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코로나19가 던진 과제들
저밀도와 소멸위험, 농촌에 코로나 ‘이후’란 없다
정은정 鄭銀貞
농촌사회학자. 저서 『대한민국 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 백남기 농민 투쟁기록』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공저)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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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비대면은 새롭지 않다
얼마 전 농업 관련 좌담회에 참석했다. 경북 의성군의 한 농민과 수인사를 나누는데 그는 마스크 쓰기를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코로나19를 실감했다며, 당분간 마스크가 무서워서라도 서울에는 오지 못하겠다 했다. 대도시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과 밀접접촉을 하지만 농촌에서는 밭일을 하다보면 식구들 말고는 누군가와 마주칠 일이 거의 안 생기니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어서다. 어쩌면 코로나19로 농촌 주민들이 누린 유일한 혜택은 답답한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것, 그것 하나인 것 같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공적마스크를 사러 읍내 약국에 줄을 섰던 노인들도 도시로 나간 자식·손주들의 몫을 확보하려는 것이지 정작 자신들이 쓰려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번화한 읍내나 군청 소재지도 한산하기만 했다. 농촌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이후에도 ‘비대면 접촉’ 사회였다.
지금의 농촌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소멸위험’이다. 『지방 소멸』(한국어판 와이즈베리 2015)의 저자인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는 만 20~39세 여성 인구를 만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것을 ‘지방소멸위험지수’로 제시하는데, 이 지수가 1.5 이상이면 이 지역은 소멸위험이 매우 낮다. 반면에 0.2~0.5는 소멸위험 지역, 0.2 미만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한국 농촌 지역은 대부분 이 지수가 0.5보다 낮아서 마스크를 쓸 필요는커녕 소멸위험을 안고 있는 ‘저밀도’ ‘비대면 접촉’ 사회다. 그렇다면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지 않던 농촌은 과연 이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해온 것일까. 코로나19 사태의 자장 안에서 농민들만이 겪는 고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나마 마을 노인들이 서로 대면하는 경우는 마을회관에 모여 화투도 치고 대화도 나누다 점심 한끼 나눠 먹을 때다. 혼자 끼니를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고령의 노인이 많아 농어촌에서는 마을공동급식이 몇년 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경남도에서 먼저 농번기에 한해서 실시한 ‘농촌마을 공동급식 지원 사업’은 지역주민의 호응이 좋아 전국 지자체에 널리 퍼져나간 제도다. 지자체에서 인건비를 일부 보조하고 일정 회비를 걷어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서 주민들이 함께 식사를 한다. 혼자 집에서 물에 밥을 말아 김치나 반찬 한두개 정도 놓고 먹기 일쑤인 농촌 노인들의 부실한 식사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사업이다. 도시에 나가 있는 자녀들의 호응도 대체로 좋아 마을회관에 과일이라도 한두 상자 사다놓고 가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사업에 대한 설문결과를 보면 참여 주민들은 음식 자체보다는 함께 먹는 즐거움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다. 이는 한 마을에 국한된 결과가 아니라 마을공동급식이 실시되고 있는 곳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함께 먹는 일의 기쁨이 농촌일수록 더욱 절실한데, 코로나19로 마을회관 운영이 중지되어서 이 소박한 행복마저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필자의 경우 2020년 상반기에 잡혔던 강의 등 일정이 대부분 취소되었다. 간간이 온라인 화상강의는 했지만 모니터 화면에 대고 혼자 주절대는 일에는 끝내 적응이 어려웠다. 다행히 코로나19가 조금 진정세를 보인 뒤 강의가 하나둘 예정대로 진행되기 시작한 곳은 농촌의 학교였다. 90년대 초반까지는 동리 단위에 통학 거리가 멀지 않은 초등학교와 병설 유치원이 있었다. 아이들이 책가방 메고 버스 탈 몸치만큼 자라면 읍면 단위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러나 이제 면 단위 학교까지도 폐교 위기다. 읍면 소재지의 학교에도 전교생은 아주 많아야 50명 남짓이다. 필자가 돌아다닌 학교들은 좀더 외진 고장에 있어서 전교생이 30여명에 교사가 10여명인 중학교들이었다. 중고등학교가 통폐합된 곳도 많아 교사들의 업무강도가 생각보다 세다. 농촌 학교의 교사들은 전학년 과목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중고등학교가 통합되어 있으면 거의 6개 학년 과목을 맡는 일까지 벌어진다. 작은 학교는 급식도 근처 학교와 합쳐서, 한 학교에서 만든 급식을 밥차로 실어 오는 방식으로 한다. 학교 건물은 개교 당시의 넓은 평수 그대로여서 큰 강당에 전교생을 모두 앉혀도 도시의 두 학급 합한 것보다 인원이 적다. 강의 재개가 가능했던 것도 방역수칙에서 강조하는 거리를 충분히 둘 수 있어서였다.
공간이 남아 교실마다 운동기구를 하나씩 들여놓고 탁구실이니 헬스실이니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여전히 빈 교실이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바람직한 사회가 ‘저밀도 사회’인데 농촌과 농촌 학교는 오래전부터 밀도가 아주 낮다. 그래서 큰 도시처럼 온라인 원격수업을 병행할 필요 없이 전교생 등교가 가능하다. 원격수업과 대면수업이 번갈아가며 이루어지는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자니 전일 등교, 그게 뭐라고 참 부러웠다. 몇달 내내 아이들 점심을 해대느라 지치기도 하거니와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만 까딱거리는 아이를 보고 있으려니 답답하기만 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농촌이 누린 복지가 있다면 마스크 자유와 정상등교 정도뿐이다.
학교급식, 농촌 건강과 친환경의 보루
1월 초에 방학을 한 아이들이 5월 중순까지 집에 머물게 되면서 밥을 차려야 하는 사람은 엄마인 나였다. 학교가 멈추면 학교급식도 멈춘다. 해서도 먹이고 시켜서도 먹이면서 버티지만 역시 어려운 일이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데가 아니라던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말은 완전히 틀렸다.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 맞는다. 가서 공부는 안 하더라도 밥은 먹고 오지 않나.
많이들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농촌은 아이들 먹일 먹거리가 풍부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산과 들에 먹을 것 천지라고 여기지만 들판의 작물은 팔기 위한 상품이다. 농민들도 농산물을 내다 팔아 현금으로 전환해 자신들이 먹을 식품을 구비해야 한다. 쌀과 채소 몇가지가 자급된다고 해서 모든 식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착각은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잘 먹고 건강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역은 서울의 강남, 서초, 송파구다. 반면에 음주율·흡연율·비만율, 성인병 발생빈도, 인구 1인당 의료시설, 기대수명, 안전한 먹거리 접근권 등 여러 지표를 종합해보면 농어촌 지역의 건강수준은 매우 낮다. 이유는 여러가지겠으나 우선 좋은 먹거리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마을마다 그 흔한 식료품점 하나 없이 저장성 좋은 가공식품을 쟁여두고 먹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의 어린이·청소년에게 학교급식은 디저트까지 먹을 수 있는 균형 잡힌 영양식이라는 의미도 크다. 원거리 통학의 어려움 때문에 농어촌 공립고등학교 중에는 기숙사를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인근의 대도시로 유학을 가지 않고 지역에 남은 청소년들에게 학교급식은 하루 식사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만큼 학교급식은 밥 한끼의 의미를 넘어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사회복지제도인 것이다.
학교급식운동의 주역은 여성 농민들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여성 농민운동가들은 줄기차게 학교급식을 요구해왔다. 학교급식법은 1981년에 만들어졌지만 극히 일부 학교에서 시범형태로 급식이 이루어지다 말았다. 농사일부터 가사노동까지 모두 감당해야 하는 여성 농민들에게 자녀들 도시락까지 싸서 보내는 일은 ‘모성애’로 눙칠 수 없는 고통 그 자체였다. 도시처럼 집 근처에 슈퍼마켓이 있는 게 아니니 미리 사둔 소시지나 어묵이라도 없을 때면 푸성귀나 짠 반찬만 들려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미안함과 고통이 움직임으로 변했다. 의무교육이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생들의 식사도 당연히 국가가 져야 할 의무라고 외쳤다. 그렇게 누군가의 오랜 노력으로 얻은 승리 덕분에 필자를 비롯해 많은 부모들이 큰 짐을 덜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학교급식은 한국의 농업, 무엇보다 친환경농업의 보루이기도 하다. 학교급식은 총 20,8 09개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무상급식 대상자인 학생은 약 613만명이고 여기에 급식비를 내는 교직원들까지도 학교급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적어도 주 5일 점심시간에 국내산 농·수·축산물로 600만끼니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학교급식은 연간 약 7조원의 돈이 도는 중요한 경제사업이며 친환경농산물의 최대 소비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친환경농산물 유통실태 및 학교급식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18년 학교급식에서 사용한 친환경농산물 양은 79,339톤으로 이는 전체 친환경농산물 생산량의 57.7퍼센트에 해당한다. 현대의 농업은 그 자체로 환경에 많은 부담을 주는 산업이다. 외부 투입재인 농약과 비료 사용, 가축분뇨 발생으로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서 유일한 대안이 친환경농업이다.
친환경농업의 중요성을 논할 때 대체로 건강, 그중에서도 먹는 사람의 건강이 많이 강조된다. 실제로 친환경농산물과 생활재를 취급하는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가족, 특히 어린 자녀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답이 많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은 생산자 농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농업은 외부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이루어지는 야외노동을 바탕으로 하며, 비닐하우스를 비롯한 시설재배의 경우에는 식물이 발산하는 이산화탄소 및 농약과 비료에서 비산되는 물질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소비자들은 농약 묻은 농산물을 씻어 먹을 수라도 있지만, 친환경농업이 아닌 이상 농민들은 맹독성의 제초제 등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친환경농업은 생산자 농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더욱 권업되어야 하는 방식이다.
친환경농산물은 가격이 좀더 높다. 제초제 사용 대신 생산자들이 직접 제초작업을 한 데 따르는 노동가격, 물과 토양을 지킨 환경보존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최종생산물의 소비자가를 놓고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현재 전국의 농민 약 250만명 가운데 대다수는 65세 이상이고 80대 이상 초고령자도 많아 이들의 노동 가능 연한은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의 식량자급률 23퍼센트나마 지키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농민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도 친환경농업의 확장은 필수적이다. 물론 친환경농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려면 안정적인 판로가 갖춰져야 한다. 친환경농법은 관행 농법에 비해 병충해도 잦고 수확량도 많지 않은 데다 모양도 고르지 않아 상품성 있는 산물이 적게 나온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공공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소비되지 않는 한 지속하기 매우 어렵다. 학교급식은 친환경농민들에게 가장 안정적인 판로이자 미래세대인 학생들에게 공급한다는 사회적 자부심을 심어주며, 그 자체로 농사 잘 짓는다는 인증마크를 부여한 셈이기도 하다.
코로나19와 가정꾸러미의 정치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이 멈추면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본 이들은 집에서 밥을 하는 내가 아니라 학교급식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농가였다. 학교급식이 멈춘다고 밭에서 자라는 계약 농산물도 성장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학교급식 농산물의 출하조직들은 주로 연간 단위의 공급 계약에 맞춰 작부 체계를 짠다. 학교급식에 쓰이는 농산물의 종류는 약 180종에 달하는데 코로나19로 개학이 미뤄지자 결국 그 많은 농작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상하게도 학교급식 계약서에는 갑의 책임이나 의무사항은 없다. 보통 계약서상 갑의 권리만 너무 크면 ‘노예계약서’라고들 하는데 학교급식 계약은 그마저도 아니었다. 계약 농가는 교육청이라는 공공기관을 믿고 농사를 짓지만, 급식이 중단될 경우 교육청은 계약 물량을 책임지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19 때만이 아니라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2016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국적으로 발생한 식중독 사고 때도 갑자기 학교급식은 중단되곤 했는데, 공급 농가는 통보만 받고 끝날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의 규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개학이 석달 정도 늦춰진 데다 개학 이후에도 교차 등교를 하게 되어 급식 가동량이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피해를 보상하라는 급식계약 농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농림축산식품부와 지자체가 세운 대책은 피해 농가에 대한 낮은 금리의 융자와 판촉행사 정도였다.
각 지자체가 학교급식용 친환경농산물의 염가판매에 나서기도 했지만 소화 가능한 물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렴하게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은 가격의 적정선을 무너뜨리는 일로써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이번에 친환경농산물을 이벤트 가격에 사 먹은 사람은 다음에 제값을 줘야 할 때 분명 비싸다 느낄 것이다. 그래서 농협이나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농산물 할인판매에 대해 생산자 농민들은 찬성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학교급식에 출하하지 않는 다른 농민들도 간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이미 시장에 풀린 농산물이 있는데 이벤트처럼 학교급식용 농산물이 풀려버리면 덩달아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여러 피해가 커지고 학교급식에 쓰여야 할 예산이 집행되지 않는 문제도 있어 지난 4월 정부와 여당의 협의로 학교급식 피해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가정 지원 사업’(초·중·고 학생을 둔 가정에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는 것)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미 농어촌 지역의 지자체들이 선제적으로 급식꾸러미를 가정에 공급해 큰 호응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검증을 마친 사업이었다.
그런데 급식대상자가 가장 많은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이 사업을 떠넘기면서 학교에서는 꾸러미를 구성하는 부담까지 떠안아야 했다.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있는 지역에서는 신선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적절히 구성할 수 있었지만 지원센터가 부재한 경우에는 학교운영위가 알아서 꾸러미 구성을 해야 했다.
경기도에서 두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나도 아이들의 급식꾸러미를 신청했지만 한달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신선 농산물의 경우 빠른 소비가 관건일 텐데 이렇게 늦어지면 농가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중학생 아이 몫으로 온 꾸러미는 친환경쌀 10킬로그램과 찹쌀 1킬로그램이 다였다. 꾸러미란 여러 종류의 물건들을 한데 묶은 것을 의미할진대 쌀만 덩그러니 받으니 황당해 학교에 전화를 했다. 학교도 여러 민원에 시달렸는지 신선 농산물을 보내면 상할 수도 있고 요리를 해 먹지 않는 경우도 많아 학부모들의 불만이 높아질 것이 뻔해서 저장성을 갖춘 쌀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인근 학교도 쌀 단일품목으로 구성한 곳이 대체적이었다. 급식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전국적으로 급식꾸러미를 친환경쌀로 때우는 바람에 그 물량이 반짝 모자라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인 큰아이 학교에서는 지역 농협에 위탁했다는데, 쌀과 감자 두알, 당근 두개, 방울토마토, 그리고 참치캔과 통조림햄, 국내 1위 식품기업의 조미김이 배달되어 왔다. 채소로 구색을 갖춘다고 했으나 빠른 소비로 농가를 지원해야 했던 엽채류는 정작 꾸러미에서 가장 인기 없는 품목이 되어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학교급식은 계약농민과 식자재 공급업체, 학생과 학부모, 영양(교)사와 조리노동자, 교육청, 지자체까지 다중 주체성을 가진 사회제도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목소리가 센 쪽은 학부모다. 같은 메뉴라 하더라도 고기를 너무 조금 준다는 민원과 고기를 왜 이리 많이 주느냐는 민원이 동시에 발생하는 곳이 학교급식 현장이다. 소비자 정체성이 강한 학부모들에게 꾸러미 구성에 대한 의견을 묻기로 하면서부터 이 사업은 실패가 예고돼 있었다. 학교 입장에서 보면 나도 한명의 민원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가정꾸러미 사업의 애초 목표가 피해 농가 지원이었다면 그에 걸맞게 꾸러미를 구성하고 ‘이런 귀한 친환경 식자재로 아이들을 먹이고 있다’는 견본품을 보이는 식으로 진행했어야 한다. 그도 아니면 선제적으로 산지 폐기를 하고 피해 농가에 배상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대도시 지역의 교육청과 학교장들은 얼굴 볼 일 없는 농민이 아니라 소비자인 학부모 눈치만 보았다. 결국 가정꾸러미 사업은 본래의 목적지를 잃었다.
그런 와중에 꾸러미 구성을 잘한 지역도 있었는데 대체로 오랫동안 먹거리운동이 활발한 곳들이었다. ‘로컬푸드 1번지’라 불리는 전북 완주가 대표적인 예로, 코로나 이전에 이미 소규모 학교에 친환경 보조금을 1인당 70원씩 인상하는 등 조치를 한 덕분에 농산물뿐 아니라 축산물까지 친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완주 외에도 지역에는 친환경농산물과 가정에서 손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친환경 가공식품을 적절히 구성한 곳이 많았다. 2학기에도 순차 등교가 예정된 곳이 많아 재차 꾸러미 사업을 준비 중이지만 그 결과는 또 달라질 것이다. 이번 시행으로 각 지역 먹거리 정치의 역량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2G 폴더폰의 세계
코로나19에 대한 여러 분석 가운데 특히 비대면 경제 분야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말은 어렵지만 가장 비근한 사례라면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서 상품을 쇼핑하는 일이다. 온라인 유통이 경제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으니 이에 대응하자는 뜻이다. 농업 분야도 예외가 없다. 4차산업 시대를 이야기할 때 1차산업으로 분류되는 농업은 굉장히 멀기만 해 보이지만, 정부 차원에서도 민간 차원에서도 농업 또한 디지털 경제 부문을 강화해 이후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의 신기술이 도입돼 이전의 농업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세칭 ‘그린뉴딜’이라 부르는) 한국형 뉴딜정책에서 농업·농촌 영역에 해당하는 사안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5G네트워크 고도화를 통해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어 비대면 경제사회 시스템을 농촌에도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온라인 농업컨설팅 같은 비대면 농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디지털 경제에 포함된다. 또 농업생산 기반 유지를 위해 자율주행 농기계와 농업로봇, 이미지 생육정보 수집 시스템 등을 갖추고 스마트 방역체계를 통해 병충해 방제도 스마트폰 하나로 제어하게끔 하는 등 여러가지 청사진이 제시됐다.
농산물 유통에도 큰 변화가 예고된다. 농산물도매시장에서 경매사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물 경매는 대표적인 대면 경제이지만 이제 현물을 보지 않고도 생산이력 정보, 품질 정보, 화상 정보를 통해 경매가 이루어지는 ‘이미지 경매’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뒤에는 농촌에서도 비대면 원격의료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도 한다. 유명 병원은 서울에 다 몰려 있을뿐더러 농촌 지역에는 병원 자체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인 만큼 원격의료서비스의 수혜자는 농촌이 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여기에 온라인 플랫폼 교육 시스템까지 갖추면 이른바 ‘농촌 5G시대’가 열린다는 요지인데, 짧은 소견으로 판단해보면 지금으로선 농촌에 5G 초고속인터넷망을 깔겠다는 말을 어렵게 돌려 한 것만 같다.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언제나 넘쳐난다. 작목 전환 교육, 신품종 재배기술 교육, 새롭게 바뀐 법령에 대한 교육 등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각종 지원금을 받으려면 의무사항으로 교육과 컨설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농업에 대한 교육도 없던 것은 아니다. 온라인 직거래 사업을 농산물 유통의 대안으로 삼아 농가 블로그 제작과 SNS 활용법, UCC 제작법 등의 교육이 천편일률적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정작 농민들에게 필요한 ‘스마트 기술’인 정밀한 드론 방제 기술이나 농토 진단, 정확한 방제 시기 및 수확 시기 측정 등을 알려주는 곳은 없다. ‘일도 바쁜데 알량한 지원금이라도 받자니 이러고 앉아 있다’며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그나마 이런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5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고 70~80대의 농민들은 더욱 거리가 멀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강의가 불가능해지자 기존의 교육마저 난관에 부딪혔는데 개중에 조금이나마 ‘고령친화적인’ 유튜브로 강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줌이나 웹엑스 같은 실시간 화상교육을 찾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농촌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고령의 농민들은 집 밖에서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2G 폴더폰조차 첨단 문물로 여긴다. 1990년대 초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들판 사이사이에 공중전화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일을 하다 전화 쓸 일이 생기면 다시 먼 길을 와야 하는 번거로움도 그렇지만 갑자기 밭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긴급하게 구조 요청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공중전화 설치 요구 운동은 다소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는데, 90년대 중반부터 휴대전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 휴대전화는 유용하고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2G폰 하나면 충분해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현실세계에서 5G 초고속인터넷망 구축 사업이 그린뉴딜 농촌농업 정책의 일환이라는 주장은 억지스럽다. 70대의 경우 스마트폰 보유율이 39.7퍼센트에 그치는데 농촌에서 70대는 경로당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젊은 축에 들 정도다.
누가 우리를 부양하는가: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시민 K
‘K’라는 알파벳 붙이는 일이 근래 국가 주도 사업의 작명 방법 중 하나다. K팝, K푸드에 이어 K-방역까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이번 코로나19 방역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다. 다만 코로나19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보지 않으려 했던 사회의 약한 고리가 툭 끊겨 나가는 현장도 드러났다. 비대면 새벽 배송을 하던 ‘쿠팡맨’들이 코로나19로 폭증한 주문량을 감당하며 물류센터에서 쉼 없이 일하다 집단감염이 된 일처럼 말이다.
‘저밀도 사회’여서 마스크에서도 자유롭고 대면수업도 가능한 농촌이지만 실상은 코로나19의 약한 고리다. 저밀도 사회인 이유는 당연히 사람이 없어서다. 20년 넘게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짓는 농사에 기대서 먹고살아온 나라가 한국이다. 상시고용을 전제로 하는 외국인고용허가제는 기본 3년 체류 기간에 사업주가 요청할 경우 1년 10개월을 연장해 최장 4년 10개월을 머물 수 있게 하는 제도로, 2004년에 농업 분야에도 도입되어 주로 축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상시고용률이 가장 높은 분야는 축산업 중에서도 노동강도가 센 양돈업이다. 월 20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고 그만큼의 험한 일을 하러 오는 내국인은 없다. 실제로 농촌에서 인력을 구할 때도 내국인보다 외국인을 선호한다. 일이 워낙 힘들어서 한국 사람들은 잘 견디지 못하고 불만만 많다며 차라리 ‘착한’ 외국인이 낫다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한다. 이외에 젖소와 한우 사육업, 양계업도 농장주만 한국 사람이고 거의 모든 일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다. 만약에 이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지금 이 값으로 삼겹살도 계란도 치킨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축산업과 달리 노지 채소나 산나물 같은 밭작물은 계절을 많이 탄다. 논농사는 기계로 짓고 있어 내국인 인력으로도 어느정도 메워지지만 문제는 사람 손을 많이 타는 밭농사와 과수농업이다. 씨앗을 뿌리고 과일의 꽃을 솎고 인공수정을 하는 시기인 봄과 수확기인 가을에 가장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이에 유럽의 많은 나라처럼 한국에도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가 2015년부터 도입되었다. 도입 첫해에는 신청한 지자체가 한군데였고 입국자도 33명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농어촌 지자체에서 쿼터, 즉 인력 배정을 더 늘려달라, 몇달만 더 머물게 해달라 애원할 정도로 농촌의 주요한 인력 수급 방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히면서 2020년 상반기에 들어오기로 한 계절노동자 3,052명의 입국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하기로 한 외국인노동자들도 6,400명 중 1~3월 720명만 입국했다. 계절노동자들은 입국을 하고 싶어도 입국과 동시에 적용되는 자가격리 비용이 큰 부담이다. 숙소를 알아서 구해야 하는 것도 어렵지만 14일치 숙박비를 선이자 떼이듯이 내야만 한다. 길어야 5개월 일하고 받는 돈에서 자가격리 비용과 왕복 항공권 비용을 제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진자들의 해외유입 사례 때문에 입국을 무조건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해 현재 정부도 출입국관리에 상당히 예민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로 급한 쪽은 한국이다. 농촌에서는 인력소개소를 통해 일용직으로 밭일을 하러 오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체류 기간이 만료된 이른바 ‘불법체류자’임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는다. 이들이 없으면 생산이 멈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올라가도 ‘금추’ ‘금겹살’이라 부르며 호들갑을 떠는 여론 속에 있는 만큼 외국인노동력으로 그나마 이 정도 농산물 가격을 방어해왔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농·수·축산업에 종사했던 외국인노동자들이 계절노동자로의 전환을 원할 경우 한국에 5개월 정도 더 머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외국인들을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이지만 이미 입국해 있는, 혹은 ‘검증된’ 외국인들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책은 한시적일 뿐 충분한 인력 확보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손이 많이 가기로 악명 높은 고추의 주산지인 경북 영양군에서는 지자체가 나섰다. 인근 온천 리조트에 격리시설을 마련하고, 격리비용을 농가가 30퍼센트, 영양군이 70퍼센트 부담하는 조건으로 베트남에서 308명의 노동자를 입국시키기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이 일도 틀어지고 말았다. 발만 동동 구르는 농촌의 현실보다는 한꺼번에 외국인을 들여온다는 여론이 무서웠던 것일까. 주요 소득 작물인 고추는 수확 시기를 놓치면 끝이기에 목을 빼고 이들을 기다렸을 농민들은 망연자실했을 것이 뻔하다. 영양군은 지방소멸지수(한국고용정보원 2019)에서 전국 7위를 기록한 지역이다. 고추밭에 고추가 빨갛게 익어도 딸 사람이 없어 농가가 자부담으로 격리비용을 대겠다며 사람을 보내달라 요청한 일을 성사단계에서 정부가 틀어버린 것이다. 방역수칙을 충분히 지키겠다는 지자체의 대책도 외면한 채 이 사업을 무산시킬 수 있었던 건 어차피 고추는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는 식의 손쉬운 판단 때문이었을까. 농촌 문제는 늘 후순위라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된 듯하다. 이런 와중에 홍수 피해까지 났으니 농민들은 더욱 애가 탈 수밖에 없다. 농촌의 인력 부족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내세운 다른 대책으로, 농촌의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농촌인력중개센터를 통해 도시의 실업 문제와 농촌의 인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것이 있다. 하지만 지난봄 이 사업을 시도해본 강원도 어느 군의 담당자는 단 한명의 내국인도 지원하지 않았다며 난감해했다. ‘농촌고용인력지원사업’은 사업성과 평가에서도 ‘미흡’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매번 귀농귀촌을 활성화하고 도시 실업인구를 농업 부문으로 흡수하겠다는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
한편 현재 한국에 남아서 농촌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코로나19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을 경로가 없어 잠재적 감염의 위험을 상시 안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 입국할 때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지만 대다수는 초급 수준에 멈춰 있어서 간단한 작업지시 정도만 알아듣는다. 반복적인 농작업은 많은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대체로 농장주의 시범을 따라 해보면서 손에 익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외국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데, 문제는 그 정보의 출처가 주로 본국의 언론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정보에는 자극적인 내용이 많다. 한국에서 코로나19가 신천지를 중심으로 확산일로에 있을 때 외국인노동자 커뮤니티를 통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말들이 쏟아졌고 실제로 출국한 이들도 많았다. 반대로 한국이 어느정도 안정을 찾은 뒤에는 아예 완벽하게 안전한 곳으로 인지하는 분위기도 있다.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각자 농장에 고립되어 있는 농촌 상황에서 방역수칙에 대한 충분한 안내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를 비롯해 미국, 유럽 등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나 작업장이 코로나19의 감염경로가 된 맥락과 별반 다르지 않다. 농장주들이 도시에 비해 방역 경각심이 떨어진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현재 질병관리본부가 운영하는 코로나19 콜센터(1339)의 경우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24시간 상담이 가능하지만 베트남어, 타이어,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 등은 일과시간 중에만 통역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나마 이렇게 이용 방법이라도 인지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주변에 조력자가 있거나 한국 생활을 한 지 오래된 경우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외국인의 입국을 무조건 막자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없다면 당장 제조업도 그렇지만 농어업도 사실상 중단된다. 그동안 농업 부문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수급 및 관리 문제는 지자체에 거의 맡겨놓다시피 했으나 이번 영양군의 사례처럼 이 문제는 이제 지자체 수준에서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외국인 인력 수급 문제 또한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자 외교적 차원의 문제로 커져버린 것이다. 출입국관리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 농촌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을지 낙관할 수 없다. 다만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던 독일의 경우 지난 4월과 5월에 각각 4만명의 외국인 계절노동자 입국을 허용하고, 방역지침 준수에 대한 역할을 정부와 농민단체, 지역 보건부서가 나눠 맡는 등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독일의 국력이나 행정력이 한국보다 앞서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국가가 농업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K-방역이 호명하는 ‘시민 K’에 우리를 부양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았던 게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코로나 이후를 이야기하려면
‘포스트 코로나19’ 담론 전성시대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이후에 이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이며 또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정작 그 누구도 코로나19 사태가 대체 언제 끝날지, 과연 그 끝이 있기나 한지 확신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농업 분야에서도 코로나19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관련 자료도 쏟아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낙관하는 입장에서는 이제 농업은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 기술로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서 대안을 찾는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에도 없었던 농민과 환경을 위한 농업정책이 코로나19 이후에 갑자기 수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완벽한 착각이다. 비대면 시장에 대해 분석하면서 기존 농산물도매시장의 시스템은 낡은 유물로 취급하고, 온라인 유통체계로의 전면 전환을 주장하는 보고서 같은 것들이 그 예다. 그런 방향이 필요하다면 현행 농산물도매시장의 후진성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예 모든 것을 다 쓸어내고 새롭게 건설하려 할 때 쓸려나가는 것은 제도만이 아니라 거기에 근거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코로나19 이후에 올 것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코로나19 이전에도 부족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먼저여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어떠한 ‘이후’도 또다시 소멸할 위험에 처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