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탐 엥겔하트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 창비 2008
미국을 성찰하는 통렬하고 생생한 목소리
조효제 趙孝濟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hyojecho@skhu.ac.kr
‘미국의 비판적 지성들과 함께한 블로그 인터뷰’란 부제를 달고 있는 탐 엥겔하트(Tom Engelhardt)의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Mission Unaccomplished, 강우성·정소영 옮김)가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 평자는 태국의 한 어촌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푸껫에서 가까운 꼬 야오노이라는 바닷가 마을. 1990년대 중반, 외부의 저인망 어선들이 몰려와 이 동네의 주수입원인 왕새우와 꽃게를 싹쓸이해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발만 구르고 있을 때 마침 인근을 여행중이던 미국 대학생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선단을 상대로 투쟁을 벌인다. 작은 보트를 타고 저인망 어선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본 주민들이 보트 시위에 합세해 몇달을 싸운 끝에 마침내 어선들이 물러나고 어촌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는 실화였다. 엥겔하트도 몇년 전 학생시절엔 저랬을 테지 하고 생각하면서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를 펼쳤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엥겔하트는 올해 예순넷, 지긋한 관록의 출판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당한 현역 넷뿌리(net root) 운동가이자 저명한 블로거다. 그가 운영하는 싸이트인‘탐디스패치’(www.tomdispatch.com)는 미국 진보진영의‘일용할 양식’이나 다름없다. 이 책은 엥겔하트가 “구할 수 있었던 가장 값싼 녹음기 두대”로 녹취해서 탐디스패치에 실었던 인터뷰들을 모은 것이다.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고 반전운동가로 변신한 씬디 시핸(Cindy Sheehan)을 포함해서 12명의 비판적 지식인 또는 일반 대중의 목소리가 빼곡히 실려 있다. 엥겔하트는 한국 독자에게 보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한다. 왜 미국에 대해 한국인이 더 많이 알아야 하는가? 이 상처뿐인 거인은 “자신들의 멸망에 여러분들까지 끌고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9면). 이 한마디에 홀려버린 평자는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를 그 자리에서 단숨에 독파했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크게 보아 두 입장이 있다. 첫째, 미국은 알고 보면 선한 나라인데 팔자가 사나워 지도자를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다는 견해. 이런 부류를‘착한 미국’파라고 부르자. 『네이션』의 편집인 카트리나 밴든 회블(Katrina vanden Heuvel)에 따르면 이들은 “헌법과 민주주의, 1차 수정헌법의 권리들, 법과 국제법이 명시하는 규칙들과 시민권, 시민의 자유, 경제적 정의”(224~25면)를 추구한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생각보다 진보적인 나라다.
둘째, 미국을 본질적으로 제국이라고 보는 견해. 이런 입장을‘열혈 반제’파라고 하자. 하워드 진, 제임스 캐럴, 찰머스 존슨, 마이크 데이비스 같은 지식인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에 따르면 미국은 “어떤 나라든지 침공이 가능한 비상작전계획을 보유”하고(115면), “군사대국과 전지구적 헤게모니를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여기”며(288면), 군사주의적 생활양식이 뿌리내린 나라다. 도대체 제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헤게모니를 바깥으로 다른 민족에 투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해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상관없이 우리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이용하는” 체제다(192면).
그런데 마이클 만(Michael Mann)의 지적에 따르면 미제국은 모순덩어리다. 역사 속의 모든 제국들이 연성 패권과 군사력을 함께 휘둘렀지만 미국은 특히 군사력에 의존한다는 특징이 있다. 험악하고 조야한 제국인 것이다. 연성 패권이라곤 소비문화밖에 없다. 이런 질 낮은 제국을 추구하면서 민중이 “항복할 경우에는 제국의 일원으로 포함”시켜주지만, “저항할 때에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박살”내는 나라다(52면). 미국은 스스로 내세운 건국이념조차 멀리하는 자기부정의 제국이다. 그러니 네오콘 따위는 스스로 계몽주의를 실천한다고 믿었던 미국 건국시조들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역사의 퇴행적 변종일 뿐이다.
극단적인 군사제국은 군비팽창과 재정적자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여기서 엥겔하트는 묻는다. 미국이 이제 일종의‘브레즈네프 시기’에 도달했는가? 평자는 소련공산당 서기장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1979년 6월 비엔나에서 뒤뚱거리는 노구를 이끌고 카터 대통령을 만나던 장면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소련도 1979년 12월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정확히 10년 뒤 동구권이 무너지지 않았던가. 비판적 지식인들은 미국도 확실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한다. 망해서 외부에 동냥을 구하는 신세, 즉 “무지하게 거대해진 발톱과 이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젖샘은 없는 암사자”(307면) 같은 신세가 되고 있다. 심지어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까이싸르같이 군국주의자이면서 인민주의자를 연기한 사람의 영향”하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210면). 이런 예측이 정확하다면 미국에만 매달리는 대외정책은 썩은 동아줄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미국 패권의 몰락』(창비 2004)에서도 예리하게 분석되어 있다.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는 제국주의의 문제를 주로 국제관계학의 측면에서 다룬다. 그래서인지 한두 꼭지를 제외하고는 군사화가 아닌 미제국주의의 다양한 측면이 타지역, 타민족에게 전파·확산되는 현상을 깊이 취급하지 않는다. 엥겔하트는 또한 역설적으로 반제국주의의 입장에도 패권적 경향이 있음을 놓치고 있다. 미국의 반제국주의자조차 은연중 미국중심주의라는 편향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힘’의 원천으로 본다는 것은 특정한 지정학적 권력의 관점으로만 세계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모든 일원론이 그렇듯 미국중심주의는 극단적 친미 또는 극단적 반미의 프레임을 강화하기 쉽다. 우리 처지에서 객관성과 균형감각을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할 대목이다.
한가지 더.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 미국 내부에도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미국 내에 급진적인 목소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끼기만 하면 될까, 아니면 미국을 조금이라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더 필요한 것일까? 미국의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국제연대가 가능하고 또 효과적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 책에 한국 상황을 연상하며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많았던 것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는 폭로의 위력이 갈수록 약해”지는 “얼어붙은 추문의 시대”(166~67면)를 읽으면서 삼성의 내부고발자 사건을 떠올린다든지, 미국사회에서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이‘군사적 케인즈주의’로 귀결된다는 지적에서 한국의 대운하 사업이‘토건형 케인즈주의’가 아닐까 하는 착상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날 미국이 처한 상황에 대해 내부 비판자들의 육성을 듣고 싶다면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보다 더 생생하고 통렬한 자료도 없을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 군사주의, 중동문제에 관심있는 평화운동가, 지식인, 연구자 그리고 평자처럼 개인 블로그를 열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야전교범처럼 열심히 읽어야 할 필독서임이 분명하다.
사족 하나. 최고수급 인터뷰어의 경지를 보여주는 문장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인터뷰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엥겔하트의 묘사를 보라. “약간 무심한, 마치 빨래통에선 꺼냈으나 건조기에 넣진 않은 빨래 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155면). 엥겔하트는 “끔찍한 일에 관해 글을 쓴다고 해도 글쓰기 자체에는 즐거움이 있어야 해요. 유머와 패러디, 풍자는 강력한 도구들입니다”라고 강조한다(339면). 예비언론인 그리고 학보사 기자들에게 무조건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