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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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레 소잉카 『오브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절망과 희망
―월레 소잉카 『오브 아프리카』, 삼천리 2017

 

 

tyjyj아프리카는 중국, 미국, 인도, 유럽을 합치고도 남는,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이지만 대부분의 세계지도에서 실제보다 훨씬 작게 표현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입체인 지구를 2차원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지도 제작상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적 크기 면에서 현저하게 축소된 모습으로 우리 의식에 각인된 아프리카대륙은 인류 문명사에서 이 지역이 차지하는 역할과 그 중요성이 심각하게 축소되거나 지워진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몰랐던 아프리카의 진면모에 접근하는 일은 이 대륙에 들러붙은 고정관념과 거짓을 걷어내는 작업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나이지리아를 대표하는 드라마 작가이자 시인이며, 현실정치에 개입한 댓가로 군부정권에 의해 1967년부터 2년간 투옥되었고, 망명 중인 1997년에는 사형선고를 받은 적도 있는 월레 쏘잉카(Wole Soyinka). 현재 여든을 넘긴 그가 지난 2012년에 출판한 산문집 『오브 아프리카』(Of Africa, 한국어판 왕은철 옮김)는 그가 술회하듯이 근자의 두가지 ‘의미심장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는 2006년 다르푸르(Darfur)에서 대학살이 일어났지만 정작 전세계의 이목은 다르푸르가 아닌 덴마크 일간지의 풍자만화에 집중된 사건이다. 이슬람 모욕 혐의와 그 여파로 일어난 일련의 사태 말이다. 두번째는 2009년 독일에서 쏘잉카가 강연 후 열린 만찬에서 어느 젊은이로부터 들은 “무례한” 발언이다. 그 청년은 아프리카인들이 선천적으로 열등한 종족이 아니었다면 수백년간 다른 인종들에 의해 노예가 되는 일도 없었을 테니 그 점을 사실로 인정하라고 대놓고 그에게 말했다. 쏘잉카가 꿰뚫어보았듯이 이 발언의 심각성은 그것이 한 개인의 편견이나 무례함이 아니라 광범위한 집단 전체의 뿌리 깊은 신념을 표현했다는 데 있다. 아프리카인들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하고 마음 속 깊이 그들을 비하하는 널리 편재한 경향, 『오브 아프리카』는 이 도저한 집단적 편견에 관한 쏘잉카 나름의 성찰이자 대응이다.

 

“만들어진 아프리카”의 비극

 

쏘잉카가 말하는 “만들어진 아프리카”는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만들어진” 존재로서 아프리카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이 대륙 54개 국가의 국경선들이다. 아프리카의 국경은 제국주의 열강의 쟁탈전이 절정에 달했던 1880년에서 1900년 사이 불과 20년 만에 그어졌고 이는 근대적 국민국가라는 정체성이 외부에서 이입된,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허구임을 시사한다. 아프리카를 “누비이불처럼 만든”(28면) 인위적인 국경선이 21세기에 이른 현재까지 분쟁과 학살의 역사를 지속시키는 상황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배는 여전히 무시무시하게 살아 있는 과거다. 소잉카가 보기에 국경 문제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과 지혜를 요청하는 지난한 과제이며, 아프리카 각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특별한 도덕적 용기를 발휘하여 필요할 경우 인접국가와 권력과 통치를 나눌 생각을 해야 비로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서구인들뿐 아니라 아프리카 내부의 권력자들이 노예무역에 깊이 간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쏘잉카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도 ‘검은 대륙’이 처한 비극의 원인과 극복의 길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조명하기 위함이다. 아프리카 토착민들을 강제로 포획하여 그 댓가로 부를 축적하고 현재까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자들.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온전한 과거청산이 이뤄질 것인가? 쏘잉카 자신이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아프리카인의 노예화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아프리카인을 비(非)인간화하는 장구하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는 아프리카가 아랍세계와 유럽에 의해 이중의 식민지화를 경험한 대륙이라는 사실과 깊이 관련된다. 잘 알려진 대서양 노예무역과는 대조적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위치한 또 하나의 노예무역 경로가 있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사하라사막을 북동쪽 방향으로 횡단하여 중동지역으로 노예를 대거 송출했던 오래된 역사가 그것이다. 그 결과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 여러 지역에 아프리카인들의 이산(diaspora)이 일어났고 이는 유럽에 의한 아프리카 침탈이 일어나기 수세기 전에 이미 아랍인들이 아프리카 북부지역부터 사하라 이남까지 지배를 확대했던 역사와 조응한다.

 

서구인들에 앞서 노예무역의 주역이 된 아랍 출신 지배 엘리트는 이슬람교를 아프리카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토착민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강등하고 압제를 정당화했다. 수단 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잔자위드를 내세워 다르푸르에서 대규모 강간과 학살, 강제이주를 자행해온 것이나, 나이지리아 무장 이슬람 세력인 보코하람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끔찍한 인권유린을 생각해볼 때 서구 제국주의의 첨병인 기독교 못지않게 이슬람교가 아프리카인들에게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로 작동해왔음이 분명하다. 쏘잉카는 잔자위드를 “다푸르의 KKK단”(123면)으로 갈파하면서 정치경제적 주도권과 이권 다툼 속에서 토착민을 인종적 타자로 만들고 그들의 인권과 생명을 짓밟는 과정에서 이슬람교가 이념적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을 고발하는 한편, 동시에 아프리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이슬람교 자체가 아니라 정치화된 이슬람과 그것의 “패권적 공격성”임을 명확히 한다(140면)

 

아프리카의 내재적 가능성

 

이처럼 아랍과 유럽에서 온 침략자들과 그들의 신식민주의적 후손들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유린당했고 지금도 유린당하고 있는 아프리카대륙은 부패한 독재정권과 기근, 전쟁과 학살이 지속되는 영원히 ‘슬픈 대륙’으로 남을 것인가? 쏘잉카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고한 어조로, 아프리카대륙 내부에 존재하는 인류 문명의 대안적 요소를 짚어낸다. 인간, 삶, 공동체를 대하는 태도와 지향이라는 측면에서 아프리카가 인류 문명에 대안적 희망으로 기여할 수 있는 내용들을 쏘잉카는 아프리카 인본주의로 부르며, 레오뽈 쎄다르 쌍고르의 네그리뛰드(négritude)와 데스몬드 투투의 우분투(unbuntu)를 사례로 든다. 21세기 현 시점에서 아프리카를 넘어 세계 문명의 ‘르네상스’를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는 아프리카 인본주의의 또다른 내용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쏘잉카는 종교 문제를 천착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배타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정정치의 형태를 띠며 세속적 독재권력과 쌍두마차를 이루어 아프리카대륙 곳곳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쏘잉카는 이 두 종교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이고 사상적인 원천이 요루바족의 토착종교 오리사교에 있다고 본다.

 

오리사교에도 유일신 개념이 존재하지만 타 종교에 대한 배제가 아닌 포용을 특징으로 한다. 사제 집단에는 어떤 우월적인 지위가 부여되는 대신 믿는 자와 신을 이어주는 매개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쏘잉카는 오리사교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토착종교들이 인간을 자연과 이어주고 자연에 내재한 치유하는 힘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질병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LA의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했던 척추질환을 아프리카 전통의술의 힘과 현대의학을 결합한 가나 병원의 치료법 덕분에 고치게 된 쏘잉카의 친척 제이컵 T의 일화는 특히 인상적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배제와 폭력, 독선과 독재를 정당화하는 원리로 기능하면서 절대다수의 아프리카인들을 영원히 노예의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상황에서, 쏘잉카는 개종 개념 자체가 없는 종교, 즉 타자와 타 종교를 배제하는 대신 포용하고, 세속적 질서와 공동체의 원리를 체현하는 오리사교에서 새로운 세속적 영성의 원류를 구하고자 한다. 오리사교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다양하고 심원한 전통문화들에 대해 문명의 이름을 부정했던 제국주의 이념의 그늘은 짙고도 광대하다. 아프리카 문명에 대한 진정한 앎의 역사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쏘잉카의 이 책이 기여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번역과 관련해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왕은철 교수는 국내 독자들이 응구기 와 티옹오, 나딘 고디머, J. M. 쿳시 등 주요 아프리카 작가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풍부한 경험을 갖춘 번역자이다. 그런데 후기를 참고하면, 그런 역자로서도 쏘잉카의 이 책은 번역 작업이 무척 힘겹게 느껴졌을 만큼 난해한 문장들이 많았다고 한다. 독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 어색한 구절들이 역서에서 자주 출몰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편견과 왜곡을 걷어내고 아프리카의 진실에 다가가기를 원하는 독자들의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다. 『오브 아프리카』에서 자주 발견되는 모호하거나 읽기 까다로운 대목들은 이 점에서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은 아프리카의 현재와 과거에 관해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전해주지만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역사서는 아니다. 따라서 이 책과 더불어 아프리카 관련 저서들을 꾸준히 간행해온 삼천리 출판사에서 낸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 (리처드 J. 리드 지음, 이석호 옮김, 2013)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권영희 / 서울시립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2017.5.10 ⓒ 창비주간논평