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수평적 유토피아’론을 맞이하는 한가지 방법: 박현옥 『자본의 무의식』
“남북한은 이미 자본에 의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형태로 통일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 대해 생각해 왔던 기존의 관념을 통째로 뒤흔든다. 우리는 흔히 영토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통일로 생각하지만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남북한이 이미 자본주의의 역학으로 인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라는 사회적 형태로 통일되어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제시한다.
무엇이 이정도로 독창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했을까? 「역자 서문」과 「결론」을 읽고 나면, 평자를 포함한 독자들은 이 책이 탈냉전 이후 한국과 중국 사회의 변화과정을 겪은 조선족의 삶과 저자의 연구자로서의 삶을 서사적으로 통합하려는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탈냉전 이후 미국의 버클리대학교에서 만주로의 조선인 이주에 대해 박사 학위논문(1994년)을 쓴 후 조선족의 한국 이주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고 중국에서 문화혁명을 경험한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이주노동자가 되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연구하며 통일문제를 바라볼 때 기존 서사들로 충분히 통합되지 않는 차원을 오랫동안 마주해왔던 것이다.
이 책은 남북한이 영토적으로는 통일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남북한과 한인 디아스포라(조선족, 탈북민, 이주노동자) 사회들의 파편화되고 위계적인 관계’(18면)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렇게 형성된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즉 남북한과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자본주의적 통합 과정에서 조선족, 탈북민,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치적 무의식’들이 각각 ‘배상’, ‘평화’, ‘인권 옹호’ 담론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 담론들은 모두 ‘시장 유토피아’의 담론 이라는 보편 담론에 근거해있다(19면)고 설명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변화과정에 따라 각 시기에 서로 다른 정치적 유토피아가 등장한다고 보고 있다. ‘시장 유토피아’란 산업화 시기의 ‘대중 유토피아’에 이어 등장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윤리학으로서 자본과 노동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이동을 매개하며 개인의 자유와 여러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상상(종족 민족, 통일된 민족, 국가 없는 민족)을 제시해왔다(19면). 즉 이 책은 1990년대 탈냉전 이후 햇볕정책과 남북 경제 협력, 북한 인권 개선과 북한의 잠정적인 민주화 등 지배적인 통일담론들이 대부분 이 ‘시장 유토피아’ 혹은 ‘신자유주의-민주주의’적 충동(39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적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분석틀을 더 연장해보면, 지금까지 제시되고 있는 통일방안을 상대화하여 분류해 볼 수 있다. 현재 통일론은 크게 세가지 입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는 ‘민족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통일론이다. 이 관점은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민족국가를 수립해야한다는 관점에 기반해 있으며 탈식민 독립운동, 이산가족 문제와 남북의 공통된 인종, 언어, 민족, 문화를 강조한다. 이 관점의 역사적 기원은 1차대전 이후 국제적으로 민족자결주의가 제시될 때 발생한 3·1 운동과 이어진 신간회의 독립 운동, 상해 임시 정부와 해방이후 좌우합작에 이르는 통일된 독립국가 건설과정이다. 저자의 말처럼 냉전시기엔 이런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두번째는 바로 이 연구가 비판적으로 분석한 ‘자유-민주주의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통일론이다. 바람직한 공동체는 종교와 언론의 자유, 시장 메커니즘에 따른 개혁개방과 경제협력, 광주민주화항쟁과 한국, 대만 민주주의, 북한 인권문제의 개선과 같은 변화를 달성할 때 이뤄진다. 사회주의, 권위주의 체제는 변화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의 지배적인 통일 담론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세번째는 저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조선족, 탈북민, 이주노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위계와 차별에 비판적인 ‘수평적인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통일론이 있을 수 있다. 공동체는 무엇보다 수평적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의 역사적 기원은 1920~30년대 만주로의 이주 경험이며,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의 경제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이주의 경험으로 새로운 사회경제적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은 탈식민-냉전 시기에 등장한 ‘민족주의’, 탈냉전시기의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지구화시대의 결과로 등장한 ‘수평적 공동체’라는 제3의 관점을 뚜렷하게 드러내주는 중요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변화를 고려할 때 이 책의 중심 주장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1990년 이후 약 20년간은 탈냉전-민주화-지구화가 지속되며 저자의 말처럼 일종의 ‘트랜스 내셔널 코리아’가 형성되었지만, 201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이와 다른 관계 단절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꾸준히 개선되던 남북관계는 2008년 이후 점차 악화되었고, 한국에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도 2,900명 수준이던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0년 이후엔 연간 200명 남짓한 규모로 감소한 상황이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북중관계마저 단절되는 양상이 있었으며 최근 북한은 2국가론을 제시하며 통일 자체에 거리를 두고 있다. 최근 10여년간 한국사회의 여론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북한과 통일되어야 한다는 여론은 60%대에서 40%대로 낮아지는 추세이며, 북한의 비핵화와 대화협력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인 여론이 커지고 있다.
변화된 상황으로 인해 중심 주장의 유효성엔 논쟁이 있겠지만 이 책의 관점 자체는 앞으로 세가지 통일론이 서로 경합하게 될 새로운 담론지형을 예고하고 있다. 이 연구가 ‘원역사’로 명명하며 연구의 출발점이 된 1920년대는 긴 역사적 시선에서 보면 자본주의의 변화와 맞물려 세가지의 서로 다른 정치적 유토피아 관념들이 분출했던 시기이다. 국제질서와 협력이 와해되고 국가간 전면적 경쟁 속에서 국내정치가 급격히 변화하며 자유주의, 파시즘, 사회주의 국가들이 서로 경쟁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존 통일론들의 지형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연구는 마이클 부러보이, 해리 하루투니언 같은 미국 학계의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미국 사회학계와 지역학 연구 분야에서 상당히 도전적이고 독창적이라는 평가와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1990년대 이전 한국 사회운동의 계급투쟁 및 민족해방 노선과 비교할 때 1990년대 이후 시장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의 개혁성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내리며(414면) 결론에서는 새로운 커먼즈에 대한 전망으로 ‘수평적 유토피아’로서의 제3의 통일론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다. 선진국의 자유주의와 후발국의 민족주의가 함께 발전하던 시기를 지나 1930년대 후발국들의 민족주의가 급진화되었고 이에 맞서기 위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연합이 형성되어 인류사 최대의 전쟁이 발발했다. 이번에도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아니면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졌는가? 세계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있으며,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분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몇년간 심화된 미중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한미일-북중러 구도로 국제관계가 나뉘는 경향도 심화되고 있다. 현재의 추세에서 국내갈등과 국제갈등이 더 심화되는 것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 수평적 유토피아의 관점에서 통일문제를 바라본 이 책은 단지 통일에 대한 제3의 관점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국제질서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시장-민족-평등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토론들이 절실해진 시기에 정확히 우리 앞에 도착했다.
* 이 글은 세교연구소의 서평웹진 <잔다리서가>에 소개된 서평입니다.
김학재 / 사회학자
2025.7.29. ⓒ창비주간논평·잔다리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