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
차고 넘치는 음식 관련 방송 콘텐츠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다큐멘터리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그 다큐멘터리는 대다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동원하는 전형적인 요소들, 예컨대 희귀한 메뉴 선정이나 각종 시각효과를 활용한 스펙터클한 요리 광경 또는 과장된 시식평 등을 상당히 절제하고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방영 당시 하나의 문화현상이라고 할 만큼 중국 전역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이후에는 여러 국가로 수출되면서 중국의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알리는 역학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그 다큐멘터리는 바로 중국 CCTV가 제작한 <스지엔샹더중궈>(舌尖上的中国, 직역하면 ‘혀끝의 중국’이고, 국내 방영시 제목은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이다. 한국에서도 MBC가 발빠르게 각 7편으로 구성된 1,2부를 중국에서 발표된 해인 2012년, 2014년에 특별편성으로 방영한 바 있다. 당시 국내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렇게 잊혀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이다. 음식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모델을 개척한 전범같은 작품이고, 특히 이 작품에 담긴 음식문화에 대한 진중한 시각은 (누군가는 ‘푸드 포르노’라는 말을 써서 혹독하게 비판하는) 매혹적인 음식 관련 영상에 대한 우리의 탐닉을 반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중국을 읽는 맛있는 교재
사실 이 작품은 음식 다큐멘터리의 범주에 가둬두기 어렵다. 이 작품에는 보다 전형적인 음식 다큐멘터리였다면 전면에 내세웠을 중국의 공인된 대표음식들, 즉 베이징의 카오야(오리구이 요리)나 광둥의 딤섬 같은 도시 미식문화의 산물들이나 만한전석으로 대변되는 청대 궁중요리의 유산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서민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지역별 ‘특색’ 음식이 이 작품이 다루는 주된 품목들이다. 또한 그런 소박한 음식들은 언제나 더 너른 생활·자연환경과의 연관 속에서 살펴지는바 거듭 강조되는 메시지는 오랜 역사를 보유한 각 지역의 음식전통이 많은 경우 적대적인 주변환경에 적응하려는 긴 투쟁의 결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리하는 모습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식재료를 구하는 고단한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더 많고, 요리 장면 자체도 가정식이 주가 될 만큼 중식 하면 대번 떠오르는 화려한 화공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전체 제목 못지않게 세심하게 선택된 각 편의 함축적인 제목이 이런 전반적인 기조를 예고한다. 예컨대 1부 1편의 제목이 ‘자연의 선물(自然的馈赠)’인데, 1부 마지막편 제목(국내 방영시에 그 취지를 고려해서 ‘다시 자연으로’라고 의역한) ‘우리의 정원(我们的田野)’은 다시 한번 이 작품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오면서 대다수 중국인들이 공유하게 된, 중국 각 지역에 대한 지리·문화적 감각(지식)을 이해하는 데 이만큼이나 좋은 ‘교재’도 드물지 싶다. 예를 들자면, 중원에서 밀려 내려와 남부 내륙의 척박한 산간 지역에 정착하게 된 이른바 ‘하카(客家)’들은 훠투이(火腿, 중국식 햄) 같은 염장음식을 발전시키게 되었다는 것.(1부 3편, ‘변화의 영감转化的灵感’) 또는 예로부터 온갖 물자가 풍부한데다 물 맑은 고장으로 유명했던(루신의 고향이기도 한) 저장성 샤오싱 사람들은 그들의 온후한 성정을 닮은 부드러운 황주를 빚게 되었다는 것.(1부 4편, ‘시간의 맛时间的味道’) 이렇듯 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은 그곳의 역사와 풍토를 요약하고 있는 열쇠말과도 같다. 이런 내용을 다 새기지는 못하더라도 흥미가 먼저 동하는 몇편만 봐도 한가지 느낌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매 편별로 대략 십여곳을 옮겨가며 비슷한 재료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음식들이 발전해왔는지를 확인하게 되면 중국 (음식)문화의 다양성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조금 비판적인 논평을 하자면 이런 다양성을 ‘중국’의 자부심으로 포섭하는 것이 이 작품의 구성전략이고, 그런 탓에 이 모든 다양한 사례들이 열거되는 가운데 ‘중국의 지혜’나 ‘고향의 맛’ 같은 상투적인 어구들이 꽤 빈번하게 되풀이된다. 그러나 이런 전통의 담당자들은 소수민족이거나 경제발전의 혜택이 비켜간 지역의 평범한 촌로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중국의 급격한 경제발전은 기회이기보다는 새로이 적응해야 하는 적대적 환경이라는 시각이 자주 암시되며, 도시의 변덕스런 고급 미식문화에 대한 은근한 조롱도 느껴진다. 국영방송에서 제작된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표면의 중화주의적 수사는 알리바이이고 현재 중국의 급격한 변화가 야기하는 긴장의 느낌을 우회적으로나마 기록하려는 의지가 제작진의 본심인 것도 같다.
삶과 노동이 만든 음식
분명한 것은 제작진이 출연하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갖고 작업했다는 사실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진행자가 없는 대신 거의 모든 음식이나 식재료가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는 해당 지역의 한 인물을 중심으로 제시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인물에 대한 이해가 커지고, 각각의 음식 에피소드는 동시에 한 인물에 관한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전형적인 음식 다큐멘터리에서 기대되는 재미를 보충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독특한 서사전략이라고 하겠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사례를 하나 꼽자면, 산시성 쑤이더에 사는 황 궈성 씨의 이야기를 들고 싶다. 그는 겨울 한철 동안 기장을 주재료로 팥고물을 넣어 만든 황모모(노란 찐빵)를 파는데, 결코 값을 깎아주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은, 그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며칠에 걸쳐 직접 기른 기장을 연자맷돌로 빻아서 반죽하고 숙성시켜 찌는 고된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그의 고집에 공감하게 된다.(1부 2편, ‘주식 이야기主食的故事’) 때때로 거칠거나 거대한 자연이 노동의 현장일 때는 노동의 실감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압도적인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 역시 이 다큐멘터리에 상당한 매력을 더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중국과 관련된 고급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갈급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으리라고 짐작된다. (문학적으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던 조정래의 『정글만리』 사례도 중국 문화와 사회에 대한 종합적인 입문서 수요라는 견지에서 보면 쉽게 납득이 된다.) 만인의 관심사인 음식을 매개로 중국사회 구석구석으로 데려가주는 이 작품은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두텁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고 확신한다. 게다가 만듦새 자체가 워낙 뛰어나니 즐거운 공부길을 보장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의 ‘CCTV 한국어 방송채널’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다.)
이정진 / 서울대 강사
2017.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