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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싸우는 사람들: 세월호참사 3년에 부쳐

강경석

강경석

늘 메고 다니는 가방 지퍼에 금속 재질의 노란 리본을 단 게 이태쯤 전이다. 옷깃에 핀으로 꽂는 천 재질의 리본이 자주 떨어져 좀더 견고한 것을 찾던 참이었는데 마침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참여했다 얻은 것이었다. 단단한 만듦새 덕에 여태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이런 건 누가 다 만드나. 이따금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도안을 뜨고 필요수량을 가늠하는 눈길이나 프레스기계를 다루는 공원들의 능숙한 손놀림, 완성품을 싣고 와 부리고 나누는 이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매순간 저마다의 수고 위로는 어떤 표정이 스쳤던 걸까.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304낭독회’도 벌써 30회를 넘겨 정확히 언제였는지 어렴풋하지만 장소는 역시 광화문광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쇄된 낭독자료집을 내려놓고 다음 행선지로 바삐 떠나는 퀵서비스 기사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본 적이 있다.

 

“나는 당신의 동료였다”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때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경우도 아주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가 하면 한 작가의 소설 속 문장에서처럼 곳곳에서 우리는 “아득하고 불가촉한 거리”(권여선 「이모」)를 안타깝게 확인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인원 1600만을 넘었다는 촛불시민들의 물결이 무능하고 파렴치한 수구 부패정권을 무너뜨리는 초유의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그렇다고 촛불을 켜는 각자의 마음이 단 하나였을 리는 없다. 공감과 연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주고받아왔으나 그 말의 본뜻 또한 남김 없는 일체화를 가정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말들은 누군가 강조하면 할수록 오히려 완강한 거리를 증언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 끝내 메우지 못할, 불가피한 간격에서 만들어진 모종의 인력(引力)이 지난겨울의 ‘거대한 동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닐까.

 

언론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 폭로가 상황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를 향한 에너지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다. 지난 4·13총선 결과가 이미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무엇보다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의 집요하고도 전방위적인 교란행위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거리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었던 노란 리본들의 존재는 작지만 뚜렷한 증거였다. 그것은 마치 ‘내가 당신의 동료임’을 알리려는 간단없는 발신처럼 보였다. 아무런 설명 없이도 서로에게 전달되는 무언가가 거기엔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커져왔고 ‘동료들’ 사이의 이심전심 가운데 더욱 엄연해졌다. 저마다 사연도 사정도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싸운 이들은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이바지의 방식이나 내용이 달랐을지언정 그 크고 작음을 가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더욱 담대한 동행으로

 

세월호 때문에 박근혜정권이 무너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사 앞에서 보여준 그들의 무능과 파렴치, 진실조작이 아니었더라도 사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수구성향의 관변단체를 동원해 ‘두 국민’으로의 분열을 조장하고 참사의 진상과 책임소재를 밝히려는 특조위 활동을 조직적으로 훼방했던 ‘컨트롤타워’가 바로 이 나라의 집권세력이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유해를 찾아 어둡고 막막한 맹골수도 한복판으로 기꺼이 뛰어든 민간 잠수사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바다에서 죽음을 맞았고 다른 어떤 이는 그 억울한 죽음을 함께 앓다 육지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죄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법정을 드나들어야 했던 이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듯이 탄핵인용 다섯시간 만에 세월호 인양이 결정되고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결정됨과 거의 동시에 처참하게 망가진 세월호가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혀 우연이랄 수가 없다.

 

노란 리본은 기다림을 상징한다. 처음엔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다음엔 죽어서라도 돌아오길 기다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홉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하루빨리 유가족이라도 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무정한 바다 곁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따라 인양된 세월호에서 남은 아홉 희생자가 돌아오고 정권이 교체되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만 한다면 우리의 기다림은 끝나는 걸까. 아무래도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기다리기만 해서 될 일도 아닐 것이다. 흉터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진실을 향한 우리의 동행이 이제부터 더 깊고 담대해져야 하는 이유다.

 

강경석 / 문학평론가

2017.4.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