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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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鄭漢娥

1975년 울산 출생. 200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이 있음. crookcrony@hotmail.com

 

 

 

물거미

 

 

차양 밖에는 비가 내린다

그들 모두 가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조금씩 들이켜는 포도주가 그들 자신의 피로 빚어진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발효와 부패는 얼마나 다른가

 

그는 여덟개의 눈과 다리로

많은 라벨들을 꼼꼼히 살펴보았고

성분과 맛과 향을 음미했으며

그 결과 취기와 피로의 반복 속에 있었다

(그것은 천국과 연옥 중

어느 쪽에 더 어울립니까?) 그러나

우연한 먹이처럼 눈앞에 자유가 다가온다면

기꺼이 포획할 작정이다

 

二星호텔로 가는 좁고 젖은 포도 위에

요란하게 울리는 여행가방의 바퀴 소리

골목마다 샘이 있고 광장마다 분수가 있는

음습한 마을에는

어리석은 여행자를 노리는 좀도둑이 끓고

그는 당분간 용의주도하게 은거하는 중

 

그는 가는 곳마다 집을 짓지만

어느 곳에서나 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대개

하루살이나 젖은 낙엽

 

자유의 기미를 포획하는 데 집중하느라

그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꿀과 달

 

 

부풀어오르는 반죽

라벤더 꽃에서 딴 꿀

죽어서 꿀병 속으로 간 꿀벌

느린

아침

햇볕

현관을 들어서는

손톱 밑이 까만 그의

목덜미에선

그을린 빵 냄새가 난다

어디 갔다 왔어요?

간밤에 잠깐

지옥에요

일이 생겨서요

 

폐허에서 태어난 돌들은

부서진 살점들을 오래 모으고

 

어제부터

어제보다 조금

덜 존재하기 시작하고 있는

죽은 꿀벌

썩지 않는

삼켜버릴 수도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