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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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poem-k@hanmail.net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 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포옹이 지나가. 겁이 난다는 너의 말이 지나가.

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

눈밑이 검어져서는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막혀.

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군함말리(軍艦茉莉)의 우주여행

 

 

우주선은 명왕성 부근에서 워프를 시작했다. 생명의 물로 넘치는 행성 U—1999로 가기 위해 군함말리는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으로 구겨버렸다. 하얀 날개를 단 별들이 잔상(殘像)의 긴 허리로 따라왔다. 광선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우주의 골목. 고양이 알베르토가 ‘펜로즈의 육면체 삼각형’을 그려 보였다. 지도에 없는 별로 가는 길이 나온 지도가 모니터 위의 항로에 그려져 있었다.

 

 

운석들의 항(航). 크고 작은 운석들이 워프를 방해했다. 운석들 사이에서 콘크리트로 된 붓다의 머리를 보다!

 

 

전깃줄들을 따라 무수한 전파가 흐르는 하늘. 군중들이 피곤한 직장을 가방 속에 넣고 집으로 흘러간다. 후줄근한 항(航)이 쓰러져 일할 항(港)을 향해 가는 진부한. 속도가 빛을 끌고 차들의 길을 연주한다. 속도는 선율인가. 조밀한 정책들의 전차부대가 밀려가자 고장난 사람들의 주검이 둥둥 떠간다. 치적(治績)이 되어 흘러간다. 죽은 물이 고여서 썩는 곳으로 진부하게.

 

 

군함말리는 찢어진 어깨를 거머쥐고 떠간다. 별들이 바이올렛 빛으로 타는 어느 성단(星團)의 꽃밭인가보다. 고양이 알베르토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생명의 물이 있는 별 U—1999는 어디인가. 조타실이 반파되었다. 우주의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 가늘고 긴 직선 위를 군함말리는 가야 한다. 아름다운 곡예처럼. 자, 잠들기 전에 다시 항로를 점검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