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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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된 21세기의 혐오와 폭력 이해하기: 아르준 아파두라이 『고삐 풀린 현대성』



1996년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가 냉전체제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globalization) 현상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차원(cultural dimensions)에 대해 분석한 에세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판된 이래 여러 언어로 번역되며 사회과학 연구에서 ‘풍경,’ ‘정경,’ 혹은 ‘스케이프’(scapes)라는 개념을 유행시켰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는 않았어도 ‘에스노 스케이프’ 나 ‘미디어 스케이프’와 같은 개념은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파두라이가 이 책을 발간한 1990년대 후반은 냉전체제 종식으로 그간 이념논쟁 아래 묻혀 있던 민족간 갈등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또 이념갈등으로 높아져 있던 국가간 장벽이 낮아지고 교통, 정보기술의 발달로 사람을 포함한 다양한 (비)물질의 초국적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이렇게 새로이 재편되는 삶의 질서를 이해할 분석적 틀을 필요로 하던 때였다.


아파두라이의 책은 당시 ‘세계화’로 통칭되어 불리던 이와 같은 현상을 경제적 측면이나 국제질서 측면이 아닌, ‘문화적’ 측면에서 읽어낸 글이다. 이때 아파두라이가 지적한, 문화적 차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인간의 이동과 미디어의 중재로 이루어지는 정보의 이동이다. 기존 국민국가의 경계를 벗어나는 인간과 정보의 탈영토적 이동은 수많은 이산(diaspora)을 만들어내며,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이산된 개인은 ‘상상력’을 통해 서로 연결되며 탈영토적 집단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책 제목에 붙은, ‘고삐 풀린’(at large)이라는 말은 이처럼 새롭게 등장한 인간, 정보, 돈, 기술, 이념의 흐름이 국민국가를 비롯한 기존의 사회질서 체계를 가로지르며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탈구적인 질서”(60면)를 만들어낸다는 아파두라이의 분석을 적절히 따르는 개념인 셈이다.


이 책은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 흐름을 지니기보다는 ‘현대성’의 문화적 측면을 중요한 질문들을 통해 탐구하는 글에 가깝다. 이를테면, 현대성이 일종의 ‘단절’이라면 무엇과의 단절이며 어떤 단절인가(1장), 탈구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전지구적 문화 흐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2장), 더이상 지역으로 구획되지 않는 ‘민족’이라는 단위, 그리고 그들의 집단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인류학은 앞으로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3장)와 같은 질문이 그 예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탈영토화, 탈민족화된 세계에서 ‘지역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국민국가는 어떤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책은 끝을 맺는다. 아파두라이의 해답은 질문만큼 명쾌하지 않고 읽어내기에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아파두라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쾌함’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민족과 국가가 ‘상상의 공동체’여서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속성을 지니고 있듯이 지역(성)이라는 범주 역시 근본적으로 관계적이고 맥락적이라는 것, 그 때문에 개인 혹은 집단의 정체성 역시 불변하는 ‘토대’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마주침을 통해 상상되고 생산되며 유지되는 것이라는 점을 책 전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미 지난 사반세기 이상 지구화가 진행된 오늘날 이 책은 어떤 함의를 지닐 것인가. 기존에 이 책은 아파두라이가 제시한 스케이프 개념과 탈영토화 개념이 세계화의 문화적 측면을 제대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명세를 탔지만, 지금은 이 책의 다른 장이 주목을 받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로 ‘원초주의 이후의 삶’(7장)으로 번역된 장인데, 여기서 아파두라이는 지구화시대에 오히려 강화되는 민족주의와 근본주의의 움직임에 주목하며 이것이 만들어내는 폭력에 집중한다. 민족주의로 인한 국민국가 내 갈등이 ‘저개발’의 증거기 때문에 이 시기를 거치면 서구식 민주주의로 발전할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가정이나 특정 민족 혹은 종교 집단이 갈등의 씨앗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원초주의적(primordialistic) 믿음에 반대하며 아파두라이는 정확히 반대의 주장을 전개한다. 민족적 갈등은 인간 내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거대 사건들이 지역성에 대한 담론과 서사 속으로 유입”(264면)되어 집단 구성원의 감정의 정치학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건을 ‘우리’와 ‘타자’의 이야기로 환원시키며 지역 내부의 문제로 유입시키는 것에는 대중매체로 촉발되는 이야기, 루머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아파두라이는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감정의 구조가 “이웃을 악귀로, 가게 주인을 반역자로”(265면) 간주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여러 사건이 지역의 정치와 결합하여 감정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분노와 폭력으로 표현된다는 아파두라이의 분석은 오늘날 타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의 속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분석이다. 심지어 지금은 1990년대 말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각종 소셜미디어의 범람으로 정보의 진위를 알기조차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루머의 허황됨이, 그리고 그것의 파장이 훨씬 크고 강력하다. 그럼에도 이 모든 갈등이 인간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아파두라이의 분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인간 내면에 갈등의 씨앗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나와 타자의 내면적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혐오와 폭력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첫 단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탈영토화 시대를 국민국가 위기로 규정하며 국민국가가 하는 민주주의 사수와 인권의 옹호, 소수자 보호와 같은 일을 누가 맡게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아파두라이가 책 곳곳에서 하고 있다는 점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미국에서 발간된 지 약 30년이 지난 지금, 아파두라이의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어 국민국가는 ‘파업’을 선언한 것만 같다. 국가가 반지성주의의 기치를 내세우며 이민자를 포함한 소수자 억압의 행태를 보이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두라이의 책이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통해 국민국가가 (명목상일지라도) 하려고 했었고 해야만 했던 일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것도 오늘날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 이 글은 세교연구소의 서평웹진 <잔다리서가>에 소개된 서평입니다.



김도혜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025.7.29. ⓒ창비주간논평·잔다리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