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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극빈 혹은 시인으로 산다는 것

김영승 시집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 나남 2001

 

 

박영근 朴永根

시인

 

 

아마도 김영승(金榮承) 시집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만큼 한 개인의 가난이 시적인 삶을 얻고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 시집에 나타나 있는 ‘가난’은 이 세계를 힘들게 살아가는 어떤 개인의 비애나 좌절이기보다는 시인에게 시인으로서의 삶을 가능케 해주는 어떤 에너지로 나에게는 비쳐온다. 김영승 스스로 자신의 가난을 ‘극빈’이라고 명명하고 있거니와, 그 극빈은 실체가 도저하고 적나라한 만큼이나 시적 윤리에 가까운 그 무엇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현실적 삶으로서의 가난이 그 비애로부터 도약하여 가난에서 비켜선 삶들을 추문이라고 발언하는 지점에 그의 시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의 시에서 우리는 자주 폭언에 가까운 성적 요설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시인의 투명한 가난의 자리에 비춰진 현실세계의 실상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서 가난은 자신의 삶과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또한 삶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꿈의 자리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는 진리를 스스로 發源해 法悅하는 데 거의 50년이 걸린 셈이다./물론 내 나이는 43세, 아들의 나이 11세를 더하면 대충 그 정도가 된다.//아아, 아들의 人生이 내 人生에 더해졌구나.”(「처음 보는 女子」)와 같은 진술에서 자신의 가난한 삶과 그 의미가 아들의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116-394시 「인생」은 현실로서의 가난과 시적 삶으로서의 가난, 그리고 성찰적 공간으로서의 가난 등 겹을 이루고 있는 여러 층위의 가난한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시에 의하면 그 무렵 “초등학교 1학년짜리 어린 아들이” 시인에게 “누가 갖다준 386 고물 컴퓨터”를 “잘못 만져”서 “십년 공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글들이 날아가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시인에게 대단히 큰 충격이어서 “‘또 그러면/죽여버릴 거야!’ 아들에게 꽥!/소리를 지르”고 “주저앉아 슬피 흐느껴” 울고 “육신이 내장이 녹아” 흘러내렸다고 쓸 정도이다. 날아가버린 글은 시인이 “겨우 그따위 곳”이라고 경멸하고 있는, 그러나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거의 유일한 돈벌이의 용처로 짐작되는 곳에 쓰일 것이었던 모양이다. 충격에서 벗어난 시인은 이내 그 사건의 의미를 의식화한다. “소위 ‘가난’/하지 않았다면 우리 사이에 무슨/싸울 일이 있겠느냐 치욕에 치욕에/또 치욕/나도 치욕을 느낄 줄 아는/사람이다 그 스트레스는/나를/쭈글쭈글 오그려뜨렸다”는 비참한 진술과 “나는/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자신이/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는 놈/또한 가난해서 불편한 것이/부끄러웠던 적도 없었다”는 도도한 발언이 그것이다. 나는 가난하다, 그 가난을 받아들여야만 되는 나의 삶은 치욕이고 치욕은 본래의 나의 모습을 훼손한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진술의 요지이다. 엄연한 실체인 가난과, 나에 대한 ‘생각’이 한몸 안에서 분열된 채 모순된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 분열과 모순으로서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과, 그리고 시쓰기라고 하는 자신의 또다른 현실일 것이다. 생활로서의 현실과 시로서의 현실의 긴장관계는 그러나 「인생」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 무너진다.

 

‘변형’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모순’이지만 내 안엔

이 세상의 그 어떤 방패라도

막아낼 수 없는 ‘창’과 이 세상의

그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가

함께 있다 그것이

나의 비극이고

 

가난이 말하는 바, 어떤 치욕적 현실도 시인으로서의 그를 바꾸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적어도 김영승에게 현실세계란 시적 공간에서만 제대로 이해되는 것이고, 그런 이월을 통해서 세계의 허위가 벗겨지는 것이며, 시 속에 비치는 세계의 참모습을 얻음으로써 시인은 승리를 노래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시인이 ‘비극’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싸움이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나 시적 자의식을 훨씬 뛰어넘는 시에 대한 도저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정작 주목하는 것은 그와 같은 시적 싸움 끝에 그의 시가 획득하고 있는 내적 평화와, 그와 유사한 삶의 실패를 살고 있는 이웃에 대한 발견이다. 시인은 「인생」에서 “밭에 갔다온 아내여/밭엔 무와 배추/잘 자라고 있더냐 옆옆집 110호/가난한 船員 현이네 아빠/일하다 다친 손가락 두 개/절단해야 한다고 어제는/연안부두에서 술 마시고 뻗은 걸/옆집 109호 주영이 아빠가/실어왔다고?”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여유, 혹은 넓혀진 사유가 시인으로 하여금 어린 아들 앞에서 유행가를 부르게 하고,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도록 그의 마음을 이끄는 것이다.

 

스무살 이후로 나는 상복만 입고 살았구나

죄수복 같은, 환자복 같은, 아무도 모르는, 그저 평범한

내가 입은 옷은 상복 단 한벌뿐

누더기 상복 한벌만 입고 살았구나          

―「옷」 부분

 

시 「옷」은 또다른 지점에서 시인이 현실과 벌이는 가파른 싸움의 기록이다. 우선 시를 읽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상복을 입은 시인의 모습이다. 그 의미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 죽은 자를 장사지낼 때 입는 예복인 상복. 시인을 일러 죽음을 주관하는 사제라고 일컫고 있음인가. 상복에 대해 부연하고 있는 언술들도 석연치 않다. 죄수복 또는 환자복이 가리키는 의미가 그것이다. 현실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래서 때로 사람들의 몰이해와 조롱을 감수해야 하는 예외적인 인간의 상징적 기호물로 차용된 이미지인가. 뭇 사람들의 몰이해와 조롱을 감수하면서 현실세계의 죽음 또는 파탄을 주관하는 사제로서의 시인.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은 「옷」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이르러서이다.

 

상복을 입고 목욕탕 갔고, 상복을 입고 여관 갔고

아아, 나는 상복을 입고 결혼식을 치렀네

상복을 입고 술집 갔고, 상복을 입고 전철 탔으며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루는 도처의 공간에 시인은 상복을 입고 나타난다. 기이한 진경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를 장사지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의 생활공간은 거의 전부가 죽음의 처소이며, 시인은 그 죽음을 주관하여 장사지내 마땅한 존재이다. 그러니 상복은 하늘의 뜻을 집행하는 사제의 ‘천상(天上)의 예복(禮服)’이 아니겠는가. 이후 시는 “꽃잎이 진다, 爆竹처럼, 함박눈처럼 하얀 꽃잎이/펑펑펑펑펑 쏟아진다, 흩날린다, 아득하게 暴雪처럼/상복이 진다, 찢어져 흩날린다, 내 몸이, 내가, 흩날린다”와 같은 장례의 장관을 펼쳐놓는다. 시인의 언술에 의해서 이 세계는 하얀 눈과 하얀 꽃에 덮이는 것이다. 이 한폭의 수의는 놀랍도록 아름답지만 그 내부의 파동은 격렬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몸을 찢는 혼신의 기투로 현실을 풍자하려는 시적 태도 때문이다.

「옷」의 마지막 부분은 그러나 시인의 현실과의 싸움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죽지 말자, 먼저 죽지 말자, 그 天上의 禮服을

벗지 말자, 强風이

내 야윈 알몸을, 휘감는다

鋼鐵 채찍처럼.

 

‘강풍(强風)’은 분명 시인의 삶을 위태롭게 하겠지만 또다르게 보면 시적 축복일지 모른다. 그의 시를 시인의 과도한 주관적 의지나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 위에 설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손 한뼘짜리 ‘촌평’을 접으면서 나는 김영승의 시 「북어(北魚)」를 천천히 읽는다. “출산하고 난 후” “뭐 씹는 게 먹고 싶어서” “다락에 두었던 먼지 쌓인 北魚를 두들겨 뜯어먹고 있”는 시인의 아내 모습에 나의 글은 자꾸 파자(破字)가 된다. “술 취해 자고 있”던 시인이 북어 두들기는 소리에 깨어 “오징어라도 사다 먹”으라고 하니 “돈이 없어요” 하고 대답하는 그의 아내의 “퍽, 퍽, 퍽, 퍽, 퍽” 북어를 두들기는 소리가 나에게도 환청처럼 들려온다. 그 가난은 지금도 여전해서 “이곳 임대아파트로 이사온 지 내일이면 꼭 1년/월 175,300원 그 임대료가 벌써/두 달째 밀렸네”(「극빈」)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가난은, 그렇다, 그것이 투명해질 대로 투명해져서 하늘의 ‘극광’이 된다 해도, 또한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내려와 눈물이 된다. 그리고 그 눈물은 때로 시인의 세계를 한없이 좁혀서 더 넓은 현실세계를 볼 수 없게 하기도 한다. 김영승의 어떤 시들이 과잉된 자의식이나 굳은 관념을 내비치는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북어」의 뒷부분을 여기에 적어놓는다. 시에 대한 해석이란 때론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

 

그 柳洞집

열 坪 남짓한 무허가 2층 슬라브 건물의

아래층을 빌려 살 때

 

房보다 낮은 부엌

그 연탄 보일러 옆

쌓인 연탄이

 

아주 환했다

黑人들같이

아내를 輪姦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김영승 시인의 말에 의하면 이 시집의 원래 제목은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이라고 함.---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