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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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지금은 ‘피스메이킹’이 필요한 때다



정현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평화를 애호하는 많은 이들을 한숨짓게 한다.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폭격에 민간인의 희생이 점점 더 늘어가고, 명백한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않는 트럼프와 네타냐후(B.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분노도 커져만 간다.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는 절박한 때에,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인권 말살 행태를 비판해주어 큰 위안을 받게 된다. 


한편 이 불법적 전쟁의 여파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북한의 태도가 궁금한데, 모두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겠구나’라는 점에서는 일치를 본다. 그런데 북한의 태도는 의외로 담담해 보인다. 미국의 무법적 군사행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커지는 형국이라 다극세계로의 전환이 빨라질 것이라는 예측 위에서, 자신들이 국제관계에서 그 흐름을 앞장서 견인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극세계’ ‘견인’ 등 표현에서 보이는 적극 외교에 대한 강조는 북한이 2026년 2월의 9차 당대회에서 최선희 외무상과 김성남 국제부장을 모두 정치국 위원에 발탁할 때 확인된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진단도 비교적 차분한 편인데,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폐막식(2026.03.23) 연설 일부에서 잘 나타난다. “외부적으로 볼 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우리 국가의 주변에 핵전략 자산들을 상시적으로 끌어들이며 지역의 안전 근간을 흔들고 있지만 사실상 이것은 우리에게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며 우리 국가의 안정성의 정도는 지구상의 다른 지역들보다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북한이 마련해두었고 앞으로 더 강화할 핵무기 고도화가 그 바탕일 터이다. 미국의 선제공격이 누구에게라도, 언제라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은 북의 핵무기 보유를 ‘이유 있다’고 볼 근거가 된다. 북이 갖는 심리적 안정감도 여기서 연유하고 있다.        


김정은의 연설에서는 우리에 대한 입장도 다시 한번 표명되어 있는데, 그것은 여전히 ‘적대적 두 국가’이다. 다만 그의 주장의 맥락에서 특정의 조건이 있다는 점은 확인된다. ‘주권적 권리와 안전이익, 발전권 침해’가 그것이다. ‘발전권 침해’라는 말은 생소한데, “핵방패의 굳건한 구축은 군사분야, 안전보장 분야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를 비롯한 나라의 모든 분야의 발전과 인민생활개선을 확고히 담보하고 추동”한다는 표현에서 의미가 찾아진다. 핵포기를 요구하지 말라는 거다. ‘적대적 두 국가’ 입장은 이러한 침해에 대한 언급 다음에 주장되고 있다. “특히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격”하고 무시하면서 자신을 건드리면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한다. 침해만 하지 않는다면? 남쪽 국경선은 강화되고 안정될 것이라 한다. ‘적대적 두 국가’는 방어기제다.


그런 가운데 민간인에 의한 무인기 침투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남북이 주고받은 말이 화제가 되었다. 주목하는 것은 말에 실린 사실성과 관계 형식이다. 북한 총참모부가 성명을 통해 남한으로부터 무인기가 침투해서 전단을 살포했음을 발표했을 때, 남한 국방부의 첫 대응은 ‘정부 차원의 무인기 침투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무인기 침투 시점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였기에, 세간에는 북이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조사가 이루어지고 국정원 직원과 특정 군인이 민간인과 공모하여 북에 전단을 실은 무인기를 침투시킨 사실이 밝혀지자, 북의 주장이 실제에 입각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명백해진 사실 앞에 우리 측 통일부장관이 나섰다. ‘공식 유감 표명’은 2026년 2월 18일에 나갔고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담화에서 “나는 (…) 높이 평가한다”고 응수했다. 모든 조사가 끝난 이후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유감 표명도 나왔다. 국무회의 발언이었으니 무게감도 남달랐다. “비록 우리 정부의 의도는 아니지만 일부의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이 유발된 데” 대한 유감 표명이었다. 그러자 김여정 부장은 새롭게 담화를 발표하고 “우리 국가수반은 이를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하였다”고 소개하며 정상 간 대화 형식을 맞추었다. 김정은의 발언 내용도 수사적이라기보다는 사실적이라 할 수 있다. 직책에 맞는 형식과 사실적 표현은 일종의 신뢰 자산이다. 방어기제로서의 ‘적대적 두 국가’와 ‘평화공존정책’은 ‘차가운 평화’속에서 관리되고 있는 셈이다.  


피스키핑(peacekeeping)은 그렇다 치고 피스메이킹(peacemaking)은 어떤가? 그 상징의 하나가 9·19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조치일 텐데, 거듭되는 약속에도 진척은 없다. 남한의 국방관료들의 분위기가 어떤가는 ‘아이언 메이스(iron mace, 철퇴)’ 한미합동훈련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 훈련은 미국의 핵전력과 남한의 재래식 무기를 결합하는 것으로 2025년 9월 15일에서 19일 사이에 진행되었다. 윤석열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요청하고 다니던 시절의 산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힌 2025년 8월 15일로부터도 불과 얼마 후의 훈련이기도 하다. 북의 핵무기 체계 구축 이후 미국 핵우산에 안보를 의존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국방관료들의 인식이, 자꾸 미국에 얽매이며 스스로의 자율성을 포기하는 건 아닐까?


지금 남북의 상황을 보면 각자의 길이 너무 바쁘다. 이재명정부는 내부개혁의 여러 큰 산을 넘어가는 중이고 북한의 관심은 온통 ‘경제와 인민생활 향상’에 가 있다. 북의 경제설계에서 남한은 지워져 있다. 서로가 필요로 하는 안정이 ‘차가운 평화’ 속에서 유지되는 형국인 것이다. 결국 변수는 전쟁을 몰고 다니는 트럼프의 불확실성이다. 게다가 주한미군 전력은 한미간 협의도 없이 여러 전장으로 들고나며 어디로 튈지 모른다. 남북의 개혁이 평화 속에서 제대로 가려면 점차 위험해지는 평화를 위해 좀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은 피스키핑을 넘어 피스메이킹이 필요한 때다. 


하나의 제안은 ‘평화공존정책의 종착점이 남북연합임을 공식 표명하자’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제안을 정부와 민간이 함께 공론화하는 일이다. 북이 느끼는 체제위협의 근본이 남한의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며, 북미수교나 평화협정 체결로까지 나아가더라도 해소되지 않을 북의 체제위협 인식을 남북연합으로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은 일찍이 백낙청의 제안에도 있어왔다(백낙청 「포용정책 2.0을 향하여」, 『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84면). 결국 이 제안이 ‘비핵화’를 위한 열쇠였다고 보지만, 북의 핵무기체제 이후에도 여전한 평화해법이라는 것을 짚어준 건 또 한번의 예지로움이다.   

    

두번째는 한반도 종전선언의 적기가 왔다는 것이다. 평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지금처럼 높은 상태는 좀처럼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향후에 더 큰 위험이 될 지금의 군비경쟁도 막아야 한다. 게다가 종전선언은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남한의 이니셔티브가 담긴 정책이기도 하다. 계기도 있다. 실추된 평화이미지를 회복하려는 트럼프가 곧 중국을 방문해 미중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북한도 이 기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과의 교역 확장을 결정한 조건에서 북중경제협력이 제재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은 중국이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식으로 갈 것이므로,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는 평화문제에 집중된다. 핵을 뒤로 미루면서 평화문제를 다루자면 종전선언이 유일하다. 트럼프의 선택을 지켜볼 문제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개혁이면 개혁, 평화면 평화 모두에서 중도를 기반으로 압도해가는 이재명정부의 외교가 활발히 움직일 때가 왔다.




정현곤 /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2026.4.21.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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