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가자의 제노사이드, 멈춰야 한다
‘테러리스트’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며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전쟁이 거의 1년간 계속되면서 가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특히 어린이와 여성이 매일 죽어나가는 제노사이드 현장이 되었다. 전쟁의 폐해가 너무 심각해지자 미국은 휴전을 주선하고 나섰지만, 이스라엘의 네타냐후(B. Netanyahu) 정부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휴전협상을 회피해왔다. 지난 9월 17일, 18일 레바논에서 수천대의 무선호출기와 수백대의 무전기가 동시다발로 폭발하여 어린이 포함 37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당하는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다. 헤즈볼라(레바논의 시아파이슬람주의 정당)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번 통신기기 테러 공격은 네타냐후 정권이 하마스와 휴전할 뜻이 없을뿐더러 헤즈볼라와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후 양자간에 주고받는 보복성 공격은 중동 전체의 전쟁으로 번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가자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어 휴전협상이 시도될 때마다 네타냐후는 협상 분위기를 깨는 행동을 했다. 지난 7월 30일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테헤란을 방문한 하마스의 정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Ismail Haniyeh)를 암살한 것이 그렇다. 이런 도발적인 행동이 네타냐후의 개인적 속셈에서 비롯된 건지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적 입장인지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그가 휴전할 뜻도 제노사이드를 멈출 뜻도 없음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스라엘이 가자 남부를 폭격하는 바람에 이스라엘인 인질 6명이 죽은 채 발견되어 9월 1일 이스라엘 시민들이 휴전을 촉구하는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였음에도 네타냐후는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텔아비브 시민 50만명이 참여한 역대급 항의시위도 네타냐후의 전쟁 의지를 꺾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비판적 언론인 기디온 레비(Gideon Levy)는 인터넷매체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 9월 3일자 방송에서 네타냐후의 휴전 거부를 비판하는 이 시위의 의의를 인정하되, 시위자 대다수가 자국민 인질 6명의 죽음에 사로잡혀 가자의 팔레스타인 희생자 4만명을 완전히 무시한 것을 한계로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희생을 팔레스타인의 경우와 상호비교하면서 이스라엘의 시련을 상대화할 수 있을 때만이 이 비극적 사태의 전모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정당하고 균형 잡힌 관점을 바탕으로 실로 강력한 요구와 항의를 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기득권층 가운데 시온주의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받아들이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한계도 이스라엘의 경험을 상대화할 줄 모르는, 지적·도덕적 능력의 부재에 있을 것이다.
네타냐후의 휴전 거부를 비판하는 이스라엘 내 시위(출처: 「데모크라시 나우」)
미국과 서구의 휴전 요구조차 먹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바이든(J. Biden) 대통령은 하마스 기습공격 후 초기 몇달간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을 옹호하며 휴전 여론을 일축했다가 중동 정세가 험악해지자 휴전 필요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Antony Blinken)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주변의 중동 국가들을 부지런히 오갔지만 네타냐후의 호전적 입장을 바꾸지 못했다. 사실 휴전이 바이든의 확고한 입장인지조차 의문이다.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를 규탄하고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번지는 와중에도 네타냐후를 미국 의회에 초정하고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 대다수가 그를 영접한 미국 정계의 행태로 짐작건대, 네타냐후가 미국의 압박으로 전쟁을 멈출 이유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미국이 그럴 뜻만 있다면 네타냐후를 굴복시킬 방법은 간단하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휴전안을 받지 않으면 미국은 이스라엘에 모든 무기 수송과 예산 지원을 끊겠다는 단호함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1982년 8월 이스라엘이 베이루트 폭격을 멈추지 않자 레이건(R. Reagan) 대통령은 이스라엘 베긴(M. Begin) 수상에게 전화를 걸어 고함을 지르면서 질책했고 그후 30분 만에 폭격이 멈췄다. 바이든은 네타냐후를 비판하는 자리에서도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을 옹호하며 무기 공급은 중단하지 않겠다고 한다. 오죽하면 반전시위 학생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제노사이드 조’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해리스(K. Harris)와 트럼프(D. Trump) 중 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자의 제노사이드를 멈추게 하는 데 유리할까. 9월 11일 ABC방송 주최의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가자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가자전쟁, 우끄라이나전쟁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식의 설을 풀다가 옆에 서 있는 해리스를 두고 “그녀는 이스라엘을 증오한다. 만약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난 이스라엘이 2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고 특유의 황당한 공격성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반해 해리스는 가자전쟁의 발단에서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까지 얼핏 조리 닿게 들리는 발언을 한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이해해봅시다. 10월 7일, 테러 조직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인 1,200명을 학살했는데, 그중 많은 젊은이들은 단지 콘서트에 참석하던 중이었고, 여성들은 끔찍하게 강간당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분명히 말하는 바입니다. (…) 전쟁은 끝나야 하며, 그것도 즉시 끝나야 합니다.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휴전협상과 인질 석방입니다. (…) 우리는 ‘2국가 해법’의 경로를 설계해야 합니다. 그 해법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스라엘에 안전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두 후보의 발언을 비교하면 해리스의 발언이 훨씬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듯하다. 하지만 그 발언을 현실의 문맥에서 따져보면 착잡하기 그지없다. 우선 모든 것이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에서 시작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를 마비시키는 일종의 지적 타락이다. 유엔사무총장 구떼흐스(A. Guterres)가 지적했듯 “하마스의 공격이 진공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배경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56년간의 질식할 것 같은 점령 상태”가 존재한다. 사실 1948년 나크바로부터 75년간, 1967년 6일전쟁 이래 56년간 가자와 서안,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당국의 봉쇄와 점령하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이스라엘 군대의 상시적인 폭력에 시달려왔다.
해리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공정한 체 포즈를 취하면서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는 이스라엘에 계속 무기와 군비를 대주겠다는 확약에 다름 아니다.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 옹호가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직후에 나왔다면 얼마간의 설득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로부터 거의 1년 동안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의 주거지와 상가, 병원과 학교를 괴멸적으로 파괴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량학살한 상황(팔레스타인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9월 17일 현재 어린이 16,500명을 포함해서 최소 41,252명이 죽임을 당했다)에서 무자비한 가해자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 옹호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가자전쟁 사상자 숫자
(출처: 알 자지라, 팔레스타인 보건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이스라엘 군대, 이스라엘 사회안전처)
팔레스타인 문제의 중장기 해결책으로 거론한 ‘2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각각 설립하자는 절충안. 1993년 오슬로협정의 주된 안건이었다) 역시 그럴듯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는 오슬로협정에서 제시된 이래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헛된 기대감 속에 가두는 쇠창살이 되었다. ‘2국가’라는 명칭 자체가 기만적인 것은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국가인데 반해 팔레스타인은 자치령에서 출발했고, 그마저 둘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슬로협정 이래 클린턴(B. Clinton)에서 바이든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대통령들은 ‘2국가 해법’을 내세워왔지만, 그사이 서안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에게 점점 더 땅을 빼앗기고 가자는 수용소처럼 봉쇄됐다가 침공당해 제노사이드 현장이 되었는데, 이스라엘 자기방어권을 최우선시하겠다는 해리스가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러니 가자전쟁 해법을 놓고 트럼프와 해리스 양자 중에 누구를 택할지 고르는 것은, 교황의 말씀을 빌리면, 두 악 중에 “차악을 택하는” 문제이다. 물론 녹색당 대선후보 질 스타인(Jill Stein)을 택할 수도 있다. 스타인은 가자전쟁의 해법을 놓고 트럼프 해리스 양자를 동시에 비판하며 훨씬 친팔레스타인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와 해리스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가자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는 미국의 행태를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한기욱 / 문학평론가, 인제대 명예교수
2024.9.2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