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아프면 쉴 권리’가 꿈꾸는 사회: 지금, 상병수당을 말하는 까닭
‘근면성실’은 여전히 제일의 노동윤리로 여겨진다. 일터에서 요구하는 근면성실은 ‘조직’에 대한 헌신과 ‘개인’의 희생을 일부 포함한다. 근면성실 노동윤리가 지배적인 조직문화에서 조직보다 개인의 가치를 더욱 중요시하는 사람은 쉽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근래 유행했던 ‘MZ 신입사원’ 밈(meme)이나 경험담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조직문화를 둘러싼 가치충돌을 세대갈등으로 정의하면 쉽겠지만, ‘요즘 애들’의 일하는 태도에 대한 문제화는 역사 이래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왔다는 점에서 세대갈등이나 새로운 사회문제라 정의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요즘 애들’을 비난하는 기성세대는 오히려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 경력에 따라 사회화라는 적응 과정을 거친 세대다. 노동보다 자본의 편에 선 지배적 노동관을 체화한 결과일 뿐, 세대차이는 착시에 가깝다.
그러나 ‘착시’는 미묘하고도 첨예한 갈등을 번번이 만들어낸다. 유급 연차휴가 사용은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노동관 충돌 사례 가운데 하나다. 표준고용계약을 맺은 노동자라면 누구든 근로기준법에 따라 보장된 기간, 이유 불문, 원하는 때에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제도에 한참 뒤쳐져 있다. 직장인 대상 연차휴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어진 휴가의 70%만 실제로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3명 중 1명은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개인보다는 조직의 사정에서 비롯된다.
조직의 여러 사정을 뒤로한 채 휴가를 쓰려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부담을 지운다거나, 또는 고객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이라는 식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특히 ‘아파서’ 쉬겠다 말하기란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자기관리’ 능력을 평가하는 조직은 불(不)건강과 질병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묻기 때문이다.
아프면 쉴 권리
코로나19 팬데믹은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완벽히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마스크를 쓰더라도 감염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프면 쉴 권리’였다. 환자가 스스로 쉬고,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지 않으니 공동체의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감염 확산을 줄일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나갔지만, ‘아프면 쉬기’ 위한 제도의 공백과 권리의 불평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소수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유무급의 병가제도를 운영하지만, 고용형태와 기업 규모, 직종 등에 따른 불평등이 극명하다.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제도가 법으로 지정되지 않은 점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소득과 관련한 논의도 빠질 수 없다. 아플 때 쉬려면 시간(휴가)뿐 아니라 소득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건강문제가 수반하는 고통 가운데 하나는 노동력의 상실이다. 일을 할 수 없으면 소득이 줄어든다. 임금중심 사회에서 노동력 상실은 곧바로 경제력 상실로 이어진다. 재산이 있으면 재산으로 소득의 일부를 보전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장기간 치료해야 하는 경우 의료비 지출까지 겹치면서 생계 곤궁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돌봄을 요하는 건강 문제는 개인에 그치지 않고 관계적 문제로 확장된다. 아픈 가족이나 동거인을 돌봐야 하는 경우, 돌봄제공자 역시 일을 쉬어야 하므로 이중으로 소득 상실이 발생한다. 반대로 아픈 이의 소득이 끊기면서 생계 보탬이 되기 위해 다른 구성원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상황도 더러 생긴다. 건강과 돌봄을 둘러싼 경제적 부담은 개인을 넘어 가구 전체로 전가되며, 다양한 형태의 비용으로 나타난다.
건강과 돌봄의 불평등은 고용조건과 젠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족이 아플 때 일을 그만두거나 조정하는 사람은 대개 여성이다. 한국사회에서 돌봄의 몫은 여전히 여성에게 부과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성 일자리는 저임금과 비정규노동, 무급가족 종사자 등 불안정노동에 집중되어 있어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로부터 배제될 가능성도 더욱 크다. 제도가 보호하지 않는 고용조건과 돌봄 책임을 함께 떠안은 여성에게 아프면 쉴 권리의 보장은 더욱 요원하다.
상병수당
한국인들이 자랑하는 국민건강보험은 치료비 부담을 덜어준다. 하지만 아파서 직업이나 소득을 잃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건강을 돌보기 위한 입원·수술·회복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간을 보장하기 위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상병수당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한국은 예외다.
상병수당은 아프기 직전 벌던 소득의 일부를 보장해줌으로써 생활 토대가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사회안전망이다. 노동과 이를 통한 소득이 살아갈 조건의 기본이 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상병수당은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자본주의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가능하도록 하는 시민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산업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전세계적으로 상병수당이나 유급병가가 없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한국정부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아픈 노동자에게 보장하는 급여와 휴가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감염병 확산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국제적 ‘근거’를 앞세워 상병수당을 도입하겠다 공언했다.
하지만 세 정부를 거치는 동안 상병수당은 ‘시범사업’으로 운영돼왔다. 동시에 어떤 정부도 본격 도입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적이 없다. 한국사회 상병수당은 형평한 건강회복의 요구에서 비롯됐음에도 제도 설계는 대상자와 소득보장 수준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대상자를 소득 하위 50%로 한정하거나, 이전 소득이 아닌 한국 최저임금의 60%만을 보장하거나,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대기기간을 국제기준보다 길게 설정하는 식이다.
노동중심 사회를 바라며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어 행동에 나선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일하는 누구나 안심하고 쉬자”는 구호로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을 출범했다. 이미 많은 연구 결과가 말하듯, 건강은 소득은 물론 주거·관계 등 삶의 모든 과정과 얽혀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아프면 쉴 권리’는 아플 때도 일정한 소득을 보전한다는 의미 이상이다. 오히려 사회의 중심에 자본이나 이윤이 아닌 노동을 두자는 주장에 더 가깝다.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이 상병수당에 주목하는 까닭은 단 한가지, 새롭게 도입되는 만큼 기존 제도의 틀을 허물고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회는 ‘임금노동’으로 노동의 경계를 짓지 않는, ‘표준’고용계약을 빌미로 차별하지 않는, 그리고 젠더화된 노동시장의 현실과 그 구조를 직시하는 사회다. 그리하여 형평을 도모하고, 모두가 각자에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문다슬 /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 연대자
2025.10.28.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