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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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우에노 지즈코 외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비혼,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우에노 지즈코·미나시타 기류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동녘 2017

 

 

jrrtj대부분의 기혼자에게 있어 ‘비혼’은 아련한 후회와 착잡한 한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다. 이렇게 말하면 ‘비혼’이 구질구질한 결혼생활과 비교되는 자유롭고 당당한 ‘솔로 라이프’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최근 발표된 한 연구결과는 이러한 우리의 통념을 살짝 비껴간다. 20~30대의 소득별 기혼자 비율을 분석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1분위의 가난한 남성이 결혼할 확률은 10분위 남성보다 무려 12배나 적었다(임금 상위 10%의 기혼자 비율은 82.5%인데 반해, 하위 10%는 6.9%에 그쳤다). 여성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 임금 10분위 기혼자 비율이 76.7%로 가장 높았고 뒤이어 9분위, 8분위 순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만 놓고 보자면 ‘비혼’은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가난의 결과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유연한 노동’이라는 단어가 노동의 불안정성을 은폐하는 것처럼 주체적 결단으로 포장된 ‘비혼’이라는 용어 역시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의 모순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신선한 감각으로 은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이러한 의심이 온당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결혼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본질적 권리의 하나라는 합의가 필요하다. 만약 결혼이 인간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단지 가부장제를 존속시키는 폐습에 불과하다면 이유야 어떻든 간에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상은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에노 치즈꼬(上野千鶴子)와 미나시따 키류우(水無田氣流)의 대담집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조승미 옮김)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결혼이나 출산은 사회적 관습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습이 약해지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두 대담자는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비혼도, 결혼도, 출산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의 도래를 요청한다.

 

비혼자가 늘어나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진단

 

하지만 이런 결론은 극소수의 ‘결혼지상주의자’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쉽게 합의 가능한 내용이다. 이 책의 독특성은 이런 무난한 주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비혼 현상을 분석하는 두 대담자의 고유한 시선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현재 일본의 비혼 현상을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일관되게 해석하는 우에노 치즈꼬의 태도다. 그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 결혼에의 유인(誘因)이 적다고 말하는데 여성의 경우 이는 “결혼이 더는 생활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여성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주체라기보다는 보수적 결혼관에 물든 수동적인 캐릭터에 가깝다. 우에노 치즈꼬는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의 말을 빌려 “남자가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형 모델’과 같은 보수적인 결혼관을 유지하는 남녀일수록 비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여러번 강조한다. 가령 “일하기를 피하고 싶은 마음”을 지니는 여성들의 경우 결혼이 노동시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핑계가 될 수 있는데 요새 남자들은 예전과 같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남자와 가정을 꾸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자와 결혼하는 것보다 돈이 많은 부모에게 얹혀 사는 것이 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방법임을 알게 된 여성들은 전략을 바꾸어 결혼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에노 치즈꼬는 만약 결혼율을 높이고 싶으면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주지 않고 내쫒으면 된다고 말한다.

 

우에노 치즈꼬의 이런 말은 독자들에게 당혹감을 줄 만하다. ‘비혼’을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표나게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언급과 내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 대담자가 진단하는 ‘비혼’의 원인은 보다 냉혹한 것이다. 가령 연애결혼이 동질혼의 경향을 촉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우에노 치즈꼬의 주장에 따르면 비혼은 경제적 결핍을 공유하는 집단들 사이의 동질비혼과 다르지 않다. 그가 여성들의 비혼을 적극적인 합리적 선택이라고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젊은 여성들의 보수화된 생각을 공격하는 모순은 그래서 발생한다. 한편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비혼 여성들의 반대편에 머리 좋고 뛰어난 기혼 여성들이 있다. 자격증을 갖고도 일하지 않는 여자 의사, 변호사들이 대표적이다. 우에노 치즈꼬는, 여자 의사들은 대부분 수준이 자기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남자와 결혼을 하기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할 경우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앞으로 여자 의사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어요”라고까지 말한다. 국공립 의대는 국민의 세금으로 의사를 양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있는 여성들은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기 때문에 지금의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공범 관계”로 치부된다. “요즘 여자들은 너무 물러요”라는 미나시따 키류우의 말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나온다.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노동할 권리를 위해 싸웠던 ‘왕년의 페미니즘 전사’들의 입장에서 결혼생활에 환상을 가지고 가정 내에 머무르려 하는 대다수 여성의 태도에 품는 불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비혼을 선택하지 않고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에 대해 “현실주의”라는 ‘내면화된 규율권력’에 의해 철저하게 지배되어 거의 아무런 분열조차 느끼지 않는 존재라고 힐난하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결혼을 선택하는 기혼 남녀를 신랄하게 비난한다고 해서 비혼 남녀의 처지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려 깊이 생각해볼 지점은 “선배 여성처럼 결혼에 실패한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고” 하는 요즘 여대생들의 태도인데 우에노 치즈꼬는 이를 “표준 규격에 맞추려는 동일화”의 결과로 해석하고 미나시따 키류우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때문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피상적 ‘몰이해’는 “평생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적극적 싱글파의 구성이 여성은 8%, 남성은 10.4%로 남성이 더 높게 나오는 현상에 대해서도 반복된다. 미나시따 키류우는 이에 대해 “저소득층이 결혼이나 출산을 생각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서 애초에 인생의 선택지에서 제거했다는 가설”을 제시하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다. 이런 몰이해와 분석적 무능력은 비혼 남성이나 결혼하고 싶은 여성을 철저한 타자로 설정한 데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에 대한 조급한 타자화를 멈추고 타자의 욕망을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의 필요성이 절감되는 대목이다.

 

앞서 말했듯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는 현재의 비혼을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이자 동시에 보수적인 결혼관의 산물로 이해하는 모순을 보인다. 비록 서로 상충하는 진단이지만 어쩌면 이러한 충돌이야말로 현재 ‘비혼’ 남녀들이 살아가며 부딪히는 삶의 곤란함을 체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재생산에 온통 관심이 쏠린 재계와 정부의 혼인/출산 담론도, 비혼을 다가오는 시대의 분방하고 당당한 라이프 스타일로 표상하려는 조급한 욕망도 아닌 실제 과도기를 통과하고 있는 비혼 남녀들의 목소리를 채록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결혼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존속시키는 악의 장치가 아니듯 비혼 역시 그 장치로부터 탈주체화하는 진리의 실천으로만 간주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실사구시’적인 접근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오래 계속되었다.

 

한영인 / 문학평론가

2017.4.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