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ㅣ6·15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6·15시대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발전구상
서동만 徐東晩
상지대 교수, 정치학. 주요 저서로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 『한반도 평화보고서』(공저), 역서로 『한국전쟁』 등이 있음. suhdm12@sangji.ac.kr
1. ‘6·15시대’의 역사적 의미
6·15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당국간 관계에서 기복을 보이기는 했으나 교류·협력 면에서 꾸준히 진전되어왔다. 정상회담 5주년이 되는 지난해에는 6·15행사와 8·15행사에서 남북관계가 복원되며 역사상 처음 민간행사와 당국간 회담이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과거 정부와 민간이 일체화된 북측과, 정부와 민간이 분리된 남측의 엇갈린 만남에서 벗어나 정부 대 정부, 정당 대 정당, 민간 대 민간의 부문별 차원에서 대등한 교류·협력이 전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6·15정상회담의 실현에 남측 내부의 민주화라는 국민적 저력이 밑받침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교류·협력에서도 정부와 민간의 엇갈림을 극복하는 민주화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꾸로 이는 그동안 남측의 불신과 우려 대상이던 북측의 통일전선적 대남 접근이 해소되어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8·15행사에서 북측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는 이같은 남북화해를 포괄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특히 북미간에 적지 않은 긴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가 6자회담의 협상을 통한 해결방식에 도달하게 된 것은 남북 화해·협력관계가 군사적 해결방식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6·15정상회담의 효과는 남측 못지않게 북측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남북교류와 협력, 남한의 대북지원으로 북조선 경제는 실질적 도움을 받고 있으며, 북조선 내부에서도 숨길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있다. 과거 남측 이상으로 통일을 외쳐오던 북측 당국 입장에서는 명분상으로는 물론이고 인민들로부터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받아왔을 것이다. 이제 북조선에서 이른바 ‘6·15정신’은 김정일시대의 통일노선이자 그 성과로서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으며, 김일성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의미하고 있다. 북조선에서 6·15정신의 핵심 내용으로 내세우는 ‘우리민족끼리’란 용어는 종래 7·4공동성명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가운데 ‘자주’원칙의 성격을 바꾸고 여기에 ‘민족대단결’원칙을 결합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외세와 그 식민지로서 남한을 배격하는 ‘반외세적 자주’에서 남한을 같이 힘을 합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이룬 것이다. 북측의 용어 민족대단결 원칙 속에는 남측에서 쓰는 화해·협력의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선 자주, 후 민족대단결(화해·협력)’에서 양자를 병행하거나 ‘선 민족대단결, 후 자주’로 향하는 유연한 변화를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북조선 입장에서는 북미 대치관계, 한미동맹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도움도 받아야 하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6·15정상회담 이후 북측이 ‘자주’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데는 이러한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다만 이 ‘자주’원칙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북조선의 전략적 끈이란 점에서 ‘우리민족끼리’는 아직 낙관할 수만은 없는 유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남한 내에서도 6·15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지난해 6·15행사 이후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6·15공동선언에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인정하는 합의에 이른 것을 근거로 하여 6·15를 기점으로 그전을 분단시대의 마무리, 그후를 통일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2. 남북관계의 진전과 후퇴
6·15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를 구획할 만큼 지난 5년간의 성과가 상당한 것이긴 하지만 아직 남북관계는 여러 방면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긴 여정을 내다볼 때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냉전의 종식이나 남북관계의 역사에 견주어볼 때 현시기까지 마땅히 이루어졌어야 하는 과제들이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화해·협력에 따른 남북관계의 개선은 그 자체로 역사의 전진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자칫하면 역사의 후퇴로 갈 수 있는 반작용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점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분단체제론’은 냉전 종식 이후 남북 화해·협력이 크게 진전되었으나, 이와 함께 한반도에서 위기라고 할 만한 불안정한 정세가 조성되기도 했다는 데 주목한다.1 한반도 냉전과 분단의 모순을 남북 두 체제, 국가의 대립이란 측면에서만 보고, 남북의 화해·협력을 진화론적인 발전과정으로만 파악하는 단선적인 접근으로는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정세가 단선적으로만 진전되는 것이 아니며 후퇴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사실은 현실뿐 아니라 인식의 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진보학계 내에서 북조선체제의 위기상황을 의식하며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 발전문제를 자족적이고 독자적 단위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 그 한 예이다.2 더욱이 이 주장은 모든 통일논의나 이에 따른 민족주의적 지향을 해방 직후 좌절된 통일국가 건설의 지향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마치 통일논의 자체가 비현실적이거나 쓸모없는 공론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이에 반해 올해 6·15행사를 계기로 남북화해가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제기된 매카서 동상 철거사태 같은 통일지상주의 움직임3도 남북 각각의 상대적 독자성을 무시해버리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오히려 통일논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자초하는 원인이 된다.
우선 역사의 일정한 시기에 그 시대의 과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뒤로 미루어질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현재의 북조선 핵위기에서 드러난다. 사실 북조선 핵문제의 근원은 전세계적 냉전이 종식된 후로도 해결되지 못한 채 남겨진 북미·북일 대립관계에 있다. 노태우정부 당시 한소·한중수교, 그리고 남북의 유엔동시가입이 이루어졌으나 북조선의 대외관계는 미·일과의 냉전적 대립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북조선체제에 닥친 경제위기는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의 노선전환에 장애로 작용했다. 적어도 80년대말, 90년대초에 북미·북일관계 정상화는 당연히 실현됐어야 할 시대적 과제였다. 여기서 그 원인이나 책임을 북조선의 대외관계로 돌릴 수만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북핵문제는 92, 93년부터 발생하여 현재까지 한반도 정세의 진전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세계적 냉전 종식 이래 한반도 정세가 역사적인 관점에서 반드시 진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은 동서간의 냉전적 대결이 종식된 조건에서 대외관계를 포함하여 남측 한쪽만의 일방적 발전이 한반도 전체의 발전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남북관계의 중심을 이루는 경제협력은 6·15정상회담의 산물인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남북 철도·도로 연결이라는 3대 협력사업을 넘어 7대 신동력사업(에너지 협력, 철도현대화, 백두산관광, 남포항 현대화, 북한 산림녹화, 공동영농단지 개발, 공유하천 공동이용)으로 확대되어야 할 단계를 맞고 있다. 새로운 남북경협은 북조선 내부의 경제개혁 및 개발과 연결된 대규모 프로젝트로서 일방적인 단순지원의 성격을 넘어 호혜적 사업, 지속성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편성되고 있으나 인프라, 물류 개발, 에너지 협력 등은 일정부분 핵문제 해결과 연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협의 핵심을 이루는 대북 전력지원은 남북 양자간 현안이었지만 김대중정부는 미국의 반대를 의식하여 해결하지 못했다. 노무현정부는 이를 6자회담 틀 속으로 이전시켜 타결을 꾀했지만 사안은 국제화된 것이다. 전력 제공문제도 6·15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실현되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마찬가지로 한 시기에 풀어야 할 사안이 뒤로 미루어지면 그 해결은 몇배나 힘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전개된 북미관계가 부시정부 출범과 함께 역전되면서 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을 담은 2000년 북미 공동선언이 사문화됨에 따라 한반도 평화문제, 남북 군사문제도 현재까지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북조선측은 철저히 남북간 경제협력사업이 관련된 사안에 한정하여 군사실무회담에 응하고 있을 뿐이다. 북미관계의 교착이 기본 원인이지만 남북간의 군사력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점도 북조선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시작전지휘권 등 군사 분야에 한미동맹 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문제도 남북군사회담 진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1월 19일 제1차 한미전략 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됨에 따라 향후 대북·대중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정세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남북관계를 통해 6자회담과 더불어 핵문제를 돌파해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한계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계속 극복해나가야겠지만, 성취와 한계는 시간적인 선후관계로서 단선적인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린 복잡한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3. 분단, 평화, 통일
통일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독일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급격한 통일이 남북 모두에 자칫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데에는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북조선체제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고 한국 또한 자체의 경제·사회적 불균형도 수습하기 곤란한 처지여서 통일은 장기적 시야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또한 남북의 첨예한 군사적 대치상태를 비롯해 한반도 냉전체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도 선결과제이다. 하지만 장기적 시야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통일이란 목표 자체의 포기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 통일은 동서 양측 모두 통일에 대한 대비 없이 통일과 분리된 평화만을 추구하다가 역설적으로 냉전 종식과 함께 동독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장기적인 교류·협력의 실적을 쌓아온 동서독 관계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남북관계를 두고 통일 이전의 평화정착만을 강조하며, 독일 통일의 한계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발전법에서 5년마다 남북관계 전반에 관한 정책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한 것은 고무적이다. 통일분야에서 장기적 시야로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국가정책으로서의 아젠다를 설정하는 것은 그간 단기적 필요에 쫓겨 압축성장에 급급했던 발전방식을 반성하고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분단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모든 분야에 걸쳐 그 폐해를 찾아내어 통일의 가능성과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남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을 인정하는 6·15선언의 합의는 서로를 배제하던 공식 통일방안이 접점을 찾음에 따라 통일논의를 합법화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명시적으로 표기된 문안만으로는 북측이 기존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두 단계로 나누어 남측의 연합제에 접근하는 변화를 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겉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남측 입장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통일안 중 공화국연방제 단계가 염두에 있었음을 시사한다.4 60년 이상 지속된 남북 각각의 체제가 일궈온 성과와 그 부정적 측면까지 포함한 상호이질성을 감안한다면, 단일국가로의 통합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해방 당시 좌절되었던 단일국가로의 통일을 복원하는 데 치중해온 한국 내 통일논의는 연방제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복합국가로의 통일도 시야에 넣어야 한다.
이처럼 남북이 통일방안에서 공통점을 인정한 것은 획기적 합의이지만, 그 핵심은 장기적 시야에서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하자는 것이며, 나아가 현재의 분단된 남북을 각각 좀더 나은 상태로 발전시켜가자는 것이다. 현재보다 더욱 나은 상태로의 통일이 아닌 한, 역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굳이 통일을 이룰 것은 아니며, 또한 남북 각각의 체제도 앞으로 발전잠재력을 충분히 살려가는 통일이 되어야 바람직하다. 이같은 인식에는 생존 자체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북조선체제의 현실이 가로놓여 있지만, 그렇다고 현싯점에서 통일 자체를 운운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남북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일부 진보학계의 주장은 한반도 분단에 대한 숙명론 내지 비관론으로 후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문제는 분단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이고 더구나 분단의 외적 조건으로서 한반도 냉전이 해소될 경우 현재와 같은 분단상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분단상태를 좀더 나은 것으로 개선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분단상태의 동요를 수반할 수밖에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그 과정 중 남북 각각의 내부에서 분출될 통일열망은 분단상황의 관리라는 소극적인 접근만으로는 제어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장기적 시야에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적극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일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이제 ‘좋은 분단’ ‘좀더 나은 분단’으로의 개선은 ‘나쁜 통일’을 막는 바람직한 통일로의 준비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평화는 통일을 향한 노력에서 견지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이자 지속적으로 진전되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동안 평화는 통일 이전에 정착되어야 할 하나의 단계로 간주되어왔다. 이는 냉전적 대립 시기에 72년의 동서독 기본조약을 모델로 남북관계의 질서를 구상한 한국에서 주로 통용되어온 인식이었다. 물론 남북과 함께 미국도 당사자로서 포함되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란 제도화는 통일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다. 그렇지만 평화란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확보되고 진전되어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남북기본합의서 같은 상세한 제도적 내용을 갖춘 문서도 이행될 여건이 되지 못하면 평화를 보장하기 어렵다. 휴전체제라는 국제법적 질서가 유지되고는 있으나 한반도에는 전쟁 없는 상태가 5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6·15 이후 포괄적인 군사회담이 개최되지는 않았으나, 교류·협력이 진행되며 3대 경협이 성사되는 가운데 실질적인 수준에서 한반도 평화는 획기적으로 진전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6·25전쟁이란 거대한 폭력에 의해 고착되고 정당화된 것이며, 모든 분야에 걸친 남북간의 총체적 단절과 대립의 산물이다. 따라서 분단 자체가 폭력이란 점에서 남북간의 교류·협력 자체는 비군사적 분야라고 해도 한반도의 평화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내게 마련이다.
또한 ‘구조적 평화’개념이 강조하듯이 경제적 빈곤, 극심한 사회적 불균형이 존재할 때 평화는 유지될 수 없다. 이는 각각의 체제 내부뿐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적용된다. 이제 남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에 있는 북의 군사력보다는 위기에 처한 북조선 경제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 더 큰 위협요인이 된다.5 북조선의 핵문제도 위기에 처한 체제의 안위와 직결되어 있다. 이제 6자회담에서도 북조선의 핵시설 철거는 이에 상응하는 당사국들의 경제적 지원과 결부된다는 데 일정한 합의가 성립해 있다. 따라서 재래식 군사력과 관련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도 북조선의 경제 재건과 분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군사·안보적 차원에서만 정의된 평화는 그것이 증진될수록 북조선체제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교류·협력 나아가 장기적인 통일과정과 분리된 평화는 일면적이다. 통일 이전의 단계로서 장기적인 평화정착 단계를 설정해온 종래의 발상을 넘어 두 과정이 서로 중첩된다는 새로운 인식이 요청된다.
남북관계가 서로의 체제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국면에 들어섬에 따라 정부, 단체 등 각 분야의 주체들은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질서와 관행에 대한 합의를 모아가야 한다. 한국의 통일운동이 여전히 합법성을 무시하면서까지 북조선측과의 접촉과 연계를 우선시한다면 더이상 국내에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다. 한국 내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고 내부동력을 키우려면 한국 민주주의의 흐름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토대로 남북간의 만남에서는 사실상의 국가관계에 준한 법적·관행적 절차를 만들고 이를 좀더 민주화·제도화해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인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한반도 평화나 남북화해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사실상의 국가간 관계를 넘어 남북간 연대의 근거를 어디에 마련하는가 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이다. 국제적으로는 과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계급연대 노선이 존재했으나, 이제는 그 타당성과 현실성을 상실했다. 평화·환경·시민운동에서 국제적 시민연대라는 노선이 현재 진행중이지만, 북조선의 정치·사회·경제상황을 볼 때 당분간은 그 대상을 찾기 어렵다. 이 점에서 분단체제론이 강조하는 남북 민중간의 연대, 그 기준으로서의 남북 민중의 이익이란 관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리고 그 고리의 하나가 민족이란 끈이며, 통일을 지향하는 ‘한반도 민족주의’는 분단이란 조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민중적 열망이다.
민족주의가 갖는 부정적 측면은 항상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한반도 민족주의가 제대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열린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분단상황에서 형성되어온, 민족과 구별되는 북조선 인민, 한국 국민의 정체성을 상호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질성의 확대’와 함께 ‘이질성의 공존’을 실현해야 성립하는 복합적 정체성을 지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 국민의 정체성은 더욱 민주적이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심화·발전해야 한다. 북조선 인민의 정체성은 향후 개혁·개방을 경험해가며 사실상 정체성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 큰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국민정체성이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대한국주의’로 자기확장을 꾀할 수 있으며, 북조선의 애국주의는 ‘김일성민족주의’로 왜소화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부정성에 질린 나머지 민족주의를 부정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사태가 방치될 수 있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건전한 민족주의, 열린 민족주의를 구성하려는 시도야말로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길이다. 남북의 주민들이 한반도 내부에 건설할 ‘민족공동체’를 토대로 하고 여기에 주요 4대국에 흩어져 있는 해외동포의 존재를 포함시킨다면 한반도 민족주의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여기에 형성될 ‘다국적·다언어의 한민족 네트워크’는 자민족중심주의의 폐쇄성에서 벗어난다는 지향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는 동북아시아 지역차원의 협력을 토대로 한 평화와 번영 속에서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4. 상생의 남북 협력발전
남북 각각이 처한 내부상황과 분단의 연관관계는 분단체제론이나 적대적 공존관계론의 입장에서 줄곧 제기되어온 쟁점이다. 냉전적 대립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의 초기 싯점까지도 남북 양체제가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상호 의존하는 관계에 있었다는 점은 대체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6·15시대에 이러한 측면은 남측의 민주주의와 분단의 관계, 북측의 개혁·개방과 분단의 상관관계에 관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분단체제론 입장에서는 남한 내에서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분단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이는 냉전체제하에서 오히려 냉전이란 조건 덕에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던 남한의 발전주의 국가체제가 냉전 종식과 함께 더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나, 제때 개혁을 이루지 못한 탓에 맞게 된 것이 IMF금융위기라는 해석이다. 아직 사회과학적으로 구체적인 인과관계가 분석된 것은 아니며, 남북 각각의 문제를 모두 분단으로 귀착시키는 분단환원주의에 빠져서도 안되지만, 내부의 독자적인 구조와 논리를 인정하되 분단과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국내문제를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지역차원에서 조망하는 시각을 제공한다.
사실 경제체제뿐 아니라 정치지형을 보더라도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이념적으로 협소한 틀에 갇힌 ‘냉전형 민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의 직격탄을 받은 것이다. 세계 10위 수준의 무역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사회복지예산은 OECD가입국 평균의 3분의 1(6%)에도 못 미쳐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진보정당의 세력이 매우 미미한 가운데, 분배 없이 건전한 성장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나 사회적 양극화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복지정책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여론몰이가 일정하게 먹히는 풍토는 분단상황과 떼놓고 볼 수 없다. 매우 취약한 사회보장에 반해 비대화된 군사·안보 부문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경제의 성장과 함께 GDP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전체 국가예산에서 보면 여전히 적지 않은 비중이다. 눈에 보이는 군사부문뿐 아니라 그밖의 안보부문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거대해진다. 이미 체제경쟁에서 뒤져 기진맥진한 경제상태에서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는 북조선의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북조선의 국가사회주의도 분단상황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다. 이미 7, 80년대를 거치면서 정체상태에 빠진 북조선사회주의는 시장적 요소의 도입을 통한 개혁 시도를 완강히 거부하고 국가사회주의를 더욱 철저화하는 방향으로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했다. 김일성·김정일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절대권력체제로서 극단화된 초월적 일인체제는 내적 형성논리를 가지면서도 이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시장적 요소에 대한 거부감과 분단상황에 따른 그에 대한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었다. 중국, 베트남이 80년대부터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온 것과 달리 북조선은 이 흐름에 뒤처져 있다가 소련, 동유럽의 사회주의권이 붕괴함에 따라 경제위기에 봉착했고, 2002년에 들어서야 시장적 개혁에 착수했다. 북조선의 개혁·개방은 2000년 6·15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됨에 따라 남측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완화된 정세와 연동되고 있다.
남북간의 화해·협력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고 있는 현단계에서 남북관계는 각각의 내부상황과 밀접히 맞물려갈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좀더 면밀한 대책하에 의식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선 남한만 보더라도 새로운 단계의 남북경협은 전력 제공이나 인프라 건설 등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대북지원도 의료·식량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넘어 농업협력, 소비재 산업 등 개발원조 방식으로 확대되어야 할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남한정부가 대규모 대북지원과 투자에 나서야 할 이때에 사회적 양극화의 진행에 따른 막대한 복지수요 충족도 시급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동시에 현재 한국경제는 사회적 양극화란 현실의 다른 한편으로 400조원의 부동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유동하는 과잉자본의 상태에 있다. 국내에서 토건국가적인 개발수요를 보장해주는 방식으로는 한국경제가 더이상 선진화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부동산가격 상승이 가져온 망국적 폐해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와 과잉자본이 공존하는 국내의 불균형이 한국 민주주의의 병폐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북간 경제력의 극심한 격차와 과잉자본이 공존하는 한반도 내 불균형도 평화를 저해할 수 있다.
이처럼 분단으로 인한 국내체제의 한계가 남북의 화해·협력이 진전되어야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면, 대북 지원 및 투자를 중심으로 하여 화해·협력에 들어가는 비용은 거꾸로 국내 복지예산의 증대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 북조선에 투자처를 확보하여 남북의 동시발전, 협력발전을 꾀하는 방식은 과잉자본에 하나의 출구가 될 수 있다. 한정된 예산 속의 경합관계라는 근시안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평화와 복지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선순환관계에 있음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전망해주는 비전과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더욱이 안보비용의 억제와 절감 효과가 피부로 느껴질 만큼 평화와 복지로 이전되는 성과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점에서 남북간의 군사적 위협을 완화, 감소시킬 남북군사회담은 남북경협의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길게 보면 이 모든 것이 통일을 위한 선행투자, 통일비용이라는 남북상생의 인식이 국민들의 의식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
2002년 7·1조치 이후 조심스럽게 시장화에 나서고 있는 북조선의 경우도 내부개혁은 남북경협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진행될 것이다. 이미 남한의 식량·비료 지원과 남북경협이 북조선 내부 경제순환에서 무시하지 못할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북조선의 시장적 개혁은 현재 발전단계가 낮은 상황에서 경제개발과 결합하여 추진될 수밖에 없다. 북조선의 개혁·개방은 2004년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대북 투자진출과 직결되어 있다. 시장화와 개발의 초기단계에서 남한 자본의 투자도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향후 장기적 차원에서 북조선경제의 구조가 좀더 남북통합적이 되어갈 수 있다. 한국의 과잉유동자본이 대북투자에서 수익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남북협력하에 지속가능한 북조선개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개발의 초기 조건에서 한일 국교정상화에 따른 일본 자본의 진출이 현재와 같은 한국경제의 구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처럼 한국에서 평화와 복지, 경제의 새로운 도약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으며, 체제의 성격과 발전수준이 다른 북조선의 경우도 남북이 함께해야 바람직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6 현싯점의 한국 정치지형으로 볼 때 개혁—진보세력은 평화—진보세력이 되어야 다수파가 될 수 있으며, 그 매개는 평화와 복지의 결합에 있음을 고려할 때 이 결합에 균열이 일어난다면 진보세력의 앞길에 치명적이다. 평화와 복지, 개발을 연계한 ‘남북협력발전’구상을 실행가능한 정책으로 준비해야 할 때이다. 이것은 남북경협이 남북 각각의 국내경제에 주요 부문으로 자리잡아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공동경제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뜻한다. 이미 5년 전 6·15선언은 철도와 도로 연결을 통한 철의 씰크로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란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공간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로 넓혀놓았다. 한반도 전체,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시야에서 남북 각각의 개혁과 발전을 바라보며 협력방안을 찾아 실천해가는 것이야말로 6·15시대의 가장 주된 과제이다.
__
- 이하 분단체제론에 관해서는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세까이(世界)』지의 백낙청 인터뷰 「우리는 지금 통일시대의 들머리에 있다」(www.changbi.com/webzine/content.asp?pID〓396)에서 인용.↩
- 최근 최장집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는 그 스스로가 일찍부터 견지해온 분단국가 형성과정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나 남북관계를 적대적 공존관계로 보는 시각과는 어긋나는 논리라는 점에서 납득하기 힘들다(최장집 「해방 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 민주주의자의 퍼스펙티브에서」, 참여사회연구소 해방 6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역사와 좌표’자료집, 2005. 10; 최장집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나남 1996). 더욱이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그의 분석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도 최장집의 통일문제에 대한 시각은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다(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4).↩
- 예컨대 강정구의 6·25전쟁론은 어디까지나 학술논쟁 차원에서 처리될 사안이지, 사법처리 대상은 아니며 동국대의 교수 직위해제 조치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일논리는 거꾸로 통일논의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 서동만 「남북한통일방안의 접점: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 학술회의 발제문, 2000. 6. 26.↩
- 이근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새로운 접근」, 대구경북지역통일교육센터·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공동학술회의 발제문, 2005. 11.↩
- 백낙청 외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창비 2004; 특집 ‘새로운 한반도 경제모델의 모색’, 『동향과 전망』200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