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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연구모임 리셋 『검사의 탄생』, 윌북 2024

검찰개혁 시즌 2, 이번엔 성공해야 한다

 

 

심인보 沈寅輔

뉴스타파 기자 inb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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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기자로서 20년을 살다보니 경험에서 비롯된 소박한 통찰을 갖게 되었다. 사건의 말단 하류에서 풍기는 구린내의 기원을 쫓아 올라가보면 그 상류에 대개 검찰이라는 오염원이 있다는 것. 경험이 반복되다보니 그 오염원 자체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깨달은 뒤 나는 검찰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으로 기자생활의 지난 몇년을 보냈다. 특수부 검사들과 전관 변호사, 거물 금융인이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며 자본시장을 교란시키고 개미들의 피를 빨아들여 거대한 부를 쌓은 과정을 3년에 걸쳐 폭로했고, 검찰총장의 아내가 주가조작에 연루되었으나 아무런 조사도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4년에 걸쳐 보도했다. 그사이 그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되었고 내가 속한 언론사는 검사 10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의 수사를 받게 됐다.

검찰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 한창 몰두할 즈음, SNS에서 어느 평론가의 글을 봤다. ‘검찰개혁은 최상층 엘리트 사이 권력투쟁의 규칙에 관한 샅바싸움일 뿐, 평범한 다수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가 아니다. 따라서 검찰개혁은 진짜 문제를 은폐하는 가짜 문제다’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아팠다. 맞는 말인 것 같아서.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내란을 일으켜 탄핵소추되었고,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2년 반 동안 ‘매드 킹’의 통치를 뒷받침해온 검찰의 해체를 최상위의 개혁과제로 외치고 있다.

이 책 『검사의 탄생』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쓰여 있다. “검찰개혁은 소수의 전문가나 정치인 또는 검사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합니다. 검찰을 포함한 형사사법절차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로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11면) 검찰권력은 때로 면역체계에 비유되는데, 면역체계에 과도한 역할이 부여되는 과잉면역 상태가 되면 자기 몸을 거꾸로 공격하게 된다. 마치 암세포와 같이 입법부, 사법부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제 그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검사의 탄생』은 제목에 걸맞게 대한민국 검찰의 과도한 권한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적하는데, 그 시작점은 194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강제 처분권은 검사만이 행사하도록 바뀌었고, 경찰은 검사의 명령에 의해서만 처분이 가능해졌다. 1945년 해방 직후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사법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당연했다.”(63면) 그렇다, 무려 80년 전부터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일까. 해방 직후 개혁을 가로막은 것은 무엇보다 경찰에 대한 불신이었다. 일제 순사로 상징되는 경찰의 권한이 미군정기와 이승만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오히려 강화되었다. ‘검찰 파쇼’보다는 ‘경찰 파쇼’에 대한 우려가 훨씬 더 컸던 시기다. 1954년 만들어진 형사소송법은 검찰에게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기소권을 모두 부여했는데, 이런 체제는 2020년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수사대상을 이른바 ‘6대 범죄’로 제한하는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이 있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군사독재 시절 검찰은 독재정권의 충실한 하수인이었을 뿐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따라서 검찰만을 떼어내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할 필요도 없었다(물론 그 시기에도 이들은 권력에 줄 서 호의호식했지만). 검찰개혁이 다시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것은 문민정부 10년을 경험하고 난 뒤인 노무현정부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잘못 생각했다. “대통령이 검찰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면 검찰이 정상화할 것이라고 기대”(183면)한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은 크게 ‘검찰통제론’과 ‘검찰중립화론’으로 나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중립화론’에 치우쳤다고 볼 수 있다. 검찰개혁에 실패한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이명박정부에서 사실상 검찰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됐다.

이명박·박근혜 두 보수정부 시절 10년 동안 검찰의 오만함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노무현정부의 검찰개혁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던 경험이 자신감으로 축적됐다. 이 시기 검찰은 정권 초기에는 권력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수행해 대통령의 정적을 죽이고, 정권 말기에는 이른바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내세워 주인을 물어 죽이는 행태를 패턴으로 정립했다. 개는 개이되 주인도 겁이 나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개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재인은 누구보다 검찰의 폐해를 절절하게 겪은 사람이다. 절친한 친구이자 모시던 대통령을 검찰 손에 잃었기 때문이다. 2011년 공저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오월의봄)에서 문재인은 ‘검찰중립화론’에서 ‘검찰통제론’으로 크게 나아간 인식을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시점에서 그보다 나은 검찰개혁 적임자는 없어 보였고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정부이니 개혁의 동력도 전혀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과연 문재인정부는 기존에 검찰에 집중되어 있던 권한들을 폐지·제한하며 공수처를 설치하는 등 일견 눈부신 성과를 냈으나, 질적으로 보면 개혁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에 저항하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변신해 헌정사상 최초의 검찰 출신 대통령이 됐고, 역대 유례없는 ‘검찰공화국’의 수립을 기도하는 데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의 미진한 개혁은 바로 그 미진함으로 인해 검찰개혁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가장 순수한 검찰주의자가 그 모습 그대로 정치의 전면에 나설 때 얼마나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온 국민이 똑똑하게 목도할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이제 기소와 수사의 분리, 즉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박탈은 가장 낮은 단계의 개혁조치로 기정사실화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일단 검찰청을 해체하고 보자는 의견까지 힘을 얻고 있다.

『검사의 탄생』의 출간시점(2024.12.23)은 그래서 참으로 알맞다. 비상계엄 해제 및 탄핵소추 이후, 대통령의 충견으로 부역해온 검찰은 오래된 생존 방법인 ‘정권말 살권수’를 시전하기 위해 재빠르게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민들이 속지 않았다. 내란 수사에서 검찰이 즉각 손을 떼야 한다는 뉴스타파 등의 이슈 제기 이후 시민과 정치권이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 검찰은 어쩔 수 없이 수사를 포기했다. 윤석열에 대한 수사는 문재인정부에서 만들어진 두 기관, 공수처와 국수본이 맡았다. 검찰이 ‘나대지’ 못하게 된 것만으로도 검찰개혁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얼마나 높아진 상태인지, 그리고 시민들이 얼마나 정치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 7장의 제목처럼 “검찰개혁은 한판 승부가 아니다”. 이 책 7장은 검찰개혁 주제에 관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들(헌법학자 한상희, 형사법학자 오병두, 변호사 백민·백승헌·전수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재근, 한겨레 논설위원 이춘재, 한겨레 기자 정은주)이 모여 난상토론을 하는 방식인데, 이들조차 검찰개혁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바야흐로 검찰개혁의 대의는 높지만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할 지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시민들을 위한 문답식 참고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려 77개나 되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친절하게 서술해놓았다. 몇개의 질문들만 봐도 책을 읽고 싶어질 것이다. “검찰개혁을 했다는데, 왜 검찰의 위세는 더 커진 것 같을까?” “다른 나라 검찰들은 어떨까?” “언론은 왜 검찰 손에 놀아날까?” “왜 우리는 아직도 검찰개혁을 하지 못했을까?”

검찰 출신 대통령이 파면되고 검찰이 개혁의 도마 위에 놓이게 되면 대체 칼질을 어떤 방향으로 어디까지 해야 할지를 두고 첨예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다른 이는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가며 조금 더 천천히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때를 위해 이 책 한권을 손에 쥐고 질문과 답변을 음미하며 자신만의 답을 다듬어가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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