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촛불민주주의’가 낳은 새정부다운 남북관계 접근법을
반복되는 한반도 위기
해마다 4월이면 등장하는 ‘한반도위기설’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올해는 더 요란스럽고 위태롭다. 미국의 핵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반도 전개 소식과 맞물려(고의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북 선제타격이나 북 미사일 요격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급기야 정부가 나서서 ‘한국정부 승인 없는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은 불가능’하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에 대한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옵션 사용이 실제 현실에 옮겨지기는 쉽지 않다. 전면전으로의 확전, 북한 내 군사목표에 대한 정보의 부족, 북한의 핵 보복과 그에 따른 한국·일본 등 관련국들의 막대한 피해, 중국의 개입 가능성 등 군사옵션의 사용에는 너무나 많은 제약과 고려가 따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황이 심화되면서 한·미는 물론 북한조차 군사전략과 태세(posture)가 선제공격 위주로 완벽히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마른 들판의 불씨처럼 우발적 충돌이 순식간에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거기에 최첨단 전략무기를 동원하여 공공연히 선제공격과 참수작전을 수행하는 각종 군사훈련이 정례적으로 반복 실시되고 있다. 군사옵션의 선택 가능성과 별개로 한반도의 충돌 위험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를 부르는 군사력 태세는 그대로 두고 선제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안도’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군사옵션 사용이나 선제타격의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가 통제력을 잃고 (…) 최종적으로 대폭발을 면치 못”하는 상황으로(『환구시보(環球時報)』 2017.3.22) 발전할 가능성을 ‘예방’하는 일이다. 이것이 ‘촛불민주혁명’ 이후의 새정부가 풀어야 할 최대의 숙제 중 하나다.
변화의 기대와 현실조건의 거리
한반도 군사위기 해소와 북핵 문제 해결·남북관계 발전은 촛불혁명 이후의 새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 중의 난제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높지만, 그를 실현하기는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 환경이다.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비약적으로 신장되었고, 북핵 문제는 ‘미국 본토에 대한 2차 핵타격 능력의 구비’라는 북·미 충돌의 임계점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시험과 3대 세습 등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크게 확대시켰고, 남쪽 사회에서 반북의식의 내면화와 제도화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또 지난 9년 동안 5.24조치와 개성공단 중단조치 등 온갖 비민주적 굴레가 집중되는 속에서 통일과정을 주도할 민간의 대북교류 자원과 생태계도 크게 파괴되어 있는 상황이다.
반면 트럼프의 개인적 도발과 호전성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최고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라는 이름 아래 ‘선 비군사옵션 후 군사옵션 고려’로, 그리고 비군사옵션 사용단계에서는 ‘선 압박 후 대화’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미국은 미중정상회담과 펜스 부통령의 방한성명 등에서 “북한은 미국의 단호함과 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한반도비핵화’(‘북한 비핵화’가 아님에 유의)와 ‘평화적 달성’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북 핵·미사일로 인한 위기가 정점에 달했고,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 군사적 옵션 외의 모든 조처를 취할 때가 됐다”(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는 미 행정부의 인식과, “한반도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대북 접근태도는 새정부 대북정책 추진의 기회요인이다.
또 남한의 적대적인 정권들을 겪으면서 남한의 대북 관여정책에 대한 북한의 이해와 수용성이 높아졌고,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의지를 보이는 것도 새정부 대북정책 추진의 중요한 자산이다. ‘제2의 6.15시대를 열자’라는 말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좀더 불가역적인 남북관계 진전을 추구하지 못한 데 대한 북한의 회한이 담겨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트럼프정부의 ‘전략적 인내’ 종언과 ‘압박적 관여정책’ 추진에 대해 북한은 “우리에게 제재는 통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에는 제재를 위한 새 법안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사 논평 「새로운 사고와 전략이 필요하다」, 2017.4. 4) 사실 트럼프정부의 ‘압박적 관여정책’은 적극성에서 차이가 있을 뿐 현시점에서는 ‘중국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인내정책과 동일하다. 북한이 ‘새로운 사고와 전략’을 강조하는 것은 제재 위주의 접근 대신 북미 적대성의 완화에 나서라는 것이고,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는 굴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의 안보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계속 핵능력을 강화해나가겠다’는 의미이다.
이 지점에서 새정부의 대북접근 역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기존의 ‘안보-경제 교환 모델’이나 ‘포괄적인 안보-안보 교환 모델’과 달리 북한의 안보와 주권 문제를 한반도 군사위기의 완화, 즉 ‘상호위협감소’(mutual threat reduction) 문제와 직접 연계시키는 전략이다. 한반도에서 상호위협감소는 1차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동결과 북한을 향한 공격적 무력시위, 즉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잠정적인 중단·축소가 되어야 한다.
실질적 상호위협감소는 한반도 군사위기 해소를 위한 응급조치이면서 동시에 북핵의 당사자인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끄는 가장 유효한 조치이다. 또 상호위협감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비핵화-평화협정의 교환 논의, 즉 중국이 말하는 쌍궤병행(雙軌竝 行)의 본격적 논의단계로 진전시키기도 어렵다. 상호위협감소의 진전이 없는 북핵협상 공방은 오직 “도발과 효과 없는 제재와 긴장의 무한 반복만 있을 뿐이다”(김영희 「핵 동결과 평화협정의 교환이 답이다」, 중앙일보 2016.2.5). 북한이 제재와 압박에 굴복하지 않을 때, 군사옵션을 제외하면, 한반도비핵화 문제의 ‘평화적 달성’에 도달하는 불가피하면서 유일한 해법은 상호위협감소 조치의 실행이다.
물론 새정부가 한미 군사동맹의 핵심인 합동군사훈련 문제를 북핵협상의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반도 위기를 악화시키는 군사행동의 상호 동결 없이 협상이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지난 북핵 문제의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자명하다. 더구나 이러한 상호위협감소를 통한 평화적 해결의 접근은 북핵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즉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동결하는 협상이 의미가 있을 때 현실적으로 유효한 접근이 된다. 새정부에 많은 시간이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또 북핵 문제 해결을 실질적인 상호위협감소와 연동시키자는 주장은 사실 새롭거나 혹은 일각의 ‘위험한’ 주장도 아니다. 이 주장은 한국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한국의 보수언론(앞의 김영희 대기자), 미국 외교협회(CFR)의 쌤 넌과 마이크 뮬린의 보고서(“A Sharper Choice on North Korea,” 2016.9), 중국 왕 이 외교부장의 쌍중단(雙中斷) 주장 등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된 ‘오래된’ 새 접근법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확대와 다층적 대북접근
임계점으로 치닫는 북핵 및 군사위기의 대응과 함께 새정부가 맞닥뜨릴 또 하나의 문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조건에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진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의 병행 혹은 정경분리 원칙의 적용 등 비핵화를 추구하면서도 남북관계 발전을 병행함으로써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의 선순환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일정 수준으로 풀리지 않는 조건에서는 남북관계 진전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고 국민적 동의 위에서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해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사실 정경분리는 일정 기간 한정적으로 작동하는 처방이지 남북관계 발전의 정도가 아니며, 그나마 제대로 작동 못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정부하에서도 인도적 문제에 해당하는 대북 식량지원 문제에서 정경분리 프레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 차원의 대북 쌀지원은 당국관계 변화에 따라 단속적으로 중단되었고, 심지어는 ‘차관’ 명목으로 지원하는 편법이 동원되어야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식량지원이 완벽히 중단되었고, 심지어 아동 등 취약계층에 대한 대체식량의 지원조차 차단되어 있다.
남북관계에서 정경분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관분리와 민간의 다양성 실현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 변화에 대한 다층적 접근경로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민간의 남북교류에 대한 판단과 인허가를 사실상 정부가 독점, 통제함으로써 대북접근의 당국 독점, 단선화에 집착한 것도 주요 원인의 하나였다. 단선적 대북접근 구조하에서는 당국관계가 경색될 경우 민간을 통한 유효한 대북정책 레버리지의 확보나 대북정책 변화의 모멘텀 확보가 불가능하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비민주적 본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촛불민주혁명 이후의 새정부가 청산해야 할 ‘적폐’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민관분리와 다층적 대북접근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에서의 민주주의의 확장이자, 우리 사회가 가진 대북정책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는 방안이 된다. 남북관계는 당국관계보다 민간 차원에서 매우 다양한 층위와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단순한 민간의 각 부문, 시민사회적 공간, 시장 부문 등이 제도적 혹은 비제도적, 친화적 혹은 비친화적인 다양한 사회적 남북연결 공간을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당국관계가 어떠한가와 상관없이 각각의 판단과 가치, 이해관계의 상호성 위에 다양하고 다층적인 공간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설사 남북관계에서 어떤 합의가 이루어져도 이 다층적 공간에서는 비판과 동조가 공존하게 된다.
그 결과 진보든 보수든, 경제적이든 비경제적이든, 인권·생태·평화·젠더 기타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민간의 교류는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 변화 추진에서 당국과 구별되는 또다른 핵심 행위자들이 될 수 있다. 이는 북한에 무슨 민관의 구별이 있느냐는 문제보다, 오히려 남북관계에서의 민주주의 확장과 민간의 자율성 확대가 더 큰 연관성을 지닌다.
촛불민주혁명으로 탄생하는 새정부는 남북관계를 민주주의와 민간 자율성의 확고한 토대 위에 운영해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선차적으로는 대북 인도지원과 같은 영역부터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민관분리를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당국관계와 상관없이 분절 없는 남북관계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촛불민주혁명 이전과 이후의 남북관계는 여기서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승환 /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2017.4.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