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한 사오궁 『혁명후기』
‘혁명’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
―한 사오궁 『혁명후기』, 글항아리 2016
일상의 차원에서나 담론 영역에서나 전면적 사회변혁의 의미로서의 ‘혁명’이 생경한 말이 된 지는 꽤나 오래다. 여기서 그 원인을 본격적으로 따져 물을 일은 아니지만, 20세기를 점철했던 사회주의혁명의 부정적 귀결을 먼저 손꼽을 수 있겠고, 한국사회로 좁혀보면 분단체제의 자장이 신자유주의와 맞물리며 발생한 인식적 제약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소한 지난 몇달간 우리는 혁명이라는 언어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듯 보이는 현상들도 심심치 않게 관측하고 있다. ‘촛불혁명’이라고 명명되듯, 촛불집회로 말미암은 뜨거운 광장의 열기가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체감되면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가 표출되는 해방구가 다시금 형성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조성된 해방공간이 보다 근본적인 사회변혁의 모멘텀으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이 뒤따라야 하지만, 그와 함께 혁명의 의미를 다시 묻는 인식적 계기를 이 기회를 빌려 마련하는 일 역시 긴요하지 않은가 한다.
앞서 혁명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궁구하는 과정에서 혁명이 담론상의 명확한 발언권을 갖고 있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혁명은 여전히 과도하게 급진적이며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그 어떤 것으로 치환되어버리기 일쑤이다. 혁명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화는 많은 경우 사회주의혁명사에 대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문화대혁명 경험은 혁명을 마주하는 우리의 심성과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른바 ‘홍위병’과 ‘인민재판’은 상대 진영을 도덕적으로 무력화시킬 때 사용하는 정치권의 상습 문구가 된 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은 혁명의 의미를 재론하려는 다기한 시도를 인식적 측면에서부터 제약하기 쉽다.
‘인간의 역사’로서 문화대혁명 읽기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문혁의 상(像)과 별개로, 국내외 학계 일부에서는 기존의 부정 일변도 문혁 평가에 대해 여러 비판적 입장을 전개해오고 있다. ‘마오 쩌둥(毛澤東)에 의한 극좌적 오류’나 ‘홍위병의 폭력적 광란’처럼 맹목적으로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닌, 다양한 층위의 문혁의 제 양상을 복원해야 할 필요성을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대혁명 50주년이었던 작년 말 출간된 한 사오궁(韓少功)의 『혁명후기』(백지운 옮김)는 기존 문혁 연구의 균열과 갱신 지점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역사로서의 문화대혁명’이라는 부제가 잘 말해주듯, 한 사오궁은 문혁을 마오 쩌둥 개인의 권력욕이라거나 비이성적인 ‘악마들의 광란’으로 일축하는 도덕만능주의적 추궁방식 등이 ‘역사적’ 사건으로서 문혁이 지닌 복잡성과 다면성을 놓치게 만든다고 본다. 문혁은 어떤 한 개인의 역할이나 인식의 범주가 아닌 당대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제도 및 문화에 대한 핍진한 관찰 속에서 비로소 제대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작업은 일상적이고 실천적인 경험감각으로부터 파악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중국 내 문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거세시킨 ‘궁정화(宮庭化)’(2장)나 ‘하소연하기’(4장) 방식도 문제지만, 문혁을 쉽사리 낭만화하고 이상화하는 또다른 결의 문혁학 또한 문혁의 실상과는 먼 추상적 이론의 공전에 불과하다고 일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한 기존 문혁 연구에 대한 비판적 접근 위에서 문혁기 중국 ‘권력사회’의 작동방식을 ‘만민의 성도화(聖徒化)’ ‘만민의 경찰화’ ‘성도화×경찰화’(9~13장) 등 사회학적 문맥으로 역동적으로 재구성해낸 것은 주목할 만한 업적이라 할 만 하다.
이러한 한 사오궁의 진중한 노력은 문혁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분기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과 무지, 나태함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의 보다 큰 미덕은 기성의 문혁 연구가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여 어떻게 하면 문혁의 실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데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역사적’ 사건으로서 문혁을 다시, 그리고 새롭게 인식한다는 말은 단순히 문혁의 다양한 ‘풍경’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문혁을 역사화하는 작업이 문혁의 여러 양상을 기계적으로 병렬해놓는 것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혁명/후기’ 다시 말해 혁명에 대한 경험자의 리뷰로서의 후기가 아니라, ‘혁명 후/기’ 즉 혁명 이후의 기록으로 재삼 강조하여 읽을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 사오궁이 문혁 이후 중국의 고속 경제성장에서 초래된 자본과 시장에 의한 재위계화로 문혁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듯, 문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다시 묻는 일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재구성을 추동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저자가 “‘문혁’은 회고적 과제라기보다 미래에 관한 의제다”(6면)라고 말한 그대로이다.
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사유하는 일
이렇게 본다면 문혁을 단순히 혼란과 비극으로 점철된 실패한 혁명으로 일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역사성을 정합적으로 복원하는 첫걸음은 오늘날 현실에서 소실된 가능성이 무엇인가에 다시금 주목하는 것일 수 있다. 문혁에 대한 중국 관방의 입장을 대변하는 「건국 이래 당의 몇가지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1981)는 흔히 마오 쩌둥 만년의 좌경적 오류를 명문화한 문건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문혁에 대한 해석 문제에서 보면 “‘문화대혁명’은 어떤 의미에서도 ‘혁명’이나 사회 진보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라는 문구가 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요컨대 이러한 선언은 문혁의 혁명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내적 동기 자체에 대한 물음을 그 자리에서 즉시 거세해버리는 방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문혁이 제기하는 여러 의제들―반관료주의, 사회주의와 당의 관계, 민중의 저항과 직접민주주의, 소유제 등―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문혁의 해석권을 둘러싼 이같은 각박한 사상적 지형은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혁명에 대한 담론의 양상, 혹은 그러한 담론의 부재 상황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혁명을 과거의 어느 시점에 묶어놓은 채 무용론을 자연스레 내면화하고 그리하여 금기어로 삼는 바로 그 순간, 다양한 사회변혁의 가능성도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촛불을 켜든 우리가 지금 다시 혁명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당장 이 물음에 깊이 있는 대답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한 사오궁의 다음 말로 잠시나마 그 답을 대신하고 싶다. “‘초록 막대기’가 저기에 있단다. ‘초록 막대기’는 찾을 수 있단다. 왜냐하면 ‘초록 막대기’에 대한 동경이 바로 ‘초록 막대기’거든. 이것이야말로 현실성과 현장성, 삶의 냄새, 일상의 체온을 여실히 갖춘 이상의 약속 아닌가.”(296면)
김하림 / 세교연구소 연구원
2017.3.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