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트럼프 시대’ 세번째 대선, 정치적 내전은 계속된다
올해 미국 대선은 ‘트럼프 시대’의 세번째 대선이고, 양당 후보가 공히 상대 진영을 미국 체제의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는 정치적 내전이다. 이 내전의 기축은 트럼프이다. 트럼프가 세번째 대선에 나서고 있을 뿐 아니라 민주당의 상대도 누가 트럼프를 꺾을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더욱 중요하게는 이번 대선의 핵심적 이슈들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제기한 ‘미국-백인-트럼프 우선주의’의 연장선에 있다.
기존의 패권기획이 미국 제조업과 중산층-노동자를 몰락시키고 중국의 부상과 동맹의 무임승차 등을 방기했다는 경제적 민족주의-일방주의의 결합인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패권이 미국인의 이익뿐 아니라 세계의 이익도 담보한다는 기존 패권의 정당화 논리인 대내외적 이익조화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중국 견제를 위한 대중 관세와 인태전략을 승계했다. 미국 힘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국가안보전략에 탈냉전의 종언을 명문화하며 수용하였고 산업정책과 경제안보, 중산층을 위한 외교 등을 통해서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체계적으로 비판·부정하였다. 동맹에 대한 거래적 접근과 이념적 리더십은 여전히 당파적 대립의 쟁점이지만, 미국 우선주의가 딛고 있는 국제환경에 대한 인식과 경제적 민족주의, 중국 견제 등은 주류화되었다. 경제와 인플레이션은 미국 대선의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중산층-노동자 재건은 더이상 트럼프의 독점물이 아니라 바이든-해리스의 최우선적 의제이기도 하다.
이민과 국경, 임신중지/낙태, 법치와 민주주의, 사법의 무기화 등은 양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들로, 반(反)이민-배외주의로서 백인 우선주의와 기성질서에 도전하는 민중주의적·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트럼프 우선주의와 연관된 것들이다. 미국이 인종주의를 제도적으로 탈각한 것은 1965년으로 볼 수 있다. 인종쿼터를 폐지한 이민법 개혁과 남부 흑인들에게 투표권 제공, 그리고 백인 위주의 뉴딜 복지체계를 흑인에게도 확대한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작은 정부와 주의 권리 등을 명분으로 내건 남부 백인들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대거 탈주하는 등 백인들의 반발도 즉각적으로 터져나왔다. 트럼프의 백인 우선주의는 ‘1965년체제’에 대한 반발의 연장선에 있고, 부통령 후보 밴스의 백인 민족주의에 의해서 강화되고 있다. 밴스는 7월 공화당 전당대회의 후보수락 연설에서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역사적·인종적·문화적 공동체에만 충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의 가치 등을 내걸고 임신중지와 흑인 여성 해리스를 공격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도 하다.
기성질서가 엘리뜨들에 의하여 왜곡되어 있고 그에 의해 희생되어온 잊힌 민중을 위한 개혁을 오직 트럼프만이 수행할 수 있다는 트럼프 우선주의는 미국정치의 기능부전과 분열을 배경으로 한다. 1960년대 이후 제도 전반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왔고, 정치적 양극화는 엘리뜨와 일반 유권자, 정책과 정서적 측면에서 모두 19세기 내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2021년 ‘1·6 반란’을 계기로 체계적 인종주의와 금권정치 개혁, 투표권 확대, 선거인단과 필리버스터 폐지, 상원 인구비례 선출과 하원 증원, 대법관의 임기 제한 등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었지만, 전혀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법 리스크’, 즉 2020년 대선 불복 등에 대한 트럼프의 책임을 묻기 위한 형사 기소는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트럼프 진영의 시각에서 보면 민주당과 주류는 2016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여 특검과 탄핵을 시도하였고, 2020년 대선은 불법 이민자들의 투표 참여 및 부재자 우편 투표 등으로 조작되었으며, 트럼프에 대한 형사 기소는 법치를 훼손하는 사법의 무기화일 뿐이다. 2023년 8월의 ‘머그샷’ 촬영을 계기로 트럼프는 당내 지배력을 강화하여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조기에 압승을 거두었다. 2024년 5월 트럼프의 유죄평결은 그에 대한 지지를 더욱 끌어올렸고, 6월 첫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가 노정되었다. 트럼프 선거본부의 한 책임자는 사퇴를 거부하는 바이든을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7월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의 생존은 신의 섭리로 여겨졌다. 전당대회는 대선의 출정식이라기보다는 공화당을 사당화한 트럼프의 ‘대관식’에 가까웠다. 공화당 정강은 미국 우선주의를 상식으로의 귀환으로 규정했다. 트럼프 진영의 시각에서, 민주당 바이든 정부와 주류는 미국의 역사와 이념, 미래를 부정하는 비상식적 집단인 것이다. 후보지명 수락연설에서 트럼프는 관세와 감세, 에너지 개발 등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 미국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국경장벽으로 불법 이민을 막아내고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평화를 이루었던 자신의 업적을,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를 망치고 ‘사납게’ 대응해야 할 우끄라이나와 가자전쟁 등 분쟁은 방치하고 불법 이민자들의 국경 ‘침공’을 허용하면서 불법 선거에서만 ‘사나운’ 바이든 정부가 모조리 망쳐버렸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벌이고 있는 내전은 복고적이다. 가깝게는 지난 트럼프 정부 4년, 좀더 멀게 그리고 정확하게는 여성주의와 다문화/인종주의가 없던 ‘백인-남성-중산층-기독교’가 지배하던 미국으로의 귀환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7월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바이든이 사퇴하고 젊은(59세) 해리스로 후보가 교체되면서 판세가 급변했다.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바이든으로 인한 ‘싹쓸이’ 패배 전망에서 벗어나게 된 민주당 지지자들, 특히 여성과 청년들이 열광했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여전히 (해리스가 아니라) 바이든 ‘명의’로 채택된 민주당 정강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착종된 경제, 인종위기에 대한 대응에 실패하고 민주주의와 법치를 수호하기를 거부한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고, 트럼프와 밴스의 백인 우선주의/민족주의에 맞서 미국은 유일하게 보편적인 관념에 의해 정의되는 국가라는 예의 미국 예외주의를 주창하며, 이번 대선의 의미를 트럼프가 앗아갈 자유의 보호, 미국 체제의 보존 그 자체라고 규정했다.
해리스의 후보수락 연설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미 예비경선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되었어야 할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리는 데 집중되었고, 나머지는 반트럼프 메시지로 채워졌다. 해리스는 트럼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체제를 왜곡하는 ‘이상한’ 인간으로 비하하는 동시에 최근 대법원의 면책 특권 판결 등으로 ‘가드 레일’이 사라진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독재자들의 아부에 미국의 리더십이 팔아넘겨지고 미국 체제의 다양한 자유, 특히 ‘생식권’이 박탈되는 등 악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리스가 몰고 온 기쁨의 에너지가 강조되지만, 해리스의 선거전략은 여전히 트럼프에 대한 공포 혹은 불안에 기반하고 있다.
해리스는 ‘트럼프 시대’를 넘어 ‘새롭게 앞으로’(a new way forward) 미국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트럼프는 이번에도 대선 불복을 거의 공언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정치적으로 트럼프-밴스를 제압하려면 해리스-월즈가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연방 상하원 선거와 선거관리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일부 경합주 의회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 8월 말 현재 대선의 판세는 해리스가 전국적 수준에서 그리고 경합주에서 바이든의 열세를 미세한 우위로 역전시킨 상태이다. 상원은 공화당이 이미 50석을 확보한 상태로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을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선거인단 득표의) 승부는 2016년에는 중서부 3개 주의 8만여표 차로, 2020년에는 애리조나·조지아·위스콘신 3개 주의 4만 5천표 차로 갈렸다. 이번 대선도 비슷할 것이고, 분점 정부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내전은 계속될 것이다.
이혜정 /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2024.9.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