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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권민경 權旼暻
1982년 서울 출생.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등이 있음.
nunkiforu@naver.com
꼬뮌이 뭐예요?
질문을 받았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한 건 그 단어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역사책 철학책 외에 젊은이는 잘 안 쓰는 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맥락상 꼬뮤니스트에 관해 묻는 것 같았으나 정말 그럴까? 괜히 이상한 대답을 해서 분위기 싸하게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꼬뮤니스트들이 죽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K님은 NL이었나요 PD였나요? 동년배 문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는 밀거래하듯 서로의 정체를 밝혔다. 좋은 거 있어요, 좋은 거.
내가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여러가지였겠지만, 그 단어가 좀 구리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동년배들은 NL을 찾지 않지만 PD적 속성은 내장그래픽카드처럼 내재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거의 사어가 된 단어들.
이제 와 그걸 쓰면 헐랭, 오나전 짱, 아햏햏, 캡숑을 쓰는 사람처럼 느껴질까봐. 그건 좀 싫었다.
사람의 사상과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다니. 그런 속된 말들과 같은 선상에 놓다니. 어찌 그런 일을 행하는가. 당신은 악마인가, 부르주아지인가?
아, 나도 부르주아이고 싶었는데…… 망했다. 행색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어쨌든
나는 누군가를 모욕할 마음이 없고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때리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내가 하루하루 동물을 해치고 남의 노동을 착취하며 삶을 연명하듯, 시를 쓴다는 행위가 쉬이 대상에 대한 모욕이 될 뿐.
말과 언어는 빠르게 흘러가고 그건 때론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세상은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그것이 곧 좋아진다는 뜻은 아니라서
때론 거인이 되었다가 아이만 해지기도 한다.
사회는 왜곡, 삶을 세상을 곡해
중세의 그림처럼 얼굴이며 몸매며 어른과 똑같은데 크기만 작은 미니어처
어린이의 이상한 모습
그렇지만 이상하다는 건 내 망막에 맺힌 상과 다르다는 뜻일 뿐 진짜 이상한 게 맞는지?
자폐,라는 시는 새 제목을 찾지 못해 버렸다. 「귀여운 육손이」를 누군가 언급할 때 얼굴이 빨개진다. 당사자성을 띤다 착각하며 내가 행해온 폭력들과
이제 세상이 변했고 자신이 사어가 된 것을 모르는 선배들과 폭력과 사어 사이에서 핀치에 몰리는 내가 있다.
마우스피스도 안 끼고 헤드기어도 없는데.
챔피언이 꿈꾸던 헝그리정신은 없다. 아니, 있긴 있는데 다르게 있다.
왜냐하면 여기는 다이어트 복싱장.
꼬뮌이 뭐예요? 그거 돈 돼요?
‘이놈의 집구석’과 같은 톤으로 읽어야 하는 ‘이놈의 사회’.
다시 말하지만 나도 자본가이고 싶었다.
장마
이맘땐 물속에서 사는 것 같아요
우리는 한 어항에 거주하지만 좀 내외하는 편이지요
연일 내리는 비
오래된 빵집의 어항 앞에서 이야기했다
수초 뒤엔 작은 알처럼 물방울
물방울
그런 예감을 받았을까 촌스러운 이름이 먼 훗날 가장 힙한 것으로 여겨질 거란 예언 있었을까 남산에서부터 두 팔에 위풍당당 석판을 끼고 내려왔을까 모세처럼
에스컬레이터도 없던 시절부터 비탈길에선 늘 발가락이 쏠리는 기분
비 오는 평일 태극당엔 사람이 적당히 많고
요샌 인쇄도 힘들어요 종이가 울고 잉크가 번지고 제본은 또 어떻고요
이런 날엔 제빵도 힘들 것 같다 생각하며 말했다
축축한 것 말고 촉촉한 것 있잖아요 감정을 가득 담았지만 남을 겁박하지 않는 스며듦 잘 구운 빵처럼 맛있는 진심
어렵다 어려워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요
그러니까 어항 안 짙푸른 물 그리고 물속에 맺히는 물방울을 보며
최선을 다해 울지 않으려 한다 종이가 울어도
내 안에 뭔가 잔뜩 맺혀도
우리 이번 계절 최선을 다해
건강합시다
어떻게 그런 결말이 나와요?
웃으며 말하는 사람에게 답했다
식중독 조심하시고 더 오래 만나요
미래의 예언보다 현재의 잔소리가 중요하기도
나는 인터넷 쇼핑으로 편수 냄비를 샀다
고양이의 식기를 삶을 것이다
물이 팔팔 끓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