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밥 딜런이 보내온 질문
얼마 전 출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느 신문사의 설문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 1945년 이후 한국에서 출간된 책들 가운데 우리 사회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다섯권을 골라달라는 설문으로, 분야는 가리지 않으며 번역서도 포함된다고 했다. 어렵지 않게 선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마고 했는데, 막상 꼽아보려니 쉽지 않았다. 고민하다 내 트위터 계정에 설문을 올려보았다. 여러 분들이 의견을 주셨는데, 『백범일지』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태일 평전』처럼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책도 있었지만 『성경』 『수학의 정석』 『성문종합영어』처럼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던 범주의 책도 많았다. 잡지로는 『사상계』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이 거론되었는데, 어느 분의 목록에서 『선데이서울』을 보고는 빙그레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삼중당 문고와 나
“열다섯 살,/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로 시작하는 장정일의 유명한 시 「삼중당 문고」도 있거니와, 나 역시 그 ‘삼중당 문고’ 세대다. 내 경우 본격적인 삼중당 문고 읽기는 시인보다 조금 늦어서 고등학교 입학 이후였던 듯하다. 가격도 사오백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서점에서 한참을 머물다 서점 주인 눈치가 보일 때쯤 삼중당 문고 한권을 뽑아 들고 계산대로 가곤 했다. 그때 삼중당 문고 말고 내 은밀한 구입목록에 있던 게 『선데이서울』이었는데, 잡지를 교복이나 교련복 상의 안에 감추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한쪽에선 『수학의 정석』 『성문종합영어』에 시달리고 또 한쪽에선 『선데이서울』로 그 괴로움을 얼마간 눅이는 가운데 삼중당 문고로 은유되는 문학과 교양의 세상이 내 정신의 어느 골짜기로 조금씩 흘러들던 시절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건 나의 성장기, 70년대 부산에선 어느정도는 공유되던 풍경이지 않았을까.
그 무렵과 80년대 초중반 대학 시절을 일종의 정신적 형성기로 잡는다면, 적어도 나의 개인적·세대적 경험 안에서 영향의 진원지를 헤아려보는 건 가능할 것도 같다. 초점을 문학으로 좁혀보면, 삼중당 문고 중에서도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꼽힐 것 같고 이어진 ‘동서그레이트북스’ 시절로는 도스또옙스끼가 유력해 보인다. 그러니 외국문학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부터 『현대문학』을 접하게 되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조세희, 황석영, 이문열 등의 작품에도 빠지게 되지만 ‘문학’이라는 개념과 정의의 모델로 가장 강력하게 자리잡은 것은 아무래도 앞서의 외국문학 작품들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데미안』에서 『유리알 유희』까지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은 전인적 자기 형성이라는 교양소설의 면모에서 뭔가 맞춤하게 당시의 미숙한 정신을 매혹했고, 문학을 이해하고 정의하는 최초의 척도 같은 것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분히 낭만적인 그 문학의 이해는 진부하고 타락한 사회의 규범과 요구에 맞서는 ‘진정한 나’의 자리를 환기시키면서 갈등하는 자아의 서사, 상처 입은 영혼의 자기실현을 근사한 내면성의 이야기로 포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진정성의 공간으로 제시된 그 자아의 내면이 곧 ‘문학’이기도 했을 테다. 나는 사회학자 김홍중이 80년대 ‘386세대’의 격렬한 저항운동을 ‘진정성’이라는 마음의 레짐(regime)으로 구조화한 데 공감하는 편이거니와, 그 공감의 실타래가 닿아 있는 곳이 바로 여기인 셈이다.
물론 이후 이런저런 계기를 거치면서 내 얄팍하고 미숙한 문학관은 숱하게 수정되고 요동쳤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업이 늘 문학하는 동네 쪽과 연결되면서 문학에 대한 생각을 아주 놓아버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간 세상의 변화와 함께 문학의 사회적 영향력도 많이 축소되었고, 이즈음으로 말하자면 ‘한국문학’을 둘러싼 냉기도 만만찮은 듯하다. 그렇긴 해도 가령, “세상에서 생각되고 말해진 최선의 것”(매슈 아놀드)을 알고 받아들이는 데 문학작품의 특별한 기여가 있다는 생각 정도는 여전히 붙들고 있다. 그 ‘최선의 것’이 왜 꼭 ‘문학’만의 것이겠는가마는. 다만 문학은 그 이름과 정의(定義)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역설을 통해서, 문학의 재정의를 향한 모험과 물음 속에서 스스로를 갱신함으로써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성찰의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는(혹은 남아 있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문학이라는 이름은 그 제도적 규정이나 실정적 양태와는 별개로 ‘문학’ 그 자신의 배타적이고 특권적인 요청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제도와 문학의 긴장을 비판적으로 주시하는 일은 언제든 필요하고 중요하겠지만, 당대든 문학사의 긴 시간이든 오로지 독자의 읽기를 통해서만 존재하고 ‘최선의 것’으로서만 독자를 감응시키는 작품의 자리는 사적(私的) 귀속처를 모른다. 그 ‘최선의 것’이 억압적이지 않으며, 언제든 개별과 구체의 존재를 향해 열려 있다는 점도 성급한 실망을 막아준다. 모르긴 해도 이런 의미의 ‘문학’이 남아 있고 내가 그것과 만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나’라는 존재는 조금은 나아질 거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문학이라는 것이 남아 있는 세상을 원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저 고등학교 시절의 삼중당 문고에 여전히 빚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수정 운운했지만 얼마나 바뀌었을까.
음유시인이라는 질문
논란을 불러일으킨 밥 딜런(Bob Dylan)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한마디 보태보고 싶긴 했다. 짐짓 비장한 마음으로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따라 부르던 저 먼 ‘진정성’의 시간을 위해서도 말이다. 그러나 생각을 접는 게 나을 것 같다. 밥 딜런의 음악과 노래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너무 제한적이기도 하거니와, 한동안 문학이 잊고 있었던 자리를 질문에 부친 것만으로도 그의 수상은 화제 이상의 의미를 얻어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의 선정 이유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의 수상은 음유시인의 자리가 회복되어야 하는 자리인지, 아니면 그 상실과 불모를 견디는 게 지금 시의 자리인지 새삼 물어보게 만든다. 그런데 이 질문은 단순히 현대시의 자기정의 문제를 넘어 오늘의 문학에 드리운 소외의 양상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자기진단으로부터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 구체적 논의야 앞으로 좀더 차분하고 진지하게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떻든 우리 시대가 비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실제에서 음유시인을 갖고 있었고, 그로부터 깊은 위로를 얻어왔다는 노벨위원회의 소식은 놀랍고도 반갑다. 모든 상이 그러하듯 문학상도 축제와 자기 격려의 한 방식이다. 노벨문학상이 발견한 축제의 음률은 적어도 최근 “세상에서 생각된” 최선의 것인 듯하다. 이런 대목은 정말 좋지 않은가. “Yes,’n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 pretending he just doesn’t see?” (얼마나 여러번 고개를 돌려 / 마치 못 본 듯 외면할 수 있을까,「 Blowin' In The Wind」 중) 밥 딜런은 웅얼거리고 속삭인다. 생각해보면, 웅얼거림과 속삭임은 문학에 대한 오래된 정의 중 하나이다.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6.10.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