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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한국 사립대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하여

2013년 이후 대학개혁의 이념

 

 

윤지관 尹志寬

문학평론가,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 ‘사학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회’ 회장. 한국문학번역원장 역임. 저서로 『놋쇠하늘 아래서: 지구시대의 비평』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등이 있음. jkyoon@duksung.ac.kr

 

 

1. 사학개혁의 사회적 의미

 

지난 712일 제79차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구재단’을 대학운영에 복귀시키는 방식의 이사진 구성을 경기대와 덕성여대에도 적용함으로써 현 정부 들어와서 진행된 분규대학 ‘정상화’를 실질적으로 마무리지었다. 사학운영의 전권을 가진 법인 이사회 구성에 분규 당시 운영진이었던 소위 종전이사들의 추천권을 인정한 것인데, 두 대학 모두 종전이사 추천 4인, 구성원 추천 2인, 교과부 추천 1인으로 구성하되 다만 경기대의 경우 종전이사 추천 몫 가운데 1인을 교과부가 임시이사 형식으로 파견키로 했다. 종전이사에게 과반수 추천권을 부여하는 이 방식은 구재단 복귀정책의 시발점이라 할 2009년 영남대 ‘정상화’에서부터 일관되게 채택되어온 것으로, 그후 조선대・상지대・세종대・광운대・대구대 등 전국 10여개 주요 사립대학들에서 과거 분규로 퇴출되었던 구재단이 사실상 복귀하는 결과를 빚었다. 분규 사학들이 관선 임시이사회를 통해 혼란을 수습하고 정상적 운영과 일정한 발전을 이루어왔던 터에, 분규 당사자들을 복귀시킨 명목상의 ‘정상화’는 교육현장을 분규가 야기되었던 그 상황으로 되돌려놓은 꼴이며, 이 때문에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사학분쟁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학분규와 정상화 문제는 단지 해당 사립대학들의 내부갈등에 따른 운영권 다툼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고등교육의 고질적인 병폐와 관련된 것이며, 이는 단순히 비리사학을 징벌하거나 퇴출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사회의 구조 내지 체제와 맺어져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수십개 대학에서 극심한 분규가 잇달아 발생해왔는데, 서울 소재 종합대학만 하더라도 경기대・광운대・단국대・덕성여대・동덕여대・성신여대・세종대・한국외대・한성대 등 10여개에 이르고, 전국적으로 계명대・대구대・동의대・상지대・서원대・조선대 등등 모든 지역에 걸쳐 있다. 연쇄반응처럼 일어난 이 사학분규들은 사학의 설립자나 그 인척 중심의 족벌경영이 굳어져 그 폐해가 대학교육 현장에서 용인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곳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개 족벌재단의 비리나 전횡에 대한 교수・학생 등 구성원들의 항의가 단식농성이나 수업거부, 나아가 징계와 고소・고발 등 법적다툼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극단적 형태의 대학분쟁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일로, 한국사학 특유의 구조적 문제가 한계에 이른 징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임시이사 파견으로 갈등이 미봉된 상황에서 현 정권이 다시 사학 지배구조를 복원하는 퇴행을 강제한 것이다.

현 정권의 퇴행적 행태를 ‘87년체제’ 말기의 혼란상으로 이해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의 계기로 2013년을 제시하는 ‘2013년체제’론이 주목받는 가운데, 올해 말 대선 이후 한국사회의 지향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물론 2013년이 새로운 체제의 시작이 되려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이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다시 일정한 혼란과 조정을 거칠 수밖에 없겠지만, 성공하는 경우 새 정부는 그간의 퇴행을 되돌리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된다. 1987년 시민혁명이 군부독재의 종식과 사회민주화 추세의 시발점이 되었듯이 2012년 대선 승리는 한국사회의 현상(現狀)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고질화된 사학문제도 단순히 현 정권의 퇴행적 정책을 시정한다거나 참여정부의 개혁 시도를 이어받는 수준의 것이어서는 달라진 환경에 부응하지도 못하거니와 교육민주화와 선진화라는 시대적 과제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실상 족벌사학의 지배로 인해 고질화된 사학비리나 전횡은 한국 사학의 형성 배경과도 유관한 특히 후진적인 교육 현실로, 대학교육이 국내적으로 보편화되고 국외적으로 경쟁과 교류가 필수적이 된 ‘탈근대적’ 환경에서 더이상 지탱할 수 없는 봉건유습이라 할 수 있다. 사학비리를 없애려는 정부 차원의 규제나 사회적 문제제기가 늘 있어왔음에도 그것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사학경영자들의 자격미달과 의식부족 탓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사학재단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구조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고질병을 근절하고자 사학개혁입법을 추진하였으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장외투쟁과 범보수세력의 격렬한 저항으로 결국 개악되고 만 참여정부의 사례가 그것을 입증한다. 이 갈등과정에서 개정 사립학교법에 대한 당시 한나라당의 색깔론적인 태도나 “인민위원회의 사학접수 전야” 운운하는 보수단체의 구호는 교육이념의 차이만이 아니라 사학재단이 분단체제 유지세력의 양보할 수 없는 보루 같은 것임을 말해준다. 결국 사학비리의 근절이나 사학지배구조의 개혁이라는 과제는 분단체제를 극복해나가는 운동과 결합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학은 2013년체제 수립을 위한 가장 첨예한 싸움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 사학문제와 대학개혁의 이념

 

한국에서 사학은 고등교육 기관 수로 87%, 학생 수로 75%(일반대학의 경우만 보면 79%)를 차지하면서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한국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크다. 사학의 이 압도적인 비중은 사정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 대학의 경우(76%)만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1) 이같은 높은 비중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러 사학이 한국교육을 혁신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왜인가? 한국사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필요한 고급인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국민의 높은 교육열에 대한 해결책으로 육성되고 지원받아왔는데, 고질화된 사학비리와 분규가 말해주다시피 이 과정에서 공공적인 교육기관에는 합당하지 않은 폐습을 구조화해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폐습이 “가족적인 폐쇄적 운영구조, 권력과의 긴밀한 연계구조,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뒷받침하는 법적 옹호의 틀”이라는 세겹의 중첩요인을 가진다고 정리한 바 있다.2) 이 폐습구조 자체는 한국사학 모두에 해당되는 것으로 분규사학들은 말하자면 그 터진 상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개혁의 과제 가운데서 사학개혁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가 짚어보아야 하는 것은 교육에서의 ‘개혁’이 과연 무엇을 말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학개혁이라는 과제가 사학비리를 척결하는 문제를 넘어 기득권질서와 결합된 사학의 지배구조 및 그 폐습을 혁신해나간다는 의미에서 운동성을 지닌다면, 현재 대학교육에서 흔히 이해되는 개혁의 방향은 이러한 취지와는 무관하거나 상반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시대적 과제가 되면서 대학을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개혁정책이 잇달아 제시되고 이에 부응하여 각 대학마다 ‘개혁’이 앞다투어 추진되었다. 이른바 세계화시대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의 개혁 드라이브가 대학에 몰아닥치면서 교과부가 설정한 평가지표를 높이기 위해 대학들 간 그리고 대학 내부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가 대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혁’의 이름을 한 이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대학의 이념과 기능을 오히려 위기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고, 이미 두번에 걸친 등록금 자율화조치로 급등한 등록금을 다시 인상할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과중한 경제적 부담으로 학업에 전념할 수 없고 교수들은 본래 의미의 학문연구보다 평가지표를 높이는 일에 우선적으로 동원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추세가 한국사학의 구조적인 문제와 결합하여 더 악화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사학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바로잡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과제가 흐려지거나 혼선을 빚는다는 점이다. 이 현상은 한국사학이 고등교육에서 차지하는 압도적 비중 때문에 더욱 심각하고 서구의 대학들과 비교해볼 때 더 선명해진다. 실상 신자유주의의 대학 지배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라 구미의 대학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과 중심의 경쟁이 강화되면서 대학 본래의 이념인 학문탐구나 창조적 지식생산 및 비판적 사고의 훈련이라는 목표가 흐려지고 대학이 기업체처럼 이윤창출의 도구가 된다는 비판이 구미 학계에서 속출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구미 대학에는 이 흐름에 맞서거나 전적으로 굴복하지 않는 저항력이 존재한다. 가령 프랑스・독일과 북유럽 여러 나라의 대학들은 공적 고등교육 개념이 확립되어 있고 미국 방식을 좀 더 지향하는 영국조차 최근 등록금 상한선을 올리는 등의 정부의 개혁조치들에 대해 그 반교육성을 비판하면서 학계를 중심으로 ‘공공대학’(public university)을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3) 더구나 정작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조차 대학의 공적 성격에 대한 전통과 인식이 일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가령 대규모 연구중심대학들이 대형 연구프로젝트의 수주 등 자본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미국 고등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주립대학 체제의 기본틀은 여전히 유지되고, 사립대학의 경우에도 인문교육 중심의 작은 칼리지들은 차치하고라도 대표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인 하버드가 그런 것처럼 기초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학부과정의 교육틀도 튼실하다.

이에 비해 한국 대학들이 별다른 제동장치도 없이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에 앞장서고 소비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학생들을 경쟁력 강화의 희생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은 왜인가? 심지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일어났듯이 가령 영어강의 전면화와 징벌적 등록금제 등 맹목적인 경쟁력 추구가 학생들의 목숨조차 희생하게 한 것은 왜인가? 한편에서는 국가 교육정책이 국제화 내지 세계화를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의 추세를 맹종한 탓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 대학이 그렇게 휩쓸릴 수 있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은 국립대학대로 완강한 정부방침에 제대로 제 목소리를 낼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사립대학의 경우 의사결정 구조의 일방성과 폐쇄성 및 취약한 재정과 교육이념의 부재라는 한계가 있다 보니 추세에 따라 지표경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다수 사학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학들조차도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구성원들의 참여가 제한되는 비민주적인 양태를 가진 탓에 가령 최근 고려대의 적립금 투자손실의 사례처럼 대학운영상의 장애를 초래하게 된다.4) 사학의 압도적인 비중이 오히려 한국에서 교육상황 전체를 악화시키고 그 구조적인 거버넌스의 비민주성이 역설적이게도 대학의 이념과는 무관하게 경쟁과 이윤 추구의 자본주의 논리에 휩쓸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대학교육에서 가장 긴급한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구조조정과 반값 등록금의 실현 문제도 마찬가지로 공・사립의 불균형한 구성비율이라는 근본문제와 얽혀 있다. 참여정부에서 국공립대학의 정원감축과 통폐합을 유도하면서 시작된 대학구조조정은 현 정부에 들어와 부실사학을 선정하고 정리하는 방식의 강제퇴출 절차에 돌입했다. 출산율 저하의 영향으로 앞으로 10년 후면 대학진학 대상자가 현재 입학정원의 3분의 2 정도로 줄어드는 절대 여건 때문에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면이 있고, 이는 과도하게 팽창한 사립대학에 거의 전적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워낙 사학의 비중이 크긴 했지만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대학 설립을 시장에 맡기는 대학설립준칙주의가 채택됨으로써 이후 2004년까지 37개의 일반대학이 신설될 정도로 사학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근시안적인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예정된 결과로 이제 존폐의 기로에 놓인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은 평가지표를 높이는 데 사활을 거는 식의 왜곡된 교육환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등록금 상승도 사학의 부실한 재정과 교육이념의 부재가 그 한 원인을 이룬다. 대학운영에서 등록금에 대한 의존율이 70%에 가까운 반면 재단전입금은커녕 의무적인 법정부담금조차 납부하지 않는 대학이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한국사학은 재정구조상으로 취약하다. 이러한 여건에서 역대정권은 사학비중을 오히려 높이고 교육재정 부담을 학생과 그 가계에 떠넘겼다. 1989년의 사립대 등록금자율화 조치로 90년대초 사립대의 등록금 폭등이 있은 후 2003년 국립대에도 같은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국립대의 등록금 또한 폭등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대학 간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등록금을 상승시킬 요인을 제공한 결과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5)

한국교육의 두 현안, 즉 대학구조조정이 요구되고 등록금 대폭인하가 국민복지의 차원에서도 필요하게 된 근원에는 이처럼 한국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과도한 비중과 그로 인한 대학교육의 공적 성격의 미비가 자리하고 있다. 결국 이 불균형을 시정하지 못하면 두 현안 또한 좌초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학문제는 사회기득권 구조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구조를 해체하는 사회개혁의 과제와 이어진다. 사학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사학의 사유화 관행을 타파하고 공적 성격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것인데, 교육에서 2013년체제를 수립하는 일은 이 문제와 정면대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3. 사학개혁 정책에 대한 모색

 

사학개혁이 단순히 사학비리를 근절하거나 줄이는 문제라면 2013년 들어설 새 정부가 기존의 사립학교법(2005년 개정)을 복원하는 것으로도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다. 참여정부의 4대 개혁입법 가운데 유일하게 개정・적용된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고질적인 비리가 설립자 중심의 족벌경영의 폐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고 그 권한을 제한하며 투명경영을 위한 공적 감시를 강화하고 구성원들의 경영참여를 일부 보장하는 형태로 사학의 공익성을 높이고자 했다. 이사회에 개방이사를 4분의 1 이상 포함시키고 개방감사 1인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거버넌스 개혁과 이를 위해 구성원을 대표하는 대의기구인 대학평의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실상 개방이사 및 감사의 추천권과 학사의 중요사항에 대한 의결권을 가진 대학평의원회가 제대로 기능하기만 하면, 패쇄적인 족벌경영 폐해의 상당부분은 개선될 여지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2005년의 개정 사립학교법은 제대로 시행도 되기 전에 당시 야당을 위시한 보수세력의 반발로 불과 2년 만에 재개정되고 만다. 대학평의원회의 심의권한을 대폭 축소시키고 개방이사 또한 추천권을 일부 주되 이사회가 최종 결정하게 하여 취지를 약화시켰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따로 설치하여 분규사학 문제를 다루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대법원장 추천자가 11인 중 5인으로 거의 반수에 육박하는 데서도 보이듯 사학문제를 교육적 차원이 아니라 경영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으로 치환함으로써 현 정권 들어 과거 분규 끝에 퇴출된 비리재단을 모두 복귀시키는 역할을 맡게 된다. 실제로 2007년 개정법은 사학개혁의 퇴행이며, 그나마 기능이 약화된 대학평의원회조차 일부 대학은 설치하지 않고 버티거나 설치했더라도 대개 명목상으로만 운영함으로써 참여정부의 사학개혁 의도를 거의 무산시켰다.

그렇다면 새 정부에서 2005년 수준의 사립학교법 개정을 재추진하는 것이 사학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사립학교법 개정 추진 당시의 참여정부와는 달리 의회권력이 사학개혁에 적대적인 쪽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거니와, 참여정부 시대에 비해 교육환경도 변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의 보편화와 국제화가 더 확산되었고 국내적으로 대학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여기에 총체적으로 대응하지 않고는 사학비리 척결조차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 지금의 상황인 것이다.

입법 차원의 개혁에 치중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면, 행정적인 조치는 어떤가? 많이 훼손된 상태지만 현행 사립학교법에도 가령 대학평의원회의 조직 자체는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교수협의회 등 구성원 단체들이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했지만 근본적인 개혁작업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현행법을 모든 대학이 지키도록 강제성을 발휘하기만 해도 일정한 개선은 이루어질 수 있다. 가령 연세대・이화여대・고려대・성균관대 등 수도권의 큰 규모 법인 가운데는 개방이사 선임을 미루고 대학평의원회조차 구성하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규사학의 경우 관선이사를 파견할 근거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개혁적 인사들로 재구성하여 제 역할을 하도록 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준의 변화로는 사학비리 척결에도 한계를 지니거니와 교육의 새로운 체제를 구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결국 진정한 사학개혁의 계기는 대학의 구조조정과 반값 등록금 문제라는 현안을 풀어나가는 과정과 결합하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즉 공・사립의 구성을 공립의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정해나가고 동시에 사학의 거버넌스를 민주적으로 바꾸어나가는 정책 전환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대학교육을 공공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교육이념의 쇄신이 동반되어야 하고,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편향에서 벗어나 대학교육 본연의 목적을 살려나가는 장기기획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해나갈 필요는 있지만, 대학을 사유화하고 학문연구와 교육의 원뜻과는 거리가 있는 경쟁구조로 밀어넣는 방식이 아니라 지식생산과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대학의 본 기능을 활성화시켜야 진정한 의미의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다. 이 전환을 위해 새 정부는 시민사회의 교육운동적 요소를 수합하고 여기서 동력을 얻어낼 필요가 있는데, 문제는 과연 이 과업을 관할청인 교과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실상 교육관료들은 현 정부에서뿐 아니라 애초부터 사학세력과 밀착되어 있다는 혐의를 받아왔고 퇴직한 관료들이 사립대학의 총장이나 이사, 교수 등으로 임명되는 사례는 매우 흔하다. 참여정부에서 사학개혁이 실패하게 된 연유 중의 하나도, 일찍이 이수인(李壽仁) 의원이 교육마피아라고 표현한 반개혁세력, 즉 “부패 사학재단과 일부 교육관료의 카르텔”6)과 정권 초기부터 정면대결하지 않고,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교육시민운동의 압박으로 집권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이를 추진한 탓이 크다. 2013년이 사학의 근본개혁을 위한 원년이 되려면 새 정권은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집권 초기부터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에 맞서서 광범하게 일어나고 있는 교육개혁운동의 동력을 정책 내부로 끌어들이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교육 전반을 혁신하는 가운데 사학개혁의 쟁점들에 대응해나가야 한다. 교과부가 혁신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면 현재 교육운동단체나 학계에서 논의 중인 ‘국가교육위원회’ 구상이 사학개혁을 위해서도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민간 참여로 구성되는 이 위원회가 일정한 독립성을 갖고 사학문제를 포함한 국가의 교육이념과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교과부는 이를 실행하는 행정기구로 개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되든 사학개혁의 주체가 핵심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방향은 기형적으로 비대한 사학비중을 줄이고 대학의 구성비율을 선진국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통합민주당의 411총선 공약인 ‘공・사립 비율 5050’의 추진이 일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이는 유럽이나 미국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학 중심의 대학교육구조가 굳어져온 우리 현실에서는 일차적으로 추진해가야 할 목표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사립대학의 과도한 비중을 줄이는 일은 비단 사학문제 해결의 단초일 뿐 아니라 고등교육 전체의 균형을 잡아 보편교육의 성격을 가지게 된 대학교육의 공적인 성격을 확립하는 과정이겠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교육의 체질을 개선하는 이같은 작업은 사학이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에 비추어볼 때 상당한 저항이 예상되고 법적인 뒷받침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 정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과지표 중심의 대학구조조정 작업을 공・사립의 비율을 조정하는 장기기획과 결합하여 대학의 공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고등교육의 체질개선 작업은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통합민주당의 411총선 공약은 아직 구체적인 정책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권할 경우 실천의지만 있으면 실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반값 등록금 추진과 대학구조조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상 이를 대학교육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관건은 과연 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재정이 어떻게 마련되느냐 하는 점인데, 큰 문제가 안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어차피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에 공적 기금을 투입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마침 통합민주당이 이를 위해 현재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부금법이 제정되거나 다른 방식으로라도 고등교육예산이 확보되면7) 이를 대학의 구성비율을 조정하는 정책과 결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즉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대학구조조정도 대학교육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는 전기로 활용한다면 이 과정에서 사학의 과도한 비중을 줄여나가 한국 고등교육을 정상화하는 기회일 수 있다.

다만 사학의 공적 개념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사학 기득권세력의 반발이 예상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정치적 과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발 자체는 과거 사립학교법 개정을 좌초시킨 정도로 여론의 지지를 얻거나 확산되지는 못할 것이다. 반값 등록금의 추진과 대학구조조정의 필수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올해 대선을 통해 확인된다면, 족벌세습구조를 혁파하고 대학교육을 선진화하는 정책수행에 필요한 여론의 동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교육환경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사학에 공적 기금을 투입하는 데 찬성할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고, 족벌경영으로 문제를 일으켜 공적 기금 투입이 제한된 사학에 자식을 보내고 싶은 국민도 별로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사립대학의 공적 성격을 어떻게 강화하는가와 구체적으로 이 전환대상 대학들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인데, 현재 교육단체나 학계에서 논의되는 방안 가운데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의 구상이 현실성 있어 보인다.8) 국공립을 더 설립하거나 부실사학을 환수하여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급이 넘치는 상황에서 국공립 신설이 쉽지 않거니와 부실사학을 환수하는 것은 국가재정의 부담만 키울 것이다. 따라서 경영이 한계에 이른 부실사학은 달리 정리하더라도, 여타의 사학법인의 경우 선택에 따라 등록금 대폭 인하가 가능한 수준의 대학운영비를 지원하되 가령 공익이사를 3분의 2 이상으로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한 거버넌스를 갖추는 것을 조건으로 하면, 사학비리를 비롯해 대학경영의 비민주적 폐쇄구조는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법인의 형태이지만 준공립이라고 할 이러한 전환을 원하지 않고 사학 고유의 특성을 살려나가고자 하는 사립대학에는 정부지원은 최소화하되 그 설립목적에 맞게 대학을 운영할 권리를 보장하면 된다. 만약 문제있는 족벌사학이 이 조건부의 정부지원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구성원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대학구조조정 국면에서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자체적으로 유지가 가능한 재정이 건실한 사학이나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학교법인 등 특수성이 있는 곳은 일종의 독립형 사학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육의 공적 성격을 강화해나가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계의 숙원인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제도화한다거나 관련된 법적 장치들을 갖춘다거나 하는 행정 및 입법 상의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또 기왕에 제기된 대학교육 개혁방안 가운데서 가령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여기에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포함시킨다는 제안과 같은 좀더 장기적인 기획이 사학개혁의 당면과제와 어떻게 연계될 수 있는지 등등 더 검토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당장은 통합민주당의 총선공약처럼 공・사립의 비율을 재조정하는 사학개혁이 다음 정권이 우선적으로 실천할 만한 정책이라고 한다면, 이를 실제로 추진할 수 있기 위해서도 대학교육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학이 더이상 족벌체제라는 전근대적인 구조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현 정권에서 다시 복귀시킨 구재단은 문제의 설립자 자신보다도 그 친족을 통해 지배권을 가지는, 말하자면 세습구조를 형성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학의 족벌체제가 세습구조로 이어지는 이러한 퇴행으로는 한국 대학이 새로운 시대에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것이 자명하다. 개혁의 여건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차기정부에 필요한 것은 사학문제를 비리나 전횡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차원이 아니라 대학교육을 근원적으로 개혁해나가는 과정과 결합시키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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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의 대학은 영국의 경우를 제외하면 적어도 90% 이상 거의 100%가 국공립의 성격을 띠고 있고 영국도 법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정부기금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공립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대학생도 72%가 국공립에 재학 중이다.

2) 윤지관 「한국사학, 왜 무엇이 문제인가」, ‘사학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회’ 학술대회(2012.6) 자료집 4면.

3) 영국정부의 대학재정 지원예산 삭감과 등록금 인상 등 신자유주의적 고등교육정책에 맞서 대학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교수 및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공대학 운동’(Campaign for Public University)을 가리킨다.

4) 교과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2007년 사학법인에 적립금을 50% 한도에서 금융투자를 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이 화근으로, 고위험 자산투자로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대학만도 고려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이다.

5) 2011년 OECD 교육통계에 따르면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공・사립 각각 세계 최고인 미국 다음으로 높다. 반값으로 낮추더라도 세계 7위 수준이라고 평가된다.

6) 이수인 「교육개혁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창작과비평』 1999년 여름호 377면.

7) 가령 현재 GDP의 0.6%인 고등교육예산을 OECD 평균인 1%로 증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현 정부도 이를 장기계획으로 발표한 바 있다.

8) 사립대학이 법인의 형태를 유지하고 일정하게 운영의 자율성을 가지되 국공립에 버금가는 정부지원을 받는 경우를 지칭하는 용어로, 때로는 ‘정부의존형’이라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