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다자이 오사무 『사양』, 창비 2015
다자이 오사무, 이광수, 김승옥
장정일 藏正一
소설가 xtopa@hanmail.net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48)는 십오년 정도의 본격적인 작가생활 동안 네편 이상의 장편소설과 백여편이 넘는 중·단편소설을 썼다. 이렇게 많은 작품 가운데 단 열편의 중·단편소설로 선집을 꾸미는 일은 누구라고 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발표연도 순으로 배열된 『사양』의 열 작품과 선역(選譯)을 맡은 신현선(申鉉善)의 작품해설을 읽고 나면, 두가지 원칙이 눈에 띈다. ①시기적으로는 중기(1933~37)와 후기(1945~48)에서만 작품을 골랐고, ②주제상으로는 여성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작품만을 가려 뽑았다.
다자이의 수작은 대부분 ‘여성 독백체’를 구사하고 있는데, 그런 그의 문학적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중기부터다. 하므로 ①과 ②는 별도로 떨어진 두개의 원칙이 아니라, 잘 호응하는 하나의 선정원칙이다. 전기(1933~37) 작품이 궁금한 독자는 도서출판b가 열권짜리로 간행한 ‘다자이 오사무 전집’ 가운데 제1권 『만년(晩年)』(2012)을 읽으면 된다. 다자이가 스물다섯살이던 1933년부터 1936년 사이에 발표한 초기작품을 한데 묶은 이 책은 다자이의 첫번째 창작집이다.
『사양』에 실린 작품이 제각기 매력을 뿜고 있지만, 아무래도 중심이 되는 것은 표제작이면서 유일한 중편인 「사양(斜陽)」이다. 194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사양족(斜陽族)’이라는 숭배열을 만들어내면서 다자이를 일약 당대의 인기작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온 이 작품은 훗날 김승옥(金承鈺) 등의 ‘한글 1세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까 1990년대에 한국을 강습한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 열풍이 일본문학의 2차 내습(來襲)이었다면, 1차 내습의 주인공이 바로 다자이다. 이런 사실 위에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신경숙 사태’를 포개놓고서, 일본문학은 한국문학의‘절대적 타자’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문학 없이는 한국문학이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경숙 사태가 숙지고 있던 7월 28일, 이시영 시인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던 글도 그런 경우다.
“한중일의 ‘근대문학’의 성립과정을 탐색한 고전적인 책으로 최원식의 『문학』(한림대 개념총서)이 있습니다. 우리 근대문학의 탄생 자체가, 아니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어설픈 시가 사실은 일본문학의 서투른 ‘베껴쓰기’입니다. 소설 또한 말할 것 없지요. 김동인, 이광수… 60년대의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우리는 다자이 오사무나 미시마 유끼오의 도저한 유미주의적 사소설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표절’이냐 ‘차용’이냐, 창조적 모방이냐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하루끼나 무라까미 류로부터 ‘자유로운’ 우리 젊은 작가가 얼마나 될까? (…)”
이런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광수(李光洙)가 변호되어야 한다. 근대적 장편소설의 효시라는 이광수의 『무정』(1917년 연재)은 작품을 둘러싼 단단한 계몽주의 외피 속에 작가의 고백 성향이 약동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자전적 일화가 세밀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형식-영채-선형이라는 멜로드라마적 삼각관계조차 이광수의 생애로부터 윤색된 것이다. 아울러 그는 네번이나 자서전 쓰기를 시도할 만큼 자기노출 욕구가 컸다. 이 모든 것은 동경 유학 시절, 낯선 땅의 이방인이었던 이광수가 탐닉한 일본소설 체험과 관련된다.
일본만의 소설형식이라는 사소설(私小說)은 작가인 ‘나’를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내세워 작가 자신의 심경과 사생활을 파헤친다. 이 장르의 정치·역사적 함의는, 국가와 작가 사이의 신사협정으로 자주 설명된다. 즉 작가가 국가의 일에 관여치 않는 이상 국가도 작가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국가와 작가 사이의 암묵적 합의의 결과가 사소설이다. 다자이의 첫번째 창작집 『만년』에 그 실상이 나타난다.
“세 번째 칸 삼등객차 창문에, 밖으로 한껏 목을 빼고 배웅 나온 사람들 대여섯 명에게 훌쩍거리며 인사를 하는 거무스름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그 무렵 일본은 어느 나라와 전쟁 중이었는데, 그곳에 동원되는 병사인 것 같았다.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아, 숨이 막힐 듯 가슴이 답답했다.”(「열차」 중)
“올해 2월 26일, 도쿄에서 청년장교들이 일을 벌였다. 그날 나는 한 나그네와 화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여자의 잠옷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암컷에 대하여」 중)
무엇인가 중요한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두 인용문 속의 ‘나’는 사태에 개입하기를 거부하고, 사태 자체를 외면한다.
제국주의였든 군국주의였든, 일본 작가들에겐 암묵적 협약을 맺을 수 있는 국가가 있었다. 반면 이광수에게는 협약을 맺을 국가가 없었다. 일본 작가는 성공한 제국주의 국가 안에서‘동조의 침묵’이라도 택할 수 있었지만, 이광수가 놓인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식민지 지식인이었던 그는 미래에 올 국가의 바탕이 될 민족부터 개량해야 한다는 숭고한 임무를 발견하게 된다. “큰 학자, 큰 교육가, 큰 실업가, 큰 예술가, 큰 종교가가 나와야 할 터인데, 더욱더욱 나와야 할 터인데”라고 부르짖는 『무정』이 그것을 웅변한다.
몇번에 걸친 자서전 집필은 사소설을 쓰려는 유혹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만큼 일본문학의 독소는 깊었으되, 이광수는 끝내 사소설의 유혹을 이겨냈다. 거기에 순순히 투항하여 연애와 개인 잡사 쓰기에 열중했더라면 민족개조론 같은 공소한 함정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민족의 배신자가 될 일도 만무했을 것이다. 사소설을 쓰지 않았던 것이 이광수 개인에게는 비극이 되었으나, 한국 근대문학의 기초였던 그가 사소설을 쓰지 않았기에 한국문학사는 일본문학사에 편입되는 것을 면했다. 이처럼 한국 근대문학이 일본 근대문학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다.
이번 작품집에 실려 있는 「사양」과 「여학생」을 비롯한 다자이의 몇몇 대표작이 애인이나 독자가 제공한 노트(일기)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 또 「화폐」를 제외한 『사양』 전체가 ‘여성 화자’라는 가성(假聲)을 쓰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다자이에게는 사소설의 미덕인 ‘날 것’ 드러내기보다 인위적인 제작능력이 더 두드러진다.
사소설에 수정적 해석을 제시한 스즈끼 토미(鈴木登美)의 『이야기된 자기』(생각의 나무 2004)는 사소설이 일본 작가 특유의 창작방법론이면서, 작중의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는 일본 독자들 고유의 소설독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사소설은 작가의 연기(演技)와, 그것을 감상하려는 독자의 기대지평이 융합된 장르다. 독자의 기대지평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력 앞에 허다한 일본 작가들이 점점 퇴폐적인 자멸에 빠져든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자이의 여성 화자는 독자의 탐욕스러운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안간힘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 여성 독백체라는 가성을 애용했던 다자이와, 젊었을 때 그를 흠모했던 김승옥의 차이점이 있다. 김승옥의 소설에는 하나같이 남성 화자가 등장한다. 이를테면 그의 대표작 「무진기행」은 ‘정신적인 귀족’이 타락한 세태에 함몰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사양」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다자이가 카즈코라는 여성 화자를 내세운 반면 김승옥은 윤희중이라는 남성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런 차이는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문학적 환경을 보여준다. 다자이가 사소설이 창작되고 소비되는 일본적 수용 미학에 저항하고자 여성 화자를 착안할 필요가 있었다면, 김승옥은 그런 압력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문학이 한국문학의 절대적 타자라는 논의는 이래서 허무맹랑한 것이다.
다자이가 완벽한 사소설 작가가 아니라고 해서 사소설 작가들이 국가와 맺었던 모호한 관계마저 청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양」의 경우, 패전이 ‘폐하를 해방시켰다’는 카즈코의 인식과, 그녀가 말하는 ‘새로운 윤리’와 ‘도덕혁명’ 사이에는 메워지지 않는 틈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 흥건한‘눈물’이 어떤 몰락을 애도하고 있는지 애매하게 되었다. “우린 영원히, 이를테면 유다의 가족처럼, 죄송스러워하고, 사죄하고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나오지의 유언은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다자이를 평생 따라다닌 부채의식의 요체이자, 이 선집 끝머리에 실려 있는 「향응 부인」을 잘 해설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