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개발 수사로 동원되는 청년 주거: 그린벨트 해제 발표에 관한 단상
지난 8일 정부는 서울과 인근 지역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주택 8만호 규모의 택지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은평뉴타운 일대의 해제 이후 21년, 강남 내곡·세곡동 일단의 해제로 보면 12년 만의 일이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미래 세대의 주거 마련”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라는 “피치 못할 선택”을 하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취지를 밝힌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에 앞서, ‘미래 세대를 위한 자연환경 보존과 여가·휴식 공간 확보’라는 그린벨트의 지정 목적은 여전히 변함없다고도 말했다. 하루 뒤 진현환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그린벨트는 “미래 세대를 위해 남긴 것”이니 주거문제로 고통받는 “청년, 신혼부부, 출산 가구”를 위해 쓰겠다고 했다. 이로써 1971년 서울의 인구집중과 도시팽창 억제, 자연환경 보전, 군사안보적 목적 등에 따라 도입된 그린벨트 제도는 또다른 변화를 맞게 됐다.
사실 이같은 주장은 그린벨트가 주는 미래의 잠재적 혜택과 그 해제로 얻을 현재의 혜택 사이에 충돌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형적인 ‘미래 할인’ 논리에 기반한 정당화다. ‘미래 할인’은 미래에 주어지는 큰 보상과 당장 얻을 수 있는 작은 보상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후자를 선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로, 최근에는 회계학이나 금융연구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그런데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먼저 서로 충돌하는 장/단기 이익이 존재해야 한다. 정부의 시각대로라면 그린벨트의 미래가치, 즉 도시 생태녹지이자 비개발 국토공간으로서의 유용성과 현재가치, 즉 저렴한 예비 택지로서의 유용성 사이의 대립이 있어야 한다. 당장 주어지는 보상을 선택하게 만드는 당면한 필요도 있어야 하는데, 이번으로 보면 ‘미래 세대’로서 청년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주거위기가 화두이다. 과연 이러한 대립구도는 제대로 설정된 것일까?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그린벨트를 두고 펼쳐지는 ‘미래’와 ‘현재’의 갈등이 잘못 설정된 대립구도라는 점이다. 정부 대책의 밑바탕에는 그린벨트를 ‘개발하지 않고 남겨둔 땅’으로 보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그린벨트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나 그 가치와 유용성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제한되어버린다. 수도 서울로의 인구집중과 도시팽창 억제를 위해 개발행위 자체를 막았던 도입 당시를 떠올리면 일견 맞는 말인 듯도 보이지만, 사실 그린벨트는 현재에도 매우 소중한 기능상의 필요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요인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그중 가장 확연하고 또 점점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도시 내 기후변화,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기후재앙을 늦추거나 완화하는 생태녹지로서의 가치이다. 물론 그린벨트 지역 가운데는 농경지나 비닐하우스, 창고 등이 들어서서 이러한 기능이 상당 부분 훼손된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린벨트 해제 여부는 도시계획과 기능에 대한 엄밀한 검토와 조정을 거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나아가 정부와 정반대되는 시각, 즉 기후변화 속에서 도시민을 구할 생태방벽으로 ‘도시녹지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이를 고민할 필요도 있다. 기후변화가 도시민의 삶을 위협하는 일상적 재난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려할 때 그린벨트의 현실가치가 없다는 가정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오히려 더욱 강조해도 모자랄 판이다.
청년세대의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의심쩍기는 매한가지다. 이같은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번 대책, 즉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8·8)이 제목 그대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대책이고 ‘미래 세대’로 지목된 청년들 역시 이에 따라 전반적인 주거안정 혜택을 입을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해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청년 주택공급대책의 실효성은 특정 정책 꼭지 딱 하나가 아니라 전체 대책과의 연계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이번 대책은 간단히만 살펴보더라도 그것이 실제 ‘국민 주거안정’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반대로 이 대책은 2020~21년의 부동산 투자 붐 이후 침체에 빠진 건설산업과 부동산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공급 수단들로 꽉 채워져 있다. 이는 크게 두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기존에 발표된 바 있는 전체 21.7만호 규모의 도심부 공급계획을 앞당겨 집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용적률 규제를 비롯한 건축 규제 완화와 재건축 부담금 폐지 등의 재건축·재개발 촉진정책과 미분양 주택에 대한 토지주택공사(LH) 매입 확약 등 건축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들이 준비돼 있다. 둘째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21만호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려는 계획이다. 1기 신도시 지역의 조기정비와 비(非)아파트 주택의 대량 매입과 임대, 그리고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신규 택지 공급 등이 그 세부 수단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충분한 주택공급”이 곧 시장 안정화의 핵심이라고 역설하지만, 실제 방점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위기와 개발/건축 중단, 건설사 부도위기, 미분양과 전세시장 파동으로 위기에 처한 사업자들을 구제하고 부동산시장을 재활성화하는 데 찍혀 있다. 빌라 등 비아파트 주택의 매입임대정책 역시 세입자들의 임차난 해소를 위한 대처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지난 몇년 동안 소규모 건축업자들과 임대사업자, 금융업자들이 만들어낸 리스크를 정부가 나서 흡수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전세사기로 고통을 겪는 세입자들의 피해보상 문제나 금융대출 규제에 미온적인 태도와 보여왔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린벨트 해제가 청년 주거난 해소나 집값 안정을 실제 가져온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 ‘신혼 20년 전세자가주택’(장기전세주택Ⅱ)을 주로 공급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청년 주거난 해소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령에 공공주택 건설 비율이 (공공임대 35% 이상, 공공분양 30% 이하 조건을 고려해) 50% 이상으로 규정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 주체인 공공사업자가 조성 택지의 절반가량을 민간에 분양해 사업비를 조달해온 것 또한 현실이다. 물론 공공사업자들의 재정형편이 좋다면 그 비중을 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의 재무상황은 지난해 정부 매입임대 목표실적의 단 23%만을 채웠을 정도로 넉넉지 못하다. 따라서 해제된 그린벨트 땅의 절반가량에는 대형 건설사의 분양주택이 지어질 개연성이 높고, 장기전세주택 또한 주거 취약계층이 아니라 적어도 전세금을 부담(조달)할 정도의 경제능력을 갖춘 일부 청년 집단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결국 그린벨트 해제는 앞서 소개한 공급대책들과 더불어 부동산경기 팽창과 집값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시장 전망을 주는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린벨트 해제가 예상되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 경기도 성남시 일대의 토지는 서울 도심의 재정비 구역들, 그리고 1기, 3기 신도시 단지들과 더해져 개발이익을 노린 투기 붐과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연쇄 효과의 지렛대로 작용하기 쉽다.
애석하게도 이번 정부 대책은 1970, 80년대 강남의 ‘부상’과 2000년대 그 ‘부활’에서 빗겨나 있었던 지역들을 ‘아파트 숲’으로 바꾸고 수도권 전역에 ‘콘크리트 성’을 다시 쌓는 기획으로 읽힌다. 수도권 집중 억제와 국토 균형발전의 실현이라는 빛바랜 과업은 더이상 정책 수사로도 고려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겪는 고단한 삶을 건설경기와 부동산시장 부양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하는 정책 인식이 비통스럽다.
김명수 /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2024.8.27.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