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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메타적 상상력의 미래를 위하여

권혁웅 비평집 『시론』

 

 

강동호 康棟晧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문학을 위한, 타자를 위한 변론: 박민규론」 「실패의 존재론: 김현의 문학론을 읽는 방법」 등이 있음. finhir@naver.com

 

 

35412000년대는 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회의를 제기하는 각개전투가 다양한 전선 위에 펼쳐졌던 현장이었다. 미래파, 다른 서정, 뉴웨이브 등 그 호명법과 태도는 각양각색이었지만, 이 논의들이 하나같이 ‘시적인 것’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들을 내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이제 시에 대한 전통적인 규범과 기율들이 뿌리째 흔들리고, 시에 대한 새로운 버전의 형이상학이 요청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혁웅(權赫雄)의 『시론』(문학동네 2010)은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시가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던 형이상학적 자기 검증을 풍부한 경험적 사례와 더불어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최근 시들이 보여준 미학적 성과들을 충분히 수용하는 가운데, 그간 시이론에서 규범적으로 받아들였던 개념들에 대한 해체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몇가지만 간추리자.

첫째, 시적 주체 개념의 도출. ‘주체’는 2000년대 시 담론의 가장 뜨거운 격전지이자, 기왕의 시학에서 통용되던 ‘화자’에 대한 발본적인 반성의 결과다. 2000년대의 전위적인 시들이 공통적으로 문제삼았던 것이 바로 시적 화자가 구사하는 초월적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화자’라는 가상적 실체를 문제삼고 ‘주체’를 새롭게 규정하자는 저자의 주장이 시의 존재론과 정치학의 동반 개혁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모든 시적 발화의 책임 소재를 시인에게 귀속시켰던 자아 중심주의적 독법에서 벗어나, 시적인 것을 시의 언어적 장치들이 구조적으로 배치됨에 따라 만들어지는 텍스트 효과로 볼 여지가 생긴다.

둘째, 대상에 대한 탐구. 시의 목소리가 생성되는 위치가 화자에서 주체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더이상 초월적 목소리의 담지자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주객 사이의 비화해적 관계가 갱신될 여지가 발견된다. 즉, ‘자아’의 존재론적 중력을 포기하는 대신 주체를 구조적으로(사후적으로) 탄생시킨 타자적 요소들의 특정한 배치에 착목함으로써 다층적 계열의 의미망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시적 대상과 주체의 온당하고도 평등한 공존을 의미론이 지탱하는 형국이다.

셋째, 서정에 대한 재정의. 2000년대의 어떤 논의틀에서 서정과 반서정이라는 이분법적 대결구도가 강화되면서 서정을 일종의 고루한 미적 형태의 이념형으로 박제하려는 위험성이 발견된다. ‘서정적인 것’에 대한 탐구가 결락된 상태에서 제기되는 이 대립은, 전위적인 시를 옹호하기 위해 ‘서정시=낡은 시’라는 허약한 등식을 일종의 비평적 스파링 파트너로 동원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권혁웅의 주장처럼 “주체의 정서 표출을 목적으로 하는 시”(137면)가 서정에 대한 가장 합당한 정의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런 광범위한 규정에 대한 합의를 기반으로 서정의 양태를 세분화하여, 오늘날의 많은 전위적인 시를 서정의 영역에 포섭하는 것은 실로 온당한 접근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권혁웅의 『시론』은 그가 서문에서 말했듯 “자생적인 이론”(6면)의 생산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론의 자생성이 왜 중요한가? 이에 대한 대답은 기본적으로 ‘이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시론이, 혹은 문학 이론이 단순하게 개별 텍스트에 대한 일차적 독법을 제공해주는 데 그치거나 작품의 미적 자질을 판별하는 척도에 머문다면, 우리는 굳이 시론의 자체적 생산을 열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론과 작품 사이의 정합성에 착목하는 정태적인 모델로서의 시학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론적 조건을 되돌아보면서 현대시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이념으로서의 시적 사유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면, 시론의 지속적 갱신을 도모하려는 사유 활동이 왜 ‘내부’에서부터 제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시작(詩作)에 대한 자기반성적 기획력과 이론적 상상력은 시가 스스로의 존재증명을 꾀할 때 필수적으로 내장해야 할 메타적 상상력이다. 물론 그러한 성찰적 자세를 통해 시의 모든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 본래 ‘시의 모든 것’이라 말할 만한 확정적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는 잠재적 대상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 현대시가 놓인 실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어쩌면 현대의 모든 진지한 시론(詩論)은 스스로를 하나의 시론(試論)으로 여김으로써 자기갱신의 운명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권혁웅의 『시론』이 2000년대에 제기된 시적 사유들을 체계적으로 종합하는 첫 사례이면서, 동시에 그 체계를 새로운 해체의 국면으로 만들 가능성까지 포함해야 하는 이유가 그와 같다. 우리가 그의 작업에 대한 후속적 독해를 기다리고 감행해야 하는 필연성과 불가피함도 모두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