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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시선

 

사법개혁, 그 멀고 험난한 길

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

윤상철

하승수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어디서 찾을까

윤상철(尹相喆)│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법학자 김두식(金斗植)의 『불멸의 신성가족』(창비 2009)은 대한민국의 법조계가 살아가는 방식을 그‘가족’들과의 면접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법조계가 국민적 불신과 개혁 요구에 대해 자정능력의 부재를 보이는 상황에서 그 내적 원인과 해법을 찾으려 한 저자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질 만한 독자들이라면 이미 직간접적으로 접해본 사실들도 많겠지만, 그 문제들의 구체적인 작동방식을 보여주거나 법조계에 대한 근거 없는 인식을 새롭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연구가 그 가족의 방계성원이기에 가능했으며, 그만큼 더 어려운 결단이자 노력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평자는 한 진보적 학술지의 편집장으로서 촛불집회 재판개입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던 사법개혁과 법조현실을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하려던 적이 있다. 그러나 법학 연구자들이 학술논문을 통해 법조계의 이상과 이념이 아닌 현실을 분석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지상토론에는 동의했지만 논문 집필은 자료 부족을 탓하거나 내키지 않아했다. 법조계의 신성가족에서‘파문’당할 수도 있다는 사회적 비용은 개인적으로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듯했다. 그런 점에서도 저자의 결단과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저자는 사법불신의 뿌리가‘의사소통의 부재’와‘원만함이라는 신성가족 이데올로기’라고 결론 내린다. 전자는 판검사의 증원을 통해 해소될 여지가 있고, 후자는 변호사 경력이 있는 사람 가운데서 법관을 뽑는 법조일원화나 로스쿨 도입 등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더 나아가 시민들의 용기와 지혜에서 신성가족을 해체할 희망을 찾기도 한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풍부한 자료와 섬세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결론에 자못 허탈해할 수도 있다. 의사가 넘쳐나는데도 환자의 의사소통 욕구를 만족시키는 의사는 그리 많지 않고 몇몇 유명 종합병원에서는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의사집단이 존재한다는 비근한 예를 감안한다면, 그러한 대안이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다. 용기있는 시민들도 생업에 바쁘다면 친절하고 제대로 된 법조인을 찾아 헤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손쉽고 현실적인 선택을 할 공산이 크다.

구체적으로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내용도 있다. 우선 저자는 관찰자적 관점을 가진 외부인의 정체성을 지니기도 하고, 내부인이자 고발자로서의 정체성도 지니는 듯하다. 이처럼 양쪽의 정체성을 두루 내보이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법전문가들이 그러하듯 합법성의 기준에 지극히 충실한 편이다. 만일 저자 자신이 좀더 외부인의 시각을 취했다면 법조계에 대해 훨씬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더 진전된 개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회과학의 연구방법론은 크게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로 나뉘는데, 이 둘은 장단점을 맞교환하는 관계이다. 이 책이 채택한 면접조사라는 질적 연구는 양적 연구의 간결성에 의해 배제된 사회적 사실을 복원하거나, 미개척의 연구영역을 개방하기 위한 예비작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질적 연구의 주제가 기존의 계량적 연구가 내놓은 결과와 연관되는 경우에는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지금까지 제출된 법조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그 개혁 대안에 관한 이론적·경험적 연구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법조계 내부의 의견을 묻는 구성주의적 질문들이 함께 제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법조계 내부를 향한 질문들을 중심으로 면접하고 개혁 대안의 가능성을 묻지는 않는다.

대중적 담론이나 학문적 토론의 장에서 법조개혁의 대안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만일 그러한 대안들을 그들에게 제시했더라면 면접은 불편해지더라도 신성가족의 특권의식, 서열의식, 연고주의는 더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고 저자의 개혁 대안은 다르게 제시되었을 것이다. 그런 문제 때문인지 독자들은‘아 과연 그렇구나’정도의 사실 확인에 멈출 뿐 새로운 분노도 희망도 대안도 찾기 어렵다. 만일 법조계가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를 비판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집단이라면 변화의 도화선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피면접자들은 법조계에서 지난 10년간 사건에 영향을 주는 금품수수는 없었다고 응답했지만,‘삼성 X파일’이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등은 법조계가 뇌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특정 사건을 매개로 한 당사자들의 금품수수 같은 법조계 내부의 거래도 있지만, 법조계와 정치권력·기업권력 사이의 거래도 존재한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일상적 민주주의는 확장되지만 민주주의 의제에서 아예 배제되는 영역들도 함께 늘어나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보이는 특권적 현실의 수긍도 불편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사회적 자본으로 보기도 하지만 행위자로서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는 사회구조로 받아들인다. 전자가 수익이라면 후자는 그 비용이기 때문에 수익이 클수록 많은 비용을 감당한다. 신성가족처럼 특권적 네트워크라면 개인행위자는 수익만 생각하면서 행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가 공적 제도에 기반을 둔 사적 네트워크라는 점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큰 액수인 실비(室費)의 수수 관행이 용인되거나 검사에게 빌려준 법인카드가 단순한 보험으로 인식되는, 그 신성가족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의 큰 프레임과 일치한다고 보는 한 개혁의 가능성은 닫히게 마련이다.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같은 사실이라도 매우 다르게 해석되고 구성될 수 있다.

평자는 사회과학 저서란 독자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말미에서‘시민이 희망이다’라는 말로써, 일부 의식있는 판사들의 노력이나 법조일원화, 배심재판 같은 제도적 개혁에도 불구하고 신성가족은 여전히 강고하게 자기 자리를 지킬 것이며 시민대중의 요구에 불감하리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럼에도 그 시민들을 향해‘판검사에게 말걸기’라는 온건한 대안을 제시한다. 내부적 개혁동력을 상실한 특권집단에 대항하여 말걸기조차 엄두 내지 못하는 대중에게 개혁의 주체로 성장하는 첫걸음을 일깨워주려는 저자의 의도는 과연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사법패밀리의 해부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승수(河昇秀)│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수료하면‘사법연수원 몇기’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사법연수원 몇기’라는 것이 하나의 신분증 같은 구실을 하게 된다.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든‘사법연수원 몇기’로 동질감이 형성되기도, 서열이 정해지기도 하는 것이 대한민국 법조계의 문화다. 그만큼 법조계는 폐쇄적인‘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하는 집단이다.

변호사업계에서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전관 출신’이냐 아니냐이다. 전관 출신, 즉 판사나 검사를 하다가 퇴직한 변호사는 법조계 안팎에서 우대받는다. 물론 고위직에 있다가 퇴직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가 변호사로 일할 때 가끔 상대방 변호사가 대법관 출신이었던 적이 있다. 어떤 판사는 그에게 어쩔 줄 몰라하는 듯했다. 대법관까지 지내고도 사익을 위해 변호사 업을 하는 사람이나, 그런 이에게 극도로 깍듯이 대하는 판사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는 눈에 보이고 누구나 아는 문제이다. 그런데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가끔 판·검사가 변호사나 사건 관계자로부터 돈이나 접대를 받아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극소수의 폐해인지 아니면 넓게 퍼져 있는 현상인지 가늠할 수는 없다. 전관예우, 브로커 같은 고질적 문제도,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고 확신은 하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씨스템이나 그 규모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나도 변호사였지만, 전관 출신이 아니고 브로커도 고용해본 적이 없기에 그들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엿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법관조직이 관료화되어 있고, 법관들의 엘리뜨의식이 지나칠뿐더러 교양이나 가치관, 세계관이 편협하다는 것은 재판과정이나 판결문을 통해 느낄 수 있었지만, 역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사법개혁을 고민하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 어떻게 하면 법조계의 현실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였다. 우선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그것을 개혁할 대안들이 나오고 또 설득력도 갖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계의 주류와 거리가 멀었던 나의 경험만으로는, 그리고 시민단체에 관여해온 학자나 변호사들이 겪은 정도로는 늘 부족했다. 물론 들리는 이야기들은 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 또는 허구인지 알 수 없었다. 전관예우 문제만 하더라도, 어떤 판사를 만나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강하게 부정하기 때문에 뭐라 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었다. 이 책은 지금의 사법현실을‘있는 그대로’드러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법원이나 검찰 같은 관료적 조직의 내부문제, 그리고 법조계라는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집단을 분석하기 위해 심층면담이라는 방식을 채택한 것은 적절한 시도였다. 사실 폐쇄적인 커뮤니티의 문제는 그 내부인들의 이야기 없이는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법조계에 대해 품는 의문들을 사법현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관련자들의 입을 통해 답한다. 심층면담에 응한 면면 중에는 판사나 검사, 변호사도 있고 사무장도 있다. 법조계 밖에서 우연한 기회에 사법현실을 겪은 이들도 있다. 다양한 입장과 시각에서 법원과 검찰의 부패, 법원이나 검찰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청탁, 브로커의 실상, 법조인들이 겪는 여러가지 유혹 등 우리 사법현실의 전반이 다루어진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읽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것 같다. 얼마 전 민변에 소속된 변호사 몇몇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법조계 내부의 문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보여준 좋은 시도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현실을 과장한 면이 보이고 최근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적 평가도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두가지 평가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스물세명의 인터뷰 대상자들의 진술이 가진 제한성에 대해서는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체험한 사건 중에는 상당히 시간이 지난 것들도 있다. 여러 대목에서 잠깐씩 언급되기는 하지만, 최근의 현상들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지 못한 한계도 있다. 일례로, 요즘 들어서는 사법시험이나 사법연수원, 법조계의 현실에도 사회양극화가 반영되고 있다. 몇년 전부터 강남 출신, 외고·특목고 출신들이 법원과 검찰에 밀려들고 있다. 이런 양상이 계속된다면 법을 다루는 엘리뜨들이 전보다 더 편향된 가치관에 매몰될 우려가 있다. 법조계 내에서도 소수의 특권층이 더욱 특권화되는 것이다.

많은 장점 가운데서도 이 책의 한계를 짚는다면 사법현실에 대한 서술은 구체적인 반면 제시한 대안은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한 내용을 보면, 법조계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강조하고, 판·검사 증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잘못된 씨스템이나 관행에 도전하는 시민의 용기를 언급한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억지로 찾아본 희망’인 것을 보면, 저자 스스로도 흔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대안이 미흡하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대안은 여럿이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저자가 지적한 문제들, 즉 “20대 판사가 법대(法臺)에 앉아 있고 30대 검사가 공소유지를 담당하며 40~50대 변호사가 변론을 하는”(172면) 문제, 변호사 시장이 어려워져도 여전히 존재하는 전관예우와 브로커(대형로펌의 고문들을 포함한)의 문제, 법원과 검찰에 만연한 관료주의와 엘리뜨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사법개혁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남겨진 숙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최근의 경향까지 반영한 사법패밀리 해부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특히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사법부는 관료화에 덧붙여 퇴행적인 정치화의 우려까지 낳고 있다. 이런 현실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은 사법개혁의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작업이다. 따라서 제2, 제3의 『불멸의 신성가족』이 나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