯤 지나서 진호의 응답이 왔다.

‘어느 쪽이든 둘 다 우리 수준은 아닌 거 같다.’

나는 『전자회로』의 주인이 알려준 기계의 특성을 그녀의 설명 그대로 진호에게 전했다. 물론 그녀의 존재는 빼고. 이 기계는 OFF가 없는 대신 두개의 ON만 지닌 특이한 놈이라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호화로운 기술이 필요하다고. 진호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며 감탄하고 동의했다. 우리는 ‘하마의 토이박스’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어떻게 부품들을 조립해서 기계를 완성하는지 알려주는 어떠한 매뉴얼도 찾지 못했다. 하마가 남긴 설명에 따르면 그 기계는 어느 고등학교의 방과후 활동 아이템이었던 모양인데, 그렇다면 우리도 그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걸까? 진호는 그걸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수업이든 뭐든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하마는 학교명을 밝혀놓지 않았고 해당 게시물의 게시일자는 3년 전이었으며 게다가 블로그의 가장 최근 게시일이 1년 7개월 전인 걸 보면 ‘하마의 토이박스’는 하마의 관심에서 꽤나 멀어진 게 분명했다. 진호는 뭐라도 해야 한다며 댓글을 적었다.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가 꼭 필요해서 관련 자료를 모으는 중인데 이곳이 제일 대박인 거 같습니다. 혹시 제작방법이 정리된 문서 파일 같은 게 있으실까요? 제가 문과라 아는 게 별로 없어서요. 만약 완성된 실물이 있으시면 구입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저 기계가 너무 갖고 싶어서 그럽니다. 부탁드려요, 제발.’

 

나도 뭐든 해야 할 것 같아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다가가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를 아는지 물었다. 가령,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편의점 창가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으로 게임 영상을 보며 컵라면을 먹는 학생. 나는 그 학생이 어느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기계에 대해 알지도 모른다고 단정하고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이(異)세계의 미궁을 종횡무진 누비는 중인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번 두드렸다. 학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이어폰을 뺐고, 나는 아무 양해도 얻지 않은 채 다소 딱딱한 태도로 그의 눈앞에 영상을 들이밀었다. 당황과 불만이 뒤섞인 표정으로 화면을 보던 학생의 표정은 이내 밝아졌다. 학생은 내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모르느냐고 내가 되묻자 그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게 뭔지 알려주었다. 그는 이름이 웃긴다며 웃었다. 내가 그걸 찾고 있는데 혹시 본 적 없느냐고 물었더니 학생이 내게 되물었다.

“이걸 찾는다고요? 여기 있잖아요?”

“아뇨. 영상 말고 실물이요.”

“실물이요? 굳이? 왜요?”

학생이 딱히 답을 원하는 눈치는 아니어서 나도 대답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서 같은 동영상을 찾아 액정에 띄웠다.

“이거 정말 웃기네요. 감사해요.”

내게 가벼운 눈인사를 보낸 학생은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 화면에 영혼을 내맡긴 얼굴이 되어 편의점에서 나갔다. 내게는 그가 먹은 라면의 뒤처리만 고스란히 남았다. 다음은 안씨. 안씨는 CU가 위치한 지역 일대에서 전기 관련 설비와 각종 기기들을 수리하는 전문가인데 편의점 냉장고에 문제가 생겨 골치를 앓던 점주가 본사의 느린 대처를 기다리다 못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안씨는 나의 근무가 시작되고 20여분쯤 지나서야 작업을 끝냈다. 나는 냉장고가 정상 작동하는 걸 확인하고 장비를 챙겨 서둘러 편의점을 나서려는 안씨를 붙들고 기계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살폈다.

“뭐야? 장난감인가?”

나는 그에게 그것의 이름을 말하고 그걸 만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쓸모없는 기계? 글쎄. 모르겠네. 난 망가진 걸 쓸 만하게 고치는 사람이지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리고 최대리. 커피 원두를 공급하는 업체의 직원인 최대리가 까페를 찾아왔다. 그는 로스팅한 원두를 차에 싣고 2주마다 까페 레일라를 방문하는데 때로는 그날이 아닌데도 불쑥 들르곤 했다. 사장과 나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까페를 정리하고 최대리와 함께 바로 옆 건물 1층에 있는 감자탕 전문점으로 갔다. 내가 편의점 근무를 이유로 술잔을 사양하는 바람에 나의 일이 대화의 중심에 놓이고 말았다. 최대리는 내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라고 했다. 사장도 예전부터 같은 조언을 했었다고 말을 보탰다. 나는 아직 고민 중이라는 대답으로 그들의 관심을 비껴가려 했는데 사장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는 구했느냐고 물었다. 아직 못 구했다고 했더니 최대리가 그게 뭐냐고 물어서 영상을 보여줬다. 그는 내 휴대폰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18초 분량의 영상을 1분 넘도록 반복해서 보았다. 사장이 말했다.

“맞다. 최대리 이과였지? 기계공학이었나? 전자공학이었나?”

최대리는 제어계측공학과라고 했다. 처음 듣는 학과여서 거기서 무얼 가르치고 배우는지 짐작조차 안 됐지만, 나는 최대리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그걸 만들려는데 혹시 방법을 알 수 있겠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말했다. 자기는 이과여도 아는 게 없다고, 날라리 이과였다고, 운 좋게 대학은 갔지만 술 마시고 연애하고 노느라 공부는 완전 뒷전이었다고, 그래서 지금 사는 게 빡세다고. 그러더니 내게 그걸 왜 만들려 하느냐고 물었다. 굳이 진호나 미미까지 등장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 나는 짧게 대답했다.

“재밌잖아요.”

최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의 답변을 긍정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그러지 말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라고. 그 정도는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언제까지 알바만 뛸 거냐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야 할 거 아니냐고. 그러더니 자신의 잔을 들어 내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파이팅.”

그의 파이팅에 담긴 진의가 뭔지 알 수 없어 나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사장이 다 함께 파이팅하자며 잔을 들었고 나도 그제야 콜라가 반쯤 남은 유리잔을 집어 그들의 술잔 가까이 가져갔다.

 

내가 여러 게시판에 올린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의 동영상에 대한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댓글이 아예 없거나, 웃겨, 귀여워, 알람 끄는 내 모습이다ㅋㅋㅋ 같은 반응이 주를 이뤘는데 그나마 ‘필립 K 딕 갤러리’의 댓글이 귀에 담을 만했다.

‘저 기계의 중요한 특징이 정해진 프로세스를 끝낸 후에도 멈추지 않고 원래의 상태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데 그 개념을 확장하면 어떤 특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응하는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상태를 원래의 시점으로 돌려놓은 후 동작을 완료하는 기능으로 발전시킬 수 있어서 어떤 프로그램이나 기계장치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냥 다운되어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스스로 인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다지 아마.’

OFF가 곧 ON이라는 분석이 떠오르는 댓글이다. 한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인데도 댓글에 대한 답글이 여러개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쓸모없는 기계가 아니라는 거?’

‘쓸모있는 녀석이었다니 매력 없네.’

‘세상에 쓸모없는 게 어디 있습니까?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쓸모가 있습니다.’

‘이런 장난감을 두고도 쓸모를 따지나 참 피곤하게들 산다...’

나도 쓸모에 대한 저들의 수다에 끼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나왔다.

 

진호가 ‘하마의 토이박스’에 올린 댓글에 답글이 달렸다. 엿새째 노심초사하다 얻어낸 반응이라 진호는 화들짝 놀라며 반겼지만 작성자는 블로그의 주인이 아니었다.

‘이런!! 당신이 저 기계의 스위치를 눌렀군요. 어쩌나요. 당신 때문에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스위치를 다시 누르면 모두 OFF가 돼버릴 텐데 ㅋㅋㅋㅋ’

진호는 저 답글이 기계를 찾으려는 우리의 시도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 거라는 불길한 예언으로 읽힌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누구나 걸려들 만한 애매한 말로 읽는 이를 오해와 착각으로 유인하는 올해의 운세 같은 문장임을 뻔히 알면서도 내 기분은 흉한 징조에 쉽게 물들었다. 하지만 나는 진호에게 그냥 무시하라고 했다. 그 기계에는 OFF 따위 없고 ON만 두개인 거 알지 않느냐고,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하마의 이웃이 생각 없이 싸지른 조롱일 뿐이라고, 그러니 주인 잃은 토이박스는 그만 잊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길게 이어지던 테이크아웃의 흐름이 뚝 끊겨 사장과 함께 홀과 주방의 뒷정리를 하며 한숨 돌리고 있는데 수학 문제 풀기를 즐기는 『전자회로』의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주문은 사장이 받았다. 오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테이블로 직접 서빙을 하고 싶었지만 까페 운영 방침에 충실한 우리의 사장님께서 그녀에게 메뉴가 나왔다고 목청 높여 알렸다. 사장은 바쁜 시간은 넘겼으니 두시간쯤 외출했다 돌아오겠다며 까페를 빠져나갔다. 나는 혼자 온 남자 손님을 위해 까페라떼 한잔을 만들며 그녀에게 기계 제작을 도와달라고 해도 될지 고민했다. 과연 들어줄까, 바빠서 안 된다고 거절하고 부담을 느껴 까페 출입마저 끊어버리면 낭패인데, 그렇다고 다른 대안도 없고, 이제 기댈 건 그녀뿐인데. 그녀는 여전히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처럼 다부진 모습은 아니었다. 볼펜을 붙든 손은 헐거웠고 시선은 자꾸 바깥으로 달아났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차가운 커피로 붙잡으려 애를 쓰는 눈치였지만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벌써 반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잘됐다 싶어 그녀에게 다가가 혹시 시간 괜찮으시냐고 말을 걸었고,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하자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 때문에 여쭤볼 게 있다고 얼른 덧붙였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10분 정도라면 괜찮다고 했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하마의 토이박스’를 열어서 건넸다. 그녀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자신의 폰으로 네이버에 들어가서 그 블로그를 찾아냈다. 나는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여 ‘하마의 토이박스’로 들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를 구석구석 뜯어보는 모습을 맞은편 의자에 앉아 지켜보았다. 거기 아두이노 보드라는 부품과 코드가 있는데 그걸 어쩌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혼잣말처럼 하소연을 늘어놓았지만 그녀의 관심은 미동도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고요했고 아랫입술과 윗입술은 여물게 닫혀 있었다. 속눈썹이 드리워진 눈길의 끝을 액정 위에 그대로 둔 채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기 주인은 그걸 디지털 회로를 써서 만들었나봐요.”

그녀는 ‘아두이노 코드’가 디지털 회로를 만드는 핵심 도구라며, 컴퓨터, 마이크로컨트롤러, C언어, 논리회로 등등의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했는데, 진호의 추측이 전혀 엉뚱하진 않았다.

“케이블과 부품들을 일일이 직접 연결해서 회로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건 작업도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거든요. 코딩이 훨씬 편하고 깔끔하죠. 이걸 직접 만들 계획이세요?”

“네. 그러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요즘 이게 유행인가요? 여기, 그 기계를 구한다는 댓글도 있어요.”

“아, 그거, 제 친구요. 둘이서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는 중이라.”

“그렇군요. 이게 그렇게 좋으세요?”

“좋다기보다 좀 묘한 부분이 있는 거 같아서요.”

그녀는 빨대의 끝을 깨물어 아메리카노 한모금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그녀에게 도움을 부탁할 적당한 타이밍을 엿보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제가 요즘 수학과외를 하고 있거든요. 고등학생이요. 지금은 학교를 안 다니지만, 그 또래죠. 지난 수업 때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학생에게 그 영상을 보여줬어요. 전에 보여주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요. 별생각 없이, 그냥 재미 삼아서요. 그런데 아이가 그걸 보고는 그러더라고요. 정말 쓸모없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한 반응이네요.”

“그렇죠?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냥 웃어넘겼어야 했는데, 주제에 무슨 대단한 교훈이라도 줄 셈이었는지 아이에게 설교를 늘어놓은 거예요. 잘 봐라, ON이었던 스위치가 OFF로 바뀌어도 기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이 기계의 OFF는 사실은 ON이다, 이 기계에는 OFF가 없다. 그랬더니 애가 살짝 발끈하더라고요. 그게 뭔 상관이냐, 어차피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결국 달라진 것도 없으니 쓸모없는 거 맞지 않느냐.”

요즘 애들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쓴웃음이 학생 탓인지 내가 뱉은 한마디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계속 말했다.

“어린아이가 깊은 생각 없이 한 말이잖아요. 그냥 그러려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 기계의 특성을 시시콜콜 풀어서 설명하고, 그걸 전자공학적으로 응용하면 어떤 유용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지, 정말 열을 내며 한참이나 떠들고 말았거든요.”

그녀는 불편한 기억을 애써 지우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말이 끝나자 애가 그래요. 돌을 쌓아 돌다리를 만들어도 돌은 그냥 돌일 뿐이라고, 돌이 다리가 될 수는 없다고.”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 미미가 등장했다. 선풍기 앞에 주저앉은 미미. 곁에서 그걸 바라보는 진호. 좌절에 빠진 영혼을 마주하고 조그만 용기라도 주려 안간힘을 쓰는 과외 선생님에게 나는 어설픈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럴 겁니다. 그 나이 때는 보통 그러잖아요. 나중에, 언젠가 깨닫겠죠. 선생님이 얼마나 귀중한 말씀을 하셨는지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무의미하고 영혼 없는 말들이 내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다니. 이런 구태의연한 문장들이 내 머릿속에 있었다니. 너무 창피해서, 마지막 말은 차마 뱉지 못한 하품처럼 입안에 가두었다 몰래 삼키고 말았다. 그녀는 얼음이 녹아 묽어진 커피를 빨대로 남김없이 마셨고 유리컵에는 얼음 조각들만 남았다. 그녀의 입에서 커피향이 밴 차가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실은요. 그 아이가 좀 심각해요. 자기가 정말 쓸모없는 존재라고 굳게 믿고 있거든요. 어설픈 과외선생의 충고 몇마디로 힘을 얻고 그럴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에요. ON이니 OFF니 하는 분석 따위 그 아이에게는 공허한 이론에 불과하죠. 애초에 그런 영상을 보여준 제 잘못이 커요. 아이는 그 기계와 자신을 동일시했을 테니까요.”

동일시? 그럴지도 모른다. 때로는 선풍기가 거울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그녀의 낙담에 동의하듯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입을 닫았다. 그녀도 얼음 한조각을 입에 물었다. 그것을 천천히 녹이고 깨물어서 물처럼 넘길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털어놓았다.

“그래도 덕분에 숨통이 좀 트였어요. 오늘 그 아이를 봐야 하거든요. 걱정도 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한결 괜찮아졌어요. 감사해요.”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겨우 저었다. 그녀는 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내가 아무리 둔감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의자에서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시간을 너무 뺏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난 줄 몰랐다며 갈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정작 하려던 말은 꺼내지도 못했는데, 또 들르겠다는 인사도 없이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레일라를 떠났다.

 

‘필립 K 딕 갤러리’에 올린 영상에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사실 저 기계는 미국이 현재 네바다 사막의 지하에 보관 중인 외계비행체에 설치된 성간 이동장치의 주요 부품 중 하나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며, 미 국방부 산하의 우주안보국에서는 저것의 정체에 관한 정보가 과도하게 유포되는 걸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 그게 저 기계를 구하기 힘든 이유이고.’

갤의 성격에 맞는 적절한 농담이다. 저걸 진지하게 받아들일 갤러는 없다. 거긴 그래도 되는 곳이고 그러라고 만들어진 곳이니까. 나도 필립 K 딕의 영혼을 빌려 답글을 적었다.

‘성간 이동이라는 과중한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가 싫어서 달아난 거임, 그 녀석 스스로.’

 

진호에게 좋은 소식 있느냐고 카톡으로 물었더니 아직 모르겠다는 답이 왔다. ‘없다’가 아니라 ‘모르겠다’라고? 뭔가 진행 중이라는 뜻일까? 재차 다그쳐 물으니 지금은 뭐라 말할 단계가 아니라며 기다려보라고 했다. 만드는 중이냐는 질문에는 아예 답이 없다. 그런데 다음 날 영업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까페 레일라로 진호와 미미가 함께 들이닥쳤다. 그들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내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내가 하던 일을 멈추지 않자 미미가 손에 뭔가를 쥐고 보란 듯이 팔을 위로 길게 뻗었다. 내 눈에 들어온 그 물건의 생김새는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였다. 나는 머그의 물기를 닦던 마른 행주를 집어던지고 그들에게 갔다. 테이블 위에 그것이 있었다. 나는 그것의 토글스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미미가 날렵한 동작으로 나의 마수에서 녀석을 구해냈다.

“안 돼. 잠깐 기다려.”

미미는 기어코 왕관을 손에 넣은 여왕처럼 도도한 눈빛으로 나를 꾸짖었다.

“서두르지 마. 순서를 지키라고.”

“순서라니?”

“이걸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구했는데. 그렇게 쉽게 내줄 수는 없지.”

진호도 미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등을 펴고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러자 미미가 싱긋 웃더니 헛기침을 두번 하고는 내게 물었다.

“너는 창조론이야, 진화론이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바로 이 놀라운 존재를 향해 펼쳐질 거대한 여정의 프롤로그야. 그러니까 답변 부탁드려요, 아저씨.”

나는 농담기를 걷어내야만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진화론이지.”

“땡! 오답입니다. 정답은 창조론이었습니다.”

“뭐야? 왜 그래?”

“내가 말하는 창조론은 신께서 일주일 동안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그런 시시한 주장이 아니야. 들어봐. 우리가 우주의 기원을 얘기할 때 늘 등장하는 게 있지?”

“빅뱅?”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데 빅뱅이 일어나려면 그전에 뭔가 있어야 하잖아. 먼지나 가스, 아니면 원시 상태의 미립자라든가. 뭐라도 있어야 뱅 할 테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은 문학적 수사에 불과하거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무는 그 상태로 계속 무일 뿐. 그러니까 빅뱅 이전에 무언가 있어야 하고, 그 무엇이 존재하려면 또 그전에 무언가 있어야 하지. 그런 식으로 끝도 없이 무한광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우주의 시작점에 도달할 텐데, 그곳에도 반드시 무언가 있어야 해.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의 주장에 심각한 오류는 없었으니까.

“그럼 그 시초의 무언가는 어디서 왔을까?”

미미는 대답을 기다리듯 내 눈을 응시했다. 미미가 원하는 답은 뻔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미미의 이 장대한 스토리가 과연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로 어떻게 이어질지 오직 그것만 궁금했다. 미미는 내가 예상했던 답을 꺼냈다.

“바로 그때 신께서 등장하시는 거야.”

미미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 내 눈앞에 오른손 검지를 펴서 들이댔다.

“신께서는 마침내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당신의 손가락을 사용하셨어. 이렇게.”

미미의 검지가 그것의 은빛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하지만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고 안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없었다. 미미는 말했다.

“신이 우주의 탄생에 관여한 시간은 찰나였어. 그 순간부터 우주라는 상자 안에 설치된 장치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신은 삼라만상이 저절로 되어가도록 그냥 놔두셨지. 그후 측정이 불가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시간의 차원을 지나 현재에 이르렀고, 인간들은 그 장치의 움직임에 진화니 과학이니 신의 은총이니 하는 이름을 붙인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기계는 작동 중이고.”

나는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미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막대는 언제 밖으로 나와?”

미미는 대답했다.

“그건 아무도 몰라. 1억광년 후가 될지, 천년 후일지, 아니면 바로 내일일지.”

나는 손을 들어 눈앞에 놓인 그것을 가리켰다.

“아니. 이거. 이 안에서 막대가 언제 나오냐고.”

“정말이지 인간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문제라니까.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봐.”

미미는 그것을 집어 내게 내밀었고 나의 손끝은 저절로 스위치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미미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스위치는 인간의 몫이 아니야. 윗부분을 열고 안에 뭐가 있는지 보라고.”

나는 그것의 윗면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스위치와 연결된 전선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스위치를 누를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은, 다만 껍데기뿐인 나무상자였다. 내가 손을 떼자 경첩의 힘에 의해 그것은 닫혔다. 미미가 말했다.

“보이는 건 빛과 어둠이 뒤섞인 혼돈뿐이지?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거야. 언젠가 때가 되면 기계장치가 우리 앞에 그 존재를 드러내고 마침내 스위치를 누를 거야. 그럼 우주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지.”

“원점?”

“신께서 스위치를 누르기 전의 상태. 뭔지 알지? 어쩔 수 없어. 회로가 그렇게 설계되었고, 그게 우주의 섭리이며 신의 뜻이니까.”

미미는 상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진호에게 물었다.

“이게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라고?”

하지만 대답은 미미가 했다.

“아니. 이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계야.”

진호가 덧붙였다.

“전우주를 통틀어 이보다 중요한 쓸모를 지닌 기계는 없지.”

다시 미미가 말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라니. 이름조차 완벽해. 존재를 감추면서 존재감을 한껏 뽐내잖아.”

나는 진호와 미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야?”

미미가 고개를 돌려 남자친구를 향해 반짝이는 눈빛을 건네자 그녀의 남자친구가 말했다.

“하마의 토이박스에 달린 응답에서 신의 계시를 읽었어. 그걸 받아 적었고. 그뿐이야.”

미미는 말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신과 우주와 인간의 드라마가 머릿속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고, 이걸 소설로 쓸 거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이런 걸 안 쓰면 뭘 쓰느냐고. 진호도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저 기계는 너의 것이니 네 뜻대로 마음껏 가지고 놀라고, 네가 원하면 뭐든 돕겠다고. 그들은 앞으로 만들어갈 기계의 세계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내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내 관심은 온통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를 완벽하게 연기한 상자에 쏠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윗면을 열었다. 아무리 노려봐도 회로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봐도 신기하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호가 물었다.

“왜? 맘에 안 들어? 별로야?”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어.”

 

레종 프렌치블랙 한갑을 꺼내놓았더니, 손님이 그거 아니라며 그냥 블랙을 달라 하지 않았느냐고 투덜거렸다. 나는 그에게 사과하고 레종 블랙을 내주었다. 다행히 손님은 별 뒷말 없이 담배를 들고 나갔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미미가 내게 보여준 기계의 혼돈은 마치 극도로 활성화된 신경전달물질처럼 나의 좌뇌와 우뇌를 자극하며 돌아다녔다. 스위치를 누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세상이? 이 우주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책임한 발상이고 허무맹랑한 농담이었다. 신과 우주가 등장하면 무조건 그럴싸해 보일 거라 믿는 걸까? 나는 편의점 바깥으로 나가 새벽 2시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성처럼 치솟은 아파트들 위로 반쯤 이지러진 달과 몇개의 별빛이 보였다. 저 별들은 수십억광년 전에 존재했던 것이겠지. 아직도 저곳에 있을까? 이미 사라졌을지도. 어쩌면 수명이 다해 버려진 인공위성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런 추측은 무의미하다. 진실이 무엇이든 우리는 저 별빛을 바라보며 약속을 하고 꿈을 꾸고 상상을 한다. 미미도 그러지 않았을까? 진호는 그 조그만 상자 안을 복잡한 회로 대신 신비한 서사로 채워 하나의 사물이라는 족쇄와 ON/OFF의 논리에 갇혀 있던 기계를 탈출시켜 저 머나먼 우주로 쏘아 올렸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는 밤하늘에서 빛나며 지상을 비추는 은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걸 그렇게 이해할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빈 상자 하나를 툭 던져놓고 그 안에 숨겨진 상징과 함의를 알아채길 바라는 건 과도한 지적 오만이 아닐까? 어쩌면 여자친구에게나 통하는 공허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그럼, 그녀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선생님. 그녀는 어떨까? 진호의 상상력이 낳은 그 기계의 변종을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편의점 근무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베란다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얇은 합판을 자르고 다이소에서 구입한 경첩과 토글스위치를 조립해서 상자를 만들었다. 상자의 내부에 감춰둘 우주의 기원과 인류의 미래는 일부 단어와 문장을 수정하고 보완해서 다듬었고, 도중에 그녀가 보일 반응을 예측해서 그에 맞는 적절한 대응도 준비했으며, 의미와 느낌이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발음과 어조를 손질하며 소리 내어 말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그녀를 기다렸다.

 

나흘이 지났다. 그리고 또 닷새가 지났다. 그녀는 까페 레일라에 오지 않았다. 과외를 그만둔 걸까? 레일라가 싫어졌나?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지금 그것은 내 책상 위에 있다. 나는 매일 스위치를 누른다. 아침에 자기 전에 한번, 오후에 멍 때리다 문득 또 한번.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언제가 ON이고 언제가 OFF인지는 알 수 없다. 둘 다 아닐지도 모른다. 스위치를 아무리 눌러도 변화는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녀석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가끔 윗면을 열면 안에서 숨죽이고 있는 어둠의 기운만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