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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존 카디너 『미움받는 식물들』, 윌북 2022

인간의 시야 바깥에서

 

 

임정균 林貞均

문학평론가 wolverine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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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영화 「인터스텔라」(2014)가 다시금 주목받았다. 영화를 다시 보며 현실을 빼닮은 블랙홀의 모습에는 새삼 경이를 느꼈지만, 어째서인지 더스트볼(Dust Bowl, 1930년대 미국 대평원을 휩쓸었던 모래폭풍)을 재현했다는 영화 속 재앙의 풍경은 현실의 스펙터클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 있는 당시의 사진과 영상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쿠퍼와 브랜드 교수의 낙관적인 대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해결책을 찾겠죠. 늘 그래왔듯이.” “지구가 우리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 덕이었지.” 이 뿌리 깊은 인간 중심의 자연관과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부재. 기후위기의 여파를 날마다 체감하게 되는 요즘, 영화 속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 건 조금 다른 의미로 무서운 일이다.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건 존 카디너(John Cardina)의 『미움받는 식물들』(Lives of Weeds, 2021, 강유리 옮김)을 읽고 나서였다. 잡초와 인간의 상호작용의 역사를 다룬 이 책에는 더스트볼 이후 미국 농업의 대응 방식과 그 결과가 마치 영화의 전사(前史)처럼 기록되어 있다. 토네이도가 자주 발생하는 미국 중부지역의 대평원에는 본래 뿌리가 깊은 여러해살이풀이 폭넓게 자생하며 토양 건조와 침식을 방지해주었다. 서부 개척과 함께 시작된 무분별한 경간과 목축으로 풀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 발단이라면, 몇해간 이어진 가뭄으로 땅이 메말라 침식에 취약해진 것이 전개, 뒤이어 위기에 해당하는 모래폭풍이 불어닥친다. 절정은 당시 미국의 농업 관련 종사자와 연구자들이 더스트볼의 원인 중 하나로 경운(耕耘)을 지목하면서부터다.

잦은 밭갈이가 침식을 유발하는 탓에 무경운은 적절한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당시의 무경운 농법은 잡초에 특히 취약했다. 때마침 화학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제초제가 좋은 대안이 되어주었다. 이 새로운 화학물질은 특정 잡초만 공격하는 선택성을 발휘해 성가신 잡초만 말끔히 없애주었고, 경운·윤작·혼작 등에 비해 노동력까지 덜어주면서 이후 미국의 농업은 자연스레 제초제를 사용하는 무경운 단작 농법이 관행으로 굳어지는 결말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결말은 또다른 위기가 되었다.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잡초가 나타난 것이다. 농장주들은 제초제 회사가 답을 찾아줄 것이라 기대했고, 회사는 기대에 부응했다. 새로운 화학물질이 개발되는 한편 유전자변형기술을 통해 제초제의 작용기전을 회피하는 GMO 작물까지 등장했다. 그럼에도 잡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잡초는 인간의 새로운 방제수단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매번 기어이 찾아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의 주인공인 여덟가지 식물들은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잡초로 진화한 듯 묘사되곤 한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흔한 오해가 아닌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우연히 환경에 맞게 변이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과정일 뿐, 거기엔 어떤 의지도 개입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잡초를 대할 때만큼은 유독 다윈의 충실한 제자가 된다는 점이다. 여덟가지 식물들이 잡초가 된 시기와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제초제가 있었다. 무분별한 제초제의 사용은 생태계를 교란하고 토양과 환경을 오염시키는 동시에 몇몇 식물들이 성가신 잡초로 진화하게 되는 선택압으로 작용했다. 자연상태의 생물종과 달리 잡초의 진화는 농경행위의 산물인 것이다. 카디너는 이를 ‘농경선택’(agrestal selection)이라고 부른다. 그는 잡초의 진화가 자연의 선택이라고 오해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농업이 간과해온 진짜 위기라고 지적한다.

식량 생산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의 토대이고, 농업을 계속하는 한 농경선택은 늘 새로운 잡초의 출현을 예고한다. 방법은 선택압을 줄이는 것, 즉 제초제 사용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방제수단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미국에서 무경운 단작 농법과 제초제의 결합은 자본의 논리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더욱 공고해졌고, 그렇게 굳어진 관행 농법은 다시 제초제 사용을 강제하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가령 GMO 종자 회사는 비싼 값에 종자와 제초제를 팔았고, 농산물의 유통까지 장악했다. 생산비용이 상승하자 소규모 농장이 자취를 감추고 기계화와 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농업은 점차 거대자본에 종속되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확실한 농법은 대출을 껴안은 농장주들에게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미국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배할 작물을 선택하고, 어떤 식물을 잡초로 규정할지에서부터 저개발 국가의 농촌 현대화에 이르기까지 현대 농업은 늘 식민주의의 그늘 아래에 놓여 있다고 카디너는 말한다. 여전히 많은 저개발 국가에서는 잡초 제거를 위해 임금이 싼 노동자나 여성의 손을 빌리고 있고, 그 와중에 제초제를 이용해 생산된 미국의 농산물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 삼아 저개발 국가의 식량시장을 식민화한다. 제초제가 악순환의 원인임을 알아도 일부의 선택과 노력만으로는 제초제 사용을 줄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30년간 일선에서 잡초를 연구해온 이 식물학자는 문제의 해결책을 인간이 아닌 잡초에서 찾는다. 세계 각지의 서로 다른 농경문화와 환경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온 잡초의 삶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농사를 짓고, 먹고, 소비하고, 서로를 대하고, 자연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선택에 따라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무엇이 잡초가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327면) 오늘날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 구분 역시 지구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가 인간 행위로 인한 환경파괴의 결과라고 경고한다. 현재 세계 각국과 글로벌기업이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경제적 유불리를 따지는 단계적인 해결안만을 모색하며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인류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가 당면한 재앙이란 어쩌면 모래폭풍이나 기후위기처럼 가시적인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는 자만과 낙관이 아닐까.

닥쳐올 위험을 제대로 상상하는 일은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는 것보다 생존에 훨씬 중요하다. 익숙한 시야 바깥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상상보다 혹독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좀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자연은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집에서 기르는 식물에게 가장 취약한 것은 척박한 환경이나 잡초가 아니라 너무 많은 관수나 비료 같은 인위적 개입이다. 과습으로 시들해졌던 식물마저도 오히려 우리가 잠시 한눈을 팔 때 무럭무럭 자라곤 한다. 식물은, 나아가 자연은 인간의 개입 없이 균형을 찾아낼 힘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이 스스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더이상의 인위적 개입을 멈추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러하듯 자연이야말로 반드시 스스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온 경고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 인위적 개입을 멈추라는 명령인지도 모른다. 카디너는 그러한 진실을 잡초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