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논단

 

커먼즈와 새로운 체제: 대안을 찾아서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저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 『혁신가 경제학』 등이 있음. ilee@hs.ac.kr

 

 

1. 들어가며: 촛불혁명 제2라운드

 

지난 1년 한국사회는 격변의 골짜기를 건너왔다. 2016년 가을에 들어서면서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10월 말 최초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국회에서 탄핵이 발의된 12월 3일의 6차 집회에 주최 측 추산 232만명이 집결하는 등 가을부터 봄까지 연인원 1700만명이 참가한 시민항쟁이 전개되었다. 세대·지역·계층을 넘어선 엄청난 규모의 국민적 압력이 가해지는 속에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 일정이 진행되었고,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2016년 가을~2017년 봄의 진행 과정을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 ‘촛불혁명의 정신’을 언급한 바 있다. 또 87년 헌법체제의 퇴행을 막고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2008년 촛불집회와는 뚜렷이 대비되는 가시적 성과가 있다. ‘4·19혁명’이라고 부르는 전례도 있다. 따라서 2016~17년의 시민항쟁은 촛불혁명으로 지칭할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2016~17년의 항쟁은 관료적 권위주의 타도에 목표를 집중했다. 시민들은 현 체제를 전복하려 하기보다는 현 체제의 제도적 절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압박했다. 이때의 촛불집회는 정권교체로 이어지면서 87년체제를 수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촛불혁명의 제1라운드가 마감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그 이름에 값하려면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체제 건설은 아직 출발선에 머물러 있다. 지금은 촛불혁명 제2라운드를 시작하는 시점이다.1

87년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의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강조한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성장, 4차산업혁명 등을 정책의제로 거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체제 구성의 요소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체제에서는 흔히 자원의 배분 방식, 소유 형태를 문제로 삼는다. 주요한 자원배분의 원리나 기구를 따져서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를 따질 수 있고,2 경제체제의 근간이 되는 생산수단이나 주요 재화의 소유 형태를 사유(私有)제도와 공유(公有)제도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체적인 체제 작동의 메커니즘에 접근하려면,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을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87년체제에서는 형식적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시장제도와 사유제도를 강화했다. 그러나 1987년 이전에 형성된 국가 주도의 발전방식 역시 87년체제를 구성하는 요소로 잔존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자원배분에 개입하는 행태가 노골화되었다. 촛불혁명에는 그에 대응해 87년 헌정체제를 지키려는 목표와 87년 경제체제를 넘어서려는 목표가 함께 존재했다.

촛불혁명 제1라운드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로 시장 및 사유제에 관한 법치의 질서를 훼손한 데 대한 저항과 응징의 과정이었다.3 그러나 87년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촛불혁명 제2라운드의 핵심 과제는 국가·시장·사유제도 이외에 어떤 체제 요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4

마침 『창작과비평』 지난호(2017년 가을호)에서는 ‘커먼즈와 공공성: 공동의 삶을 위하여’라는 특집을 기획한 바 있다. 커먼즈(commons)에 대한 논의는 이제 출발 단계에 있지만, 시장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체제의 운영원리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지역경제와 산업경제에서 커먼즈를 확보하면 이것이 경제체제를 새롭게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커먼즈는 촛불혁명 제1라운드 체제혁신의 동력이다.

 

 

2. 돌봄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커먼즈 해법

 

커먼즈는 중세 유럽 농촌에 존재했던 숲, 황무지, 늪지, 하천 등과 같은 공유지(共有地)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는 또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1968년 미국 생물학자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제기한 이 개념은 공유지가 사용에 제한이 없어서 과다 소비되어 결국은 고갈되고 마는 비극적 결과를 묘사한다. 따라서 공유지는 자기지속성이 없으니 사유재산권을 확립하거나 국가의 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함축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대해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사유제나 국가규제 이외에도 다양한 공유지 관리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례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창작과비평』 특집에서는 최근 등장한 돌봄의 위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등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커먼즈를 논의했다.

그중 백영경(白英瓊)이 주목한 것은 기존의 사회적 관계망이 붕괴하면서 돌봄은 더 어려워지고 이것이 다시 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가속화하는 복지 시스템의 위기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사회재생산의 위기는 자본주의체제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공적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5 이는 지금까지 확립된 복지국가 해법만으로 돌봄의 결핍 문제에 대응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포착한 것이다. 돌봄의 위기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기본소득 해법에서도 신중하게 고려되지 않은 문제다. 이에 돌봄 문제에 대한 커먼즈 해법이 높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공적인 현물 지원이나 현금 지원과는 다른 복지 시스템에 대한 시야 또한 열어준다.

그에 이어 전은호(田恩浩)는 낙후지역에서 지역의 활성화와 둥지 내몰림이 함께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공간가치의 독점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자본주의체제와 연관된 문제로 인식하는 논의보다는 그에 대한 기술적 해법을 제시하는 데 논의를 집중했다.6 그런데 여러가지 공유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과연 공유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축적과 훨씬 더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돌봄이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에 있는 문제라면, 젠트리피케이션은 경제적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 걸쳐 있는 문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축적의 ‘공간적 해결’(spatial fix)이 도시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시공간은 과잉축적에 대응하는 시장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심각한 소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7 자본축적과 공간 관계의 변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려면, ‘작지만 원형에 가까운 실험’을 어떤 규모에서 시도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8

백영경은 공유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기술보다는 정치적 투쟁을 중심에 놓는다. 그래서 그는 커먼즈란 그것을 요구하는 투쟁 속에서 형성되는 비자본주의적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 또는 자원이라고 본다. 그리고 커먼즈 운동은 도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도시 지역에서의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9 이러한 커먼즈 형성의 과정과 방법(커머닝 commoning)에서 강조되는 것은 일상 속에서의 작은 실천이다. 그렇지만 또다른 한편에서 일상의 실천이 체제의 구성요소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커먼즈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느슨하게나마 합의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것, 국가와 개인을 넘어서는 것,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것 등으로 다양하게 이야기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제3의 것, 중도의 것이 체제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이러한 커먼즈의 본질적 성격과 지속가능성의 모순적 관계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구성원들의 직접교섭 대신 내포 위계(nested hierarchical)의 의사결정이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또 공동노동과 공유지 자원에 “하나의 통일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10 그러나 통일성은 공동성과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가 공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는 있지만, 그와 경쟁할 수 있으면서 공동체성은 더욱 강화된 제도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 것은, 도시와 비도시를 함께 포함하는 ‘광역지역’이라고 생각한다.

 

 

3. 생산체제의 변동과 커먼즈의 요구

 

앞에서 소개한 『창작과비평』의 커먼즈 특집은 복지체제나 공간체제의 변동에 먼저 주목했다. 복지체제는 사회적 재생산을 담당하는 장치이며, 공간체제는 축적된 자본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복지체제나 공간체제는 각각의 작동방식이 있지만, 생산체제와 연동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생산방식의 변동은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에서 중대한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데이비드 하비의 글은 자본축적 그 자체를 중시하면서 유전자 물질, 지식, 문화재 등 최근의 생산요소들에 대해서도 거론한 바 있다. 그러나 하비는 결국 착취계급의 축적조건과 집단적인 노동의 힘의 양자택일 구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생산수단의 집단적 재산권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돌아갔다.11 그런데 이제는 목초지와 소를 투입요소와 산출물로 거론하는 목장 시대가 아니다. 산업형 축산에서는 유전자 변형, 살충제, 축산분뇨, 동물복지 등이 이슈가 된다. 재산권의 혼합형태, 자원 사용방식도 다양해졌고, 사유·공유 요소들의 상호작용도 복잡하다. 커먼즈 개념의 핵심이 재산권 문제에 있기는 하지만, 재산권의 형식·내용이 매우 복잡해졌다.

커먼즈에 대한 논의의 근본에는 자본주의 축적 체제의 변동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최근의 자본축적 체제는 과학기술체계와 공간 관계의 변동과 연관되어 있다. 가치의 생산과 실현 방식에서는 ‘뉴노멀’(new normal)을 말할 수 있는 대전환이 진행되는 중이라고 할 수있다.

뉴노멀이라는 용어가 주로 거론된 것은 거시경제와 기술·산업 분야이다. 2013년 경제학자 로런스 써머스(Lawrence Summers)가 경제상의 ‘장기침체’를 뉴노멀이라는 말로 표현한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적 측면이 다시 부각되었다.12 그러나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기술·산업 분야가 좀더 앞서 있다. 기업컨설턴트인 피터 힌센(Peter Hinssen)은 2010년에 이미 “디지털혁명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을 뉴노멀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러한 산업혁신의 흐름은 세계경제포럼에서 주도적으로 유포한 4차산업혁명 담론으로 이어졌다.13

4차산업혁명 담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도 많다. 예를 들어 서동진(徐東振)은 4차산업혁명은 “있지도 않은 허깨비”이고 유토피아의 잠재성이 최종적으로 소진되었음을 말해줄 뿐이라고 꼬집는다. 이런 입장의 기반이 되는 것은 로버트 고든(Robert J. Gordon)의 저작이다. 그의 핵심 주장은 1970년대 이후 미국경제의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었고, 혁신은 엔터테인먼트와 정보통신기술에 국한되었으며, 생활수준의 향상도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14

그런데 최근의 기술변화가 그저 ‘허깨비’라는 것은 전통적 생산체제의 관점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4차산업혁명 담론에서 말하는 변화는 기본적으로 탈산업주의적인 것이다. 가상세계와 물리세계의 결합, 서비스산업의 발달, 데이터 활용의 중요성 등은 산업적 의미의 생산성 개념이나 산업시대의 일생생활 범주에서 잡아낼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것이 많다. 따라서 산업시대를 넘어선 미래의 관점에 서면, 산업주의적 변화와는 다른 차원의 인지혁명 및 지식혁명의 모습이 좀더 부각될 수 있다.15

인공지능의 부각은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역전되지는 않을 변화의 추세이다. 물론 기존 제도와 사회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은 당분간 계속 주요한 생산요소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변화 속에서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충격에 대한 대응책이 무엇인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기술변화의 충격을 기존의 복지국가식 방안으로 대응할 것인지, 혹은 새롭게 기본소득체제를 도입할 것인지, 또다른 방안으로 커먼즈를 확보·확대하는 것이 좋을지를 계속 논의해야 한다.

한편 기술변화는 자본축적 방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최근의 자본축적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와 독점화 경향은 주로 지적재산권의 행사와 관련이 깊다.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등 여러 분야를 융합하는 신기술 지식과 물질에 대한 인클로저에서 막대한 부가 형성되고 있다. 과거의 독점기업이 생산을 통제했다면, 신흥 독점기업은 네트워크를 통제한다.16 소비자의 참여, 빅데이터, 표준, 플랫폼 등은 이미 주요한 생산수단이 되었다. 기술변화 속에서 새로운 커먼즈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자본주의의 미래에 중대한 변수라 할 수 있다.

 

 

4. 지역이라는 커먼즈

 

커먼즈는 관계를 포함한 자원이다. 이때의 관계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측면을 포함한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관계가 함께 작동하는 조직 또는 제도 형태를 무엇이라 부를까?

이에 근접한 용어로는 ‘공동체’가 있다. 그런데 근대 이전의 공동체는 한편에서는 호혜의 경제를 기반으로 도움을 제공하는 관계로 인식되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긴장과 억압이 존재하는 관계이기도 했다. 산업혁명은 시장과 국가에 권력을 부여하고 개인의 독립을 조장하여 공동체를 해체했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공동체는 전통사회의 공동체가 아니라 새롭게 조직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공동체가 생산활동 조정, 공간 재편, 복지 공급에 기여하는 힘을 지속하려면 일정한 규모와 제도적 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역 공간에 존재하는 유력한 제도는 지방정부이며, 따라서 공동체는 지방정부와 활발한 상호작용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지역의 공동체와 지방정부 모두 시장·국가와는 차별성을 지니는 존재다. 지역 안에서 주민공동체와 지방정부는 함께 지역 거버넌스를 구성한다.

지역이 비시장적·비국가적 공공활동의 주체로 지속·발전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형태의 커먼즈가 필요하다. 첫째는 운동과 제도를 포괄하는 거버넌스이다.17 공동체를 형성하는 정치적 과정은 로컬운동에 해당하는 것이고 공유기술은 공유적 조직·제도를 형성하는 수단이다. 둘째는 지역 단위에서 보유하고 관여하는 집합적 재산권으로서의 공유자산이다. 지역은 다차원에서 복수로 존재하는 실체다. 이는 사유·국유에서 나오는 착취나 독점의 폐해를 견제하는 작용을 한다.18

지역은 크게 나누어 로컬(local)과 광역(region)의 두가지 범위에서 존재한다. 로컬 거버넌스는 복지 커먼즈를 관리하는 데 장점이 있고, 광역 거버넌스는 산업·교통·환경 커먼즈를 운영하는 데 필요하다. 나라마다 또 시기에 따라서 초점이 되는 지역 단위가 변화한다.

영국의 경우 런던을 제외하고는 광역 거버넌스가 존재하지 않는 일극 집중의 지역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이에 대해 노동당 정부는 광역 형성에 중점을 두어 광역 단위의 지역개발청(RDA)을 운영했던 반면, 보수당 정부는 광역 단위 지역개발청을 해체하고 로컬, 민간 부문에 초점을 맞추어 로컬기업파트너십(LEP)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중앙정부 및 로컬의 행정체계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광역 범위의 이슈가 확대되면서 보수당 정부에서도 새로운 분권화 단위를 창출하려 노력하고 있다.19

한국의 경우 87년체제의 출범과 함께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국가 주도의 공간배치 정책이 유지되고 경부선 축을 중심으로 한 성장축이 고착화되었다. 노무현정부 이래 지역균형이라는 의제가 제시되기도 했지만, 개발지상주의를 확산한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지역이 커먼즈를 지닌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지역은 로컬과 광역 모두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지상주의가 사적 이익 추구와 결합하는 장이다. 지역은 중앙정부의 자원과 기능을 수직적으로 배분하는 파이프라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지역체제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공유적 거버넌스와 공유자산으로 구성되는 커먼즈를 확보해야 한다. 커먼즈를 형성하려는 시도는 기존 지방행정체계의 기득권과 충돌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영국에서 행했던 방식과 같이 기존 행정체계를 우회하여 국가와 지역 사이의 협상을 통하는 것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영국 사례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도시예외주의를 극복하고 환경친화적인 지속가능 발전모델을 형성하며, 사회적 공유자산 기반을 구축하고 그것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주체를 형성하는 사회혁신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지역 커먼즈를 형성하는 경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로컬 커먼즈는 정치적·운동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수평적 관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광역 커먼즈는 크게 보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길에 차별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선진국의 광역 분권 단위가 인구 300만~500만명 정도 규모임을 감안하면 경기도에는 북부, 서남부, 동남부 등 세개 정도의 광역권이 형성될 수 있다. 비수도권의 경우 현재의 도(道) 단위는 광역 커먼즈를 형성하고 지속하기에는 과소한 규모다.

커먼즈의 본질이 비시장·비국가의 혼합적 성격을 확대해가는 것이므로, 그것이 빅뱅 식으로 한순간에 만들어질 수는 없다. 진화의 경로를 만들어가는 전략으로, 영국의 광역분권화 실험인 중앙정부의 협상 방식을 참고·응용해볼 수 있다. 광역 차원에서 지역성장전략, 공간계획 등을 추진하고자 하는 지역연합을 결성하여 중앙정부와 함께 광역개발기구를 제도화하여 커먼즈를 확보하는 것이다.20

 

 

5. 산업에서의 커먼즈

 

지역 커먼즈와 중첩되면서 또다른 범주를 형성하는 것으로 산업 커먼즈(industrial commons)가 있다. 이는 선진국에서 제조업 생산체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논의되는데, 좁게는 제조업 생명력을 강화하는 과정지향적(process-oriented) 혁신기반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대학과 산업체의 클러스터링에서 나오는 연구개발, 제조업 인프라, 노하우, 과정개발 기술, 엔지니어링 능력 등이 포함된다. 미국 제조업 부흥의 필요조건으로, 독일의 정부·기업·노조의 협력하에 유지된 산업 커먼즈, 덴마크의 공유적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민간투자, 가족소유 재단의 장기투자, 협동·연합의 문화적 기반 등을 예시하기도 한다.21

전세계적으로 4차산업혁명 관련 기술의 급속한 진보와 혁신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생산성은 기대만큼 증대하지 않는 이른바 ‘혁신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 산업 간 융·복합을 통한 혁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만, 대기업과 국가 주도의 대형 투자 위주의 축적체계를 지닌 한국은 이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22 한국에서는 특히 2008년 이후 저성장화·불평등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산업을 형성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는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커먼즈 해법을 적용해볼 만하다.23

국가 주도로 대기업 위주의 투자 확대를 지속하는 종래의 방식으로는 성장과 혁신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리고 정보산업과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새로운 기술체계는 연결과 융·복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세미 커먼즈(semi-commons)를 기반으로 형성되고 있다.24 집단의 상호편익을 공유하는 세미 커먼즈를 개인 또는 기업의 배타적 소유권에 귀속시키면 결국은 혁신이 정체하고 불평등이 확대된다.

숲, 황무지, 늪지, 하천 등은 전통경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커먼즈였다. 근대산업 형성에 필수적인 에너지, 토지, 주택, 교통, 복지 등은 일부는 시장에서, 또 일부는 국가를 통해 공급된 바 있다.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공동으로 생산되고 소유되는 디지털 커먼즈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새로운 체제의 필수적 자원이 될 인공지능이나 유전자 정보의 기반이 되는 빅데이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운 생산체제에서는 생산과정에 필수적인 자원을 개방적·공유적으로 사용하는 생태계(ecosystem)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25

최근 미국이나 EU(유럽연합)에서 논의되는 산업정책의 방향은 혁신에 필요한 커먼즈를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종 산업들 간의 융·복합을 가능케 하는 범용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그것을 통해 혁신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혁신활동을 지원하는 산업 커먼즈를 형성하기 위해, 정부, 기업, 개별 연구자들의 혁신 성과를 풀링(pooling)하여 공유자원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혁신 성과를 확산시킬 수 있는 인적자원이 집중된 대학을 연결하여 연구·교육 자원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형성하는 것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특허권 같은 사유재산권을 공유자원으로 전환할 때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따라서 꼭 무상·무제한의 접근권을 보장할 필요는 없으며, 라이선스나 쿼터를 제공하는 방식도 채택할 수 있다.26

거대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면 지형이 바뀌고 새로운 산과 강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새로 생긴 산업의 산과 강을 산업의 세미 커먼즈라 할 수 있다. 그 위에서 인간과 기계가 상호 침투·융합하고 또 새로운 자본(또는 자본 이상의 그 무엇)이 축적되는 방향이 결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세미 커먼즈는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개별 자본이 세미 커먼즈에 대한 인클로저를 진행하면, 그래서 그에 대한 사용과 소유에 대한 권리를 가져가면, 막대한 독점 이익이 자본에 귀속됨으로써 혁신에 필요한 자원이 아예 사용되지 못하거나 덜 쓰이게 된다. 또 국가가 세미 커먼즈를 임의적으로 배분하면서 정치적·경제적 담합과 부패 구조가 형성된다. 이것이야말로 ‘반(反) 공유지의 비극’라고 부를 수 있다.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가는 입구는 기술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미 커먼즈를 산업 커먼즈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산업 커먼즈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공공적 인프라 투자와 대중의 참여로 형성된 세미 커먼즈에 대한 개방적·협력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이다. 개방적·협력적 플랫폼이 운영되려면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연구·교육기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혼합적 거버넌스가 형성되어야 한다.

재산권은 본질적으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체제에서는 세미 커먼즈와 커먼즈에 대한 공유적 재산권을 규정하는 헌법·법률·판례가 축적되어야 한다.

 

 

6. 나가며: 체제혁신과 커먼즈

 

커먼즈는, 첫머리에 언급한 촛불혁명 제2라운드에 추진할 체제혁신의 주요한 요소이자 방편이다. 시장과 국가 이외의 제3의 원리와 영역을 커먼즈라 부를 수 있고, 이를 진화적으로 형성해가는 과정을 커머닝이라 할 수 있다. 시장이 널리 퍼져 있는 개체들의 수평적 교환관계라면 국가는 일극 집중의 수직적 권력관계이다. 혁신된 체제는 시장·국가와 중첩된 영역을 지니는 복합적 의미의 공공성을 지닌 공동체를 포함하며, 공유적 거버넌스와 공유적 재산권으로 구성된 커먼즈가 중시되는 체제이다. 커먼즈라는 조직·제도와 공유의 재산권은 시장-국가, 사유-국유와 구별된다는 의미에서 ‘중간’적이며, 여러 경제 형태의 중첩·융합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혼합적·중도적’ 성격을 지닌다.27

혁신이란, 전체론적인 사회혁명의 결과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그 과정은 여러가지 개별적 경로를 혼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혁신은 단번에 “하나의 통일된 영향력”을 형성하는 방식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다. 새로운 체제를 구성하는 영향력이 비약과 단절의 계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변화가 누적되면서 연속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또한 혁신의 주체는 자본가도 될 수 있고 노동자도 될 수 있다. 혁신가는 기존 양극단의 조직·제도 형태를 넘어서는 커먼즈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28

분단체제의 변혁과 세계체제에의 대응도 체제혁신의 개념에 포괄될 수 있다. 2008년 이후의 뉴노멀 현상은 여러 차원에서 나타난 체제적 전환의 징후이다. 세계경제의 기술적·구조적 변화, 미중 간 정치·경제 관계의 변동, 북한의 핵무장·시장화의 동시 진행 등이 국내의 87년체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체제와 분단체제의 압력은 저성장·불평등에 대응한 국가 차원의 정책 운용을 어렵게 한다. 북한의 핵무장과 북한에 대한 포위·제재 강화는 남북 모두에 군비 부담과 경제적 왜곡을 심화시킨다.

그러므로 세계체제·분단체제의 질곡에 대응하는 ‘평화 커먼즈’의 필요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2009년 북의 제2차 핵실험 이후 분단체제의 군사적 위기는 계속 가중되어왔다. 이는 남북한 모두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양, 대기 등 자연자원 등과 관련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협력기구에 의해 관리되는 ‘거대 커먼즈’(giant commons)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29 ‘평화 커먼즈’는 동아시아·한반도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국제적·국내적 노력과 새로운 지역분권화 발전의 추진력을 결집하는 프로젝트이다. 커먼즈를 만드는 여러 갈래의 노력이 새로운 체제로 가는 길을 열어갈 것이다.30

 

 

--

  1. ‘촛불혁명’이라는 명명에 대해서는 김종엽 「촛불혁명에 대한 몇개의 단상」,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창비 2017, 427~30면 참조. ‘촛불혁명 제2라운드’라는 표현은 같은 글 470면에서 가져왔다.
  2. 제도 또는 조직의 측면에서는 시장 또는 위계(hierarchy)로 구분할 수 있다. 전형적인 자본주의체제의 핵심 요소는 사유제와 시장경제이다. 러시아혁명 이후의 국가사회주의는 국유제와 국가기구에 의한 위계적·명령적·계획적 자원배분 메커니즘의 체제였다.
  3.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헌법재판소는 파면의 주요 이유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과 함께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의 자유를 언급했다. 이는 시장제도, 사유제도 운영에서의 법치를 강조한 것이다.
  4. 2016~17년 촛불집회에는 두가지 요소가 함께 존재했다. 당면 목표는 관료적 권위주의를 물리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구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정병기 「68혁명운동과 비교한 2016/2017 촛불 집회의 비판 대상과 참가자 의식」, 『동향과전망』 2017년 가을호.
  5. 백영경 「복지와 커먼즈: 돌봄의 위기와 공공성의 재구성」,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21면.
  6. 전은호 「젠트리피케이션 넘어서기: 사유에서 공유로」, 같은 책 39면, 45~51면.
  7. 데이비드 하비가 말하는 ‘공간적 해결’은 만성적 과잉생산을 세계적 공간 차원에서 해결하는 방편이다. 특정 영토 안에서 시장이 포화되었을 때 자본가들은 잉여자본, 잉여노동을 수출한다. 자본주의의 ‘공간적 해결’은 역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비역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과거 영국 제국주의의 ‘공간적 해결’은 미국에서는 역동적 자본주의 경제의 확장을 가져왔으나, 인도나 중국에서는 부를 바닥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후 일본, 한국, 대만, 중국도 차례로 ‘공간적 해결’을 통해 과잉축적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냈다. 데이비드 하비 「실현의 위기와 일상생활의 변모」, 『창작과비평』 2016년 가을호 81~89면.
  8. 전은호가 거론한 사례는 주로 서울 지역에 집중해 있다. 즉 서울 신촌지역 건물주-주민자치조직-서대문구 간의 상생협약, 서울 성수동에 성동구의 지속가능 발전구역 지정, 서울시의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 등을 예시했다. 전은호, 앞의 글 45~49면.
  9. 이러한 사례로 대만 원주민의 토지반환 요구, 캐나다 선주민운동,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마을숲,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공동목장 등을 들고 있다. 백영경, 앞의 글 31~34면.
  10. 데이비드 하비 「커먼즈의 미래: 사유재산권을 다시 생각한다」,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64면.
  11. “진짜 문제는 커먼즈 그 자체가 아니다. 개별화된 사유재산권이 (…) 우리의 공동이익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예컨대 왜 우리는 하딘의 비유에서 공유지로서의 목초지 대신 소의 개인소유에 집중하지 않는가?” 데이비드 하비, 앞의 글 59면.
  12. Lawrence Summers, “Why stagnation might prove to be the new normal,” Financial Times 2013.12.15.
  13. Peter Hinssen, The New Normal: Explore the limits of the digital world, Uitgeverij Lannoo 2010. 한국어판 피터 힌센 『뉴 노멀』, 이영진 옮김, 흐름출판 2014; Klaus Schwab,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EF 2016, 한국어판 클라우스 슈밥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2016.
  14. 로버트 고든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이경남 옮김, 생각의힘 2017; 서동진 「지리멸렬한 기술유토피아: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293~99면.
  15. 오히려 더 나아가서 4차산업혁명 담론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해가는 과정으로서의 포스트휴먼”으로 가는 중간기착지에 불과하다는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근 기술변화의 의미는 더욱 근본적인 차원으로 확대된다. 박성원 「‘인간 2.0’ 시각에서 본 4차 산업혁명의 의미」, 『동향과전망』 2017년 여름호 169~73면 참조.
  16. 로버트 라이시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안기순 옮김, 김영사 2016, 제5장 참조.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은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등 세 부문의 융합에서 나오는 신기술을 특히 강조한 바 있다.
  17. 현장의 활동가들은 제도권이 운동권을 저렴한 비용으로 수탈하는 데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운동과 제도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도 거버넌스 형성의 주요 과제라 할 수 있다.
  18. 사적 소유에 의한 착취에 대해서는 맑스가 논의한 바가 있다. 또한 국가사회주의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볼 때, 집합적 재산권을 국가라는 ‘하나’의 통일적 영향력에 귀속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19. 영국은 2015년 보수당 정부의 재집권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로컬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경제 단위를 중앙과 지방 정부 간의 협상(deal-making)을 통해 수립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권 협상에 의해 광역시 정부를 형성한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사례가 광역 맨체스터이다. 광역 맨체스터는 경제성장전략, 공간계획, 교통계획 등 광역 차원의 공동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10개 지자체로부터 권한을 이양받은 후 새로운 단위의 광역시 정부(GMCA: Greater Manchester Combined Authority)를 설립했다. 정준호·이일영 「분권형 발전을 위한 지역연합 전략: 영국 사례의 검토와 한국에의 적용」, 『동향과전망』 2017년 가을호 85~90면.
  20. 예를 들면, 최근 논란이 된 경기북도 분도 논의도 광역개발청 결성을 매개로 한 도시연합 협상으로 진전시킬 수 있다. 경기 서남부의 구조적 문제인 난개발과 동서 간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서해안 광역도시 연합이 필요하다. 선거 때마다 이슈가 되는 새만금 개발 문제도, 중앙정부나 전라북도 차원에서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다. 새만금 지역에 대해 실행 가능성·지속 가능성을 갖춘 발전계획을 추진하려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광역 규모의 지역연합을 결성하고 새만금청을 전북·전남·광주권을 포괄하는 서남권 광역개발청으로 재구성하는 정도의 확대된 구상이 필요하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졸고 「화성시-서해안 도시연합의 구상」, 화성시·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 주최 세미나 ‘화성시 서해안권의 현재와 미래’(2017.10.12); 졸고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전환과 지역 성장전략: 서남권 지역을 중심으로」, 『동향과전망』 2015년 가을호 참조.
  21. Gary P. Pisano and Willy Shih, Producing Prosperity: Why America Needs a Manufacturing Renaissance,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2012: Willy Shih, “Innovation and Manufacturing: The Industrial Commons,” Harvard Business School 2015.
  22. 2008년을 기준으로 이전 8년(2001~2008년)과 이후 8년(2009~16년)의 한국경제 평균성장률은 4.6%에서 3.1%로 감소했다. 이러한 성장률 하락폭(1.5%p)은 OECD 36개국 중 15번째로 큰 것이고, 2012년 재정위기로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마이너스가 된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한 24개국을 기준으로 하면 하락폭은 7번째로 크다. 이 중에서도 슬로바키아,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등 한국보다 성장률 낙폭이 큰 3개국은 최근 2~3년간 성장세가 강해져서 한국과는 대조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결국 금융위기 이후 2016년까지 지속적으로 한국보다 성장률이 빠르게 떨어진 국가는 라트비아(7.2%p), 에스토니아(5.0%p), 칠레(1.6%p) 등뿐이다. 「‘조로증’ 韓 경제… 성장률 낙폭 OECD 상위권」, 연합뉴스 2017.10.15.
  23. 1945년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대체로 세가지 유형·단계의 축적체제 또는 성장체제가 형성되었다. 즉 1950년대~80년대에는 냉전 속의 국가 주도형 동아시아 모델 1.0이, 1980년대 말~2008년에는 냉전 이후 시대의 국가·시장 혼합형 동아시아 모델 2.0이 형성되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는 뉴노멀 시대의 동아시아 모델 3.0이 모색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졸고 「뉴노멀 경제와 한국형 뉴딜: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전환을 위한 전략」, 『동향과전망』 2017년 여름호 83~84면, 89~92면.
  24. 커먼즈가 접근이 개방된 자원이라면, 그 반대 개념인 안티 커먼즈는 다른 모든 이들의 허락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자원이다. 세미 커먼즈는 사적 재산권과 공유적 재산권이 혼합된 자원이다. 농가가 목초지를 개인적으로 조각조각 소유하더라도, 소가 풀을 뜯게 하는 목적으로는 그것들을 하나의 단위로 공유하는 세미 커먼즈를 형성할 수 있다. Lee Anne Fennell, “Commons, Anticommons, Semicommons,” University of Chicago Public Law & Legal Theory Working Paper, No. 261, 2009.
  25. 커먼즈라는 용어는 자연자원에 관한 것에서 지식과 혁신 영역으로 확산되어 사용되고 있다. 지식 및 혁신성과의 비경합적·비배제적 성격 때문에 재산권, 사용제한 문제 등을 해결하는 커먼즈 접근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또한 지식생태계나 기업생태계 같은 관점도 중요해지고 있다. 생태계 관점의 특징은, 생태계 내 경제주체들 간의 협력과 경쟁 관계를 기반으로 한 경제공동체를 상정한다는 점, 외부 환경에의 적응과 변화를 통한 시스템의 동학(dynamics)을 고려한다는 점 등이다. 박규호 「생태계적 관점에서 본 한국경제의 혁신 활성화 여건에 관한 연구」, 『동향과전망』 2017년 가을호 200~202면.
  26. 산업 커먼즈를 형성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앞의 졸고 97~100면을 참조.
  27. ‘중도’란 유(有)와 무(無)의 두 극단을 아울러 넘어선 공(空)의 경지라고 한다. ‘중도’와 ‘공’(空)을 경제체제의 측면에서 다시 말하면, 기존의 극단적인 체제요소를 비워내면서, 기존의 극단적 요소와는 구별되는 것, 기존의 요소들이 혼합된 것 등을 아울러서 새로운 질적 내용과 원리를 만들어가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백낙청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정현곤 엮음 『변혁적 중도론』, 창비 2016, 87면 참조.
  28. 필자는 혁신은 슘페터의 개념이고 혁명은 맑스의 개념이라는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혁신과 혁명을 양극단의 개념으로 대립시키는 논리는 시장과 국가, 사유제와 국유제,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의 양극화 논리와 궤를 함께하는 것이다. 슘페터는 맑스와 대립되는 견해를 전개하기도 했지만 맑스를 의식하면서 사고체계를 구축한 측면도 있다. 슘페터는 거대 이론을 구사했지만 그 이론 안에서 미시적 개인의 모습으로 출발한다. 맑스도 자본주의로의 이행에서 자본가들의 혁신적·혁명적 역할에 주목한 바 있다. 맑스와 슘페터 모두 경제체제가 역사적이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었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전망했다. 다만 슘페터는 맑스와 달리 자본가들의 혁신과 성공이 종국에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졸저 『혁신가 경제학』, 창비 2015, 제3장 참조.
  29. Hartmut Zückert, “The Commons: A Historical Concept of Property Rights,” David Bollier and Silke Helfrich ed., The Wealth Of Th Commons: A World Beyond Market & State, Levellers Press 2012.
  30. 눈앞에 닥친 평창올림픽을 국제사회와 지역이 이익을 공유하는 자산으로 만드는 것, 경기·강원 북부에서 평화·생태·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도시연합을 추진하는 것도 체제혁신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