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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MAGA) 뒤에 숨어 있는 ‘백색 반동’



하상응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를 두차례나 백악관의 주인으로 만들면서 당의 정체성을 바꿨다. 1980년 레이건 행정부 이후 반세기 가까이 공화당을 지탱해온 핵심기둥인 시장중심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 개신교적 가치와 결합한 민주주의, 그리고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작은 정부의 원칙은 이제 더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이제까지 만들어온 국제질서의 유지를 거부하면서 소위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행보를 취하고 있다. 무차별적인 관세 폭탄, 동맹국과 유사입장국을 상대로 한 압박,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이란을 상대로 한 전쟁 등이 모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는 퇴행적인 구호의 구현으로 포장된다. 그중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영역은 이민정책일 것이다. ‘미국의 정체성 회복’이 곧 트럼프 이후 성격이 바뀐 공화당의 핵심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민의 나라로 알려진 미국이 항상 국경을 열어둔 것은 아니다. 1965년 이민법 개정을 통해 이민 친화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기 전, 미국은 이민 억제 정책을 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특정 국가 출신 이민자의 수를 제한하거나 이민 자체를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과 1960년대 민권운동을 배경으로 깔고 적극적인 이민 수용 정책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민 수용 정책은 싼 노동력의 유입을 원활하게 하여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문화다양성을 향상시켜 혁신 아이디어를 자극하는 순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문화·언어·종교가 다른 이민자들의 유입이 미국의 정체성을 침해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반이민정서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선 공약이었던 대규모 이민자 추방 정책을 거침없이 실행하고 있다. 부작용은 심각하다. 범죄와 무관한 이민자들은 물론, 무분별한 단속에 저항하는 일반 시민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인권유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1월 미네소타주에서 이민단속국 요원에 의해 르네 굿(Renee Good)과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라는 두 미국 시민이 살해당한 비극적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민자에 대한 강경 단속의 가장 큰 법적 문제는 적법절차(due process)의 침해다. 소위 ‘신속 추방’(expedited removal) 제도의 확대는 개인이 자신의 체류 신분을 소명할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 또한 지역 경찰이 단속 주체가 되면서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이 일상화되고 있다. 단속의 기준이 불법체류 여부가 아니라 특정인의 외모·언어·인종과 같은 특징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조지아주 LG에너지솔루션·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파견노동자 강제 구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인종차별적 행정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과도한 이민 단속은 경제적 관점에서도 위험천만하다. 건설·농업·축산업·식품가공·돌봄노동 등 미국 경제의 필수 영역에서 미등록 이민자 노동력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통념과 달리 미국 기업들은 값이 싸고 노조 활동도 할 수 없는 불법이민자들의 고용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을 쫓아내는 행위는 해당 산업의 노동력 공백과 생산비 및 물가 인상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내 경제단체와 지방정부가 강경 단속이 경제 불안정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해온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자 단속 및 추방을 국가 정체성 회복이라는 정치적 수사로 포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결과는 법질서의 파괴와 공동체 신뢰 붕괴 그리고 경제적 자해행위일 수 있다. 


한편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난민 수용 규모를 역대 최저치로 억제하기 위해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흥미로운 점은 난민 수용 억제 기조 속에서도 유독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에게는 예외적인 관용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는 난민제도가 인권이나 국제법이라는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문화적·인종적 동질성이라는 선택적 잣대에 의해 운영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누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가리는 기준이 인권이 아닌 인종 정체성이 되는 순간, 미국이 쌓아온 대외적 신뢰는 무너진다. 결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의 이면에는 미국을 다시 하얗게(Make American White Again) 만들겠다는 비뚤어진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이민정책 관련하여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꺼내든 가장 논쟁적인 카드는 출생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의 개편이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라 부모의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부여해왔다. 이는 이민자의 나라로서 미국의 정체성을 확립해온 제도적 근간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임시 체류자의 아이에게 시민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수정헌법 제14조의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자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불법·임시 체류자는 관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1898년 대법원 판례(United States v. Wong Kim Ark)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의 이러한 시도가 누가 진정한 미국인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경계 설정과 지지층 결집을 위한 상징적 투쟁이라고 해석한다.


오늘날 미국 공화당의 주류 이념이 된 마가(MAGA)는 단순한 보수주의가 아닌 반동적인 사고다. 보수가 현상 유지를 중시하고 진보가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한다면, 반동은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은 시골에 거주하며 교회에 다니는 고졸 백인 남성이 주류를 이루던 과거의 미국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도시에 거주하고 고학력을 가졌으며, 종교가 없는 소수인종 여성의 지위 향상은 미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위협일 뿐이다. 마가 세력은 기성 정치권을 그림자 정부’(deep state)로 매도하면서, 이들이 백인을 소수인종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대체 이론‘(replacement theory)의 음모론을 확산시켜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민·난민 정책은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해온 현대 미국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과거의 영광을 인종적 순결성에서 찾으려는 불편하고도 위험한 시도다. 20세기 초 미국의 모습이 그러했다. 그리고 역사는 20세기 초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기억하지 않는다. 



하상응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6.4.7.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