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의료공공성 확대는 1차 의료 강화에서부터
김용진 金龍進
치과의사, 공공의료성남시민행 동 공동대표.
박건희 朴建熹
평창군보건의료원장, 예방의학 전문의.
백영경 白英瓊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대담집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및 공저서 『돌봄이 돌보는 세계』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배틀그라운드』 등이 있음.
백재중 白在中
내과의사, 신천연합병원 명예원장. 저서 『공공의료 새롭게』 『여기 우리가 있다』 『자유가 치료다』 등이, 공저서 『인권의학 강의』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등이 있음.
백영경 모두 바쁘신 중에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대 증원 문제로 시작된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무엇보다 의료개혁의 문제의식이 실종되고 있다는 것, 이게 현 상황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 주제를 지겹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문제의 근본을 파악하기보다는 본인이 병원에서 겪은 부정적인 경험들을 얘기하며 분노를 토로하는 데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런 지루한 공방 속에 잊힌 의료개혁이라는 화두를 되살려보고자 합니다. 시민사회와 함께 공공의료를 고민하고 실천해온 의료계의 여러분들을 모시고 한국의 의료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부터 시작해, 사회전환이라는 문제의식이 있는 시민들이라면 무엇을 바라고 만들어가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각자 해온 활동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백재중 백재중입니다. 내과의사고요, 현재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공익적 민간병원인 신천연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마찬가지로 공익적 민간병원인 녹색병원에 있었고요. 녹색병원 전에는 15년 동안 공공부문에서 일을 했어요. 지방의료원, 보건지소, 국립의료원, 국립대병원 등을 거쳤습니다. 공공 분야와 민간 분야를 모두 경험하며 현 상황의 문제점을 두루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민간병원에 속해 있어 민간에서 할 수 있는 공공성 향상에 관심을 두고 있고, 다양한 지역사업들도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지역 고령화와 돌봄사업에 여러 문제의식을 안고 그 부분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용진 저는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이라는 단체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용진입니다. 직업은 치과의사고요. 2003년 경기도 성남시의 인하병원과 성남병원이 폐업하면서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성남시에서 의료원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이 조직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민사회 내에서 이어졌고, 정말 시민을 위한 병원으로 잘 운영되도록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성남시의료원 관련 활동과 시민교육을 진행해왔죠. 대구, 울산, 대전 등 여러 지역의 공공병원 설립운동 단체와 연대해왔고 최근에는 좋은의료만들기운동본부를 만들어 어떻게 하면 좋은 공공병원을 만들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개인으로는 치과의사로서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활동을 하며 노인틀니보험, 아동치과주치의, 스케일링보험 등 치과계 건강보험 보장성과 관련된 정책활동이나 캠페인을 해왔고요. 건강보험 보장성이나 의료공급 영역에서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들을 계속 해왔기에 오늘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건희라고 합니다. 작년 3월부터 평창군보건의료원 일을 시작했어요. 전공은 예방의학 보건학, 그중에서 의료정책 관리와 1차 의료 지역보건을 공부했고 그쪽 일을 많이 했습니다. 8년 정도 세계보건기구(WHO)에 있으면서 라오스에서 모자보건사업이나 태평양 도서지역 의료체계, 즉 인력개발이나 재정체계 및 정보체계 등을 관리하는 정책자문을 했었고요. 그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안산시 상록수보건소장, 경기도청 감염병관리지원단장을 거쳤고 지금은 다시 의료취약지인 강원도 평창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백영경 저는 창비 편집위원 백영경이고요, 제주대 사회학과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의료인류학 전공이고 관심사는 여성학과 과학기술학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의료지식과 권위 형성, 여성건강 문제, 사회적 고통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요. 지역에 거주하면서 한국에서는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과 실제 지역에서 구현되는 현실 사이에 격차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더 커졌습니다. 듣기에만 그럴싸한 구호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나갈 것인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의사 숫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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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아무래도 일반 시민들은 최근 전공의 사태의 추이에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소위 ‘의료대란’이라 불리는 최근의 사태에서 의료개혁의 다른 쟁점은 사라지고 의대 증원 이슈만 남은 것 같아요. 선생님들은 정말 증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각자 몸담고 계신 의료현장에서는 현재 전공의 사직사태의 여파를 어떻게 느끼시는지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용진 지금은 의사가 많은데, 한편으로는 없기도 한 상황입니다. 서울의 송파 강남 같은 곳에 가보면 병원들이 넘쳐나는데, 성남시 같은 경우 모셔올 의사가 없어요. 병원도 의사도 이렇게 많은데 왜 성남시의료원은 의사를 못 구하는가 하면, 일단 공공의료에 종사하며 생활할 의사가 없는 거죠. 문제는 단순히 정원을 늘린다고 이런 의사가 많아지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부나 보건복지부의 의료사회정책은 단순히 의사를 늘리면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도 늘어나지 않겠느냐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하며 전공의 사직사태가 발생하니 병원도 인력이 부족해져 힘이 들고요. 중요한 건 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들을 배출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교육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지역에서는 방문의료가 필요한데,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실정을 잘 모릅니다. 지역에서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생활환경을 알아야 의료적·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그런 현실적인 교육이 전혀 안 된다는 거죠. 이런 진료를 할 수 있는, 즉 필수적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있는 의사를 배출하도록 수련 시스템이나 의대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의사 숫자 늘려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오히려 의사들끼리 경쟁이 심해지고 비급여진료가 늘어날 우려만 생기죠.
백재중 의료인들 사이에서는 최근 사태 이전에 이미 지금의 시스템이 불안정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 빅뱅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다만 빅뱅이 이런 방식으로 올 줄은 몰랐죠. 개인적으로는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었던 바가 있습니다만, 2천명이라는 숫자가 과연 합리적이냐, 의사결정 과정이 타당하냐, 집행과 수습 과정이 적절하냐, 그리고 의사들의 대응이 온당하냐를 모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대체로 공공의식이 부족한 편입니다. 우리나라 공공의료는 병상 수 기준으로 전체 의료의 10%가 안 되며 의료기관 수를 기준으로 하면 더 떨어져 6%가 채 안 됩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의사들은 민간영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만약 공공의식을 가진 의사가 지금보다 많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다르게 대응했겠죠. 지금 의료현장은, 예컨대 제가 일하는 시흥시만 보더라도 무척 고요합니다. 저희 병원은 워낙 전공의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큰 혼란 없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고 주민들도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앙은 소란스럽지만 지역은 별 변화를 느끼지 못해요. 그동안 우리나라 의료체제가 빅5 병원, 대형병원 중심으로 구성되어왔기 때문에 여기에 문제가 생기니까 더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백영경 상급병원,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몇개 병원의 문제가 너무 과잉대표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런데 이렇게 의료기관의 체계를 구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 개념을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백재중 의료기관은 크게 1차, 2차, 3차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차 의료기관이라고 하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원들을 말합니다. 뭔가 불편하면 처음 찾는 곳인데요. 여기서 해결이 안 되면 지역에 있는 중소 규모의 병원급 의료기관을 찾게 되는데 이곳이 2차 의료기관입니다. 참고로 병원은 보통 입원실이 있는 의료기관을 뜻하고, 법적으로 입원실이 있어도 규모가 작으면 의원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빅5 병원, 대형병원들은 3차 의료기관으로 분류됩니다. 원래는 불편함이 발생하면 1차, 2차, 3차 순서를 밟아 방문해야 하는데 환자들의 대형병원 선호가 강하다보니 3차 의료기관 쏠림이 있습니다. 요즘 의료대란 와중에도 1차 의료기관들은 조용하고 2차 중소병원도 전공의 없이 돌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대형병원들이 중환자들만 진료하고 경증에서 중간 정도의 환자들은 지역 중소병원에서 커버할 수 있었다면 지금 상황에서도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겁니다. 현실은 수많은 환자들이 대형병원에 몰리니 혼란이 발생하고 중증 환자들이 피해를 보는 거고요. 지금 상황은 대형병원에 집중되었던 환자들이 분산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왕 문제가 터졌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체계를 만들면 좋겠어요. 문제는 정부가 그런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백영경 정부는 이미 지난 2월 의료개혁 ‘필수의료 패키지’를 내놨는데 의료계의 비협조 때문에 진전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텐데요. 이 필수의료 패키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건희 정부가 발표한 의료개혁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공정보상이라는 네가지 과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과제는 사라지고 의대 정원 얘기만 남은 현재 상황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저는 시민 혹은 환자의 입장, 의료인의 입장, 정부의 입장 이 세가지 측면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봤는데요. 시민 혹은 환자들이 초기에 의대 증원 논의를 지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3분 진료라든지 불친절한 의료인을 만났다든지 그간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의사가 늘어나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 런 같은 현상도 어떻든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생각해서 초기에 의대 증원을 지지했던 듯합니다.
백영경 그렇다면 의료인이나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박건희 시민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우실 수 있겠으나 의료인들은 전반적으로 현재의 노동강도가 너무 높다고 생각합니다. 연봉이 높긴 하지만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는 비정규직도 많고요. 무엇보다 환자와의 관계에서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환자와 의사가 상호 지지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상업적 거래 관계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에 업무 만족도가 낮은 거죠. 그 와중에 의사가 늘어난다는 건 경쟁자가 늘어난다는 뜻이니,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의료인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요. 한편 정부 차원에서 보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가 급증하는 의료비거든요. 한국은 전통적으로 적은 의료비로도 좋은 건강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자부해왔지만 벌써 다 옛날얘기가 돼버렸어요. 이미 2022년 경상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보다 높고, 건강보험 진료비가 증가하는 속도도 평균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의사를 늘린다면 오히려 의료비가 더 증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상체계가 문제인데요. 현재 의료인들은 의료행위를 하나하나 할 때마다 돈을 받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행위량을 늘리고 단가가 비싼 행위를 할 동기가 생깁니다. 행위별 수가제라고 하죠. 그러다보니 비싼 비급여진료를 하고 싶어하고, 초과진료를 하더라도 하루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보려 하고요. 특히 앞으로 고령인구가 증가하면 진료량은 더욱 많아질 겁니다. 이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의료비는 계속해서 늘어만 갈 거예요. 따라서 시민(환자), 의료인, 정부 세 주체가 문제라고 여기는 환자의 경험 향상, 의료인의 직무만족도 향상, 의료비 절감, 나아가 주민들의 건강향상이라는 목적을 만족하기 위한 개혁방안으로 의대 증원이 전면에 서는 건 부적절합니다. 안 그래도 별로 좋지 않았던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더욱 망가지고 있는 것이 더더욱 안타깝고요.
한국의 공공의료,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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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한국의 의료공공성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주치의 등록제도 등 의료운동계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것들이 있고 또 그사이 문재인케어 등 개혁의 노력도 계속되었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는 것 같아요. 한국의 공공의료가 오늘날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김용진 저는 의료비용 지출은 공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의료제공체계는 완전히 시장에 맡겨져 있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상급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 실손보험과 연계되는 요양병원 등의 입김을 받다보니 지금 같은 식으로 체계화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공의료운동계에서 개인이나 가족이 주치의를 등록하는 주치의 등록제 같은 여러 시도를 해왔습니다만 뚜렷한 성과를 보지는 못했죠.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려면 그에 맞게 의사들을 수련시켜야 하는데 대학병원이 이러한 교육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의대를 나와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공공기관이나 지역에서 수련을 하는 등 공공의료를 위한 체계를 만들고 그런 인력을 개발, 양성해야 1차 보건의료의 기반이 될 겁니다. 의료를 산업으로 바라보는 정부와 공공적인 관점을 교육받지 못하고 상업적, 경쟁적 시각이 지배적인 의료계가 사실상 이 상황을 방치했다고 봅니다.
박건희 1차 의료와 공공의료가 이제까지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이유는 시민들이 그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위별 수가제가 메인인 이상 의료체계는 환자도 알아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찾고 의사도 알아서 먹고살 만한 진료를 보며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는 비교적 큰 불편함이 없었던 거죠. 또한 공공병원은 국공립 어린이집과 같이 질 높은 공공기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실패했고,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나 다니는 데라는 인식도 있습니다. 문제는 의료비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결국 정부는 정부 지출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조치를 할 텐데 사전에 충분히 대화하지 못하면 그때 갈등이 터질 겁니다.
백영경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까요?
박건희 의료 이용을 어떻게든 줄이는 방법을 쓰겠죠. 지불보상제도 변화와 1차 의료 및 공공의료 확대를 통한 전환을 평화적으로 이루지 못한다면, 본인 부담금을 높이거나 의료 이용의 문턱을 높이는 등의 카드들을 쓸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아프지만 돈이 없어서 의료 이용을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도 올 수 있습니다. 공급자들도 마찬가지로 아직까지는 각자도생으로 지낼 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비급여진료를 보든 진료량을 늘리든 정 안 되면 미용성형을 하든 먹고살 길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시장 규모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아니면 벌써 한계에 도달했을지도 몰라요. 정치가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1차 의료나 공공의료를 조직화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재중 문재인정부에서 의료비 재정 공공지출을 높이기 위해 문재인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관련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MRI 등 비급여 항목의 진료행위를 보험 적용 수가로 전환하여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줄이는 정책인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봅니다. 의료보장성 강화도 안 됐을뿐더러 자유방임적인 의료전달체계에서 의료비 부담이 줄어드니까 너도나도 대학병원, 빅5 병원으로 몰려갔어요. 그 쏠림으로 대학병원들은 오히려 수익이 늘었고 지방의료는 붕괴되었습니다. 대다수 의사들은 의대 증원, 포괄수가제, 주치의 제도, 의약분업 등 정부가 추진하는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합니다. 그 이유로 저는 의사들의 공공의식이 부재하다는 점이 가장 주요하다고 봐요. 대부분의 의사들은 민간영역에서 근무하며 극도의 민간 주도 의료 시스템 아래 있습니다. 의식 자체가 민간에 경도되어 있고, 공공의료에 대해서는 경쟁의식을 느끼거나 상황에 따라 적대적이기까지 하고요. 도덕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자기 환경에 맞게 인식이 형성된 탓이겠죠.
박건희 저는 의사들의 공공의식이 소속 기관이 공공이냐 민간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봐요. 일하는 방식, 즉 보상받는 방식이 공익적인 방식이냐 아니면 자본주의적인 방식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의사한테 등록관리된 환자가 얼마나 더 건강해졌느냐에 따라 보상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바뀐다면 의사들은 단순히 진료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나에게 등록된 환자가 더욱더 건강해지도록 안간힘을 쓸 거라는 얘기죠. 저는 그런 의사의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행위량이 아니어야 합니다.
백영경 개념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만, 환자가 건강해졌다는 걸 어떻게 측정하고 보상할 수 있는지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건강해졌다는 지표를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숨은 의료수요를 찾아내는 일을 소홀히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점차 고령화 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의사들이 잘한다고 주민들이 마냥 더 건강해질 수만도 없을 것 같은데요.
박건희 고혈압, 당뇨병 환자의 경우 잘 관리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이러한 지표는 중증 합병증 예방과 바로 관련되고요.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잘 관리해서 환자들에게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건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이잖아요. 관리를 잘한 데 돈을 더 많이 줘야 하는데 지금은 환자가 몸이 망가져서 의료 서비스 이용을 많이 하면 돈을 더 번다는 거예요. 저는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지닌 의사들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게 등록된 환자들에게 최적합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는다면 의료의 공공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거라고 믿어요.
백재중 민간 주도가 워낙 강한 분위기에서 어떤 공공적인 정책 자체가 관철되지 못한다는 게 문제 같습니다. 특히 재벌병원들이 들어서면서 모든 평가방식이 수익성에 근거하게 되고, 이 방식이 공공병원인 국립대병원까지 압도하고 있죠. 지방의료원을 평가할 때도 수익성을 따지는 실정입니다. 민간 주도의 공급체계 여파가 모든 의료 시스템, 의식 자체를 장악한 듯해요. 지금 체계에서는 지불보상 방식이 변경되더라도 그에 따른 편법이 생길 겁니다. 우리나라는 의사 개인 또는 가족에 의해 운영되는 의료법인이 너무 많아요. 그러다보니 수익성이 경영적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죠. 수가제를 바꾸면 바꾸는 대로 그만큼 수익성을 올리기 위한 시스템이 작동할 겁니다. 꼭 필요한 진료 분야라도 수가가 높지 않으면 소홀해지게 마련이에요.
김용진 민간 주도의 의료체계에서 이를 제어하고 견제하면서 공공성을 유지하는 공공병의원, 공익적 사회적 의료기관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문제의 악순환을 끊을 가능성이 생기리라고 봅니다.
백영경 선생님들 모두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복잡한 의료문제가 단순히 평가체계를 바꾸는 것만으로 달라질 수 없으리라는 직관이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어쨌든 현재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로서 촉매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빅5 병원’ 밖
1차 공공의료 상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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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지금까지 한국의 공공의료정책이 여러 이유로 실패했다면, 그 문제점을 찾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구체적이고 새로운 공공의료를 모색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특히 여기 모인 선생님들은 현재 의료공공성 논의의 중심을 1차 의료 확대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듯합니다. 공공의료에서도 단순히 공공병원을 짓는다거나 상급종합병원의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의료, 지역과 밀착되고 돌봄과 통합된 의료를 확보할 수 있는가로 의료공공성 논의를 전환해보자는 문제의식인 것 같아요.
백재중 얼마 전 일본 오오사까 지역 공공병원을 견학하고 돌아왔습니다. 일본은 공공병원 수가 전체 병원의 18%를 약간 넘고요. 병상 수로는 대략 27% 수준입니다. 우리보다 양적으로도 많지만 의료 수준도 아주 높습니다. 오오사까 남부에는 병상 수가 800개가 넘는 큰 대형병원이 두곳 있는데 하나는 시립병원이고 다른 하나는 부립병원으로 둘 다 공공병원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방의료원 같은 곳들이 대학병원 버금가는 최고 수준 의료진을 갖추고 있어요. 일본의 대학병원은 오히려 연구에 집중하면서 공익병원들과 연계해 인력을 주고받고, 공공병원들이 의료의 질을 주도합니다. 한국도 앞으로 대학병원은 연구, 교육에 주력하고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은 진료 기능을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백영경 일본의 공공병원은 체계가 잘 갖춰져 있나보네요. 우리나라와 상황이 많이 다른가요?
백재중 일본의 공공병원에는 국립, 부립, 현립, 시립병원 등이 있고요. 민간영역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공적병원으로 지정되어 준공공병원 대우를 받는 곳도 있습니다. 공적병원에는 그 수도 많고 의료 수준도 높은 적십자병원이 있고 농협에서 설립한 의료기관인 후생연, 왕실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제생회도 있습니다. 그외에 민간병원 자체가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곳도 많아요.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에는 1,700개가 넘는 의료기관이 가입해 있는데 그중에는 의료생협이 운영하는 의료기관도 다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영역에 해당하는 민간 공익병원이 거의 없어요. 녹색병원이나 신천연합병원이 그러한 예일 텐데 극히 소수이죠. 1차 의료를 이야기하자면, 제가 방문했던 오오사까 지역에 요도가와근로자후생협회(요도협)라는 공익재단법인이 있는데요. 이 법인 안에 250여병상 규모의 병원이 하나 있고 클리닉이 열한곳, 돌봄시설이 스물일곱곳 있습니다. 클리닉은 법인에 소속된 1차 의원으로, 우리처럼 의사 개인의 자영업이 아니라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여기 소속된 1차 의원들도 모두 공익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이처럼 일본은 1차 의원들도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는 곳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민의련 병원이나 생협 병원에서는 수익성을 늘리기 위한 편법을 사용하지 않죠. 1차 의원 자체가 자영업에 기초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때로는 경영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여기는 나름의 해결방안이 있는데, 이들 병원들은 정부의 지원 대신 튼튼한 시민참여 구조 아래서 시민들의 지원을 받습니다. 생협 병원은 자체가 협동조합이다보니 시민들로 구성된 조합원 조직이 있고, 생협이 아닌 민의련 병원은 친우회라는 이름의 시민참여 조직이 있어서 이 병원을 많이 이용하기도 하고 재정적 후원자 역할을 맡기도 해요. 오오사까 요도협 친우회에는 대략 4만가구가 가입해 있습니다.
백영경 성남시민행동이 꿈꾸었던 공공병원의 상도 단순히 기존의 공공병원을 하나 더 짓자는 기획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공공병원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김용진 대부분의 지방의료원이 대한제국 시절,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지거나 한국전쟁 시기 미군이나 참전국에서 만든 병원에서 기원합니다. 34개의 지방의료원 중 1947년의 강진의료원, 1962년의 천안의료원과 서산의료원, 1965년 서귀포의료원, 1983년 홍성의료원, 2003년 울진군의료원, 2015년 진안군의료원 정도가 해방과 종전 후 만든 지방의료원입니다. 인구의 과반수가 살고 있는 수도권에선 해방 후 만들어진 처음이자 유일한 지방의료원이 성남시의료원이에요. 성남시의료원은 병원도 현대식으로 지어졌고 병상도 509개나 됩니다. 이 병원이 잘 운영되어야 다른 공공병원도 만들어지고 공공의료도 발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행동발달증진센터에서 발달장애인을 케어하고 있고, 당일 치과진료를 할 수 있도록 치과 설계도 만들었고, 장애인 친화 건강검진센터 등 여러 시스템을 구비했습니다. 성남시의료원에는 자발적으로 신청한 약 30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위원회가 있어요. 세달에 한번 회의를 하는데 다양한 논의를 합니다. 노조의 입장을 듣기도 하고, 여러 건의들도 많이 하고요. 시민과 함께해야만 공공병원이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의료원은 지리적 위치가 상당히 좋아요. 구 시청사 주변 사람들이 모두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이에요. 초대 원장은 지역의 1차 의료기관과 협력하는 2차 의료기관 역할을 하고자 구상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지역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상급병원들과 연계하고요.
백영경 성남시의료원 건설과 운영 관련해서 부침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로 운영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용진 앞서 말씀드린 체계를 다 갖추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성남시장과 의료원장이 바뀌면서 정책이 이어지지 못했지요. 시장이 바뀌면서 시스템이나 설계가 어그러지기도 했고, 특히 원장 자리는 21개월간 공석이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시민들이 이 병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리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적어도 성남시의료원은 여타 공공병원들에 비해 시민과의 협력과 유대를 잘 이끌어내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병원이 잘 운영돼서 다른 지역에 공공병원을 만들거나 증축할 때 그 설계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다른 지역에서 많이들 궁금해하거든요.
백영경 시민이라고 하지만 시민들이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텐데요. 특히 성남시의료원의 향방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와 충돌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시민위원회가 생각하는 성남시의료원의 운영 방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을 거고요.
김용진 처음 반대를 많이 했던 건 구 한나라당입니다. 공공병원이 낙후되고 적자를 본다는 이유로 정치인들이 반대를 했었고, 다른 한편에는 의사들이 있었어요.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형태든 의료기관이 늘어나서 경쟁하는 걸 꺼려하죠. 초대 원장이 이들을 설득하는 데 상당히 애를 썼습니다. 외래보다는 입원 중심으로 운영할 테니 같이 협력하자고 했죠. 지금은 의료원 상황이 좋지 않으니 다른 의사들이 한편으로 공공병원을 걱정하기까지 하는 것 같아요. 씁쓸한 상황입니다.
박건희 사실상 지금은 1차 의료 차원에서 공공의료 논의가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공공의료를 얘기할 때 공공병원, 특히 300병상 이상의 병원을 더 만들자는 논의가 주가 되어왔지, 공공영역에서 1차 의료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는 논의되지 않는 점이 무척 아쉬워요.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사의련)이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 등 자체적으로 1차 의료를 강화했던 경험들을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공의료와 관련된 시민들의 운동에 초점을 맞추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지자체가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을 자신들의 책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에요. 기초지자체나 광역지자체들이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스스로의 책무라고 여긴다면 1차 의료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의료는 적자를 보전하는 영역이 아니라 교육처럼 미리 투자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그런 인식을 명확히 가져야 해요.
백재중 일단 공공병원 수 자체를 늘리는 게 가장 시급합니다. 지금 공공병원 수가 6%도 안 되는데 만약 이대로 방치하면 50년 후 몇 %까지 떨어질까 걱정됩니다. 3%, 아니면 1%? 그 정도 되면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정책은 무의미해질 겁니다. 공공의원 같은 1차 의원의 확충도 필요하고요. 공공병원에서 일하다보면 내부적인 문제가 많은 것도 알게 되고 사명감을 갖고 임했던 의사들조차 지쳐 떨어져나가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는 이것대로 공공병원 내부 혁신을 통해 해결해나가야 하고요. 의료 서비스 공급체제의 공공성 자체를 키우지 않으면 수가제도나 여러 공공의료정책을 추진할 힘을 얻기 어렵다고 봅니다.
협력해야 다른 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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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여러 논의들을 듣다보니 뭘 해도 역시 의사들의 반대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 내 다른 1차 의료기관, 민간 의료기관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설득하여 생태계를 구축하는가 자체가 공공의료기관의 성패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겠구나 싶은데요. 현재 언론에 비치는 의료계의 모습을 보면 의사들을 설득한다는 게 쉽지 않을 듯해서 막막한 기분마저 듭니다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의사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도대체 그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김용진 의료기관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지역주민의 건강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주민들의 일반적, 기초적 건강은 1차 의료기관에서 관리하고 이 기관들과 협력하는 상급 의료기관이 있어야 해요. 성남시의료원에서 치과를 만들 때 치과의사협회와 논의해 장애인치료와 신경치료, 구강외과 세개 분야를 전문으로 할 수 있는 치과의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설계했습니다. 아쉽게도 그렇게 모집은 안 되어서 지금 저희는 장애인진료를 중심으로 보고 있고 치과의사들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보니 신경치료나 구강외과는 지역에서 의뢰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환자들도 집 가까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협력병원들은 서로 의뢰를 주고받으며 ‘윈윈’할 수 있죠. 이런 체계를 갖춘 의료공공기관이 필요하고,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의료기관들이 서로 협력하면 이익이 된다는 걸 정부 정책이 충분히 보여줘야 하고요. 아무래도 낯선 체계이니 걱정을 불식시키는 과정이 있어야겠죠.
박건희 말씀해주신 것처럼 의료문제 해결의 키워드 중 하나는 네트워크 활성화, 즉 협력적 진료입니다. 2차 병원이 잘 되기 위해서도 1차 의료기관과 연결되는 망들이 잘 형성되어야 하고요, 나아가 그 위에 있는 3차 병원과 연결이 잘 된다면 지역주민들이 마음 편하게 동네의원을 다니겠죠. 1차 의료기관을 이용해도 언제든 상급병원과 연결이 될 테니까요. 지금은 이 모든 개별 의료기관이 환자 하나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체계라는 게 문제고요.
백영경 3차 의료기관에서는 환자를 1차 의료기관으로 보내도 환자들이 불만족하거나 여러 불편을 호소하며 자꾸 다시 돌아온다는 불만이 있는 것 같아요.
박건희 각자 사정을 고려하며 지역에서 어떻게 협력의료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죠. 저는 제도를 한번에 뒤바꾸는 전국적이고 단일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에서 좋은 협력 사례를 만들고 이것을 입소문으로 퍼뜨리는 게 한가지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공공영역에서 환자의 등록관리 역할을 맡고 민간의료와 협력할 수도 있겠죠. 민간과 경쟁해서 환자를 빼앗아오는 게 아니라 민간이 하는 일을 공공이 지원해주는 형식으로 접근하는 거예요. 1차 의료 차원에서의 협력모형인데, 1차, 2차, 3차가 잘 연결되어 있으면 주민들이 훨씬 더 안심하고 1차 의료 네트워크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창군의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평창에 내과계 의원은 여섯곳 있습니다. 저희는 그중 세개 의원과 만성질환관리 사업을 같이하고 있어요. 외래는 의원에서 받고 보건의료원에서는 환자들의 등록관리를 지원하는 방식이죠. 환자들이 혈압과 혈당을 매일 측정할 수 있게 블루투스 혈압계와 혈당계를 나눠주고 수치가 높게 나오면 연락을 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공복 혈당이 지나치게 높게 나온 환자가 있어 그 지역의 민간의료 선생님과 저희 쪽 의료진이 대책회의를 하고 환자에게 운동교육과 영양교육을 제공하기도 했어요. 결과가 좋아 인슐린 처방도 줄이게 되었죠. 지금은 주민 400명 정도가 등록관리를 받고 있는데 그중 300여명은 의료원에 다니고 나머지 100여명은 사업에 협력하는 의원에 다니는 분들이에요. 아직은 수가가 책정되지 않았다보니 동네의원들은 어떤 재정적 인센티브도 받지 못하지만 자신들의 환자관리를 위해 협업하고 있는 거고요. 환자관리가 잘 되면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 텐데, 그렇게 아낀 보험료 일부를 의원들에 보상으로 지급한다면 이런 모델이 훨씬 더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용진 1차 기관들이 환자의 등록관리를 하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요. 치과 같은 경우 장애인 치과 주치의나 학생 치과 주치의 등은 등록관리가 번거롭거든요. 그 관리를 의료원이 해주면 1차 기관들의 부담이 덜어지겠네요. 어쨌든 이런 제도에 공급단체가 어렵지 않게 접근해야 할 텐데, 등록에 따른 행정비용이나 심사관리 등을 지원하는 일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협력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될 거라고 봐요.
박건희 무엇보다 협력진료가 가능하려면 수가체계를 바꾸는 게 시급합니다.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같은 환자를 두고 의료기관들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데 환자들을 공동으로 관리한다는 개념이 되어야 해요. 이번 의료개혁 과제 중 하나가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입니다. 지금처럼 행위별로 보상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최종적인 건강상태 등을 기준으로 하는 대안적 지불제도를 도입한다는 건데요. 환자의 건강결과가 좋아졌는지, 환자의 만족도가 올라갔는지, 공급자의 직무만족도가 올라갔는지, 의료비가 조절됐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의 건강은 좋아졌지만 의료비가 더 지출되기도 할 테고, 의료비는 아꼈지만 환자의 건강은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겠죠. 이런 식으로 네가지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하고 이 네 목표를 달성한 사례를 중심으로 규모를 키워가는 방식으로 확장하는 겁니다.
백재중 좋은 시도이지만 그걸 누가 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로 보입니다. 공익적 의료기관이 아니고서야 이런 정책에 참여하는 곳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에요.
박건희 초기에 대다수 민간 의료기관이 선뜻 참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혁신을 선호하는 일부 민간 의료기관과 공익적 역할을 하는 1차 의료기관부터 점진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어요. 특히 저는 의사 여러명이 함께 근무하는 ‘폴리클리닉’(종합 외래 진료소) 형태의 1차 기관이 생겨야 이런 유형도 시험해볼 수 있다고 보고, 공공영역에서 이러한 1차 의료기관을 적극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장의 책무성을 높이는 게 필요합니다. 올 초에 제가 방문한 일본의 시골형 시립병원의 예산 중 35%가량은 총무성, 우리나라로 치면 행안부에서 주는 교부금으로 충당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병원의 공익적 역할에 투자하는 거죠. 우리도 만약 정부에서 각 지자체에 일정 금액의 의료 교부금을 준다면 의료가 지자체의 사무가 되고 자연스레 책무성이 생길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겠죠. 혹은 지자체장을 평가하는 지표로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삼을 수도 있어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대부분의 지자체장이 감염자 한명만 발생해도 엄청나게 신경을 썼거든요. 그런데 왜 고혈압이나 당뇨, 혹은 자살 사망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을까요? 이런 문제로 지자체장을 지적할 수 있다면 지방정부는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고민할 겁니다. 지자체에서 건강보험을 따로 관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국가가 건강보험을 관리하기 때문에 이것이 지방정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데요. 만약 지방정부 차원에서 건강보험을 관리한다면 주민을 건강하게 만들어 비용을 아끼고 그 예산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도 있잖아요. 아무튼 어떤 방식이든 도지사나 시장, 군수가 도민의 가장 적합하고 최적한 건강을 유지하는 게 자신의 책무라고 여겨야 한다는 거죠.
백재중 이건 정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상황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의료 생태계를 시민들 스스로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빅5 병원을 중증 환자들에게 양보하고 대학병원을 덜 가고 지역병원을 살려야 합니다. 성남시의료원의 경우 시민들이 직접 만든 병원이라는 생각에 더욱 찾게 되는 거잖아요. 이러한 모델을 더 많이 구축하는 게 과제입니다. 특히 지역이 소멸해가며 지역병원들의 유지가 어렵고 원래 있던 병원도 문을 닫는 실정인데요, 그러면 시민들이 나서서 의료사협을 만들거나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료체계에 대한 사람들의 주인의식이 있으면 실질적으로 주치의 시스템도 작동할 수 있어요.
의료개혁 논의에서 사라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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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일본 같은 곳에서 시민들과의 협력 시스템이 작동하는 데는 지역에서 시민들이 맺고 있는 기존의 관계나 활동, 지역 커뮤니티의 역할도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소멸이라는 건 그 지역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뜻인데, 실제로 고령화 때문에 있던 커뮤니티마저 사라지는 상황이잖아요. 이미 소멸이 다가온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기반으로 지역시민들과 협력관계를 만들고 공공의료를 강화할 수 있을까요?
김용진 우리나라 농어촌 지역의 공공의료는 1979년부터 실시된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계속 의존해왔어요. 이 특별법에 따라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가 3년간 의료취약 지역에서 근무하며 병역의무를 대신하는 거죠. 오래전에 만들어진 제도가 아직도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보의는 겨우 3년 머물다가 지역을 떠나버려요. 지역주민과 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고령인구가 지역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가까운 데 갈 병원이 없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지역소멸은 더욱 가속화되고요. 농어촌 지역에서 공보의 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공공의료 모델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지역은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아 민간영역에서의 역할은 한정적일 테니, 폴리클리닉뿐 아니라 보건지소를 대체할 모델을 제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나 홍성 장곡면 주민자치회 차원의 공동체 돌봄 추진 같은 모델이 확대되도록 할 수도 있고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역의 1차 의료 공급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질 겁니다.
박건희 의료취약지 공공의료의 최전선에 있는 공보의에 대한 지원, 교육, 관리, 모니터링이 너무 부족합니다.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의료취약지에서 보내는 공보의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고민도 필요합니다.
백재중 기존의 공공병원들을 내부적으로 혁신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지금의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인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데, 참조할 만한 혁신 모델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경기도에는 지방의료원이 여섯곳 있는데, 세곳은 일제강점기 때 지은 의료원이고 나머지는 한국전쟁 중에 미군들이 만들어놓은 겁니다. 이후로 경기도는 지방의료원을 단 하나도 안 지은 거예요. 정책 자체, 중앙정부의 분위기 자체가 그랬고 지방정부도 이를 방치해왔죠. 그런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지금의 문제들을 드러내는 거거든요. 내부 혁신의 동력이라는 게 생길 수가 없습니다.
백영경 실제로 고령화 지역이나 인구소멸 지역에서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 자체가 문제잖아요. 살고 있는 주민들이 나이 들고 죽음을 맞는 과정을 피할 수 없는데요. 제주의 경우 어르신들은 가능한 한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애 마지막에 돌봄이 필요해지는 단계가 되면 결국 도시의 요양병원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요. 당연히 어르신들은 그 상황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그래서 마을 몇개가 모여 적당한 거리에 작은 규모의 요양시설을 만들고자 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제주는 공유자산이 있는 마을이 많으니 이를 활용해서 이런 마을 단위의 자발적인 시도들도 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잘 늙는다는 것, 좋게 늙는다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돌봄의 수요 또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요, 민간의 이런 시도들을 국가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박건희 지역의 어르신들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동네에서 잘 모시는 일이 지자체장에게 표가 되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라고 인식해야만 돌봄과 의료를 묶을 텐데요. 또한 공공의료를 활성화하려면 공공의료기관에 대해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주인의식을 가지거나, 혹은 지자체장이 위로부터 리더십을 행사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백재중 확실히 우리나라는 지자체의 역할이 적어요. 우리나라는 보건의료운동에서 전국 단위의 보건의료보험 단일 통합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였거든요. 중앙정부가 의료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죠. 지방에서 새로운 모델을 시도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고, 지역이 스스로 혁신할 여지가 별로 없기에 한계가 있고요.
백영경 돌봄 확대, 지역문제 해결 측면에서 지자체의 역량을 강화할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 안에서의 돌봄과 의료 통합체계를 구축하는 게 지자체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걸 다시 강조하고 예산을 책정해 운동이 새롭게 나아갈 가능성은 없을까요?
박건희 예산과 관련해 얘기해보자면, 보험료는 지금처럼 연대 차원에서 단일한 방식으로 통합적으로 걷되, 쓰는 방식이 지역 단위로 쪼개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건강보험 재정에서 일부를 지자체 예산으로 배정하면 보험료를 조금만 아껴 써도 지자체에는 엄청난 재정이 남게 돼요. 현재 지자체에게 보건의료 사업은 전체 예산의 고작 2%짜리예요. 만약 예산이 확보된다면 그만큼 다양한 정책을 만들고 고민하게 되겠죠. ‘지방의료재정 교부금법’을 제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예컨대 지금 교육재정 교부금법이 따로 있거든요. 물론 교육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학생이 차차 줄어들면 교육재정도 줄어들 테니, 하다못해 그 교육재정의 일부만이라도 의료재정으로 쓰면 어떨까 싶은 겁니다. 아무튼 건강보험 재정을 지자체에 분배하든 교부금을 중앙에서 지급하든,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활용해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김용진 지역의 공공의료와 공공병원에 사용되는 예산을 확보하는 건 아주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예산이 마련되어야 공공병원이 제대로 굴러갈 테니까요. 지금처럼 관련 법안도 재정도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나마 공공병원에 있는 사람들마저 의욕을 잃고 빠져나가고 말 겁니다. 저는 최근의 의료대란을 ‘의료재난’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역주민들이 아픈데 갈 병원이 없다는 건 재난이에요. 국가적 차원의 재난이 발생하면 지원금을 주기도 하잖아요. 그처럼 자금을 쏟아 재난상황을 극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이 재난상황을 심각하게 겪는 지역 공공병원을 위한 안정적인 지원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하고 정책을 논의한다고 해도 탁상공론밖에 안 될 겁니다.
백영경 결국 지역의 공공의료 강화 문제는 지방자치제도를 더욱 세밀하게 설계하고 지방정부가 자신의 권한과 의무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문제이기도 하네요. 특히 지역소멸의 대책이라고 제시되는 게 주로 부동산 관련 정책이거나 개발과 관광을 통해 유동인구를 늘리는 데 치중된 게 현실인데요. 이런 분위기로는 지역의 생활 인프라나 1차 의료는 중요 해결과제로 여겨지지 않고 개선될 리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면 지역소멸은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겠지요. 지금은 각 지자체들이 내용도 불분명하면서 위기의식만 부채질하거나 개발의 빌미만 주는 지역소멸 대책들을 내놓으며 경쟁하고 있는데요. 방향을 틀어서 각 지역의 기본적인 삶의 필요를 충족시킬 통합돌봄체계를 어떻게 설계하고 실천할지를 두고 경쟁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의료와 돌봄의 통합체계를 잘 운영하는 지역이 정치적으로 주목받고 중앙정부로부터 예산도 더 받는다든지요. 아무튼 지역에서 실질적인 의료와 돌봄의 통합체계를 만들고 1차 의료를 강화한다는 게 단지 하나의 정책을 들여와서 될 문제는 아니고, 지방정부의 역할과 중앙정부의 책임이 동시에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이끌어낼 시민들의 변화까지 매우 여러 차원의 과제에 걸쳐 있다는 생각입니다. 복잡한 문제지만,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시설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 아무리 복잡해도 반드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더 큰 공공의료를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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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인데요. 오늘 가장 두드러지게 나온 이야기는 1차 의료 강화를 중심으로 한 의료공공성의 확대였던 것 같습니다. 수가를 조정하거나 지자체를 움직여 예산을 확보하는 등 여러 방법이 가능하다는 말씀들을 해주셨어요. 상급병원만을 찾는 소비자적인 행동에서 벗어나 공공성을 의식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많아져야겠고, 한편으로 지자체장에게 어떤 정책을 요구할 것인지 유권자로서의 개입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백재중 원래도 부실했던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가 의료대란 때문에 지금은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앞으로 이 신뢰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관건인 듯해요. 의사도 노력해야 하지만 시민들도 함께 풀어야 하는 과제입니다. 시민들이 지방의료원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며 도지사나 지자체장을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저는 지방의료원들이 대학병원 정도로 커져서 인력을 주고받는 등 협력한다면 공공의료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각성,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박건희 저는 요즘 공감의료, 협력의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공공의료가 잘 구성된다면 그 의료 형태는 아마도 환자와 의사가 서로 공감하는 의료, 그리고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이 서로 협력하는 의료가 될 겁니다. 결국 공감과 협력이 공공의료가 추구하는 기능적인 모형이라고 생각해요. 공감의료와 협력의료 같은 용어가 더 널리 통용되기를 바랍니다.
김용진 자기 몸의 주인은 자기 자신인 만큼 스스로 건강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진료가 불만족스러웠다면 의료진에 충분한 정보를 요청하고, 추후 자신의 의료 계획을 결정하기 위해 몸 상태를 적극적으로 알아야 하죠.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불필요하게 병원을 방문하는 일도 줄어들고 전반적인 의료비도 절감될 거예요. 나아가 정부나 지자체에 적극적인 요구를 하는 시민행동과 시민운동이 필요합니다. 공공병원의 주인은 직원도 의사도 시장도 아닌 시민이니까요. 시민이 주인인 공공병원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백영경 의료는 한정된 자원이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나눠 써야 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의 모든 필요를 충족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의료 영역에 시민들을 더 끌어들이고 의료비용 절감이라는 필요에 응답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의료가 무엇인지 함께 논의하는 일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요. 오늘 시민들을 위한, 시민들이 바라는, 또 시민들이 참여해서 만들어나가는 의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다보니 의료공공성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의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숙론 없이 진행되는 의대증원 논의의 한계를 더욱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사는 어떤 의사들인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있어야, 이들을 어떤 규모로 어떻게 선발하여 어떤 교육 체계 속에서 훈련하고 또 평가하여 보상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가닥을 잡아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시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1차 의료가 지니는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이 대화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7.14.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