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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도상 鄭道相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1987년 단편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친구는 멀리 갔어도』, 장편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 등이 있음. sknk@lycos.co.kr
봄 실상사
천왕문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여전히 눈에 덮여 있다.
약수암으로 올라갈까, 바로 앞의 논둑에서 산책을 할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석장승 앞을 지나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실상사로 오고 있는 게 보인다. 햇살에 하얀 옷이 눈부시다.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옷자락이며 어깨 부근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로 보아 여자가 분명하다. 나는 괜히 여자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천왕문 쪽으로 다시 들어간다.
바퀴가 돈다.
가운데가 텅 빈 동그라미 두 개가 길 위에서 천천히 굴러가고 있다. 동그라미의 텅 빈 중심에 감춰진 바퀴살에 봄 햇살이 잘게 부서진다. 여자는 천천히 바퀴를 굴리며 실상사를 향해 오고 있다. 여자가 경쾌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검은 머리가 출렁거린다. 여자는 재활용쓰레기 수거장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실상사로 들어간다. 여자의 자태는 봄물이 오르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나긋나긋하다. 나는 여자의 자태에 넋을 빼앗긴다. 여자는 연못가의 산수유 아래를 걷다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찰나, 내 가슴이 서늘해진다.
‘운서(雲西).’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에 은밀히 침잠해 있던 그 이름. 온전히 잊힌 줄 알았던 이름이 슬쩍 돌아본 여자의 얼굴에서 매화처럼 생생하다. 나는 여자를 향해 두어 걸음 다가간다. 그러다 이내 걸음을 멈춘다. 스님들과 나의 관계를 잘 아는 운서가 실상사에 올 리가 없다. 세상에 비슷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발길을 돌려 실상사 앞 들판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논둑에는 보라색 제비꽃, 달래, 냉이, 씀바귀며 여린 쑥이 한창이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쑥을 캐 입속에 넣는다.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쑥맛이 혀끝을 기분좋게 자극한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햇살은 따사로웠다. 나는 논둑에 가만히 드러눕는다. 하늘을 바라보며 온몸의 힘을 빼고, 아무 생각도 없이 편안하고 평화롭게 쉬고 싶었다.
그제 오후, 나는 자신의 무능력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평화통일운동협의회에서 사무처장 직책을 갖고 있던 나는, 교통비에 불과한 간사 세 명의 활동비를 더이상 지급할 능력이 없는 현실 앞에서 한없이 절망했다. 더구나 조직부장인 재덕이는 첫아기의 출산까지 앞두고 있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끝내 돈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나도 지쳤어. 집에서 쉬고 싶어. 애들 숙제도 봐주면서 보통의 주부처럼 살고 싶다고!”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아내의 절규 앞에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수화기만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길 뿐이었다. 아내는 학원에서 언어영역을 가르치고 있다. 결혼하자마자 시작한 학원강사 일을 지금까지 줄기차게 하고 있다. 통일운동을 한답시고 생활비를 거의 한푼도 내놓지 못하는 남편 만나 고생만 직사하게 하고 있는 아내한테 나는 또 손을 벌렸던 것이다.
재덕이는 외교학과 출신인데다 동시통역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대기업에 취직할 능력이 충분한데도 통일운동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있는 성실한 후배였다. 재덕의 아내도 통일운동을 하다가 결혼한 뒤에는 학습지 선생으로 생활을 꾸리고 있었다. 아내의 출산을 앞둔 재덕은 궁핍한 생활에 대해 내게 입도 벙긋하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성실하게 운동을 하면 할수록 생활은 곤궁해지는 것을……
“그럼 어떡하냐? 병원 갈 돈도 없다는데.”
아내한테 애원했다. 내가 붙잡고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내밖에 없었다. 아내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재덕은 빈손으로 아기를 맞이할 터였다. 재덕이나 그의 아내나 둘 다 냉골방의 짚더미 위에서 아이를 낳을지언정 친정이나 본가에 손을 벌릴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자존심이었다.
“그럼 어떡해? 애는 낳아야지. 좀 봐주라 응?”
“아유, 못 살아. 불러!”
나는 통장의 계좌번호를 더듬더듬 불렀다. 아내는 카드 세 개의 현금써비스를 모두 받아 내게 송금했다. 은행의 현금입출금기에서 그 돈을 찾는데 머리 꼭대기에서 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돈을 찾아 재덕의 활동비라며 사무차장한테 넘겨주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어디로 갈까? 아내의 부탁대로라면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의 숙제를 봐줘야 했지만, 화가 나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플립을 열고 전화를 받으니, 연체대금을 갚으라는 카드사의 독촉이었다. 작년 추석에 간사들의 떡값을 마련하느라 현금써비스를 받고 그것도 모자라 카드깡까지 했는데 그 대금을 못 갚고 있었다. 국회의원인 이사장은 당시 돌김 한 세트를 선물이랍시고 보내왔다. 김을 받은 간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데 또 울렸다. 받지 않고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은 마냥 울렸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그치는가 싶더니 또 울렸다. 그러기를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 잠시 후에는 ‘딩동’ 하며 메씨지가 도착했다는 신호가 신경을 긁었다. 신경이 바짝바짝 곤두섰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꾸고 주머니에 넣었다. 넣자마자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참을 수가 없어진 나는 핸드폰을 아스팔트 위에다 내팽개쳐버렸다. 핸드폰은 박살이 났고 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실상사로 내려왔다.
“이랴, 이랴! 워〜, 워〜! 어허, 어디로 가?!”
호된 고함소리에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려보니 산기슭에서 좀 떨어진 논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부가 보인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쪽으로 간다. 참새 한마리가 포르르 날아간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농부와 소를 구경한다. 그런데 소가 말을 듣지 않고 옆으로 새려고만 든다. 화가 난 농부가 회초리로 등짝을 후려친다. 그래도 소는 쟁기질할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으로만 내뺀다. 소의 생김을 보니 아직 황소가 아니었다. 엉덩이에 ‘초보운전’이라는 명패를 붙여야 어울릴 것 같다. 농부는 고삐를 놓고 담배를 꺼내 문다. 그 틈에 소는 논둑으로 달려가 쑥을 뜯는다. 농부는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그저 허허 웃고 만다.
“너도 참 징허다. 으찌 그리 뺑돌뺑돌 말을 안 들어? 지발 부탁잉게 요참엔 끝을 보자잉. 요거 한배미 가는 것이 고로콤 싫으냐?”
얼굴 전체에 구릿빛 대지(大地)의 그늘이 촘촘하게 새겨진 농부가 소를 향해 조곤조곤 타이른다. 소는 농부의 말이 듣기 싫은지 다른 논둑으로 가버린다. 농부의 너털웃음이 담배연기에 실려 허공으로 사라진다.
“일허기가 징글징글헌갑시. 나도 그타 이놈아〜 사는 게…… 사는 거시제.”
농부의 푸념이 가시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나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다. 어디로 가나? 실상사로 돌아가 보광전에 앉아 있을까 하다가 논둑 옆의 도랑을 건너 산으로 올라간다. 산에는 소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 나도밤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낮은 곳에 있는 진달래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산에는 빈 벌통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몇걸음 더 나아가니 칡넝쿨이 나도밤나무를 친친 감고 있다. 칡넝쿨에 온몸을 감긴 나도밤나무는 바삭하게 메말라 있다. 칡넝쿨을 잘라줄까 하다가 그만 돌아선다. 나도밤나무를 살리기 위해 칡넝쿨을 자를 자격이 내겐 없다. 칡넝쿨은 칡넝쿨의 본성대로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 몇걸음 옮기지 않아 고개 돌려 칡넝쿨에 휘감긴 나도밤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시 가슴이 서늘해진다. ‘사는 게…… 사는 거시제’라는 농부의 말이 ‘사[生]는 것은 사[死]는 것이다’로 바뀌어 명치끝을 아프게 찌른다.
나도밤나무의 메마른 가지를 바람이 살짝 건드리고 지나간다. ‘나도밤나무라, 나도밤나무……라’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산에서 도랑으로 내려온다. 가재라도 있을까 싶어 유심히 물속을 들여다보다가 화들짝 놀란다. 도랑의 물 표면에는 칡넝쿨에 친친 감긴 나도밤나무가 또렷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그때 산기슭에서 참개구리 한마리가 도랑 속으로 뛰어든다. 물결이 일고, 나도밤나무의 형상은 사라진다.
생태(生態)뒷간을 막 지나가는데 도법스님이 손수레에다 썩은 나무를 싣고 약사전 쪽에서 내려오고 있다. 하는 일도 없이 밥이나 축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손수레를 민다. 도법스님은 손수레를 화엄학림 앞의 작은 텃밭으로 끌고 간다.
“이게 내 놀이터야.”
도법스님은 텃밭에다 썩은 나무를 내려놓는다. 텃밭에는 썩은 나무가 여기저기 쌓여 있다. 도법스님과 나는 손수레에서 내린 썩은 나무를 텃밭에다 골고루 펼쳐놓는다.
“나무가 죽으면 썩고, 썩은 나무는 거름이 돼 땅을 살찌우고, 땅은 새싹을 키워.”
나는 빈 손수레를 끌고 밭에서 나와 약사전 쪽으로 방향을 튼다.
“다 했어. 거기 둬. 정처사 차나 한잔 하지.”
목에 감고 있던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도법스님이 성큼 밭에서 나온다. 나는 손수레에서 손을 뗀다. 도법스님이 손수레를 잡는다. 나는 민망해 얼른 손수레를 빼앗는다.
“다 했다니까.”
“그런데요?”
“갖다두려고.”
“제가 갖다두께요.”
“그래 그럼. 조오기 뒷간 뒤에 창고 있지? 거기야.”
“예.”
“두고 방으로 와.”
“예.”
나는 손수레를 끌고 생태뒷간 뒤에 있는 창고로 간다. 재활용쓰레기 수거장 옆의 창고에 손수레를 밀어넣고 돌아서는데, 아까 하얀 옷의 여자가 타고 온 자전거가 보인다. 윤이 반짝반짝 흐르는 새 자전거다. 나는 손으로 페달을 돌려본다. 멈춰 있던 바퀴가 돌기 시작한다. 나는 페달을 힘차게 돌리고 손을 놓는다. 허공에 걸린 바퀴가 쌩쌩 돌아간다.
페달을 놓고 돌아서서 요사채로 들어가는데 문득 매화가 눈에 띈다. 왜 아까는 못 보았을까? 하얀 꽃이 활짝 핀 것을 보니 어제도 피었을 것 같은데…… 매화에서 눈을 떼 연못가의 산수유나무를 본다. 산수유나무가 온통 노랗다.
그때 노란 산수유 틈으로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지나간다. 덜커덩, 가슴이 내려앉는다. 정말 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산수유 가지를 벌리고 그 여자를 본다. 여자는 뒷짐을 지고 종루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얼굴을 정면에서 보면 좋으련만. 도법스님이 기다리고 있는 화엄학림으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다. 도법스님을 기다리게 해서 죄송스럽지만 일단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고개를 되돌린다.
아니〜? 눈을 의심했다. 찰나의 순간에 여자는 종루 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연못가로 뛰어나가 두리번거렸지만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재활용쓰레기 수거장으로 뛰어갔지만 여자는 없다. 자전거도 없어졌나 싶어 봤지만 바퀴는 저 홀로 돌아가고 있다. 브레이크를 잡자 끼이익, 소리를 내며 바퀴가 돌기를 멈춘다.
“왜 이렇게 늦었어?”
도법스님이 찻잔에다 더운물을 채우면서 묻는다.
“매화랑 산수유가 예뻐서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답이 궁색하다. 도법스님이 찻잔과 수반을 내민다. 수반에는 매화가 담겨 있다.
“매화차야. 세 송이쯤 넣으면 딱 좋아.”
도법스님이 먼저 매화를 찻잔에다 띄운다. 나도 세 송이를 찻잔에다 띄운다.
“곧장 마셔. 오래 두면 매화가 시들어.”
도법스님이 시키는 대로 매화차를 한모금 마시곤 혀끝으로 굴린다. 향기가 은은하게 온몸으로 퍼진다.
“정말 좋은데요.”
“요샌 어때?”
“그냥저냥요.”
“많이 지쳐 보이는데?”
“많이는 아니구요, 조금요.”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속내를 알았는지 도법스님은 더 묻지 않고 내 앞의 찻잔에 더운물을 채워준다. 나는 찻잔 속에 담긴 매화를 들여다본다. 그 여자, 자전거를 타고 온 그 여자 얼굴이 매화 속에서 떠오른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마음이 뜨거워진다. 나는 매화차를 후루룩 마시고 일어선다. 방으로 돌아가 반야심경을 필사하며 뜨거워지는 마음을 식히고 싶다.
도법스님께 인사하고 방에서 나온다. 화엄학당 앞에 피어 있는 매화가 내 발길을 잡아끈다. 방으로 가야 하는데 하면서 그 여자 생각을 하며 매화나무로 간다. 잎이 돋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워올린 매화가 쌀쌀한 바람속에서도 자태를 잃지 않고 고고하다. 매화를 바라보며 운서를 생각하고 있는데, 아련하게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아무도 없다.
지심귀명례…… 이 목숨 바쳐 귀의하며 예배드리옵니다.
환청인가? 그렇지만 무엇에 귀의하고 누구에게 예배를 드린단 말인가? 실상사에 와 있지만 아직까지 부처님께 칠정례는커녕 오체투지 삼배도 올리지 않았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도 믿지 않는다. 나는 매화를 따서 입안에 쑤셔넣는다. 운서의 얼굴이 구겨져 사라진다. 매화를 꾹꾹 씹는다.
함박눈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스물일곱살 겨울, 12월 24일 오후에 나는 독방에 갇혀 얼어붙은 창살을 잡고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미루나무 마른 가지에 속절없이 쌓이고 있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운서를 생각했다.
“있잖아……”
일주일 전, 면회실 유리창의 저편에 서서 운서가 어두운 얼굴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벌써 세번째의 ‘있잖아’였다.
“무슨 일 있어?”
유리창의 구멍에다 입을 대고 내가 말했다.
“있잖아……”
운서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괜찮아, 말해.”
운서의 눈물에 나도 모르게 풍덩 빠진다. 운서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창살과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었다.
“병원에 다녀왔는데, 삼개월이래.”
“………”
갑자기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일년이 넘는 긴 수배기간 동안 내가 운서를 만난 것은 딱 세 번이었다. 형사들은 언제나 운서를 미행했고, 심지어는 운서의 어머니도 감시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운서가 요행히도 형사들을 따돌리고 공단 근처의 내 자취방으로 왔을 때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위장취업을 하고 있었다.
“낳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나, 스물한살이고 삼학년이야. 알지?”
“응.”
“낳을 수 없어.”
“그럼?”
운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나를 만나 사랑의 달콤함보다 씁쓸함을 먼저 알아버린 운서를 위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초조하게 운서의 대답을 기다렸다.
“……수술할 거야.”
아주 힘겹게 운서가 입을 열었다.
“우리한테 온 생명이야. 낳아야 해.”
나는 낙태를 죄악으로 여기고 있었다. 연애를 하면서 피임에 신경을 썼지만, 만일 아이를 가지게 되면 언제든지 낳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형은 무책임해. 교도소에 갇혀 있으면서 날더러 낳으라고? 낳으면 어쩔 건데? 내가 학교 그만두면, 형은 운동을 그만둘 거야?”
운서가 눈물을 흘리면서 따지고 들었다.
“………”
운동을 그만둔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무어라 할말이 없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속으로 연애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 이제 정리합시다.”
교도관이 모자를 쓰며 일어섰다.
“책하고 영치금 넣었어. 가께.”
교도관이 내 팔을 잡아끌자 운서가 서둘러 말했다. 교도관한테 끌려 면회실에서 나오면서 나는 창살 앞에서 울고 있는 운서를 뒤돌아보지 않았다. 미결사동의 독방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자꾸만 발을 헛디뎠다. 독방으로 돌아온 나는 교도소에 갇혀 있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시퍼런 법무부 이불을 뒤집어썼다.
운서는 그 다음 일주일 내내 면회를 오지 않았다. 마음은 지옥이었다. 아침에, 눈꽃이 하얗게 피어 있는 미루나무 꼭대기 위에서 까치가 울었다. 나는 하루종일 창살에 붙어서 쏟아지는 눈을 보며 운서를 기다렸다. 마침내 접견담당 교도관이 와서 철문을 열었다. 하루종일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면회실에 들어서니 창살 저편에 운서가 서 있었다.
“일찍 좀 오지. 하루종일 기다렸잖아.”
나는 투정부터 부렸다.
“………”
운서는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왜에?”
“……병원에 갔다오느라 늦었어.”
“병원에 왜?”
“수술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나는 유리창에다 머리를 쿵쿵 박았다. 깜짝 놀란 교도관이 얼른 내 몸을 잡았다.
“그러지 마. 이미 늦었고, 나 많이 아파. 쉬고 싶어.”
면회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운서가 돌아섰다.
“운서야, 운서야!”
내가 소리쳐 불렀지만 운서는 그대로 면회실에서 나가버렸다. 독방으로 돌아온 나는 시멘트벽에다 머리를 쿵쿵 박으며 절규했고 울었고 스스로를 저주했다. 반성문이라도 쓰고 당장 나가고 싶었다. 처음으로 운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후회했다. 운서 혼자 병원 산부인과에서 수술받는 장면이 떠오를 때면 가슴을 쥐어뜯었다. 이토록 큰 죄를 어찌할 것인가?
새해가 밝았고 운서가 면회를 왔을 때 반성문을 쓰겠다고 말했다.
“나 때문이라면 쓰지 마. 형이 선택한 일이니까, 형은 잘 견디겠지만 아마도…… 내가 견뎌내지 못할 거야. 나를 나쁜 년으로 만들지 마.”
저녁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종소리가 내 마음을 흔들자 예불에 참석할 것인지 아니면 방에 엎드려 반야심경을 필사할 것인지에 고민한다. 사부대중이 모두 참석하는 예불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반야심경에 몰두하기로 한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을 꾹꾹 눌러쓰고 뜻을 새긴다. ‘……일체의 괴로움을 건넜다.’ 나는 어떤 괴로움도 건너지 못했다. 아프다.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그런데 혹시 그 여자가 예불에 참석하지는 않을까? 누굴까?
문득 그 여자가 떠오르자 반야심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글자를 그대로 베껴쓰는 것은 가능했지만 무슨 글자인지 뜻은 무언지 전혀 새길 수가 없다. 반야심경의 글자 속에서 여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솟아난다. 가슴이 답답하다. 숨통이 콱 막힌다. 공책과 만년필과 반야심경을 덮어버리고 양말을 신는다.
나는 여자가 여전히 실상사에 있는지를 확인하러 서둘러 재활용쓰레기 수거장으로 달려간다. 자전거가 보이자 후유〜 숨통이 트인다. 여자가 아직 실상사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선다. 산수유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화엄학림에서 나온 스님들이 중묵스님의 방 앞을 지나 보광전으로 가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슬금슬금 몰려오고 있는 땅거미를 밟고 발길을 보광전으로 돌린다. 보광전 앞의 삼층석탑에 다가갈 즈음, 칠성각에서 절을 하고 있는 여자가 눈에 띈다. 좁은 칠성각 안에서 여자는 하염없이 절을 하고 있다. 오체를 던져 몸을 최대한 낮추고 다시 손바닥을 뒤집어 경배하는 동작을 아주 천천히 되풀이하는 여자를 나는 석탑 뒤에 숨어서 바라본다. 아직까지 한 번도 여자의 얼굴을 정면에서 확인한 적이 없어 더욱 궁금했다.
“여기서 뭐해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중묵스님이 합장을 한다.
“아, 예에. 그, 그냥요.”
나는 말을 더듬고 만다.
“저녁공양은 하셨어요? 안 보이던데.”
“예, 했어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온다. 중묵스님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곧장 보광전으로 들어간다. 나는 중묵스님이 보광전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칠성각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자가 마루에서 몸을 세우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칠성각 가까이로 접근한다. 어느덧 가람은 어둠속에 희끗희끗하게 파묻히고 있다.
“지심귀명례〜”
보광전에서 목탁소리에 실린 스님들의 예불문이 흘러나온다. 여자는 보광전에서 흘러나온 목탁소리와 예불문에 따라 절을 올리기 시작한다. 나는 기어이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만일 운서라면, 칠년 만의 해후가 되는 셈이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치사하고 더러운 꼴만 보였다. 지난 칠년 동안 나는 운서를 잊기 위해 몸부림쳤다.
“지심귀명례〜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일곱번 중에서 다섯번째의 지심귀명례가 흘러나온다. 그랬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살았다.
“여기서 죽어버릴 거야.”
베란다로 뛰어나가며 나는 소리쳤다. 진정으로 11층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진 않았다. 운서는 현관문을 열려다 말고 참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랑은 끝났고 집착은 남았다. 나도 이 몸부림이 집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운서 옆에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놓여 있었다.
“뛰어내리면 어쩔 건데? 끝까지 나를 나쁜 년으로 만들겠다고? 넌 정말 나쁜 놈이야. 내 앞에서 죽어서 어쩌겠다고?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라고? 어쩌면 끝까지 이기적일 수 있니? 나쁜 자식!”
“그래, 난 나쁜 놈이야.”
나는 베란다에 발을 걸쳤다. 팔에다 힘을 주고 철봉을 하듯이 몸을 일으키면 추락할 것이다. 잠시 행동을 멈추고, 운서가 잡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현관문이 열리고 운서가 나가면 가차없이 뛰어내리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제발, 나를 잡아줘, 운서야.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운서가 돌아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안심하고 돌아서는데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운서의 손이 내 따귀를 연신 올려붙였다. 나는 운서한테 맞으며 소파에 앉았다. 운서가 나를 잡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고 행복했다.
“맘대로 해! 나쁜 자식아! 죽든지 살든지 맘대로 하라고!”
저주에 가까운 욕설을 퍼붓고 운서는 돌아섰다. 성큼성큼 걸어나가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끌고 가버렸다. 현관문이 쾅 하며 닫히자 관뚜껑이 닫히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정적이 이어졌다. 운서는 나를 두고 가버린 것이었다. 채깍채깍채깍,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보광전에서 반야심경이 흘러나온다. 칠성각 안의 여자도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음송하며 반듯하게 서 있다. 이제 곧 예불이 끝나면 여자도 칠성각에서 나올 터였다. 여자와 정면에서 부딪치지 않으려고 뒤로 조금 물러선다. 서탑(西塔) 근처로 물러섰을 때 보광전에서 스님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탑신에 몸을 숨기고 여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칠성각을 살핀다. 여자가 촛불을 끄고 몸을 돌린다.
“여기서 뭐해요?”
또 중묵스님이다.
“아, 예.”
나는 얼버무린다.
“내 방으로 갑시다. 차나 한잔 하게.”
중묵스님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다. 나는 칠성각을 본다. 여자가 칠성각에서 나온다. 어두워서 그런지 여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답답하다. 여자는 칠성각 바로 옆의 문을 통해 요사채로 간다.
“뭐 볼일 있어요?”
중묵스님이 또 묻는다.
“됐습니다.”
나는 돌아선다. 당장 여자의 뒤를 따라가 얼굴을 확인하고픈 욕망을 누르며 중묵스님의 뒤를 따른다. 여자가 만일 실상사에서 묵는다면 기회는 또 있을 터이다. 게다가 여자가 만일 운서라면, 중묵스님이 일러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중묵스님도 운서의 얼굴 정도는 안다. 방으로 들어간 중묵스님은 장삼을 벗고 간편한 복장으로 찻상 앞에 앉는다.
“커피?”
중묵스님이 묻는다.
“우전 있으면 그걸로 주세요.”
“마침 쌍계사에서 우전을 보내왔는데 햇차라 향이 좋아.”
중묵스님이 보온물통의 꼭지를 눌러 수반에다 더운물을 받는다. 나는 중묵스님한테 큰 빚을 지고 있었다. 그 빚 때문에 중묵스님 앞에 앉으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 시대의 아픔을 못 견뎌 그런 줄 알았지,라며 가끔 중묵스님이 농담을 던질 때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아들고 싶었다.
“평양에 다녀왔다며?”
지난 여름 평양에 갔던 일을 중묵스님이 뒤늦게 묻는다.
“그저 그랬어요.”
북의 민화협 관계자들이 정해준 일정대로 움직인 다음 호텔로 돌아오면 꼼짝없이 감옥살이였던 탓에 말 그대로 평양의 인상은 그저 그랬다. 대동강이나 보통강변의 풍경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함께 서울에서 온 사람들한테서는 네모의 콘크리트 냄새가 풍겼지만 평양의 사람들한테서는 둥근 대지의 풋풋한 냄새가 났다.
“왜에?”
“진정성의 문제죠.”
“진정성?”
“어쩌면 의심이죠. 진정으로 통일할 의사가 있는 건지에 대한 의심.”
“자〜”
중묵스님이 찻잔을 내민다. 차를 한모금 마신다. 낮에 마신 매화차보다 향이 연하고 부드럽다.
“정처사가 북에 대해 의심까지 다 하고. 많이 변했네.”
중묵스님과 나는 같은 대학 출신이다. 철학과에 다니던 중묵스님은 민중민주주의혁명론의 PD계열이었고, 나는 민족해방혁명론의 NL계열이었다. 돌이켜보면 종파로 나누어져 다투던 그 모든 순간들이 참으로 허망하다. 나는 괜히 말을 꺼냈다 싶은 생각이 들어 묵묵히 차만 들이켠다.
운동은 벼슬이 아니다. 더구나 통일운동을 하는 것은 벼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손가락질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운동판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그저 맨 뒤에서 변치 않고 따라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맨 앞에 서서 나아가다가 변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너무 많이 뒤처지지 않고 오래 길을 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그러나 평양에서부터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백두산에서 가질 시낭송을 앞두고 남쪽 시인들의 시를 사전에 검열하겠다는 태도를 보고 나는 은근히 질리고 말았다. 그런데다가 합의한 시낭송마저도 일정을 핑계로 깨버릴 때에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체제선전 일색의 관광일정이 싫어 나중에는 아예 호텔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적어도 서울보다는 아름다웠던 평양의 풍경 속에서 나는 흔들렸고, 많이 아파했다.
“조선노동당 이 나쁜 자식들아, 니들이 뭐야, 니들이 뭐야?”
연회를 마치고 고려호텔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꾹꾹 눌러둔 화가 폭발했다. 북 민화협 관계자들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울로 돌아가자마자 손목에 수갑을 차는 사람들이 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저들은 공동보도문 하나 제대로 합의해주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남쪽 당국자들도 작고 사소한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선생 다시는 평양에 오고 싶지 않아요?”
나를 담당하던 보위부 직원이 화를 버럭 냈다.
“안 와, 새끼들아! 통일운동 안하면 될 거 아냐? 니들이 뭐야? 니들이 뭔데? 니들 교도소에서 썩어봤어? 좆도 아닌 것들이 주둥아리로만 통일 통일 하고 자빠졌어.”
내 입에서 막말이 마구 튀어나왔다.
“거 참, 너무 하십네다.”
앞좌석에서 문학동맹의 평론가가 나직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담배를 꺼내 피웠다. 하고 싶은 말을 거칠게 토해내니 속은 후련했다. 버스는 평양의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다시는 평양에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입을 다물자 버스 안은 적막에 휩싸였다. 서글펐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평양에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내 믿음의 한켠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어쩌면 빙산의 일각만 보고 지레 성질을 부린 것인지도 몰랐다.
“통일운동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생겨서 요샌 나도 쫌 힘드네요.”
“그래요.”
중묵스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 마음을 안다는 건지 그냥 동의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평화통일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의 일을 놓을까 말까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저울추는 놓을까 쪽으로 자꾸만 기울고 있었다. 자정 무렵까지 학원에서 강의를 해야만 하는 아내의 희생을 더 감당할 자신이 내겐 없었다. 중묵스님이 다기를 헹궈 엎는다. 인사하고 중묵스님의 방에서 나온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중묵스님은 끝내 운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운서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요사채의 방으로 돌아와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운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랑 살고 있을까? 유행가 가사처럼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눈을 감는다. 그 밤, 헤어지던 풍경이 떠오른다.
현관문을 닫고 운서가 떠나자 나는 준비해뒀던 수면제를 꺼냈다. 손바닥 위에 놓인 수면제는 오십알 정도였다. 그것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수도꼭지를 비틀어 쏟아지는 물줄기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마셨다. 수면제가 목구멍 속으로 넘어갔다. 비록 내가 잘못했지만 사랑에 대한 맹세는 지켰다고 자위하며 소파에 반듯하게 누웠다.
텔레비전 옆의 액자 속에서 운서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13평 임대아파트의 거실은 좁았고 곳곳에 운서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동거랄 수는 없지만 이 아파트에서 운서와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액자를 돌려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머리가 피잉 돌았다.
“정신이 좀 들어?”
중묵스님의 목소리였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고, 간병인 의자에 중묵스님이 앉아 있었다. 도로 눈을 감았다. 며칠 전에 실상사로 전화를 했을 때 중묵스님은 천일기도중이라고 했다. 기도중이라면 절을 떠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힘겹게 입을 열었다.
“택시 타고 왔지!”
중묵스님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예에? 실상사에서 서울까지요?”
누가 중묵스님을 불렀을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내가 부른 것은 아니었다.
“죽이라도 좀 사다주까?”
“언제 오셨어요?”
“사흘 전에.”
“기도는요?”
“기도가 중요한가 생명이 중요하지. 사람도 참, 뭐 이십대 초반도 아니고, 쯧쯧.”
“어떻게 알았어요?”
“아파트에서 자살을 기도했으니 당장 가보라고 전화가 왔어. 나는 또 시대에 절망해서 그런 줄 알았지.”
“누가요?”
“여잔데, 이름을 안 밝히데.”
“운서 아니었어요?”
“글쎄……”
나는 눈을 감았다. 내 성질이 급하고 더러운 줄 알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나가자마자 운서가 중묵스님한테 전화를 한 것이 분명했다. 영원히 운서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엄중한 사실 앞에 온몸이 떨려왔다. 눈물이 흘렀다.
“위 세척은 두 번에 걸쳐 했으니까 후유증은 없을 거고, 그저 마음을 비우고 좀 쉬어.”
중묵스님의 말대로 그저 마음을 비우고 누워 있기란 정말 힘들었다. 마음 깊은 곳에선 울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마음이 상하니 몸도 덩달아 상해서 죽도 먹을 수 없었다. 뭐든지 먹기만 하면 거꾸로 치솟았다. 칠십 킬로그램이 넘던 체중이 순식간에 육십 이하로 줄어들었다.
“다이어트엔 실연이 최고로구만.”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퇴원하자 중묵스님이 쉬어야 한다며 나를 억지로 잡아끌어 실상사로 데리고 갔다.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나는 읽지도 쓰지도 않고 여섯달을 실상사에서 보냈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열심히 공부했다. 석사과정을 마칠 즈음에야 비로소 운서를 온전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운서를 보낸 뒤에 막 대학원에 진학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결혼했다.
얼핏 잠이 들었던가, 도량석 목탁소리에 눈을 뜬다.
목탁을 올리는 행자의 솜씨가 만만찮다. 고요하게 잠든 도량을 조심스럽게 깨우기 위하여 낮고 작게 시작하여 점점 크고 느리게 치는 것을 목탁을 올린다고 한다. 눈을 감고 목탁 올리는 소리를 듣는다. 머릿속에 고요하게 잠든 대지와 도량과 숲이 조금씩 깨어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도량에 고요하게 가라앉은 대기가 목탁의 울림에 따라 점차 물결을 일으키며 요사채의 창호지를 두들기고 처마끝의 풍경도 흔든다. 중묵스님의 방 앞에 서 있는 감나무의 빈 가지마다에 신록이 꿈틀거리며 돋아나고, 생태뒷간 옆 담장 아래에서는 노란 애기똥풀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눈을 뜨고 몸가짐을 살핀 뒤 다른 방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간다. 천왕봉 위에는 달이 휘영청 밝다. 수곽으로 달려가 텁텁한 입을 감로수로 씻어내고 얼굴을 씻는다. 걸레를 빨아 방으로 가지고 와서 이부자리를 개고 걸레질을 한다. 걸레질을 끝낸 뒤 가부좌를 튼다.
행자가 목탁 내리는 소리가 귀에 아련하다. 목탁을 굵고 느리게 치다가 가늘고 작게 소리를 줄여나가는 게 목탁을 내리는 것이다. 행자는 지금쯤 약사전을 깨우고 있을 터였다. 나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자 어제 보았던 하얀 옷의 여자가 망막 저편에서 슬몃슬몃 떠오른다. 여자를 떨쳐내려고 고개를 흔들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운서……를, 아직도 보내지 못했느냐? 손에 꽉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손바닥을 펴보아라.’
눈을 뜨고 손을 편다. 아무것도 없다. 손을 움켜쥔다. 잡히는 게 없다. 다시 눈을 감는다. 자전거, 가운데가 텅 빈 바퀴,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떠오른다. 얼굴을 찡그린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 눈을 뜬다. 종소리가 새벽의 지리산을 흔들고, 도량을 흔들고, 창호지를 흔들고, 나를 흔든다. 가부좌를 풀고 눈을 뜬다. 담배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간다.
요사채를 나가면서 보니까 고요한 달빛 아래에 매화가 서늘하게 피어 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켠다. 그때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생태뒷간에서 나온다. 라이터를 끄고 여자를 기다린다. 생태뒷간 앞의 가로등 불빛에 여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운서가 분명하다. 여자가 나를 본다. 나는 주춤 뒤로 물러선다. 운서는 나를 보고도 모른 척한다. 여자는 요사채로 가지 않고 천왕문 쪽으로 간다. 나는 운서의 뒤를 따른다. 운서는 천왕문 앞에서 보광전을 향해 합장을 하더니 실상사에서 나간다.
“저기요〜”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본다. 여자의 얼굴은 내 가슴에 화인처럼 찍힌 운서가 분명하다.
“혹시, 저 모르시겠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여자가 피식 웃는다.
“누구신데요?”
여자가 달빛에 피어난 매화처럼 서늘하게 되묻는다.
“이름이…… 운서, 아닌가요?”
“아닌데요.”
얼굴은 운서가 분명한데 운서가 아니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돌아서는 여자를 나는 그저 놀란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여자는 천천히 해탈교 쪽으로 걸어간다. 나는 여자의 뒤를 따른다. 여자는 하늘하늘한 몸짓으로 새벽길을 밟고 걸어간다. 해탈교 앞에서 실상사를 보더니 이내 몸을 돌린다. 해탈교는 실상사와 세상을 이어주는 시멘트 다리다. 여자가 해탈교를 건너가자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재활용쓰레기 수거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여자가 타고 왔던 자전거가 온데간데없다.
그때, 구름 속으로 보름달이 들어가고, 세상은 잠시 어두워진다. 여자는 그냥 걸어갔는데 자전거가 사라지다니, 믿을 수가 없어 여기저기를 뒤적거리고 살펴본다. 내가 헛것을 본 것일까? 구름 밖으로 보름달이 나오자 세상이 한순간에 밝아진다. 그때, 자전거가 눈에 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새 자전거가 아니라 완전히 망가진 자전거다.
자전거 뒷바퀴는 살만 앙상하다. 잠시 넋을 놓고 자전거를 바라본다. 지금쯤 여자는 해탈교 건너 세상 속으로 들어갔을 터이다. 망가진 자전거를 들어 재활용쓰레기 수거장에 던진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자전거가 거꾸로 처박힌다. 아까 그 여자가 운서든 운서가 아니든,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
그 여자를 통해 나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집착의 심연을 본 것이다. 거꾸로 처박힌 자전거를 보며 담배 한대를 피운다. 연기에다 심연 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운서를 실어 몸 밖으로 내보내고 돌아선다. 그러자 거꾸로 처박힌 자전거의 뒷바퀴가 슬금슬금 돌기 시작한다. 문득 어제 낮에 들은 농부의 말이 돌고 있는 바퀴에서 떠올라 내 가슴을 친다. ‘사는 게…… 사는 거시제.’ 그랬다. 사[死]는 것은 사[生]는 것이다. 새벽바람에 매화가 진다.
* ‘사[生]는 것은 사[死]는 것이다’는 허허당스님의 『무심(無心)』에 나오는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