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진정 돌봄이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대선이 다가오자 유력 후보들이 앞다투어 발표하는 공약 중에는 보육과 돌봄 정책도 빠지지 않는다. 자녀를 출산하면 마음 놓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그 기간을 연장하고 휴직 중에 받는 급여를 인상하며, 국공립 어린이집과 직장 보육시설을 확대하겠다는 등의 약속은 무척 희망적이고 고무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현명한 유권자라면 과연 실현 가능한 약속인지 반문할 것이며,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예산 확보, 즉 돈이 관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복지정책에서 재원 확보는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언제나 좋은 정책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무상보육이 중요한 공약으로 부상한 뒤 관련 예산이 급증했다. 놀랍게도 한국의 영유아 보육과 교육에 들어가는 공적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9%이며, 일본(0.4%)은 말할 것도 없고 네덜란드(0.7%), 독일(0.6%), 영국(0.8%)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을 이미 추월했다.(OECD 통계, 2013년 기준) 그리하여 한국은 보육선진국이자 세계가 놀랄 만한 성공사례가 된 것일까?
불안과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보육정책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국가의 보육료 지원을 받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이미 경험했을 것이다. 무상보육을 실제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있었지만 우선 두가지 갈등을 되짚어보자. 첫번째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둘러싼 중앙정부(기획재정부와 교육부)와 지방 교육청 간의 갈등이다. 누리과정은 3세에서 5세 어린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때 기본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육자치를 표방하는 교육청과 이를 제어하려는 중앙정부 간의 갈등으로 반복적인 예산파행이 빚어졌고, 부모들은 행여 보육료 지원이 끊어지지 않을까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두번째로,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면서 오히려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자격과 우선순위에 대한 논란과 갈등이 불거졌다. 보육 수요가 급증하자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전업주부들의 0~2세 보육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영아는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것이 좋다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내세웠다. 졸지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맘들은 정부가 공인하는 나쁜 엄마가 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전업주부들 사이에서 서비스 이용의 형평성을 주장하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급기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출근도 안 하면서 아이를 맡기는 게으르고 부도덕한 엄마”를 힐난하는 여성혐오 발언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갈등은 단지 재원 부족 때문에 촉발된 것이며, 돈이 충분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까? 재원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돌봄, 특히 사회적 돌봄(social care)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는 보육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늘 저출산 해결을 앞세운다. 더 많은 재원을 들여 더 많은 출산을 얻는 것이 보육정책의 목적일까? 이런 시각은 돌봄 문제를 출산 장려와 성장지속이라는 생산주의 관점에 종속시킬 우려가 있다. 이익의 극대화와 성장을 추구하는 시장논리와는 구분되는, 돌봄 가치와 삶의 질을 위해 우리가 어떤 사회적 합의와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불평등한 구조를 해결해야
돌봄의 권리에는 돌봄 받을 권리만 있는 게 아니다. 많은 학자들은 돌봄을 제공할 권리, 더 나아가 과도한 돌봄 부담에서 벗어날 권리도 모두 중요하게 본다. 플러스의 권리뿐 아니라 마이너스의 권리, 즉 돌봄 부담을 면제받을 권리도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선후보는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해서 출산 직후,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또 아이 교육을 위해 필요할 때 엄마가 충분히 돌봐줄 수 있게 하자는 공약을 내놨다. 평소 직접 아이를 챙기지 못해 부채감을 안고 사는 직장맘들에게 솔깃한 제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다녀온 직장여성 10명 중 3명은 1년 이내에 퇴사하며, 4명 중 1명은 놀랍게도 육아휴직 후 일주일 안에 직장을 그만두었다.(2015년 기준)
이런 현실에서 육아휴직이 3년이 된다 하더라도 과연 출산 후에 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또 입시를 준비할 때까지 계속 직장에 다니면서 재차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역으로 휴직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외국의 연구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취업여성이 별도의 “마미 트랙”으로 빠지게 되며, 휴직 후 여성들이 아예 노동시장에서 퇴장하게 될 우려도 있다. 직장여성에게 더 많은 엄마 역할을 요구하는 발상보다는, 숙제 준비나 사교육 정보를 얻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는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교육정책, 어머니들의 교육지원노동에 의존하지 않는 학교운영정책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돌봄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 국가는 인센티브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가족친화적인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육아에 참여하는 남성에게 육아휴직 기간이나 급여에서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식이다. 남성들에게 돌봄 면제권을 부여했던 가부장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인센티브 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여성들에게 “역(逆)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의 부작용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남성의 성평등한 돌봄 참여를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여성에게는 역으로 전통적 성역할을 지속할 때 인센티브를 준다면 곤란하다. 최근 보육시설에 다니는 영유아가 크게 늘었지만, 다른 한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직접 가족이 돌보는 경우에는 양육수당이 지급된다. 양육수당은 보육료 지원과의 ‘형평성’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자칫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는 역의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양육수당을 받은 여성은 받지 않은 여성보다 이후 취업할 확률이 15%가량 낮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육아휴직과 무상보육을 늘린다 해도 노동시장의 불평등구조가 지속되는 한 그 긍정적 효과는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돌봄이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우선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 하며, 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삶의 질을 일정하게 누릴 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돌봄을 주고받을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변적 일자리로 취급받는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불안정한 저임금노동을 반복하는 돌봄노동자, 폐쇄회로 카메라로 모든 행동을 감시받는 보육교사가 사랑과 정성으로 누군가를 돌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황정미 / 강원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2017.3.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