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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데이비드 하비 『반란의 도시』, 에이도스 2014

새로운 도시혁명은 가능한가

 

 

김백영 金白永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rangzang@naver.com

 

 

164-촌평-김백영_fmt팔순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중인 원로 지리학자이자, 현존하는 맑스주의 이론가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사람 중 하나이며, 국내 학계에도 널리 알려진 좌파 지식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2012년 출간한 Rebel Cities: From the Right to the City to the Urban Revolution의 번역본 『반란의 도시』(한상연 옮김)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300면가량의 비교적 가벼운 분량에, 간결하고 대중적인 문체로 씌어 있지만, 그 속에는 『자본의 한계』에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과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를 거쳐 『신자유주의』 등에 이르는 저자의 평생에 걸친 연구성과가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은 일찍이 1960년대 후반에 독창적인 ‘도시권’과 ‘도시혁명’의 실천을 제안한 선구적 지성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에 대한 헌사에서 출발한다. 르페브르는 마치 자본주의 지배체제라는 견고한 바위에 부딪치는, 순식간에 몰려왔다 금세 사라져버리는 노도와 같은 대중의 힘을 어떻게 사회변혁의 에너지로 포착하고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최초로 정식화했다. 하비는 상황주의자 르페브르가 제기한 도시혁명론을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전통적인 조직화된 노동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아니라 조직화되지 않은 도시의 ‘프리캐리아트’(precariat)를 염두에 둔 새로운 혁명전략의 타당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그가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시켜온 도시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도시야말로 ‘자본주의 위기의 진원지’이자 동시에 ‘반자본주의 투쟁의 본거지’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주된 논지는 다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류 맑스주의 이론에서 그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간과해온 것과는 달리, 도시공간은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는 핵심적 장이다. 하비는 그것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역사적 장면들로 19세기 중반 오스망(G.-E. Haussman)의 빠리 대개조, 2차대전 후 미국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의 교외화 전략, 그리고 1990년대말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일어난 글로벌 부동산 붐을 든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악명 높은 대혁명과 바리케이드의 도시’ 빠리를 스펙터클한 경관이 연출되는 소비·관광·쾌락의 중심지이자 철도망과 결합한 ‘모더니티의 수도’로 재탄생시킨 오스망주의, 고속도로망과 연계하여 미국의 대도시권역을 팽창시키고 중산층 교외주택을 통해 잉여생산물을 흡수함으로써 1950~60년대 미국인의 생활양식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한 모제스의 대도시 교외 개발, 그리고 뉴욕·LA·런던을 비롯하여 두바이·쌍빠울루·싼띠아고·뭄바이·요하네스버그·서울·타이베이·모스끄바 등 세계 각지의 초거대도시에 전대미문의 장대하고 경이로운 건설 붐을 연출해 쇼핑몰, 멀티플렉스, 창고형 점포, 패스트푸드점, 수제품 시장, 부띠끄 문화를 탄생시킨 최근의 글로벌 신자유주의에 의한 ‘창조적 파괴’에 이르는 도시공간의 급격한 변화는 모두 과잉축적으로 인한 자본주의 위기 국면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사한 성격을 띠는 역사적 사례들이다.

이러한 유사성은 과잉자본을 도시 건조(建造)환경에 대한 과잉투자로 전환시켜 해소했다는 점뿐 아니라 그 부작용으로 곧이어 심각한 도시위기와 반란이 초래되었다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오스망의 빠리 개조가 프랑스 제2제정의 재정적 파탄과 1871년 빠리꼬뮌으로 이어졌듯이, 모제스식의 대규모 교외 개발은 ‘이너시티’(inner city)의 황폐화와 삭막한 교외생활이 초래한 1960년대 ‘도시위기’와 그뒤의 ‘암울한 70년대’로 이어졌다. 이러한 도시개발의 병폐는,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마음으로 모제스처럼 건설’하는 억만장자 블룸버그(M. R. Bloomberg)의 개발주의적 시정(市政)하에서 점차 부유층의 전유물로 변모한 맨해튼의 경우나, 지난 20년간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를 100개 이상 새롭게 건설한 중국, 그리고 전지구적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 인구 20억명을 약탈경제의 사슬 속에 포섭해낸 마이크로 파이낸스라는 신종 금융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둘째, 무절제한 축적과 금융투기 메커니즘에 의해 공유재에 대한 약탈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자본주의 도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공유재가 생산되는 장,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하비는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의 ‘공유지의 비극’론과 엘리너 오스트롬(Ellinor Ostrom)의 분권적 자치론, 그리고 찰스 티봇(Charles Tiebout)이 제시한 파편화된 대도시 모델의 이론적 문제점을 비판하고,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의 연합주의를 활용하여, 문제의 핵심은 공유지 그 자체가 아니라 공유지를 둘러싼 사회관계를 바꾸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도시와 지역에 바탕을 둔 대항운동은 공유재의 사유화가 독점지대의 기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필연성이 도출된다. 저자가 ‘와인 거래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듯이, 독점지대는 특정한 자원·상품·입지를 특정한 도시나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떼루아terroir’로 총칭되는 독특하고 복제 불가능한 품질을 갖춰 독점가격으로 팔리는 유럽산 와인을 생각해보라). 도시의 경우에도, 빠리, 아테네, 뉴욕, 히우지자네이루(Rio de Janeiro) 같은 이름은 독점지대를 획득할 수 있는 고유한 집합적 상징자본을 갖춘 대표적 도시 브랜드들이다. 문제는 독점지대가 그 도시·지역·장소만의 고유성·진정성·독창성과 그것의 상품화·화폐화 가능성이라는 두가지 모순적 속성이 결합할 때에만 발생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 전세계 각 도시에 만연한 도시 기업가주의는 항상적으로 예술성과 상업성의 딜레마에 비견할 만한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예컨대 까딸루냐의 독특한 역사성과 지역성을 품고 있는 도시 바르셀로나가 도시 브랜딩에 성공하여 글로벌 관광도시가 되는 순간, 바르셀로나만의 매력이 상실된 천박한 ‘디즈니화’의 징후를 드러내어 독점지대 수취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위험에 노출된다. 그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글로벌 자본주의는 그 상품화 논리를 전면화하면 할수록 진정성·지역성·전통·집단기억을 바탕으로 한 반상품화의 대항정치가 출현할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을 열어놓게 된다. 물론 저항운동 측에서도 지역주의·지방주의·국수주의적 편향과 폐쇄성을 극복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지만.

이러한 입론을 바탕으로 하비는 노동운동이 광범위한 도시 비공식 부문을 그 주체로서 포함시켜야 하고, 지역운동과 전략적으로 결합해야 하며, 생산과정에서의 착취뿐 아니라 재생산과정에서의 약탈에 반대하는 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일련의 새로운 도시혁명의 명제를 도출해낸다. 그의 테제는 단지 낡은 맑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혁신과 실천적 갱신이라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사유화와 난개발로 파멸적 낭비 경향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현대 대도시를 어떻게 하면 인간적인 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인류 공동의 문명사적 과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공감대를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공은 그로부터 한발 더 나아간 논쟁적 실천전략에 대한 정밀한 이론화를 유보한 댓가로 보인다. 이 책은 도시라는 공유재가 어떻게 소수 특권계급의 사유물로 전환해왔는가를 자본주의 축적위기론과 독점지대의 법칙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확장시킴으로써 보편적인 도시반란의 가능성을 논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과연 개별 도시·지역의 범위와 수준을 넘어서 글로벌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도시혁명’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지막 두개 장에서 저자는 2011년의 런던 소요사태와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을 소개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보여주려 하지만, 앞선 다섯개 장에서 전개된 예리하고도 풍부한 분석의 결론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고 피상적인 논의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미완의 도시혁명론에 대한 아쉬움에도, 맑스주의의 일관된 이론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글로벌 도시화 현상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생생하게 분석해내는 노(老)대가의 녹슬지 않은 필력과 혜안은 찬탄할 만하다. 과연 미래의 도시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