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이주노동자 안전 없이 산재 감축은 불가능하다
최진일
지난 8월 10일 전남 고흥의 양식장에서 감전사고가 일어나 두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양식장은 규격 미달의 모터를 사용했으며 안전교육을 진행하지 않았고 절연장갑도 없이 작업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절연장갑 미착용이 직접적인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대부분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은 일상과도 같다.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산재사망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대통령의 일갈이나 “산재사망률을 OECD 평균수준으로 줄이는 데 직을 걸겠다”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각오는 물론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대통령이 직접 산업재해가 사업주의 책임이라는 원칙을 확인하고, 장관은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장관의 의지처럼 산업재해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등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많은 산재 사망사건을 겪고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했지만, 산재사망률 통계상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아리셀참사를 비롯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다시금 발생한 김충현 사망사고, SPC에서의 계속된 사망사고를 목도해야 했기에 시민들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는 충분히 애도되거나 주목받지 못한 채 소외되는 또다른 죽음들이 있다. 고흥 양식장 사고와 같은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2024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이주노동자의 산재사망률은 동일 연령대의 한국 국적 노동자보다 최소 2.3배에서 최대 3.6배 높았다. 사망에 이르는 중대재해가 이주노동 현장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 수치가 근로복지공단에 기록이 남은 극히 일부만을 분석한 것이기에 과소추계되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2022년 1년 동안 출입국본부가 집계한 외국인 사망자 중 이주노동자(무비자 미등록상태 및 노동비자를 지닌 경우) 사망자는 3,340명이다. 그중 변사자 및 무연고 사망자를 제외하더라도 최소 2,267명의 사망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나마 ‘사건’화될 가능성이 큰 사고사에 비해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나 과로사는 더 많이 감춰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무상 질병사는 우리나라 전체 산재사망의 60.7%를 차지하지만,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12.4%에 지나지 않는다. 이토록 큰 차이는 통계상의 누락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OECD 평균수준의 산재사망률을 달성한다 한들 우리는 과연 그 사실을 자신할 수 있을까? 그때도 이 사회 어딘가에 암장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우리가 ‘통계상’ 산재사망률 감소에 자축하게 된다면 무섭고 역겨운 일일 것이다.
사실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문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주노동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소규모 사업장이나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농·어업 부문 등에 집중되고 산재사망 위험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 이주노동자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고용허가제라는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도 여러차례 있었다. ‘간단한 원칙과 절차를 왜 안 지켜서……’라는 탄식만으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감독과 처벌 역시 효과가 제한적이다. 수많은 소규모 영세사업장, 그중에서도 농업과 어업 부문에 대한 감독은 일선 감독관들에게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게다가 적지 않은 일터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도 아니다.
이주노동자의 산재가 이토록 ‘난제’가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얽혀 있는 만큼 이제는 ‘외국어 안전교육자료 배포’ 같은 단발적인 대책을 넘어 긴 호흡의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앙상한 산재통계로 인해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그 실체조차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주노동자 산재 예방계획이 수립되기는커녕 그 필요성도 가시화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우선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얼마나 죽고 있는지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둘째, 여러 행정의 역할이 정리되고 점검되어야 한다. 한국 국적 노동자들의 문제가 고용노동부로 집중되는 것과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법무부, 농림부, 해양수산부, 각 지자체 등 다양한 행정기관이 얽혀 있다. 그 행정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감독의 사각지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련 법령들은 어디가 비어 있거나 충돌하는지 살펴야 한다.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그래야 전략을 세울 수 있다. 행정력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여러 행정기관의 역할 및 관련 법령들은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관리도 감독도 불가능한 특정 영역이라 판단되면 노동의 유입 자체를 차단할 수도 있지 않은가 등을 점검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셋째, ‘5인 미만 사업장’을 비롯한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의 전략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비롯해 사업주의 포괄적 책임을 확대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조치들이 고민되어야 한다. 현재는 대부분 100인 이상 사업장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의 노동자참여제도를 소규모 사업장에도 적용 가능한 방식으로 다양화하는 것부터 시도할 수 있다. 유사한 구조를 공단·지역·업종 단위로 묶어서 운영하게끔 할 수도 있으며, 근로자대표를 선출하기 어려운 사업장이라면 안전대표자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하는 해외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다. 나아가 산발적이고 파편적인 소규모 사업장 지원제도를 전략적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실질적인 위험도에 따라 지원을 재배치하고 감독행정과도 유기적으로 통합되도록 정비해야 한다. 또한 재정만 지원하고 현장개선은 민간에 맡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공기관이 직접 수행하는 개선작업을 넓혀야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을 높이며 행정의 역량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문제를 해결하자고 이같은 엄청난 노력을 들이자는 것이냐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이주노동자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산재예방 정책은 매년 발표되는 산재통계를 붙들고 중점 관리업종과 사고유형을 선정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주노동자는 물론이거니와 여성노동자, 청소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감정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주체들의 관점에서 통계를 작성하거나 해석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실태를 최대한 정확하고 의미있게 드러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감독기관, 지원기관, 연구기관, 보상기관 등 수많은 관련 행정의 역할과 법령을 검토하고 정비하며, 집중과제 선정 등 장기적인 전략을 논의해야 한다. 사업장별 위험성평가를 하듯 국가 차원의 위험성평가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이주노동자만을 위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OECD 평균 산재사망률이라는 목표를 위한 전략에 이주노동자를 배제할 수 없으며 배제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안전한 나라라면 어떤 노동자에게도 안전한 나라가 아니겠는가.
최진일 /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
2025.9.9. ⓒ창비주간논평
커버 이미지: 2025년 온열·산재·괴롭힘 사망 이주노동자 추모행사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