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살처분이 조류인플루엔자의 유일한 해결책일까
우리는 매주 거의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앞에서 비선실세에 의해 장악된 국가의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촛불을 드는 모습을 보고 있다. 1997년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으로 인해 한동안 수면 아래 있었지만 달걀가격의 급등처럼 우리의 장바구니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는 중요한 사건이 있다.
지난 10월말부터 야생철새에게서 발견되기 시작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제주와 경북 지역을 제외한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3000만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를 포함한 가금류들이 살처분되고 있다. 정부당국은 이러한 대규모 사전예방적 살처분 정책을 통해서 조류인플루엔자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에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인 H5N6형은 병원성이 강해 그 확산 속도가 살처분 속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의 살처분 정책이 벌써부터 완전한 실패로 평가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반복되는 가축전염병, 그리고 대량 살처분
한국은 이제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과 같은, 확산속도가 높은 전염병으로부터 더이상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조류인플루엔자의 경우, 2003년부터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발생했으며 2014년 유행했던 H5N8형은 1396만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고 195일 만에 종식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확산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의 경우는 살처분의 규모나 경제적인 피해에 있어서 기존 기록을 모두 넘어설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바이러스의 강력한 병원성으로 인해 정부 당국이 실행하고 있는 살처분을 통한 조기진화가 완전히 실패하면서 조류인플루엔자는 이제 인위적 통제 자체가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식적으로 이 질병은 주로 야생철새들이 전파하는 ‘외부 침입자’로서 ‘박멸’해야 하는 대상이다. 살처분 정책의 정당성 기반은 여기에서 찾아진다. 결국 조류인플루엔자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살처분’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조류인플루엔자의 경우에 국제보건기구(WHO)와 국제수역사무국(OIE)은 살처분을 공식적인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과도한 살처분이 보여주는 비인도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비효율성 그리고 시민사회에 미치는 트라우마로 인해 살처분 방식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과학적으로 살처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백신접종 방식과 같은 새로운 대안 또한 제시되면서 대량 살처분만이 유일한 대응책이 아닌 상황이다. 그리고 살처분을 정당화하는 과학적인 근거 이면에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살처분 정책의 숨겨진 역사성
살처분은 단순히 현재적인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대량 살처분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이 방법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성 위에서 표준적인 질병통제 방식이 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축전염병에 대한 살처분 정책의 기원은 1892년 영국의 구제역에 대한 살처분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정부가 구제역에 감염된 동물 및 그와 접촉한 동물에 대한 살처분을 합법화함으로써 이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질병을 박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강력한 살처분 정책은 1930년대 이후 다양한 백신이 등장하면서 다른 국면에 이르게 된다. 당시 영국의 경쟁국가였던 프랑스나 독일이 가축전염병에 대해 살처분 대신에 백신접종을 사용함으로써 엄청난 논쟁이 일어난다. 이 백신논쟁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과학자, 정부관계자 들은 다양한 과학적·경제적 이유를 제시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했지만, 결국 1974년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살처분을 표준정책으로 선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살처분은 유럽 전체의 표준정책으로 채택된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살처분 정책을 단순히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살처분은 질병통제의 방식일 뿐 아니라 도덕적이고 규율을 중시하던 대영제국의 핵심적인 상징으로 생각되었다. 영국의 의학사학자인 아비게일 우즈는 “영국인들에게 가축전염병은 대영제국의 일사불란한 질서체계를 위협하는 외부의 위협이며 침입자였다”고 해석했다. 즉, 질병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박멸해야 할 대상이지 타협이나 공존의 대상은 아니었다. 반면에 백신접종은 질병을 완전히 물리치는 방법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바이러스에 대한 조작을 통해 가축이 살아 있는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통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방만하고 무질서한’ 대륙적 삶의 표상으로 간주되었다.
백신접종이라는 대안
국제적인 표준으로서 살처분은 결국 ‘질서와 규율’을 구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러한 ‘질서와 규율의 유지’라는 기본적인 사회통제 방식을 내면화하고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이러한 가혹한 규율의 통제 방식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미 국제수역사무국과 UN 식량농업기구(FAO)는 2007년부터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대응방식으로서 백신접종을 권고안으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조류인플루엔자가 자주 발생하는 국가들에서는 백신접종 방식이 좀더 효율적이며, 비인도적인 대규모 살처분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백신접종을 시행하게 되면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국가 및 농가의 방역이 느슨해지고 인체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법하다. 하지만 최근에 많은 과학자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에 대한 완전한 박멸과 제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질병은 악, 그리고 박멸의 대상이라는 생각에 대한 대안으로서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여전히 매년 겨울 수백만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해 매몰하는 끔찍한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익숙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시간이다.
김기흥 /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2017.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